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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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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루이나]] [include(틀:상위 문서, 문서명1=루이나)] [include(틀:관련 문서, 문서명1=루이나/산업)] [목차] [clearfix] == 개요 == [[루이나]]의 금융을 다루는 문서. 루이나는 랜드해협 최대의 금융 국가다. 2024년 기준 금융·보험업은 명목 GDP의 12.3%를 차지해 제조업과 함께 루이나 경제의 두 축을 이루며, 벨포르 금융가는 랜드해협 최대의 자본시장이다. 최대 기업집단인 [[루이나 브라더스]]를 비롯해 [[내셔널 스트리트]], [[루이나은행그룹]] 같은 금융 집단이 상위 20개 기업집단에 여럿 올라 있다. 통화는 [[루이나 달러]]로, 1934년부터 미국 달러에 1:1로 고정되어 있다. 중앙은행 제도는 1913년 출범한 [[국가준비제도]]가 맡는다. 1891년 세워진 루이나 중앙은행이 1913년 국가준비제도로 개편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국가준비제도를 '루이나 중앙은행'이라는 옛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금융 감독은 한 기관이 도맡지 않고 여러 기관이 업권별로 나누어 맡는다. 은행은 국가준비제도와 [[루이나 재무부|재무부]] 소속 통화감독청·예금보험공사가, 증권은 [[루이나 증권거래위원회|증권거래위원회]]가, 선물·파생상품은 [[상품선물거래위원회]]가, 개인 금융상품은 [[소비자금융보호국]]이 감독하며, 2010년 설치된 금융위원회가 이들 사이를 조정한다. 단일 국가경찰 없이 부처마다 경찰기관을 따로 두는 루이나 행정의 특징이 금융 감독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주요 지표는 다음과 같다. ||<tablealign=center><bgcolor=#131230><color=#fff> '''항목''' ||<bgcolor=#131230><color=#fff> '''수치''' || || 금융·보험업 GDP 비중 ||<:> 12.3% {{{-2 (2024년)}}} || || 금융·보험업 고용 비중 ||<:> 4.8% {{{-2 (2024년)}}} || || 외환보유액 ||<:> 약 4조 2천억 달러 {{{-2 (2026년 6월)}}} || || 금 보유량 ||<:> 2,310톤 {{{-2 (2026년 6월)}}} || || 벨포르 증권거래소 시가총액 ||<:> 약 23조 달러 {{{-2 (2025년 말)}}} || || 국민연금기금 ||<:> 약 2조 6천억 달러 {{{-2 (2025년 말)}}} || == 역사 == === 공채와 해상 보험 (17~19세기) === 루이나 금융의 뿌리는 해운에 있다. 1600년 설립된 [[루이나 오리엔탈 컴퍼니]]는 출자자들에게 지분을 나누어 주고 그 지분을 사고팔 수 있게 한 루이나 최초의 주식회사였다. 벨포르 항구 주변의 커피하우스에서는 오리엔탈 컴퍼니의 주식이 거래되었고, 선주와 상인, 보증인이 모여 선박과 화물의 보험을 인수했다. 이 커피하우스들이 훗날 벨포르 증권거래소와 해상 보험 시장의 출발점이 되었다. 근대적인 공공 금융은 1688~1689년 [[왕위협약]] 이후 자리 잡았다. 빌베른의 공채 제도와 신용 체계, 장기 차입 방식이 이 시기에 들어왔고, 국왕의 차입을 의회가 보증하는 국채가 정착했다. 국왕이 마음대로 빚을 떼먹을 수 없게 되자 공채는 안전한 투자처가 되었고, 해운과 보험, 국채가 서로를 떠받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다만 이 시기에는 중앙은행이 따로 없었고, 화폐 발행과 국채 업무는 왕실 재무관과 여러 민간 은행이 나누어 맡았다. 19세기에는 철도와 조선, 중공업에 돈을 대는 민간 은행과 보험회사가 크게 늘었다. 1801년에는 커피하우스의 주식 거래를 이어받은 벨포르 증권거래소가 정식 거래소로 문을 열었다. === 금본위제와 중앙은행 (1885~1913) === 1885년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들어서자 새 정부는 화폐 제도부터 정비했다. 같은 해 제정된 「화폐법」은 파운드를 대신해 10진법 달러를 도입하고, 1달러의 가치를 순금 1.5046그램으로 정했다. 금 1트로이온스가 20.67달러로, 미국 달러와 같은 금 함량이었다. 1891년에는 [[루이나 중앙은행]]이 설립되어 1895년부터 은행권을 독점적으로 발행했다. 그러나 루이나 중앙은행은 은행권을 금으로 바꾸어 주는 발권은행에 가까웠고, 위기에 빠진 은행에 돈을 빌려주는 최종대부자 역할은 법에 정해져 있지 않았다. 19세기 말 루이나에는 은행 공황이 거의 10년마다 되풀이되었고, 그때마다 위기를 수습하는 것은 민간 은행가들의 몫이었다. 1907년 공황은 이 체제의 한계를 드러냈다. 벨포르의 신탁회사들에서 예금 인출 사태가 번지자 루이나 중앙은행은 금 유출을 막으려고 오히려 금리를 올렸고, 결국 민간 은행가 한 사람이 다른 은행들을 불러 모아 구제 자금을 마련하며 사실상 중앙은행 노릇을 했다. 국가의 금융 안정이 한 개인의 손에 달려 있었다는 사실은 큰 정치적 논란이 되었다. 같은 시기 루이나의 금융 자본은 해외로 뻗어 나갔다. 1912년 체결된 [[니에미이 금융조약]]은 재정 위기에 빠진 빌베른에 연 7.5% 복리로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금 담보와 관세 특혜, 루이나 은행의 빌베른 진출권, 빌베른 재무부 안의 루이나 재정고문단을 얻어 낸 조약이었다. === 국가준비제도의 출범 (1913~1925) === 6년의 논쟁 끝에 1913년 12월 23일 「국가준비제도법」이 제정되었다. 쟁점은 중앙은행을 정부 기관으로 만들 것인가, 민간 은행들의 연합체로 만들 것인가였다. 결국 통화정책은 정부가 임명하는 국가준비제도이사회가 맡고, 실제 업무는 지역별로 회원 은행들이 소유하는 12개 지역 준비은행이 맡는 절충안이 채택되었다. 루이나 중앙은행은 이때 국가준비제도에 편입되어 벨포르 준비은행이 되었다. 국가준비제도는 1914년 11월 16일 업무를 시작했다. 같은 해 9월에는 독점과 불공정 거래를 감독할 [[중앙거래위원회]]도 설치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루이나 금융은 빠르게 커졌다. 1917년 참전 이후 전쟁 국채가 대량으로 발행되면서 국채 시장이 넓어졌고, 금 유출을 막기 위해 금태환은 전쟁 동안 사실상 멈추었다. 이 시기 증권 시장은 재무부 증권감독관실이 감독했다. === 황금의 사 년과 벨포르 증권 스캔들 (1925~1929)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벨포르 증권 스캔들)] 1925년 9월 취임한 [[하워드 S. 프레스콧|프레스콧]]은 금본위제로 돌아가고 세금을 깎는 한편, 금융 규제를 시장에 대한 간섭으로 보고 크게 풀었다. 같은 해 12월 「증권거래감독법」 개정으로 재무부 증권감독관실이 폐지되고, 감독 권한은 벨포르 증권거래소의 자율규제위원회로 넘어갔다. 위원 11명 가운데 7명이 상장기업 임원이나 회원 증권사 대표였고, 위원장은 거래소 이사장이 겸했다. 1926~1927년 위원회의 조사는 3건, 제재는 0건이었다. 풀린 자금이 주식 시장으로 몰리면서 주가 지수는 2.7배로 뛰었고, 사람들은 이 시기를 '황금의 사 년'이라 불렀다. 이 호황의 정점에 캐슬리 그룹이 있었다. 에드윈 T. 캐슬리는 꼭대기의 캐슬리 합동투자 아래 중간 지주회사와 사업회사 4곳을 층층이 거느리는 3층 지주회사 구조를 만들었다. 각 층에서 51%만 쥐면 아래를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캐슬리가 실제로 들인 자기자본은 4.7%에 불과했다. 그룹은 계열사 자산을 부풀려 재평가하고, 계열사끼리 가공 매출을 만들고, 차명계좌 82개로 통정매매를 되풀이해 주가를 끌어올렸다. 1926년 1월부터 1927년 6월까지 그룹 주식 거래량의 37.4%가 이 차명계좌들 사이의 거래였다. 자율규제위원회는 1926년 9월 이를 포착했지만 안건으로 올리지 않았다. 자금은 은행 예금에서 나왔다. 벨포르 상업은행은 예금을 그룹 계열 투자신탁에 빌려주었고, 투자신탁은 그 돈으로 그룹 주식을 샀다. 붕괴 직전 이 은행 총여신의 31%가 캐슬리 그룹 한 곳에 몰려 있었지만, 당시 은행법에는 한 기업에 빌려줄 수 있는 한도가 없었다. 1927년 봄 빚을 갚지 못하게 되자 그룹은 액면 2,400만 달러어치의 사채권을 위조해 지방은행 아홉 곳에 담보로 맡겼다. 1927년 6월 17일 한 지방은행 지배인이 위조 사채권의 일련번호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신고하면서 그룹은 열흘 만에 무너졌다. 6월 24일 거래소는 계열 종목의 거래를 정지했고, 같은 날 벨포르 상업은행에서 예금 인출 사태가 시작되었다. 붕괴 당시 그룹의 시가총액은 거래소 전체의 9%였으며, 투자자 약 14만 3천 명이 3억 8천만 달러를 잃었다. 의회는 같은 해 루이나 최초의 특별검사법을 만들었고, 전직 검사이자 법학 교수였던 [[러더퍼트 J. 헤이슬러]]가 특별검사로 임명되었다. 수사 과정에서 그룹이 1926년 6월 증자 때 신주 일부를 액면가 20달러에 현직 의원 23명과 고위 관료 31명 등 141명에게 몰래 배정한 '6월 명부'가 드러났다. 상장 첫날 종가는 96달러였고,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재무차관이었다. 재무차관과 재무장관이 잇달아 물러났고, '6월 명부'는 이후 부패 연루자 명단을 뜻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법에는 시세조종과 내부자거래를 처벌하는 조문이 없었다. 기소는 사기와 문서위조, 배임, 수뢰 같은 일반 형법으로 돌아가야 했고, 많은 피고인이 무죄를 받았다. 캐슬리는 징역 11년이 확정되었지만, 신주를 가장 많이 받은 재무차관은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았고 의원 23명은 한 명도 기소되지 않았다. 1930년 대법원은 통정매매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를 죄로 만드는 것은 의회의 몫이라며 상고를 기각했다. 스캔들은 정권도 바꾸었다. 헤이슬러는 수사로 얻은 명성을 바탕으로 1928년 대통령 선거에 나서 51.4%를 얻어 프레스콧을 꺾었다. 감독을 업계에 맡겼다가 사건을 키운 프레스콧 정부의 노선은 '프레스콧적'이라는 말로 남아 금융 방임을 뜻하게 되었다. 캐슬리 그룹의 붕괴는 오늘날 대공황의 전조로 평가받는다. === 대공황과 금융 개혁 (1929~1945) === 헤이슬러가 취임한 1929년 9월로부터 두 달 뒤 대공황이 시작되었다. 1930년에서 1933년 사이 예금 인출 사태가 잇따르며 은행 1,700여 곳이 문을 닫았다. 국가준비제도는 금본위제를 지키려고 긴축을 이어 갔는데, 이 결정은 공황을 더 깊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지금까지 받는다. 1930년 3월 루이나는 니에미이 금융조약에 따라 빌베른이 담보로 맡긴 금 420톤을 압류했다. 빌베른 금 보유량의 35%에 이르는 양이었다. 빌베른은 곧바로 금태환을 정지했고, 1932년에는 빌베른 중앙은행이 지급불능을 선언했다. 루이나 안에서는 조약에 따른 정당한 권리 행사라는 시각이 많았지만, 빌베른에서 이 일은 지금까지도 루이나 금융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헤이슬러 행정부는 벨포르 증권 스캔들 수사에서 드러난 빈틈을 하나씩 법으로 막았다. * 취임 넉 달 만에 「긴급금융법」을 제정해 은행을 일시 폐쇄하고 건전한 은행만 다시 문을 열게 했다. 예금보험도 이때 처음 도입되었다. * 1930년 10월 「증권거래법」은 시세조종과 부정거래, 미공개정보 이용을 처벌 대상으로 정하고 연결재무제표 작성을 의무화했다. 거래소 자율규제위원회는 폐지되고, 정부 독립기관인 증권감독위원회가 설치되었다. * 1931년 「은행법」 개정으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겸영을 금지하고, 한 기업에 빌려줄 수 있는 돈을 제한하는 동일인 여신한도를 도입했으며, 예금보험공사를 상설 기관으로 만들었다. * 공인회계사 국가시험을 도입해 감정·감사 자격을 국가가 관리하게 했고, 3층 이상의 지주회사 구조를 금지했다. * 1933년 개인의 금태환을 정지하고 금화를 회수했다. 1934년 2월에는 미국을 따라 금 가격을 온스당 35달러로 올렸다. * 1933년 「증권법」은 증권을 발행할 때 정보를 공개하도록 했다. 1934년에는 증권거래법을 전부 개정해 유통 시장 감독을 강화하고, 증권감독위원회를 지금의 [[루이나 증권거래위원회|증권거래위원회]]로 확대 개편했다. * 1934년 루이나 달러를 미국 달러에 1:1로 고정하는 '등가 원칙'을 선언했다. 이 원칙은 뒤에 국가준비제도법에 명문화되었다. * 1935년 국가준비제도법을 개정해 통화정책 권한을 지역 준비은행에서 국가준비제도이사회로 옮겼다. 같은 시기인 1933년에는 [[내셔널 스트리트]]가 세워져 국채 발행과 공공사업 금융을 주간했다. 헤이슬러 행정부의 대규모 공공사업과 국가 주도 주택 공급은 상당 부분 내셔널 스트리트가 인수한 국채로 자금을 마련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루이나는 전쟁 국채로 전비를 마련했다. 전쟁 막바지인 1944년에는 전후 산업 복구와 철도 재건 자금을 중개하기 위해 [[루이나 브라더스]]가 '루이나 익스프레스'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 벨포르 체제 (1945~1978) === 1949년 출범한 벨포르 체제는 전후 국제 통화 질서의 한 축이었다. 이 체제에서 각국 중앙은행은 루이나 달러를 온스당 35달러에 금으로 바꿀 수 있었다. 루이나 달러는 미국 달러와 함께 국제 결제와 외환 보유에 쓰이는 기축통화가 되었고, 벨포르는 무역 금융과 국제 결제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1950~1970년대 '기록갱신기'의 고도성장은 금융업의 성장으로도 이어졌다. 두 차례 랜드 전쟁 동안 대량으로 발행된 전쟁 국채는 국채 시장을 더 깊게 만들었다. 1959년에는 「[[국민연금법(루이나)|국민연금법]]」이 제정되어 국민연금기금이 쌓이기 시작했고, 같은 해 내셔널 스트리트가 벨포르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벨포르 증권 스캔들이 남긴 숙제도 이 시기에 뒤늦게 정리되었다. 스캔들 때 신주를 받은 의원들을 한 명도 처벌하지 못한 일을 계기로 1950년대에 공직자 재산 등록과 이해충돌 회피 의무가 법제화되었다. 벨포르 증권거래소가 1931년 자율규제위원회 회의록을 모두 폐기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기록 보존 의무도 따로 입법되었다. 1971년 8월 미국이 금태환을 정지하자 벨포르 체제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루이나는 금 공식 가격을 1971년 12월 온스당 38달러, 1973년 2월 42.22달러로 올리고 분기별 인출 한도를 두면서까지 금 창구를 열어 두었다. 그러나 [[2차 랜드 전쟁]]의 전비 부담을 끝내 버티지 못했고, 1975년 6월 1일 대통령이 금 창구를 무기한 닫는다고 발표했다. 이튿날부터 루이나 달러는 어떤 경로로도 금으로 바꿀 수 없게 되었고, 벨포르 체제는 1977년 공식 해체되었다. 1974년에는 농산물 선물을 감독하던 상품거래청을 개편해 [[상품선물거래위원회]]가 설치되었다. 1970년대 들어 환율과 금리의 변동이 커지면서, 그 위험을 피하려는 금융 선물·옵션 거래가 크게 늘어난 결과였다. === 군정과 외환 통제 (1978~1985) === 1978년 [[10.10 군사반란]] 이후 [[국가비상위원회]]는 엄격한 외환 통제를 실시했다. 공식 환율은 1:1로 유지되었지만, 국외로 돈을 빼내려는 수요가 몰리면서 암시장 환율은 1980년 봄 미국 달러당 1.42루이나 달러까지 치솟았다. 군정은 은행 대출을 정권과 가까운 기업집단에 몰아주었는데, 이것이 뒤에 금융과 산업 자본의 유착이 깊어진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980년 헌정이 회복된 뒤 정부는 1981년 외환 통제를 단계적으로 풀었다. === 플라자 합의와 자유화 (1985~2000) === 1985년 9월 22일 [[플라자 합의]]에서 미국은 루이나 달러를 미국 달러와 1:1로 바꾸어 주겠다고 보증했다. 루이나 달러가 사실상 미국 달러와 같은 신뢰를 얻으면서 해외 자본이 대규모로 밀려들었고, 수출과 금융이 함께 성장했다. 대신 국가준비제도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결정을 그대로 따라야 했고, 1980년대 후반에는 밀려든 자금이 부동산으로 흘러 주택 가격이 급등했다. 1986년에는 「공무원퇴직개혁법」이 공무원연금을 줄이고 본인이 적립해 운용하는 퇴직저축계정으로 바꾸면서, 그 적립금을 운용할 [[중앙퇴직저축투자위원회]]가 설치되었다. 1989년 고랜드발 통화위기가 랜드해협 남부로 번졌을 때는 루이나 브라더스가 주요 은행들을 모아 유동성을 공급하며 시장을 안정시켰다. 1990년대에는 금융 규제 완화가 이어졌다. 은행의 겸영 금지는 그대로 남았지만, 지주회사 아래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를 따로 두는 방식이 차츰 허용되면서 금융그룹이 등장했다. 금융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늘었다. === 1.19 사건과 규제 완화 (2001~2007) === 2001년 [[1.19 사건]]으로 벨포르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면서 금융가는 큰 타격을 입었다. 벨포르 증권거래소는 나흘 동안 문을 닫았고, 세계무역센터에 입주해 있던 금융회사들은 직원과 전산 설비를 한꺼번에 잃었다. 그러나 벨포르는 몇 년 만에 랜드해협 금융 중심지의 지위를 되찾았다. 2002년에는 에너지 중개회사 노스먼 인더스트리스가 특수목적회사를 이용해 부채를 숨겨 온 사실이 내부 고발로 드러났다. 증권거래위원회가 조사에 나서자 회사는 곧 파산했고, 증거 서류를 파기한 회계법인은 해산되었다. 이듬해 증권거래위원회 산하에 상장회사회계감독위원회가 설치되어 회계법인을 직접 감독하게 되었다. 2005년에는 루이나 브라더스가 금융권 4위였던 채이스 & CO를 인수해 루이나 최대의 금융그룹이 되었다. 2006년 [[존 F. 페어팩스|페어팩스]] 정부는 「금융서비스법」을 제정해 1931년 은행법 이래 이어진 겸영 금지를 폐지하고 금융 규제를 크게 풀었다. 벨포르 금융지구 조성 사업도 같은 해 시작되었다. 루이나 금융업의 몸집은 이 시기에 가장 빠르게 커졌다. === 2008년 금융위기 (2008~2010) === 2000년대 중반 루이나 금융회사들은 미국과 루이나의 주택담보대출을 묶은 증권에 깊이 투자하고 있었다. 2006년 금융서비스법 이후 몸집을 키운 투자은행들은 자기자본의 30배가 넘는 빚을 내 이런 증권을 사들였다. 2007년 미국 주택시장이 꺾이자 이 증권들의 가치가 폭락했다. 2008년 9월 루이나 5위 투자은행이던 애슈턴 증권이 파산했다. 애슈턴 증권과 거래하던 금융회사들 사이에 연쇄 부도 공포가 번지면서 은행 간 자금 시장이 사실상 멈추었고, 벨포르 증권거래소의 주가는 6개월 사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같은 해 12월에는 자산운용사로 위장해 10년 넘게 투자자들을 속여 온 대형 폰지 사기가 위기 속에 무너졌는데, 증권거래위원회가 여러 차례 제보를 받고도 부서 간에 사건을 떠넘기다 놓친 것으로 드러나 거센 비판을 받았다. 페어팩스 정부는 2008년 10월 「금융안정법」을 제정해 최대 6,50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마련했다. 공적자금은 대형 은행 세 곳의 자본 확충과 부실 자산 매입에 쓰였고, 정부는 지원 대가로 우선주를 받아 경영진 보수를 제한했다. 국가준비제도는 연방준비제도를 따라 정책금리를 사실상 0%로 내리고, 국채와 주택담보대출 증권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실업률은 2009년 9%대까지 올랐지만, 실업 전 임금의 100%를 주는 실업급여와 공공주택이 충격을 상당 부분 흡수했다. 그럼에도 국민 세금으로 금융회사를 살리면서 경영진은 거액의 성과급을 챙겼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금융권에 대한 여론은 크게 나빠졌다. 규제 완화를 이끈 페어팩스는 그해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실패했다. === 금융개혁 이후 (2010~현재) === 엘스워스 정부는 2010년 7월 21일 「금융개혁법」을 제정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재무부장관이 의장을 맡고 각 감독기관장이 참여하는 금융위원회를 설치해, 업권을 넘나드는 위험을 함께 감시하도록 했다. *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던 소비자보호 권한을 모아 [[소비자금융보호국]]을 신설했다. 중앙거래위원회가 맡던 금융상품 관련 소비자보호 업무도 이때 넘어갔다. * 대형 금융회사의 자기자본 기준을 높이고, 국가준비제도가 해마다 스트레스 테스트를 하도록 했다. * 장외 파생상품 거래를 상품선물거래위원회의 감독 아래 두었다. * 예금을 받는 은행이 자기 돈으로 주식·채권에 투자하는 것을 제한했다. 2014년에는 「[[금융소비자보호법(루이나)|금융소비자보호법]]」이 제정되어 금융상품을 팔 때 설명 의무와 적합성 원칙을 법으로 정했다. 이 법은 금융위원회와 [[루이나 사회복지부|사회복지부]]가 함께 소관한다. 금융 피해가 빈곤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는 이유에서, 채무 조정과 금융 교육은 사회복지부가 맡는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기술 변화가 새로운 쟁점이 되었다. 2015년 무렵부터는 초단타 매매가 불법 선행매매인지 정당한 경쟁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2026년 현재까지 명확한 규칙은 마련되지 않았다. 2019년에는 1센트 동전이 폐지되었고, 2023년에는 루이나 브라더스 계열 증권사가 블록체인 기반 국채 발행 실험을 시작했다. == 통화와 중앙은행 == === 루이나 달러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루이나 달러)] [[루이나 달러]](RND)는 루이나의 법정 통화로, 1달러는 100센트다. 다른 나라 달러와 구별할 때는 RN$로 표기한다. 은행권은 국가준비제도가, 동전은 재무부 조폐국이 발행한다. 은행권은 5·10·20·50·100·500달러, 동전은 5·10·25센트와 1·2달러가 쓰인다. 루이나 달러는 1934년부터 미국 달러에 1:1로 고정되어 있다. 국가준비제도는 시장 환율을 미국 달러당 0.995~1.005루이나 달러 범위 안에 묶어 두어야 하며, 환율이 이 범위를 벗어나면 외환보유액으로 직접 시장에 개입한다. 재무부도 환율안정기금을 통해 외환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 고정환율을 지키기 위해 국가준비제도의 정책금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결정을 따라간다.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바꾸면 국가준비제도는 대개 그날 저녁이나 다음 날 아침에 같은 폭으로 금리를 조정한다. 루이나의 통화정책은 사실상 미국이 결정하는 셈이어서, 국가준비제도의 정책 수단은 금리보다는 은행 감독과 지급준비율, 유동성 공급에 무게가 실려 있다. 2026년 6월 기준 외환보유액은 약 4조 2천억 달러, 금 보유량은 2,310톤이다. === 국가준비제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국가준비제도)] [[국가준비제도]](NRS)는 루이나의 중앙은행 제도다. 단일한 국립 은행이 아니라 정부 기관인 국가준비제도이사회와 12개 지역 준비은행이 함께 움직이는 이중 구조이기 때문에 '은행'이 아니라 '제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 '''국가준비제도이사회(NRB)''': 의장과 부의장을 포함한 7명으로 구성된다. 대통령이 지명하고 의회가 인준하며, 이사의 임기는 14년 단임이다. 2년마다 한 자리씩 임기가 끝나도록 엇갈려 있어 한 대통령이 이사회를 한꺼번에 바꿀 수 없다. 현 의장은 에벌린 K. 하트웰이다. * '''지역 준비은행''': 전국을 12개 지역으로 나누어 하나씩 둔다. 각 지역 준비은행은 그 지역 회원 은행들이 출자한 법인이지만, 회원 은행은 의결권이나 배당권을 사실상 갖지 않는다. 옛 루이나 중앙은행을 이어받은 벨포르 준비은행이 가장 크다. * '''공개시장위원회(NOMC)''': 이사 7명과 지역 준비은행 총재 5명, 모두 12명이 정책금리와 공개시장조작을 결정한다. 벨포르 준비은행 총재는 고정 위원이고, 나머지 4석은 다른 11개 준비은행이 돌아가며 맡는다. 국가준비제도는 상급기관이 없는 독립기관이다. 예산은 의회의 세출 승인 없이 보유 국채의 이자 수입으로 충당하고, 남는 돈은 재무부에 넘긴다. 소비자금융보호국의 예산도 국가준비제도 수입에서 직접 나간다. 통화정책 결정은 감사 대상에서 빠져 있어, 선출되지 않은 기관이 너무 큰 권한을 갖는다는 비판과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통화정책을 지켜 준다는 옹호가 맞서 왔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금리 인하를 요구하며 의장과 공개적으로 충돌하는 일도 되풀이되었다. == 금융 감독 == 루이나의 금융 감독은 업권별로 여러 기관에 나뉘어 있다. 1927년 벨포르 증권 스캔들 뒤 증권감독위원회가 생긴 것을 시작으로, 금융 감독 기관들은 대부분 위기가 터질 때마다 그 위기에 대응하려고 하나씩 만들어졌고, 기존 기관을 합치는 대신 새 기관을 덧붙이는 방식이 되풀이되면서 지금의 구조가 되었다. ||<tablealign=center><bgcolor=#131230><color=#fff> '''기관''' ||<bgcolor=#131230><color=#fff> '''소속''' ||<bgcolor=#131230><color=#fff> '''감독 대상''' || || [[국가준비제도]] || 독립기관 || 은행지주회사, 회원 은행 || || 통화감독청 || 재무부 || 전국 인가 은행 || || 예금보험공사 || 재무부 || 예금보험, 부실 은행 정리 || || 금융감독원 || 재무부 || 보험회사, 카드·할부 회사 || || [[루이나 증권거래위원회|증권거래위원회]] || 독립기관 || 증권, 자산운용, 회계 감사 || || [[상품선물거래위원회]] || 독립기관 || 선물·옵션·스와프 || || [[신용조합감독청]] || 독립기관 || 신용협동조합 || || [[소비자금융보호국]] || 독립기관 || 개인 금융상품 || || 금융정보분석원 || 재무부 || 자금세탁 방지 || 은행 하나만 보아도 감독 기관이 여럿이다. 은행 인가와 건전성 검사는 통화감독청이, 은행지주회사와 대형 은행의 스트레스 테스트는 국가준비제도가, 부실 은행의 정리는 예금보험공사가 맡는다. 은행이 신용카드나 주택담보대출을 팔 때는 소비자금융보호국이, 은행 계열 증권사는 증권거래위원회가 다시 감독한다. 2010년 금융개혁법으로 설치된 금융위원회는 이 기관들을 조정하는 기구다. 재무부장관이 의장을 맡고 국가준비제도 의장,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 상품선물거래위원회 위원장, 소비자금융보호국장 등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금융위원회는 특정 금융회사를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회사'로 지정해 국가준비제도의 강화된 감독을 받게 할 수 있지만, 각 기관에 직접 명령할 권한은 없다. 이 구조에 대해서는 기관끼리 책임을 미루거나 감독의 빈틈이 생긴다는 비판이 오래 이어져 왔다. 2008년 폰지 사기를 놓친 것도 제보가 부서와 기관 사이를 떠돌다 묻혔기 때문이었다. 금융회사가 가장 느슨한 감독 기관을 골라 사업 구조를 짜는 '규제 쇼핑'도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다. 반면 한 기관에 권한을 몰아주면 그 기관이 금융회사에 포획되었을 때 막을 장치가 없다는 이유로, 분산 구조가 오히려 낫다는 옹호도 있다. == 은행업 == === 상업은행 === 루이나의 상업은행은 2025년 기준 약 1,400곳이다. 전국 영업망을 갖춘 대형 은행 몇 곳과 특정 시를 기반으로 하는 수많은 지역은행으로 나뉜다. 대형 은행으로는 [[루이나 브라더스]] 계열의 채이스 & CO와 [[루이나은행그룹]]이 대표적이다. 채이스 & CO는 루이나 전역에 1,800곳이 넘는 지점을 두고 소매금융과 중소기업 대출을 맡는다. 다만 고금리 대출과 엄격한 담보 회수로 시민사회의 비판을 받아 왔다. 루이나은행그룹은 상업은행 업무를 중심으로 한 금융그룹으로, 기업 대출과 무역 금융에 강하다. 1931년 은행법은 은행의 증권업 겸영을 막고 동일인 여신한도를 두었지만, 산업 자본이 은행을 소유하는 것까지 막지는 않았다. 2006년 겸영 금지마저 폐지된 뒤로는 금융그룹과 제조 기업집단이 지분과 대출로 더 깊이 얽히게 되었다. === 신용협동조합 === 신용협동조합은 루이나 소매금융의 또 다른 축이다. 루이나의 신협은 대부분 노동조합이나 직장을 단위로 만들어졌고, 조합원의 예금으로 조합원에게 싼 이자로 돈을 빌려준다. 노조 조직률이 높은 루이나에서는 노동자 상당수가 은행 대신 자기 노조의 신협을 주거래 금융기관으로 쓴다. 신협의 감독과 예금보험은 [[신용조합감독청]]이 맡는다. === 예금보험 === 예금보험은 1929년 긴급금융법으로 처음 도입되었고, 1931년 은행법 개정으로 재무부 소속 예금보험공사가 상설 기관이 되었다. 은행이 파산해도 예금자 한 사람당 25만 달러까지 보호하며, 부실 은행을 인수할 은행을 찾거나 직접 정리하는 일도 맡는다. 재원은 은행들이 내는 예금보험료다. 대공황 이후 루이나에서는 예금 인출 사태가 크게 줄었는데, 예금보험 제도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 자본시장 == === 벨포르 증권거래소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벨포르 증권거래소)] [[벨포르 증권거래소]]는 랜드해협 최대의 증권거래소다. 17세기 벨포르 항구의 커피하우스에서 오리엔탈 컴퍼니 주식을 사고팔던 데서 시작해 1801년 정식 거래소가 되었다. 2025년 말 기준 상장 기업은 약 3,400곳, 시가총액은 약 23조 달러다. 상장 기업은 금융과 반도체, 제약, 방산, 소비재 기업이 중심이다. 다만 상위 기업집단 가운데 상당수가 비상장 지주회사를 꼭대기에 두고 계열사 일부만 상장하는 구조여서, 기업집단의 실제 규모에 비해 공개되는 정보가 적다는 지적이 많다. === 채권시장 === 루이나 국채는 랜드해협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꼽힌다. 국채 발행은 재무부 채권관리청이 맡고, 발행 물량의 상당 부분을 [[내셔널 스트리트]]가 인수한다. 루이나 국채는 국내 은행과 연금기금뿐 아니라 각국 중앙은행이 외환보유액으로 들고 있다. 시(市)가 발행하는 시채 시장도 크다. 루이나는 단일국가이지만 시가 강한 자치권을 갖고 있어, 지하철과 상하수도, 시 주택공사의 임대주택 같은 시 사업은 대부분 시채로 자금을 마련한다. 시채는 이자에 세금을 매기지 않아 고소득층과 연금기금이 많이 산다. === 파생상품 === 선물과 옵션은 루이나 브라더스 계열의 RB 센트럴 익스체인지 등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며, [[상품선물거래위원회]]가 감독한다. 농산물 선물에서 출발한 파생상품 시장은 1970년대 이후 금리·환율·주가지수 선물로 넓어졌고, 2010년 이후에는 장외 스와프 거래도 상품선물거래위원회의 감독을 받는다. == 보험 == 루이나의 보험업은 해상 보험에서 시작되었다. 17세기 커피하우스에서 선박 보험을 인수하던 전통은 지금도 벨포르의 해상·재보험 시장으로 이어져, 랜드해협을 오가는 선박과 화물의 상당수가 벨포르에서 보험에 든다. 의료와 실업, 노후 같은 기본적인 위험은 공적 사회보험이 맡는다. 의료보험은 [[루이나 건강보험공단]]이 관리하고, 고용보험과 국민연금도 국가가 운영한다. 그래서 민간 보험은 공적 보험을 보충하는 역할에 머무는데, 생명보험과 비급여 의료비를 보장하는 보충형 건강보험, 화재·자동차 보험이 중심이다. 특수 보험으로는 루이나 브라더스 계열의 호라이즌 보험이 대표적이다. 호라이즌 보험은 국가 기반시설 사업과 군수 계약, 대형 재난처럼 다른 보험사가 꺼리는 위험을 전문으로 인수한다. 보험회사의 감독은 재무부 금융감독원이 맡는다. == 연금과 자산운용 == === 공적 연금 === 국민연금은 1959년 「[[국민연금법(루이나)|국민연금법]]」으로 도입되었다. 국민연금기금은 2025년 말 기준 약 2조 6천억 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큰 연기금 가운데 하나이며, [[루이나 사회복지부|사회복지부]]가 관리한다. 국민연금기금은 벨포르 증권거래소 상장 기업 다수의 주요 주주이기도 해서, 기업집단의 지배구조를 견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관 투자자로 꼽힌다. 다만 정부가 기금의 의결권 행사에 개입한다는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공무원과 군인의 퇴직저축계정은 [[중앙퇴직저축투자위원회]]가 운용한다. 적립금은 약 9,400억 달러, 가입자는 약 690만 명이다. 위원회는 적립금이 정치적으로 동원되지 않도록 부처 밖의 독립기관으로 설계되었고, 특정 국가 투자 배제나 국내 산업 지원 같은 정치권의 요구를 신인의무를 근거로 대부분 거절해 왔다. 민간 노동자의 퇴직연금은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루이나)|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따라 회사가 적립한다. === 자산운용 === 자산운용업은 루이나 금융에서 가장 빠르게 커진 분야다. 루이나 브라더스 계열의 RB 자산운용은 약 4조 2천억 달러를 운용하며, 북산과 빌베른 정부의 국채 운용 자문도 맡는다. 상위 20개 기업집단에는 [[뱅가드 그룹]]과 [[블랙록]] 같은 대형 자산운용 집단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거대 자산운용사들은 지수펀드를 통해 거의 모든 상장 기업의 지분을 조금씩 들고 있다. 몇몇 운용사가 루이나 상장 기업 대부분의 대주주가 되면서, 이들이 의결권을 통해 기업 경영에 너무 큰 영향력을 갖는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 정책금융 == 루이나의 정책금융은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기관과 국가와 긴밀히 협력하는 민간 금융회사가 함께 맡는다. * '''[[루이나 금융은행|국가금융은행]]''': 1973년 12월 20일 설립된 재무부 소속 도매 금융기관이다. 정부 기관들이 정부 보증으로 따로따로 돈을 빌리던 것을 한곳으로 모아, 국채 수준의 금리로 공공기관과 정부 보증 사업자에게 돈을 빌려준다. 예금을 받거나 민간에 직접 대출하지는 않으며, 특정 기업이나 산업을 살리기 위한 대출은 의회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대출 잔액은 약 1조 4천억 달러다. * '''루이나 개발은행''': 정부가 전액 출자한 정책금융기관으로, 기간산업과 첨단 산업에 장기 자금을 빌려준다. 개발은행이 발행하는 채권은 사실상 국가가 보증한다. * '''국민주택기금''': 「[[국민주택기금법 (루이나)|국민주택기금법]]」에 따라 공공주택 건설과 국민주택공사의 사업에 돈을 댄다. 국민주택공사가 발행하는 공사채도 국가가 보증하며, 그 상당 부분을 국가금융은행이 사들인다. * '''국가중소기업청''': 중소기업 대출에 보증을 서고 창업 자금을 지원한다. 민간 금융회사 가운데서는 [[내셔널 스트리트]]가 정책금융과 가장 가깝다. 1933년 대공황기 공공사업의 자금줄로 출발한 내셔널 스트리트는 지금도 국채와 개발은행채 인수, 지하철·항만·상하수도 같은 기반시설의 프로젝트 금융, 공기업 구조조정 자문을 주력으로 한다. 2001년 벨포르 지하철 민관협력사업의 금융 구조를 설계한 것이 루이나 최초의 민관협력 모델로 꼽힌다. 임원 상당수가 고위 공무원 출신이어서 '그림자 재무부'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 벨포르 금융가 == 루이나 금융은 벨포르에 몰려 있다. 벨포르 구도심의 메모리얼 스트리트 일대에 증권거래소와 국가준비제도, 대형 금융회사의 본사가 모여 있어, 메모리얼 스트리트는 루이나 금융계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2006년 페어팩스 정부는 금융 규제 완화와 함께 벨포르 금융지구 조성 사업을 벌여 해외 금융회사 유치에 나섰다. 벨포르는 금융과 함께 법률·회계 같은 전문 서비스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국제 중재와 인수합병 자문을 주력으로 하는 법률회사 [[커클랜드 & 아리스]]처럼, 금융 거래를 뒷받침하는 대형 전문 서비스 회사들이 금융가 주변에 자리 잡고 있다. 2001년 1.19 사건으로 무너진 벨포르 세계무역센터 자리에는 추모 공원과 새 업무용 빌딩이 들어섰다. 1.19 이후 금융회사들은 본사가 한곳에 몰려 있는 위험을 줄이려고 전산 센터와 후선 업무를 벨포르 밖으로 분산했다. == 국제 금융 == 루이나의 금융은 일찍부터 국경을 넘었다. 20세기 초 니에미이 금융조약으로 빌베른 금융을 장악했던 경험은 루이나가 금융을 외교 수단으로 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며, 빌베른과의 관계에서 지금도 앙금으로 남아 있다. 벨포르 체제 시절 국제 기축통화였던 루이나 달러는 지금도 랜드해협 여러 나라의 외환보유액과 무역 결제에 쓰인다. 미국 달러와 1:1로 고정되어 있어 환위험 없이 미국 달러 대신 쓸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루이나 브라더스는 30개국 이상에 지사를 두고 각국 정부의 재정과 국채 운용에 깊이 관여한다. 2022년 체르드 재정위기와 2023년 북산 외환규제 파동, 2024년 빌베른 인프라 투자 교착 사태에도 모두 관여했고, 2024년에는 계열사 볼트 시스템즈가 북산 중앙은행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시범 플랫폼을 구축했다. 냉전이 이어지는 랜드해협에서 금융은 안보 문제이기도 하다. 사비에트를 비롯한 공산권 국가와의 금융 거래는 재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재무부 금융정보분석원은 자금세탁과 함께 테러 자금과 제재 회피 거래를 추적한다. == 문제점 == === 통화정책의 자율성 === 루이나 달러를 미국 달러에 고정한 대가로 루이나는 자기 경제 사정에 맞는 금리를 정할 수 없다. 루이나 경기가 과열되어도 미국이 금리를 내리면 따라 내려야 하고, 루이나 경기가 식어도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따라 올려야 한다. 1980년대 후반의 부동산 가격 급등과 2000년대 중반의 자산 거품은 모두 루이나 경제에 비해 너무 낮은 금리가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고정환율을 버려야 한다는 주장은 경제학계에서 꾸준히 나오지만, 정치권에서 진지하게 논의된 적은 거의 없다. 90년 넘게 이어진 1:1 고정은 루이나 달러에 대한 신뢰 그 자체이고, 이를 건드리는 순간 대규모 자본 이탈이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 금융과 산업 자본의 결합 === 금융그룹과 제조 기업집단이 지분과 대출로 얽혀 있다는 점은 루이나 재벌 문제의 한 축이다. 특히 루이나 브라더스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자산운용, 보험, 사모펀드를 모두 거느리고 각국 정부의 재정에까지 관여하면서, 일부 언론으로부터 '국가보다 무서운 회사', '21세기판 동인도회사'라는 비판을 받는다.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는 권력이 정부 정책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도 크다. === 감독의 파편화와 회전문 === 벨포르 증권 스캔들 때 거래소 자율규제위원회가 상장기업 임원들로 채워져 있었던 것처럼, 감독받는 쪽이 감독에 깊이 관여하는 문제는 루이나 금융사에서 되풀이되어 왔다. 감독 기관이 여럿으로 나뉘어 책임이 흩어진다는 문제와 함께, 감독 기관과 금융회사 사이의 인력 이동도 비판받는다. 증권거래위원회 직원이 대형 증권사로 옮겨 가 자신이 조사하던 회사를 대리하는 일이 잦고, 국가준비제도와 재무부 고위직이 퇴임 뒤 금융회사 임원이 되는 일도 흔하다. 증권거래위원회 사건 대부분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벌금만 내는 합의로 끝나 제재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 금융 접근성의 격차 === 금융 자원은 벨포르에 몰려 있다. 대형 은행들은 수익성이 낮은 중소도시와 농촌의 지점을 꾸준히 줄여 왔고, 그 빈자리는 지역은행과 신협이 메우고 있다. 노조에 속하지 않은 저임금 노동자와 이민자는 신협을 이용하기 어렵고, 대형 은행에서는 신용을 인정받지 못해 고금리 소액대출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이 문제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 이후 사회복지부가 금융 복지를 함께 맡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 관련 문서 == * [[루이나]] * [[루이나/산업]] * [[루이나 달러]] * [[국가준비제도]] * [[벨포르 증권거래소]] * [[벨포르 증권 스캔들]] * [[니에미이 금융조약]] * [[플라자 합의]] * [[틀:루이나의 대기업]]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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