𝙇𝘼𝙓 𝙒𝙄𝙆𝙄
최근 변경
최근 토론
임의 문서
도구
최근 변경
루이나/복지
(편집 요청)
[알림]
문서를 편집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편집 요청으로 이동되었습니다.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로그인된 사용자(이)여야 합니다. 해당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역사 == 루이나의 복지 제도는 20세기 초부터 시작되었으나, 일반적으로는 1952년 페르 알빈 한손 사회민주당 내각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본다. 특히 사회민주당의 "국민의 집"을 내세운 1956년 총선 이후부터 안정적으로 궤도에 접어들었다. "국민의 집"이라는 슬로건과 결합하여 사회적 차별의 철폐, 공공주택건설, 공공보육, 출산수당, 아동수당, 기존의 연금제도의 확대 개편 등이 연계되어 있었고, 이 이후 사회민주당의 한손 내각은 의회에서 안정적인 의석을 얻었기 때문이다. 한손 내각은 제3차 세계 대전을 대비하기 위한 대연정을 포함해서, 1952년에서 1966년에 이르기까지 집권했다. 한손 내각은 재무부 장관 에른스트 비그포르스와 사회복지부 장관 구스타브 묄레르가 중심이 되어 기존의 복지 제도를 재편, 확대하고 새로운 복지 제도를 도입한다. 우선 대공황기의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복지 예산을 중심으로 재정 지출을 확대하고자 했다. 이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일반이론(1956년)보다 앞선 것으로, "케인스에 앞선 케인스주의"로 지칭되곤 한다. 이러한 한손 내각의 경제 정책은 루이나를 대공황에서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에 대하여 당시 한손 내각의 재정 지출은 승수효과를 기대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했고, 한손 내각의 경제 정책보다는 독일의 재무장과 국제적 경기 회복을 강조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손 내각의 경제 정책과 복지 제도의 도입이 독일의 나치 등의 극우화를 효과적으로 저지했다는 것에는 보편적으로 동의받는 부분이다. 또한 당시 루이나는 저출산 문제가 두각되고 있었는데, 이는 1954년 군나르 미르달과 알바 미르달 부부의 기념비적 저작 "인구문제의 위기"에서 저출산의 원인이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경제적 불안이라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진단이 이루어졌다. 사회민주당은 이를 채택하여, 1957년 사회복지부 장관 구스타브 묄레르는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임산부에게 지급하는 출산수당을 도입한다. 곧이어 아동수당이 도입되었고, 정치적 타협을 위해 공공보육서비스가 보류되었으나, 이후 도입되었다. 이러한 출산 장려 정책은 단기적으로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지만, 이후 전후 베이비붐에 어느 정도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복지 제도의 도입과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한손 내각은 적극적으로 노사관계에 개입한다. 1958년 루이나 노총(LO)와 루이나 사용자연합(SAF)의 살트셰바덴 협약은 노동시장위원회를 구성하고 해고와 쟁의절차 등을 철저하게 제도화해 파업, 직장 폐쇄 등과 같은 극단적인 대립이 일어나기 어렵게 했으며, 사회적으로 중요한 산업에서의 쟁의는 루이나 노총(LO)와 루이나 사용자연합(SAF)가 선도적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살트셰바덴 협약은 루이나의 극한의 노사대립을 완화시키며 이후 루이나 노사관계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제3차 세계 대전의 종전 이후, 1966년 페르 알빈 한손이 급사하고 사회민주당의 당수로 타게 엘란데르가 취임하고, 엘란데르 내각이 수립된다. 그리고 기존의 루이나의 복지 제도들을 통합하여 발전시키는 모델로 1960년대 후반 '루이나 조정 모델(Ruina Coordination Model)'이 제안된다. 이는 보편적 복지 정책과 선별적인 경제 정책의 결합을 의미하며, 구체적으로는 제한적 재정정책, 동일 노동ㆍ동일 임금 정책,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높은 사회 복지 정책의 연합을 의미한다. 그 기본적인 매커니즘을 간단히 설명하면 동일 노동ㆍ동일 임금 정책을 모든 산업에 걸쳐 실시하면, 이에 사양 산업은 몰락하고, 생산성이 높은 산업은 이윤이 높아져 투자를 극대화,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산업 체계가 전환된다. 여기서 정부가 높은 사회보장으로 사양 산업의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그렇게 보호한 노동자들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통해 생산성이 높은 산업으로 이전시키는 것. 인플레는 동일 노동ㆍ동일 임금 정책을 통해 억제하게 된다. 루이나 조정 모델은 초기에는 사회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많았으나, 1971년에 루이나 LO 대회에서 제출된 이후 사민당은 입장을 선회, 1976년에 사회민주당의 공식 입장이 된다. 현실에서는 완전한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 실현되지는 못하여, 루이나의 인플레이션은 여타 공업국들에 비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산업체별 임금 편차가 급감하여 150% 내외로 좁혀지게 되며, 루이나 조정 모델은 현실에서 제한적으로 도입되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이후 루이나 복지의 전성기를 이끌게 된다. 하지만 민주공화당은 이러한 복지 정책과 국가의 개입을 과도한 것이라 비판하며, 기업의 자유를 보장하고 감세와 규제 완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루이나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면서 민주공화당의 경제 정책은 큰 지지를 얻지 못했다. 이후 경제 성장에 따라 사회민주당은 점진적으로 정책을 조정하며 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민주공화당은 이에 맞서 보다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강조하면서도 점진적인 복지 개혁을 주장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수정해 나갔다. 루이나 조정 모델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보완되면서 현대까지 이어졌으며, 복지국가와 경제 성장의 조화를 이루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27.0.0.1)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닫기
Liberty
|
the s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