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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공황과 금융 개혁 (1929~1945) === 헤이슬러가 취임한 1929년 9월로부터 두 달 뒤 대공황이 시작되었다. 1930년에서 1933년 사이 예금 인출 사태가 잇따르며 은행 1,700여 곳이 문을 닫았다. 국가준비제도는 금본위제를 지키려고 긴축을 이어 갔는데, 이 결정은 공황을 더 깊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지금까지 받는다. 1930년 3월 루이나는 니에미이 금융조약에 따라 빌베른이 담보로 맡긴 금 420톤을 압류했다. 빌베른 금 보유량의 35%에 이르는 양이었다. 빌베른은 곧바로 금태환을 정지했고, 1932년에는 빌베른 중앙은행이 지급불능을 선언했다. 루이나 안에서는 조약에 따른 정당한 권리 행사라는 시각이 많았지만, 빌베른에서 이 일은 지금까지도 루이나 금융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헤이슬러 행정부는 벨포르 증권 스캔들 수사에서 드러난 빈틈을 하나씩 법으로 막았다. * 취임 넉 달 만에 「긴급금융법」을 제정해 은행을 일시 폐쇄하고 건전한 은행만 다시 문을 열게 했다. 예금보험도 이때 처음 도입되었다. * 1930년 10월 「증권거래법」은 시세조종과 부정거래, 미공개정보 이용을 처벌 대상으로 정하고 연결재무제표 작성을 의무화했다. 거래소 자율규제위원회는 폐지되고, 정부 독립기관인 증권감독위원회가 설치되었다. * 1931년 「은행법」 개정으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겸영을 금지하고, 한 기업에 빌려줄 수 있는 돈을 제한하는 동일인 여신한도를 도입했으며, 예금보험공사를 상설 기관으로 만들었다. * 공인회계사 국가시험을 도입해 감정·감사 자격을 국가가 관리하게 했고, 3층 이상의 지주회사 구조를 금지했다. * 1933년 개인의 금태환을 정지하고 금화를 회수했다. 1934년 2월에는 미국을 따라 금 가격을 온스당 35달러로 올렸다. * 1933년 「증권법」은 증권을 발행할 때 정보를 공개하도록 했다. 1934년에는 증권거래법을 전부 개정해 유통 시장 감독을 강화하고, 증권감독위원회를 지금의 [[루이나 증권거래위원회|증권거래위원회]]로 확대 개편했다. * 1934년 루이나 달러를 미국 달러에 1:1로 고정하는 '등가 원칙'을 선언했다. 이 원칙은 뒤에 국가준비제도법에 명문화되었다. * 1935년 국가준비제도법을 개정해 통화정책 권한을 지역 준비은행에서 국가준비제도이사회로 옮겼다. 같은 시기인 1933년에는 [[내셔널 스트리트]]가 세워져 국채 발행과 공공사업 금융을 주간했다. 헤이슬러 행정부의 대규모 공공사업과 국가 주도 주택 공급은 상당 부분 내셔널 스트리트가 인수한 국채로 자금을 마련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루이나는 전쟁 국채로 전비를 마련했다. 전쟁 막바지인 1944년에는 전후 산업 복구와 철도 재건 자금을 중개하기 위해 [[루이나 브라더스]]가 '루이나 익스프레스'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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