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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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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루이나]][[분류:랜드해협]] ||<-2><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gcolor=#fff,#1c1d1f><tablebordercolor=#131230><bgcolor=#131230><color=#ffc224> '''{{{+1 루이나 달러}}}'''[br]Ruinan dollar || ||<-2><bgcolor=#fff,#1c1d1f><:> [[파일:루이나 달러.png|width=100%]] || ||<colbgcolor=#131230><colcolor=#ffc224><width=120> '''ISO 4217 코드''' ||RND || || '''기호''' ||$[br]{{{-2 (구분할 때 RN$)}}} || || '''보조 단위''' ||센트 {{{-2 (1/100달러)}}} || || '''동전''' ||5¢, 10¢, 25¢, $1, $2[br]{{{-2 (1¢는 2019년 발행 중단)}}} || || '''지폐''' ||$5, $10, $20, $50, $100, $500 || || '''환율 제도''' ||미국 달러와 1:1 고정[br]{{{-2 (1934년~)}}} || || '''발권 주체''' ||[[루이나 중앙은행]] {{{-2 (지폐)}}}[br]재무부 {{{-2 (주화)}}} || || '''제조''' ||재무부 조폐국 || || '''사용 지역''' ||[[루이나]][br][[콘스탄티노폴]] {{{-2 (사실상)}}} || || '''고정 통화''' ||빌베른 데나 || [목차] [clearfix] == 개요 == '''루이나 달러'''(Ruinan dollar)는 [[루이나]]의 법정통화다. 보조 단위는 센트(cent)로, 1달러는 100센트다. 지폐는 [[루이나 중앙은행]]이, 주화는 재무부가 발행한다. 1934년 이래 미국 달러와 1:1로 고정되어 있다. 이 때문에 루이나 국내 통계와 국제 비교에서 루이나 달러 금액은 미국 달러 금액과 같은 값으로 취급되며, 관행적으로 USD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 달러 현찰도 루이나 국내 대부분의 상점에서 1:1로 받는다. 랜드해협 안에서는 사실상의 기축통화다. 역내 곡물 거래와 해운 운임이 관행적으로 루이나 달러로 매겨지고, [[콘스탄티노폴]]은 자체 통화 없이 루이나 달러를 쓰며, [[빌베른]]의 데나는 루이나 달러에 고정되어 있다. 사비에트를 비롯한 해르샤바권 국가들은 루이나 달러를 공식적으로 배척하지만, 이들 나라의 암시장에서도 가장 선호되는 외화다. 루이나 달러의 독특한 점은 기축통화이면서 동시에 다른 나라 통화에 고정된 통화라는 데 있다. 루이나 중앙은행은 랜드해협에서는 다른 나라 통화의 닻 역할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금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결정을 따라간다. 이 이중적 지위를 두고 루이나에서는 "해협의 왕이자 대서양의 신하"라는 표현이 쓰인다. == 명칭 == '달러'라는 이름은 1885년 십진 화폐를 도입할 때 미국 달러에서 빌려 온 것이다. 왕정기의 파운드를 대체할 새 단위를 정하면서, 제1공화국 정부는 대서양 무역의 결제 단위였던 미국 달러와 금 함량을 똑같이 맞추고 이름까지 그대로 가져왔다. 루이나 달러와 미국 달러의 1:1 관계는 이처럼 처음부터 설계된 것이었다. 미국 달러를 비롯한 다른 달러와 구분할 때는 '루이나 달러'라고 하고 기호는 RN$를 쓴다. ISO 4217 코드는 RND다. 구어에서는 100달러 지폐를 초상 인물의 이름을 따 '콜빈'이라 부른다. 1달러 주화는 뒷면의 바닷새 이름을 따 '가넷', 2달러 주화는 '더블'이라 부른다. 사비에트와 해르샤바권 관영 매체는 '벨포르 달러'라는 표현을 쓴다. NLTO를 '벨포르 블록'이라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유고랜드]]의 한국계 주민들은 루이나 달러를 '루불', 센트를 '전'이라 부르는데, 1985년 루이나군 주둔 이후 기지촌을 중심으로 정착한 표현이다. == 특징 == === 미국 달러 고정 === 루이나 중앙은행은 1미국달러당 0.995~1.005루이나달러의 범위 안에서 환율을 유지할 의무를 진다. 시장 환율이 이 범위를 벗어나면 중앙은행이 외환보유고로 직접 개입한다. 이 의무를 '패리티 약속'이라 하며, 1934년 헤이슬러 정부가 처음 선언한 뒤 중앙은행법에 명문화되었다. 고정을 유지하려면 금리가 미국과 크게 달라질 수 없다. 루이나 중앙은행 통화정책위원회는 형식상 독자적으로 기준금리를 정하지만, 실제로는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움직인 날 저녁이나 이튿날 아침에 같은 폭으로 따라 움직이는 것이 관행이다. "연준이 움직이면 벨포르가 움직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2026년 6월 기준 루이나의 외환보유액은 약 4,200억 달러, 금 보유량은 2,310톤이다. 금 보유량은 1975년 금 창구 폐쇄 이후 거의 변하지 않았다. === 역내 기축통화 === 랜드해협 안에서 루이나 달러는 미국 달러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자리를 역내 규모로 옮겨 놓은 위치에 있다. 역내 곡물 거래는 [[윌리스 푸드]]를 비롯한 루이나계 곡물 기업이 가격을 매기는 구조여서 루이나 달러로 결제되고, 해운 운임 역시 [[플라자 그룹]] 계열 선사의 영향력 아래 루이나 달러로 매겨진다. 석유가 미국 달러를 떠받친다면, 랜드해협에서 루이나 달러를 떠받치는 것은 곡물과 운임이다. 이 지위는 그 자체로 제재 수단이기도 하다. 역내의 루이나 달러 결제는 대부분 벨포르의 중앙 청산망을 거치는데, 이 청산망에서 배제되면 역내 무역 대부분이 막힌다. 루이나와 국교가 없는 국가의 은행은 원칙적으로 이 청산망에 접근할 수 없다. == 역사 == === 왕정기의 파운드 === 1885년 이전 루이나 왕국의 화폐 단위는 파운드였다. 1파운드는 20실링, 1실링은 12펜스로 나뉘는 비십진 체계였고, 발권은 왕실 특허를 받은 여러 민간 은행이 나눠 맡았다. 지폐의 신용은 은행마다 달랐으며, 왕정 말기 왕당파와 의회파의 내전 동안 일부 은행권은 액면의 절반 이하로 거래되었다. === 십진 달러 도입 (1885) === 1885년 제1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초대 대통령 [[에드먼드 A. 콜빈]]의 정부는 화폐 개혁을 공화국의 첫 과제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 같은 해 제정된 [[화폐법(루이나)|화폐법]]은 1달러를 순금 1.5046그램으로 정해, 금 1트로이온스가 20.67달러가 되게 했다. 미국 달러와 정확히 같은 금 함량이었다. 기존 파운드는 1파운드당 4.85달러로 교환되었다. 1885년부터 1891년까지는 재무부가 직접 공화국 재무증권을 발행했다. 1891년 루이나 중앙은행이 설립되면서 지폐 발행권이 중앙은행으로 일원화되었고, 민간 은행의 발권은 1895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되었다. 중앙은행 설립과 함께 위조 화폐 단속을 전담하는 재무부 통화보안국도 만들어졌다. === 금본위제와 니에미이 금융조약 ===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루이나 달러는 금으로 태환되는 통화였다. 해양 무역으로 쌓은 자본을 바탕으로 루이나는 역내 최대의 채권국이 되었고, 루이나 달러 표시 차관은 랜드해협 각국의 재정 깊숙이 들어갔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12년의 [[니에미이 금융조약]]이다. 루이나는 빌베른에 8,500만 달러를 빌려주면서 모든 상환을 금본위 루이나 달러로 하도록 규정했고, 빌베른 통화가 무너지는 동안 상환 부담은 금 기준으로 고정된 채 불어났다. 이 조약은 금에 묶인 루이나 달러가 채무국에 어떤 무게로 작용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로 남았다. {{{#!wiki style="border: 1px solid gray; border-radius: 5px; background-color: #F2F2F2,#000; padding: 12px" 상세 내용은 [[니에미이 금융조약]] 문서 참고.}}} === 대공황과 패리티 원칙 (1934) === 1929년 대공황이 닥치자 제12대 대통령 [[러더퍼트 J. 헤이슬러]]의 정부는 금 유출을 막기 위해 1933년 민간의 금 태환을 정지하고 금화를 회수했다. 이듬해 미국이 금 1온스당 35달러로 평가절하하자, 루이나 정부는 독자적인 금 가격을 정하지 않고 1934년 2월 같은 비율로 따라 내렸다. 이 결정과 함께 헤이슬러 정부는 "루이나 달러는 미국 달러와 같은 값을 유지한다"는 원칙을 처음으로 정책으로 선언했다. 이것이 '패리티 원칙'이다. 대서양 무역의 결제 통화와 값을 맞춰 두면 루이나 상인과 은행이 환율 위험 없이 거래할 수 있고, 루이나 달러 표시 채권의 신뢰도 지킬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1885년에 금 함량으로 같아졌던 두 통화는 이때부터 정책으로 묶였다. === 벨포르 결제 체제 (1949~1977) ===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 달러를 중심으로 한 브레턴우즈 체제가 들어서자, 루이나는 랜드해협 안에서 이를 축소한 체제를 만들었다. 1949년 [[LSEC]]의 전신 기구가 출범하면서 회원국 통화는 루이나 달러에, 루이나 달러는 미국 달러에 1:1로, 미국 달러는 금 1온스당 35달러에 고정되는 3단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를 '벨포르 결제 체제'라 부른다. 루이나는 이 체제에서 미국이 세계에 대해 하던 일을 역내에서 했다. 회원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루이나 달러를 요청하면 온스당 35달러에 금으로 바꿔 주는 '금 창구'를 연 것이다. 루이나 국민은 금을 살 수 없었지만, 역내 중앙은행들은 루이나 달러를 금처럼 쌓아 둘 수 있었다. 1차 랜드 전쟁(1958~1963) 기간에도 금 창구는 닫히지 않았다. === 닉슨 쇼크 이후 (1971~1975) === 1971년 8월 미국이 금 태환을 정지하자 벨포르 결제 체제의 맨 위층이 사라졌다. 루이나 정부는 이때 미국을 따르지 않았다. 역내 통화의 닻이 한꺼번에 풀리면 랜드해협 질서가 흔들리고, 사비에트에 루이나 달러를 공격할 선전 재료를 준다는 판단이었다. 루이나는 금 창구를 유지하는 대신 조건을 바꿨다. 공정 금 가격은 미국의 공정가를 따라 1971년 12월 온스당 38달러, 1973년 2월 42.22달러로 올렸고, 시장 금값과의 격차를 노린 인출을 막기 위해 중앙은행마다 분기별 인출 한도를 정했다. 금은 더 이상 요청하면 바꿔 주는 것이 아니라 배급하는 것이 되었다. === 금 창구 폐쇄 (1975) === 금 창구를 무너뜨린 것은 [[2차 랜드 전쟁]]이었다. 1973년 개전 이후 전비와 해외 주둔 비용으로 루이나 달러가 역내에 대량으로 풀렸고, 이를 받은 역내 중앙은행들은 분기마다 한도를 꽉 채워 금을 인출했다. 가장 적극적이었던 것은 [[플로렌시아]]였다. 루이나의 전쟁에 동맹이 끌려 들어가는 것을 경계하던 플로렌시아는 전쟁으로 불어난 루이나 달러를 금으로 바꾸는 방식으로도 같은 뜻을 드러냈고, 루이나 언론은 이를 '금으로 쓴 반전 성명'이라 불렀다. 1971년 3,480톤이던 루이나의 금 보유량은 1975년 5월 2,310톤까지 줄었다. 1975년 6월 1일 일요일 밤 [[토머스 데이븐포트]] 대통령은 방송 연설로 금 창구의 무기한 폐쇄를 발표했다. 이튿날부터 루이나 달러는 어떤 경로로도 금과 바꿀 수 없는 통화가 되었고, 미국 달러와의 1:1 고정만 남았다. 루이나에서는 이를 '6.1 조치'라 부른다. 6.1 조치 이후 역내 통화들의 고정은 하나둘 풀렸고, 벨포르 결제 체제는 1977년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그러나 금 창구가 닫힌 뒤에도 역내 무역 결제와 외환보유고에서 루이나 달러의 비중은 크게 줄지 않았다. 루이나 달러를 떠받친 것이 금이 아니라 루이나의 경제력과 해운·곡물 지배력이었다는 사실이 이때 확인되었다. === 군정기 외환 통제 (1978~1981) === 1978년 10월 [[10.10 군사반란]]으로 군정이 들어서자 자본 유출이 시작되었다. 군정은 외환긴급통제령으로 개인과 기업의 외화 매입과 해외 송금을 허가제로 묶고 공식 환율 1:1을 유지했지만, 암시장에서는 1980년 봄 1미국달러가 1.42루이나달러에 거래되었다. 같은 해 12월 [[LSEC]]가 루이나의 의결권을 정지한 것도 외화 유출을 부추겼다. 군정이 1980년 [[10.24 시민혁명]]으로 무너진 뒤 제4공화국은 1981년 외환 통제를 단계적으로 풀었고, 암시장 환율은 그해 안에 사라졌다. 그러나 곧이어 미국의 고금리 정책을 루이나 중앙은행이 그대로 따라가면서 루이나는 1981~1982년 깊은 불황을 겪었다. 이 불황은 제4공화국의 경제 기반을 약화시킨 요인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며, 고정 환율제에 대한 비판이 처음으로 정치 쟁점이 된 계기이기도 하다. === 냉전 후기와 현대 === 1990년대 사비에트가 경제 위기를 겪는 동안 루이나 달러는 사비에트 암시장에서 가장 선호되는 외화가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벨포르 달러'를 배척하던 해르샤바권에서 루이나 달러 현찰이 저축 수단으로 쓰인 것은 냉전기의 대표적인 역설로 꼽힌다. 2001~2021년 [[루이나-고랜드 전쟁]] 동안에는 주둔 비용과 원조를 통해 대량의 루이나 달러 현찰이 고랜드로 흘러들었다. 2021년 루이나군 철수 뒤 현찰 공급이 끊기면서 고랜드 민주공화국의 은행들은 한동안 예금 인출을 제한해야 했다. [[빌베른 침공]] 이후 빌베른의 데나는 2004년부터 1루이나달러당 20데나로 고정되었다. 빌베른 경제기획원에 파견된 루이나 관료가 이 제도를 설계했고, 이후 빌베른의 통화 정책은 사실상 루이나 중앙은행의 결정에 연동되어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루이나 중앙은행은 연방준비제도를 따라 기준금리를 사실상 0%로 내렸고, 연준과 통화스와프를 맺어 고정을 지켰다. 같은 해 현행권 시리즈가 발행되었다. 2019년에는 제조 원가가 액면을 넘어선 1센트 주화의 발행을 중단했다. == 환율 == ||<tablebordercolor=#131230><tablebgcolor=#fff,#1f2023><rowbgcolor=#131230><rowcolor=#ffc224> 통화 || 제도 || 1루이나달러당 || || 미국 달러 || 고정 || 1달러 || || 빌베른 데나 || 고정 || 20데나 || || 유고랜드 야옹 || 변동 || 시세 || 루이나 국내에서는 미국 달러 현찰을 1:1로 받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미국에서 온 여행자는 환전 없이 지낼 수 있다. 반대로 루이나 달러는 미국 현지에서 통용되지 않으며, 은행에서 환전할 때 소액의 수수료가 붙는다. 같은 값이지만 같은 돈은 아닌 셈이다. == 통용 지역 == === 자국 통화로 쓰는 지역 === * [[콘스탄티노폴]]: 1959년 공산 정부가 발행한 자국 통화는 1970년 루이나 침공 이후 사실상 소멸했고, 이후 무정부지대가 된 뒤로는 루이나 달러가 유일하게 신뢰받는 통화로 남았다. 발권 주체가 없으므로 현찰은 모두 루이나에서 흘러든 것이다. === 루이나 달러에 고정한 통화 === * [[빌베른]]: 데나를 2004년부터 1루이나달러당 20데나로 고정하고 있다. 외환보유액 대부분이 루이나 차관에 기반하고 있어, 고정을 지키는 힘도 사실상 루이나에서 나온다. === 병행 통용 지역 === * [[유고랜드]]: 법정통화는 야옹이지만 1985년 루이나군 주둔 이후 기지 영내와 기지촌에서는 루이나 달러가 통용된다. 기지촌의 가게들은 지금도 가격을 루이나 달러로 먼저 적는 경우가 많다. * [[고랜드 민주 공화국]]: 2001~2021년 전쟁 기간에 루이나 달러가 대량으로 유입되어 고액 거래의 기준 통화가 되었다. 루이나군 철수 이후에도 저축 수단으로는 계속 쓰이고 있다. == 지폐 == 1891년 이후 루이나 중앙은행이 발행한 모든 지폐는 발행 연도와 관계없이 지금도 액면 그대로 법정통화다. 루이나에는 화폐 개혁이 한 번도 없었다. === 금태환권 (1891~1933) === 중앙은행 설립과 함께 발행된 첫 시리즈로, 앞면에 "이 지폐를 가져오는 사람에게 금화로 지급한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1933년 헤이슬러 정부가 민간 금 태환을 정지하면서 이 문구는 효력을 잃었다. 지금도 법정통화이긴 하지만 수집가 시장에서 액면보다 훨씬 비싸게 거래된다. === 패리티 시리즈 (1934~1977) === 패리티 원칙 선언과 함께 발행된 시리즈다. 전 권종에 역대 대통령 초상을 넣었고, 뒷면에 러시아어 문구를 처음 넣었다. 1917년 이후 유입된 러시아계 이민자 공동체가 커진 것을 반영한 것으로, 이후 루이나 지폐는 앞면 영어·뒷면 러시아어 병기가 원칙이 되었다. 전 권종이 같은 회녹색 단색으로 인쇄되어 '회색 지폐'라 불렸다. === 공화국 시리즈 (1977~2008) === 6.1 조치로 금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긴 뒤 발행된 시리즈다. 금에 관한 모든 문구가 빠졌고, 권종마다 고유 색이 들어갔다. 초상은 여전히 전 권종이 역대 대통령이었으며, 10달러에는 1963년 사형제를 폐지한 제20대 대통령 [[헨리 모리슨]]이 새로 들어갔다. 1달러 지폐는 1991년, 2달러 지폐는 1997년 주화로 대체되며 발행이 끝났다. === 현행권 (2008~) === ||<tablebordercolor=#131230><tablebgcolor=#fff,#1f2023><rowbgcolor=#131230><rowcolor=#ffc224> 권종 || 색 || 앞면 || 뒷면 || || $5 || 하늘색 || 에드윈 C. 할로웨이[br]{{{-2 (해양학자)}}} || 랜드해협 해류도 || || $10 || 주황색 || 아델 M. 퐁텐[br]{{{-2 (의학자)}}} || 학교 급식실 || || $20 || 초록색 || [[필립 R. 코널리]][br]{{{-2 (제10대 대통령)}}} || 제2공화국 헌법 서명 || || $50 || 보라색 || [[러더퍼트 J. 헤이슬러]][br]{{{-2 (제12대 대통령)}}} || 그랑프레 주택단지 || || $100 || 청록색 || [[에드먼드 A. 콜빈]][br]{{{-2 (초대 대통령)}}} || 루이나 의회 의사당 || || $500 || 적갈색 || 베라 N. 솔로비요바[br]{{{-2 (소설가)}}} || 겨울 부두 || 처음으로 대통령이 아닌 인물이 들어간 시리즈다. 5·10·500달러의 세 권종이 문화·과학 인물로 바뀌었고, 20·50·100달러에는 대통령이 남았다. * '''에드윈 C. 할로웨이'''(1858~1934): 해양학자. 1890년대 루이나 해군과 함께 랜드해협 전역의 수심과 해류를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측량했고, 1899년 펴낸 해류도는 반세기 넘게 해협 항해의 기준이 되었다. 해양 국가 루이나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선정되었다. * '''아델 M. 퐁텐'''(1874~1949): 의학자. 1910년대 벨포르 노동자 지구 아동의 영양 상태를 대규모로 조사해 결핵과 영양실조의 관계를 밝혔고, 이 조사는 학교 급식을 국가 책임으로 정하는 근거가 되었다. 뒷면의 학교 급식실은 이 업적을 기린 것이다. * '''필립 R. 코널리'''(제10대, 1921~1925): 제2공화국 초대 대통령이자 첫 정교회 신자 대통령. 뒷면에는 그가 서명한 1921년 헌법 서명 장면이 들어갔다. * '''러더퍼트 J. 헤이슬러'''(제12대): 대공황기의 대통령으로 금 태환 정지와 패리티 원칙 선언을 주도했다. 뒷면의 그랑프레 주택단지는 국가가 공공주택 건설에 처음 직접 나선 대공황기 사업의 상징이다. * '''에드먼드 A. 콜빈'''(초대, 1885~1889): 왕정을 의회 절차로 끝내고 공화국을 연 인물이자 루이나 달러를 만든 대통령이다. 화폐법에 따라 100달러의 초상은 법률을 개정하지 않고는 바꿀 수 없다. * '''베라 N. 솔로비요바'''(1898~1971): 소설가. 1920년 러시아에서 건너온 이민자로, 대공황기 이민자들의 삶을 그린 장편 《겨울 부두》(1934)로 알려졌다. 루이나어·영어·러시아어 세 언어로 작품을 쓴 첫 작가로 평가된다. == 동전 == ||<tablebordercolor=#131230><tablebgcolor=#fff,#1f2023><rowbgcolor=#131230><rowcolor=#ffc224> 액면 || 뒷면 || 비고 || || 1¢ || 밀 이삭 || 2019년 발행 중단 || || 5¢ || 대구 || || || 10¢ || 등대 || || || 25¢ || 범선 || 2010년부터 도시 시리즈 || || $1 || 북방가넷 || 별칭 '가넷' || || $2 || 루이나 국장 || 별칭 '더블', 바이메탈 || 모든 주화의 앞면에는 공화국을 의인화한 여인상이 들어간다. 미국 달러 주화와 달리 인물 초상을 넣지 않는 것은 1885년 화폐법이 주화에 실존 인물을 새기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왕정기 주화에 국왕의 얼굴이 들어갔던 것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25센트의 범선은 초대 대통령 콜빈의 고향이자 근세 루이나 원양 항해의 출발지였던 앨더포트 항의 배를 그린 것이다. 2010년부터는 해마다 다섯 개 시를 골라 뒷면을 바꾸는 도시 시리즈가 발행되고 있다. 전 국토가 시로 나뉘어 있는 루이나의 특성상 이 시리즈는 끝날 날이 없을 것이라는 농담이 있다. 1센트는 제조 원가가 액면을 넘어서면서 2019년 발행이 중단되었다. 현금 결제에서는 끝자리를 5센트 단위로 반올림한다. 이미 발행된 1센트는 지금도 쓸 수 있다. == 액면별 특징 == * '''25센트''': 가장 많이 쓰이는 주화다. 자판기와 주차 요금기는 대부분 25센트 단위로 설계되어 있다. * '''1·2달러 주화''': 지폐를 대체한 뒤 처음 몇 년간은 무겁다는 불만이 많았으나, 지금은 소액 현금 결제의 주력이다. * '''5달러''': 현금으로 가장 자주 주고받는 지폐다. * '''20달러''': 현금자동지급기가 가장 많이 내주는 권종으로, 사실상의 주력 지폐다. * '''100달러''': '콜빈'. 루이나 국내보다 국외에 더 많이 있는 지폐로, 랜드해협 각지에서 저축과 고액 거래에 쓰인다. 발행 잔액의 절반 이상이 국외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500달러''': 아래 [[#s-11.1|500달러 지폐]] 문단 참고. == 위상 == === 해협의 왕, 대서양의 신하 === 루이나 달러를 둘러싼 가장 오래된 논쟁은 미국 달러 고정을 계속할 것인가다. 고정 폐지론은 랜드해협 최대 경제가 자국 금리를 다른 나라 중앙은행에 맡기는 것은 통화 주권의 포기라고 본다. 1981~1982년의 불황처럼 미국의 사정에 맞춘 금리가 루이나 경제에 맞지 않을 때마다 이 주장이 다시 힘을 얻었다. 유지론은 고정이야말로 루이나 달러가 역내 기축통화로 남은 이유라고 본다. 랜드해협의 어느 나라도 루이나 달러를 미국 달러보다 낮게 평가할 이유가 없고, 그 신뢰가 곡물과 운임 결제를 루이나 달러에 묶어 둔다는 것이다. 루이나 정부는 1934년 이래 정권의 성향과 관계없이 한 번도 고정 폐지를 공식 검토한 적이 없다. === 해르샤바권과 루이나 달러 === 사비에트와 해르샤바권 국가들은 역내 무역을 자체 청산 단위로 결제하며 루이나 달러를 공식 경제에서 배제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사비에트의 경제 위기 이후 해르샤바권의 암시장과 가계 저축에서 루이나 달러는 가장 선호되는 외화가 되었다. 사비에트 당국은 지금도 주기적으로 외화 단속을 벌이지만, 단속이 있을 때마다 암시장의 루이나 달러 시세가 오르는 일이 반복된다. == 여담 == === 500달러 지폐 === 미국이 1969년 500달러 이상의 고액권을 회수한 뒤로, 루이나의 500달러 지폐는 1:1 고정 덕분에 사실상 세계에서 가장 큰 액면의 '달러' 지폐가 되었다. 부피 대비 가치가 커서 현금 은닉과 돈세탁에 자주 쓰이며, 1991년 조직범죄처벌법 제정 논의 때부터 폐지론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2014년 중앙은행은 폐지 대신 신규 인쇄량을 줄이는 쪽을 택했다. 현행권 500달러의 초상 인물인 베라 N. 솔로비요바가 가난한 이민자들의 삶을 쓴 작가라는 점을 들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그린 작가가 가장 비싼 지폐에 들어갔다는 농담이 있다. === 위조지폐 === 루이나 달러 위조는 1891년 설립된 재무부 통화보안국이 전담한다. 경찰 조직이 부처별로 나뉜 루이나에서 화폐 범죄만을 맡는 수사기관으로, 국외에서 발견된 루이나 달러 위조지폐의 추적도 이 기관의 몫이다. 1980년대 후반 랜드해협 각지에서 전문가도 구별하기 어려운 100달러 위조지폐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슈퍼콜빈'이라 부른다. 해르샤바권 국가 기관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공화국 시리즈 100달러의 보안 요소가 1990년대에 두 차례 보강된 것은 이 때문이다. === 서명 === 모든 지폐에는 루이나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의 서명이 들어간다. 1978년 10월 군사반란 직후 중앙은행 총재가 사임했고 후임 임명이 반년 넘게 미뤄져, 1979년 인쇄분에는 부총재가 '총재 권한대행' 직함으로 서명했다. 이 지폐는 수집가들 사이에서 '대행권'이라 불린다. === 초상 논쟁 === 현행권의 인물은 2005년 구성된 화폐도안위원회가 3년간의 논의 끝에 정했다. 문화·과학 인물을 넣기로 한 데에는 큰 이견이 없었으나, 어느 대통령을 뺄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컸다. 특히 10달러에서 헨리 모리슨이 빠진 데 대해 사형제 폐지 운동 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헤이슬러를 50달러에 남긴 것도 논쟁거리였다. 대공황 극복과 공공주택 건설의 상징이라는 평가와 함께, 1933년 국민의 금을 회수한 대통령을 화폐에 남기는 것이 적절하냐는 반론이 나왔다. 위원회는 금 태환 정지가 오늘날 루이나 달러 제도의 출발점이라는 이유로 그를 남겼다. 퐁텐과 솔로비요바는 루이나 지폐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초상이다. == 관련 문서 == * [[루이나 중앙은행]] * [[니에미이 금융조약]] * [[LSEC]] * [[2차 랜드 전쟁]] * [[10.10 군사반란]]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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