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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군과 폴로놀 의회 === 1175년 폴로놀 왕국은 국왕 위그 3세의 주도로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다. 원정은 군사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왕국 안에서 교황의 영향력을 크게 키웠다. 원정에 나선 귀족들은 교회에 토지를 맡기거나 기부했고, 교황청이 파견한 사절은 주교 임명과 십일조 징수에 깊이 관여했다. 이 시기부터 폴로놀 교회는 왕국 안에서 왕권과 나란히 서는 또 하나의 권력이 되었다. 원정의 비용은 대부분 귀족들이 부담했다. 전비와 몸값을 치르느라 빚을 진 귀족들은 국왕에게 그 대가를 요구했고, 1200년 국왕 필리베르 2세는 귀족들에게 특허장을 내려 영지 재판권과 과세 동의권을 인정했다. 이 특허장에 따라 국왕이 새로운 세금을 걷으려면 성직자와 귀족 대표가 모인 회의의 동의를 얻어야 했는데, 이것이 폴로놀 의회의 시작이다. 처음에는 전비 조달을 위한 임시 회의에 가까웠으나 13세기 중반부터 정기적으로 소집되었고, 13세기 말에는 주요 도시의 대표도 의석을 얻었다. 폴로놀 의회는 왕권을 제약하는 장치이면서 동시에 귀족 특권을 법으로 고정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의회가 인정한 면세 특권과 영지 재판권은 이후 500년 동안 귀족 신분을 규정하는 근거가 되었고, 평민에게 세금 부담이 쏠리는 구조도 이때 만들어졌다. 1711년 시민혁명이 폐지한 귀족 특권의 상당수는 그 기원을 1200년의 특허장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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