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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렌시아/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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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세계대전 ===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플로렌시아는 루이나와 함께 연합국 편으로 참전했다. 전쟁 초기 플로렌시아 해군의 주된 임무는 해상 교통로 방어였다. 1940년부터 1941년까지 독일 수상함대가 루이나의 해상 보급로를 끊으려 벌인 통상파괴전, 이른바 [[대서양-랜드해 전투]] 동안 플로렌시아 해군은 연합군 호송선단의 호위에 참여했다. 해협 바깥에 남아 있던 셀레스티아의 해군 기지는 이 시기 연합군 함정의 중계 기지로 쓰였다. 1941년 사랜드 공화국이 추축국과 조약을 맺고 참전하면서 전쟁은 해협 안으로 번졌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같은 편이었던 나라가 이번에는 적이 된 것이다. 사랜드군이 해협 남부 전선에 투입되자 플로렌시아는 이 전선에 대규모 지상군을 보내 연합군의 일원으로 싸웠다. 본토는 점령되지 않았지만, 해안 도시와 항만은 추축국 공군의 공습으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전쟁은 다시 한 번 사회 전체의 동원을 요구했다. 정부는 개전과 함께 전시 경제 체제를 선포하고 군수 생산과 식량, 연료를 통제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때 만들어진 전시 생산 위원회를 부활시켜 노사 대표를 참여시켰다. 남은 식민지 셀레스티아에서도 병력과 노동력이 동원되었는데, 전쟁이 끝난 뒤 셀레스티아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 동원의 대가로 자치 확대를 요구했다. 두 번의 세계대전 모두에서 식민지 동원이 곧 독립 요구로 돌아왔다는 점은 플로렌시아 탈식민사의 반복되는 유형이다. 1945년 5월 해협의 전쟁이 끝났을 때 플로렌시아는 승전국의 자리에 있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모두 승전국으로 마쳤지만, 30년 사이 두 번의 총력전을 치른 대가로 인명과 재정의 손실은 컸다. 두 전쟁을 거치며 플로렌시아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루이나와의 동맹이 국가 안보의 중심축이라는 것이었고, 이 인식은 전후 플로렌시아 외교의 출발점이 되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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