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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렌시아/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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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 세계대전 ===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플로렌시아는 협상국 편으로 참전했다. 한 세기 전 식민지 독립전쟁에서 적으로 싸웠던 루이나와 같은 편에 섰고, 제정 사랜드 역시 협상국의 일원이었다. 훗날 사비에트가 되는 나라와 한 진영에서 싸웠다는 사실은 20세기 후반의 대립을 생각하면 역설적인 대목이다. 플로렌시아의 참전 동기는 복합적이었다. 표면적으로는 협상국 측과 맺은 조약에 따른 의무였지만, 해협 바깥 항로와 남은 식민지를 지키려는 계산, 그리고 19세기 후반 이래 급성장한 동맹국 측 해군력에 대한 경계가 함께 작용했다. 개전 당시 플로렌시아의 여론은 전쟁이 몇 달 안에 끝날 것이라는 낙관에 기울어 있었고, 필라델피아 역에는 출정하는 병사들을 환송하는 인파가 몰렸다. 그 낙관이 무너지는 데에는 반년이 걸리지 않았다. 루이나 본토가 전쟁 내내 공격받지 않았던 것과 달리 플로렌시아는 본토가 전장이 되었다. 개전 직후 동맹국 군대가 국경 지방으로 밀고 들어왔고, 플로렌시아군은 국경 지방 깊숙한 곳에서 간신히 진격을 멈춰 세웠다. 이후 전선은 참호선을 따라 굳어졌고, 양측은 몇 킬로미터의 땅을 두고 수년 동안 소모전을 벌였다. 1916년의 베르세 전투는 넉 달 동안 이어진 끝에 양측 합쳐 50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지만 전선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전쟁은 플로렌시아 사회 전체를 동원했다. 성인 남성 대부분이 징집되었고, 그 빈자리를 여성과 식민지에서 동원된 노동자가 채웠다. 공장들은 면직물 대신 포탄과 군복을 만들었으며, 정부는 식량과 석탄을 배급제로 관리했다. 1918년 전쟁이 협상국의 승리로 끝났을 때 플로렌시아의 군인 사망자는 약 94만 명, 민간인 사망자는 약 17만 명에 이르렀다. 전선이 지나간 국경 지방에서는 도시와 촌락, 철도와 공장이 폐허가 되었고, 포탄에 뒤집힌 농지는 수년 동안 경작할 수 없었다. 전쟁은 국내 정치의 모습도 바꾸었다. 개전 직후 주요 정당들은 정쟁을 멈추고 거국 내각을 구성했으며, 노동 단체들도 전쟁 기간 파업을 자제하기로 약속했다. 그 대가로 정부는 노동 단체를 전시 생산 위원회에 참여시켰고, 이는 노동계가 국가 정책 결정에 공식적으로 참여한 첫 사례가 되었다. 공장과 사무실, 병원에서 전쟁 수행을 떠받친 여성들의 역할은 전후 여성 참정권 요구의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되었다. 한편 전쟁 말기로 갈수록 식량 배급의 불공평과 전쟁 부당이득을 둘러싼 불만이 커졌고, 휴전 직후에는 제대군인과 노동자들의 시위가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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