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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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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루이나]][[분류:루이나의 언론]] [목차] [clearfix] == 개요 == [[루이나]]의 언론 지형을 다루는 문서. 루이나의 신문·방송·통신사·주간지·인터넷 매체는 관행적으로 진보, 보수, 중도, 그리고 어느 쪽으로도 분류되지 않는 극단 매체의 네 갈래로 나뉘어 불린다. 이 구분은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고 각 매체가 스스로 붙인 이름도 아니다. 1980년대 후반 언론학계와 여론조사기관이 편의상 쓰기 시작한 분류가 언론 스스로에 의해 반복 인용되면서 굳어진 것이며, 현재는 매체들이 자신을 소개할 때도 이 용어를 쓴다. 루이나 언론의 특징으로 흔히 지적되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 매체의 수가 많지 않고 상위 세 개 일간지가 유료 발행부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과점 구조라는 점. 둘째, 그 과점 구조가 시장 경쟁이 아니라 1978년 군정기의 행정 조치로 만들어졌다는 점. 셋째,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이 경제 정책이 아니라 국가가 자국민에게 한 일을 어디까지 인정하느냐에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항목은 다른 나라의 언론 지형과 비교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특이점이다. == 분류의 기준 == 루이나에서 특정 매체를 진보 또는 보수로 부를 때, 그 판단의 일차적 근거는 조세·복지·노동 정책에 대한 논조가 아니다. [[제방 계획]], [[스틸워터 계획]], [[검은 10년]], 1978년 군정, 그리고 이 시기에 국가기관이 시민과 언론인에게 행한 일에 대해 해당 매체가 어떤 입장을 취해 왔는가가 먼저 따져진다. 이 때문에 루이나에서는 다른 나라라면 성립하기 어려운 조합이 자주 나타난다. 경제 면에서 감세와 규제 완화를 일관되게 주장해 온 경제지가 과거사 문제에서는 진보 성향 일간지와 사실상 같은 편에 서는 일이 있고, 반대로 복지 확대를 지지하는 종교계 주간지가 군정기 재평가 문제에서는 보수 진영에 분류되기도 한다. 1996년 국가배상 소송 국면에서 각 매체의 사설을 분류한 조사에서, 경제 쟁점 기준의 분류와 과거사 쟁점 기준의 분류가 일치한 매체는 전체의 절반이 되지 않았다.[* 벨포르대학 언론연구소, 「논조 축의 이중성에 관한 연구」, 1997. 이 조사는 이후 성향 분류를 다룰 때마다 인용된다.] 여기에 더해, 현재 살아남은 주요 매체 대부분이 1978년에서 1980년 사이 군정과 어떤 형태로든 타협한 이력을 갖고 있다는 사정이 있다. 통폐합을 거부한 신문은 폐간되었고 남은 신문은 남기로 선택한 신문이기 때문이다. 진보 매체가 보수 매체의 과거를 문제 삼으면 보수 매체가 같은 자료로 되받는 구도가 1990년대 내내 반복되었고, 이 소모전이 양쪽 모두의 신뢰도를 깎았다는 것이 언론학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 역사 == === 제1공화국 === 루이나의 근대 신문은 왕정 말기 내전기의 정파 회보에서 출발했다. 1885년 제1공화국 수립 직후 검열이 폐지되면서 벨포르에서만 스무 종이 넘는 일간지가 창간되었으나, 대부분은 의회 내 특정 정파의 자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지에 가까웠고 10년을 넘기지 못했다. 이 시기 창간되어 현재까지 발행되는 매체는 [[르 나시오날]] 하나뿐이다. === 제2공화국과 전시 통제 === 1921년 제2공화국 수립 이후 신문은 정파 기관지에서 상업 신문으로 성격을 바꾸었다. 광고가 주수입이 되면서 발행부수 경쟁이 시작되었고, 1920년대 후반에는 벨포르의 주요 일간지 세 곳이 각각 20만 부를 넘겼다. 세계대전기에는 전시 검열 체제가 시행되어 전황 보도가 군 공보 발표로 일원화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검열 기구는 해체되었지만, 국가가 통신사를 통해 기사 공급을 통제하는 방식은 그대로 남아 [[루이나 통신]]의 준독점 구조로 이어졌다. === 제3공화국: 스틸워터와 검은 10년 === 1949년 제3공화국이 수립되고 냉전이 본격화되면서 언론에 대한 국가의 관심은 검열에서 감시로 옮겨갔다. 1959년 4월 3일 국방부장관 상시 지정으로 개시된 [[스틸워터 계획]]은 비판적 언론인을 장기간 사찰하고 압박하며, 필요한 경우 사고로 위장해 제거하는 공작이었다. 21년 6개월간 별표에 등재된 1,062명 가운데 상당수가 현직 기자·편집인·방송 제작자였다. 압박 수단은 대부분 개별적으로는 합법인 행정 절차였다. 세무조사, 예비군 반복 소집, 공공임대주택 배정 심사, 여권 발급 지연, 그리고 광고주에 대한 비공식 접촉이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다. 광고주 접촉은 특히 효과가 커서, 1960년대 중반 몇몇 중소 신문이 수개월 사이에 광고가 끊겨 자진 폐간했다. 이들 신문의 폐간은 당시 경영난으로 보도되었고, 공작의 결과였다는 사실은 1993년 전직 실무 책임자의 증언 이후에야 알려졌다. 사망자 가운데 언론계 인물은 1964년 화재로 사망한 러시아어 주간지 편집인 마르타 K. 오시포바, 1966년 [[아르덴역 폭발]] 관련 승강장 기록을 취재하던 중 실족사한 파스칼 E. 르노, 1968년 심장질환으로 발표된 국영방송 제작자 뱅상 L. 아르디, 1976년 자살로 처리된 사진기자 뤼도비크 A. 페뇨, 1977년 익사한 클로딘 M. 베르네가 있다. 이들은 모두 사고사 또는 자살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검은 10년]]의 사망자 835명 통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같은 통계에서 정치 폭력으로 사망한 언론인 7명은 무장조직의 공격을 받은 경우에 한한다. [[검은 10년]] 동안 언론은 취재 대상이자 표적이었다. 무장조직은 자신들의 성명을 지면에 싣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실제로 [[프롤레타리아 행동대]]가 1975년 행형국장을 납치하면서 내건 요구도 성명의 게재와 낭독이었다. 1977년 제정된 반테러 임시조치법은 무장조직의 성명을 원문 그대로 게재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에 포함시켰고, 이 조항으로 처음 기소된 것이 진보 일간지 [[라 부아]]였다. 1976년부터 1977년까지 [[10월 전선]]이 징병사무소에서 빼낸 명부 사본을 언론사에 우편으로 보낸 사건도 이 시기의 일이다. === 군정기의 언론 정비 === 1978년 군정 성립 직후 국가비상위원회는 「언론 정비」라는 이름으로 전국 일간지와 방송사를 강제 통폐합했다. 지방 일간지는 1개 시 1개 사로 정리되었고, 민영 방송은 전부 국영으로 흡수되었으며, 통신사는 [[루이나 통신]] 한 곳으로 단일화되었다. 이 조치로 일간지는 34종에서 14종으로, 주간지는 100종 이상에서 22종으로 줄었다. 같은 해 제정된 [[언론기본법(루이나)|언론기본법]]은 정기간행물 발행을 허가제로 돌리고, 등록 취소 사유를 행정기관이 판단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언론인의 자격을 국가가 부여하는 증명으로 관리하는 제도도 이때 도입되었다. 통폐합 과정에서 해직된 언론인은 1,700명 안팎으로 집계되며, 이들 중 상당수는 1980년 이후에도 복직하지 못했다. === 1980년 이후 === 1980년 [[10.24 시민혁명]]으로 군정이 무너지면서 [[스틸워터 계획]]은 정지되었고, 1981년 정보기관 조사위원회가 예산 항목과 별표 사본을 확보해 사찰의 존재를 입증했다. 그러나 헌정 회복 이후 집권한 [[민주연합(루이나)|민주연합]]은 군정 세력이 민간 정당으로 전환한 조직이었고, 언론기본법은 폐지되지 않았다. 제5공화국기에는 법이 아니라 관행에 의한 통제가 정교해졌다. 정부 공보 담당 부서가 매주 각 사에 보내는 「보도협조 요청」 문건이 기사의 크기와 위치, 제목의 표현, 사진의 게재 여부까지 지정했다. 문건 자체는 법적 구속력이 없었지만 등록 취소 권한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이를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이 문건의 존재는 1988년 한 편집기자가 3년치를 모아 [[코망테르]]에 넘기면서 공개되었다. 1989년 [[루이나 헌정 위기]] 이후 성립한 제6공화국에서 언론기본법은 폐지되었고, 정기간행물은 등록만으로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1989년부터 1994년까지 일간지 11종, 주간지 60여 종이 새로 창간되었다. 다만 이 창간 붐에서 살아남아 전국지로 자리 잡은 신문은 없었고, 결과적으로 통폐합이 만든 과점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 2000년대 이후 === 2000년대에 들어 유료 발행부수가 빠르게 줄었다. 1992년 138만 부로 정점을 찍은 [[르 나시오날]]은 2025년 기준 41만 부이며, 다른 전국지도 같은 기간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수입원이 구독에서 광고로, 다시 온라인 트래픽으로 옮겨가면서 기사의 제목과 분량이 바뀌었다는 비판이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제기되었다. 2015년 [[웨스트로 경기장 폭발 참사]] 이후 [[리처드 콜턴]] 정권이 유족 농성에 대응하기 위해 온라인 여론 조작 조직을 운영하고 일부 매체에 기사 방향을 요구한 사실은 2016년 선거 이후 수사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군정기의 통제가 형태를 바꾸어 반복되었다는 인식을 낳았고, 이후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루이나의 순위가 내려간 직접적인 계기로 지목된다. 참사 당시 대학생 신분으로 농성에 참여했다가 여론공작의 표적이 되었던 [[루스탈지아 그래이]]가 2021년 대통령에 취임한 것도 이 국면의 연장선상에 있다. == 구조 == === 소유 === 전국 일간지 가운데 개인 또는 가문이 지배주주인 곳은 [[르 나시오날]]과 [[주르날 데 자페르]] 두 곳이다. [[라 부아]]는 종사자 조합과 독자 조합이 합쳐 과반을 보유하는 구조이고, [[르 마탱]]은 특정 지배주주가 없는 분산 소유다. [[루이나 방송공사]]는 국가가 전액 출자한 공영방송이며, [[루이나 통신]]은 국가와 가맹 언론사가 공동 출자한 형태다. 대기업 집단이 언론사 지분을 직접 보유하는 데 대해서는 오랫동안 제한이 없었으나, 1998년 신문법 개정으로 일간지 지분 보유 한도가 도입되었다. [[플라자 그룹]]이 [[카날 7]]의 최대 주주로 있는 것은 이 한도가 방송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며, 방송에도 같은 규정을 두자는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되었으나 통과되지 않았다. === 시장 === 2025년 기준 전국 일간지는 9종, 시사주간지는 14종이며, 지상파 방송은 공영 2사와 민영 3사, 보도 전문 채널은 4개다. 유료 구독자 수 기준으로 상위 3개 일간지가 전체의 58%를 차지한다. 신문 광고 시장은 2005년을 정점으로 계속 줄어드는 반면 온라인 광고는 늘고 있어, 주요 매체의 수입 구조는 대부분 온라인 쪽으로 넘어갔다. === 규제 === 방송은 [[루이나 방송위원회]]가 허가와 재허가, 내용 심의를 담당한다. 위원회는 행정부 독립기관이며 위원 9명 중 5명을 [[루이나 의회|의회]]가 추천한다. 신문과 인터넷 매체는 등록제이고 사전 심의가 없으며, 보도로 인한 피해 구제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을 거쳐 법원으로 간다. 통신·전파 관련 사무는 총무부 소관이지만 방송 내용에 관한 권한은 없다. 이 분리는 1989년 언론기본법 폐지 당시 행정기관이 내용에 개입할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된 것이다. == 진보 성향 == === 라 부아 === [[라 부아]](La Voix, 「목소리」). 1916년 [[사회민주당(루이나)|사회민주당]] 창당과 함께 당 기관지로 창간되었고, 1954년 당에서 분리되어 독립 일간지가 되었다. 2025년 기준 유료 발행부수 26만 부로 전국 3위. [[스틸워터 계획]]의 별표 등재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매체다. 21년간 이 신문의 현직 기자 87명이 등재되었고, 그중 3명이 제3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1977년 [[혁명적 노동자동맹|RWL]]의 성명을 전문 게재해 반테러 임시조치법 위반으로 처음 기소되었으며, 편집국장이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이 신문의 입장은 성명의 내용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무엇이 발표되었는지를 알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고, 같은 논리는 이후 극우 조직의 성명을 게재할 때도 반복되었다. 1978년 통폐합에서 폐간 대상으로 지정되었다가 제호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지분 구조를 바꾸는 선에서 존속했다. 이 타협은 지금도 이 신문의 약점으로 거론되며, 1990년대에 [[르 나시오날]]과 벌인 과거사 논쟁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되었다. 현재의 논조는 노동·복지 확대,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정보기관에 대한 의회 통제 강화에 일관되게 찬성하는 쪽이다. 징병 제도에 대해서는 폐지가 아니라 형평성 제고를 주장해 왔는데, 이는 1976년 [[10월 전선]]이 보낸 징병 명부 사본을 최초로 분석 보도한 이력과 연결된다. === 코망테르 === [[코망테르]](Commentaire, 「논평」). 1958년 창간된 시사주간지. 발행부수는 8만 부 안팎으로 많지 않으나 영향력 기준으로는 항상 상위에 꼽힌다. 기고 중심의 편집으로, 대학과 법조계 필자가 고정 지면을 갖는다. 1979년 이 잡지에 실린 한 기고문이 1970년대의 혼란기를 「검은 10년」으로 부르면서 그 명칭이 굳어졌고, 이후 이 표현은 공식 문서에서도 쓰이게 되었다. 1988년에는 제5공화국기 「보도협조 요청」 문건 3년치를 입수해 전문을 공개했다. 논조는 진보로 분류되지만, 무장 좌파에 대해서는 검은 10년 당시부터 일관되게 비판적이었다. 1977년 [[뒤발 납치 사건]] 당시 「무고함을 근거로 유죄를 자처하는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한 사설은 이 잡지의 대표적 기록으로 남아 있다. === 아르시브 === [[아르시브]](Archives, 「기록」). 2011년 창간된 비영리 인터넷 탐사보도 매체. 광고를 받지 않고 후원과 유료 구독으로만 운영한다. 창간 첫해에 [[제방 계획]] 부속서의 부분 공개를 청구했다가 거부당한 일이 이 매체의 출발점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정보공개 청구와 소송을 상시 업무로 운영하는 방식을 택했고, 연간 수백 건의 청구를 제기한다. [[코발 게이트]] 보도로 이름이 알려졌다. 기사 수가 적고 한 건에 수개월이 걸리는 편이라 속보 경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다른 매체가 이 매체의 보도를 인용하는 비율이 높아, 발행 규모에 비해 의제 설정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 베스트니크 === [[베스트니크]](Вестник, 「소식」). 1949년 창간된 러시아어 주간지. 발행부수 2만 1천 부. 소련에서 이주한 1세대와 그 후손을 주된 독자로 하며, 현재는 절반 이상의 지면을 루이나어 대역으로 낸다. 정치적으로는 오랫동안 온건했고 창간 초기에는 반소 성향에 가까웠으나, [[제방 계획]]이 이주민 집단 자체를 공산주의 침투 경로로 규정하면서 발행인과 기자 다수가 감시 대상이 되었다. 1964년 편집인 마르타 K. 오시포바가 사무실 화재로 사망한 사건은 당시 전기 배선 문제로 처리되었고, 1993년 증언에서 [[스틸워터 계획]] 제3종 집행 사례로 언급되었다. 이 사례는 매체의 실제 논조가 아니라 사용 언어와 독자 구성이 분류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주 인용된다. 현재 이 주간지가 진보로 분류되는 것도 경제·안보 논조 때문이 아니라 이주민 정책과 과거사 문제에서의 입장 때문이다. == 보수 성향 == === 르 나시오날 === [[르 나시오날]](Le National, 「국민」). 1885년 창간. 루이나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많이 팔리는 일간지로, 2025년 기준 유료 발행부수 41만 부. 창간 이래 같은 가문이 지배주주로 남아 있는 드문 사례이며, 현재 5대째다. 논조는 시장경제, 강한 국방, 법질서 우선으로 요약된다. 냉전 구도에서 대공산권 강경 노선을 일관되게 지지해 왔고, 양성 징병제 유지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1978년 통폐합에서 이 신문은 대상에 오르지 않았고, 군정기 동안 발행부수가 오히려 늘었다. 1980년 이후 이 사실은 반복적으로 문제 제기되었으며, 신문 측은 당시의 보도가 검열 아래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하되 사과나 자체 조사에는 응하지 않았다. 2005년 창간 120주년 기념 사사(社史)에서 군정기를 두 쪽 분량으로 다룬 것이 지금까지의 유일한 공식 언급이다. 한편 [[스틸워터 계획]]에 관해서는 1981년 조사위원회 활동 당시 전면 공개를 요구했는데, 이는 이 계획의 지휘 계통이 국방부였고 당시 정부가 [[민주연합(루이나)|민주연합]]이었다는 정치적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있다. === 주르날 데 자페르 === [[주르날 데 자페르]](Journal des Affaires, 「경제신문」). 1924년 창간된 경제 일간지. 발행부수 19만 부. 기업 경영과 금융시장을 주로 다루며, 공공사업 예산 규모와 공기업의 비중에 대해 가장 지속적으로 비판적인 매체다. 국가 주도 임대주택 공급이 민간 주택시장을 왜곡한다는 주장을 창간 이래의 고정 논조로 삼는다. 과거사 문제에서는 다른 보수지와 입장이 갈린다. [[스틸워터 계획]]의 제2종 압박 수단에 세무조사와 인허가 지연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을 들어, 행정 권한의 자의적 사용을 일관되게 문제 삼아 왔다. 1996년 국가배상 소송을 지지하는 사설을 낸 유일한 보수 매체였다. === 카날 7 === [[카날 7]](Canal 7). 1992년 개국한 민영 지상파 방송. 최대 주주는 [[플라자 그룹]]이다. 보도 부문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며, 저녁 종합뉴스 시청률이 [[루이나 방송공사]]에 이어 2위다. 시사 토론과 논평 프로그램의 비중이 높고, 출연자 구성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 방송위원회 심의에서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콘스탄티노폴 관련 보도에서 최대 주주의 현지 이해관계가 반영된다는 비판이 있다. 방송사 측은 보도와 경영의 분리를 명문화한 편성규약을 근거로 이를 부인한다. === 베라 === [[베라]](Вера, 「신앙」). 1931년 창간된 정교회계 주간지. 발행부수 5만 5천 부. 교회 소식과 신앙 논설이 지면의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가 시사다. 가족·교육·생명 관련 쟁점에서 강한 보수 논조를 유지하는 반면, 빈곤과 이주민 문제에서는 복지 확대를 지지해 진보 매체와 같은 편에 서는 경우가 많다. 군정기에 통폐합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검열 대상에서도 사실상 빠져 있었다. 종교 간행물은 정치 간행물이 아니라는 이유였으나, 이 지위를 이용해 1979년부터 1980년까지 해직 언론인의 글을 필명으로 실은 사실이 뒤에 확인되었다. == 중도 성향 == === 루이나 방송공사 === [[루이나 방송공사]](RBC). 1927년 라디오 방송으로 출발해 1954년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한 공영방송. 수신료와 제한적 광고로 운영된다. 시청률과 도달률 모두 1위이며, 재난·선거 방송의 기준 매체로 기능한다. 사장은 이사회가 임명하고 이사회 구성에 정부와 의회가 함께 관여하는 구조인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 구조를 둘러싼 갈등이 반복된다는 점이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군정기에는 국가비상위원회의 직접 통제 아래 있었고, 민영 방송을 흡수해 사실상 유일한 방송사가 되었다. 1968년 이 방송의 제작자 뱅상 L. 아르디가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사건은 그가 동맹 자백조서의 모순을 다룬 프로그램을 방송하기 사흘 전의 일이었으며, 1993년 [[스틸워터 계획]] 제3종 집행 사례로 지목되었다. 2003년 이 사건을 자체 다큐멘터리로 다룬 것이 방송사 차원의 첫 공식 대응이다. === 르 마탱 === [[르 마탱]](Le Matin, 「아침」). 1889년 창간. 유료 발행부수 33만 부로 전국 2위이며, 지배주주가 없는 분산 소유 구조다. 특정 정파에 서지 않는 것을 편집 원칙으로 내세우며, 사설에서 정당명을 언급하는 빈도가 다른 전국지보다 눈에 띄게 낮다. 이 때문에 사안의 양쪽을 나열하고 판단을 유보하는 서술이 많다는 비판을 자주 받는다. 검은 10년 당시 이 신문의 보도 태도를 두고 「사건은 전했으나 원인은 묻지 않았다」는 평가가 뒤에 붙었다. 다만 중도 성향 매체 가운데 사실 확인 기사의 비중이 가장 높고, 여론조사와 통계 보도의 방법론 공개에 가장 적극적이다. 신뢰도 조사에서 성향을 불문한 전체 응답자 기준 1위를 유지하는 것도 이 때문으로 해석된다. === 루이나 통신 === [[루이나 통신]](Agence Ruina, AR). 1911년 창설된 통신사. 국가와 가맹 언론사가 공동 출자하며, 국내외 기사와 사진을 국내 거의 모든 매체에 공급한다. 전시 검열기와 군정기를 거치며 국가의 기사 공급 창구 역할을 했고, 1978년 통폐합으로 경쟁 통신사가 사라진 뒤에는 사실상 독점 상태가 되었다. 1994년 민간 통신사 설립이 허용되었으나 시장 규모 때문에 정착하지 못했다. 1975년 [[띠에우리엔 대학살]] 당시 종군기자 이브 L. 카롱이 현지에 3주간 머문 뒤 송고한 기사는 루이나 언론사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보도로 꼽힌다. 같은 팀의 사진기자 뤼도비크 A. 페뇨가 가져온 필름은 게재되지 않았고, 페뇨는 1976년 1월 18일 자살로 처리되어 사망했다. 카롱은 같은 해 퇴사했다. == 극단 == 진보·보수·중도의 어느 쪽에도 넣지 않고 따로 묶는 매체들이다. 공통점은 대부분 [[검은 10년]] 시기 무장조직의 기관지나 회보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 그리고 현재는 인쇄매체가 아니라 인터넷 구독 모델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발행 규모는 작지만 특정 연령·지역 집단 안에서의 도달률은 전국지에 뒤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 극우 === [[라 상티넬]](La Sentinelle, 「보초」)은 1959년 [[공화국의 방패]]의 회원 회보로 창간되었다. 조직이 1976년 소멸한 뒤에도 회보는 남아 소규모 월간지로 이어졌고, 2008년 인터넷 매체로 전환했다. 조직이 [[특무처]]가 만들어낸 것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이 매체는 그 결론을 부정하고 있으며, 조사위원회 보고서 자체를 좌파 정부의 조작으로 규정한다. [[르베유]](Réveil, 「각성」)는 2014년 개설된 구독형 영상 매체다. 진행자 개인에 의존하는 방송이고 취재 인력이 없으며, 다른 매체의 보도를 재해석하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2015년 [[웨스트로 경기장 폭발 참사]] 유족 농성을 외부 세력의 기획으로 규정한 방송이 반복적으로 유통되었고, 2016년 이후 수사에서 일부 내용이 정권의 여론공작 조직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 극좌 === [[레탱셀]](L'Étincelle, 「불꽃」)은 1972년 지하신문으로 창간되어 [[혁명적 노동자동맹|RWL]]의 성명을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1979년 [[혁명적 노동자동맹|RWL]]이 노조 대의원 로베르 J. 셰뉘를 살해한 뒤 지지를 철회했고, 1982년 합법 등록을 거쳐 현재는 주간 6천 부 수준의 소규모 매체로 남아 있다. 무장투쟁 노선과 단절한 이후에도 검은 10년의 좌파 조직을 다루는 서술이 다른 매체와 크게 달라, 사료로서는 자주 인용되고 보도로서는 거의 인용되지 않는다. 이 매체가 보유한 1970년대 지하 간행물 원본은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어 있다. === 국외 송출 매체 === 냉전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공산권 국가들이 루이나어로 송출하는 단파 라디오와 위성 채널이 존재하며, 국내에 이를 재송신하거나 자막을 붙여 배포하는 소규모 인터넷 매체가 몇 곳 있다. 이들은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 대상에 들어가지 않고 발행인이 특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규제 체계의 공백으로 거론된다. 루이나 역시 [[루이나 방송공사]]를 통해 공산권을 대상으로 한 국제방송을 운영하고 있으며, 예산은 방송공사가 아니라 국무부에서 나온다. 이 구조가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국제방송 개편 논의 때마다 제기된다. == 지역 언론 == 1978년 통폐합으로 지방 일간지는 1개 시 1개 사로 정리되었고, 1989년 이후 신규 창간이 허용되었으나 시장 여건상 대부분의 시에서 여전히 사실상 한 곳뿐이다. 남부 항구도시 올덴버그의 《쿠리에 돌덴버그》는 [[올덴버그 마피아]] 관련 보도로 알려져 있다. 1983년 항만 이권을 다룬 연재 도중 취재기자가 피살된 사건 이후 이 신문은 조직범죄 보도를 중단했다가 1991년 조직범죄처벌법 제정 이후 재개했다. 콜마르의 《라 데페슈》는 1974년 [[콜마르 시청 광장 총격전]] 당시 계열 라디오 방송을 통해 네 시간 동안 현장을 생중계했다. 이 중계가 사실상 대피 경보로 기능해 인명 피해를 줄였다는 평가와, 같은 중계가 건물 안의 조직원들에게도 경찰 배치를 알려주었다는 비판을 함께 받으며, 이후 형성된 총격전 중계 자제 관행의 계기가 되었다. 롱비치의 《롱비치 헤럴드》는 항만 노동조합과의 관계가 밀접해 지역 정치 보도의 편향이 지적되는 편이다. 지역 언론의 재정은 지방정부 광고 의존도가 높다. 시청 출입기자가 시청 광고로 유지되는 신문에 소속되어 있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오래되었으나, 대안으로 제시된 지역언론 지원기금은 국가가 지역 언론에 돈을 주는 형태가 된다는 이유로 번번이 무산되었다. == 평가 == 2024년 국제언론연구소의 디지털뉴스보고서에서 루이나 응답자의 뉴스 신뢰도는 29%로, 조사 대상 38개국 중 34위였다. 같은 조사에서 뉴스 이용률은 상위권이었다. 언론을 많이 보면서도 믿지 않는 상태가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불신의 근거로 응답자들이 가장 많이 꼽은 항목은 정치적 편향이었지만, 그 다음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밝히지 않는 것」이었다. 군정기 보도에 대한 자체 조사를 완료해 공개한 전국 매체는 현재까지 세 곳뿐이다. [[스틸워터 계획]]의 개인철 1,062권 가운데 1980년 소각을 면한 77권은 등재자 본인에게 열람이 허용되지만, 소속 언론사에 통지되지는 않는다. 자사 기자가 감시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회사가 알지 못한 채로 남아 있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언론 신뢰도 문제를 지적하는 것 자체를 언론 자유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하는 대응이 반복된다는 비판도 있다. 국가가 실제로 기자를 사찰하고 살해한 역사가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 방어 논리는 다른 나라보다 강한 설득력을 갖고 작동하며, 그 결과 정당한 비판과 부당한 압력을 구분하는 일이 어려워졌다는 것이 언론학계의 문제의식이다. == 관련 문서 == * [[루이나]] * [[루이나/역사]] * [[스틸워터 계획]] * [[제방 계획]] * [[검은 10년]] * [[루이나 방송위원회]] * [[언론기본법(루이나)|언론기본법]] * [[방송법(루이나)|방송법]] * [[루이나 통신]]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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