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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주도 복구 === 1876년 공황 이전까지 공화국 정부는 경제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러나 공황이 2년 가까이 이어지고 실업자들의 시위가 폭동으로 번지자 정부는 방침을 바꾸었다. 새로 구성된 내각은 시장의 자율 회복을 기다리는 대신 국가가 직접 일자리와 신용을 공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1878년부터 시행된 일련의 복구 정책은 플로렌시아 정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 복구 정책의 첫 축은 공공사업이었다. 정부는 실업률을 낮추고 인프라를 재건하기 위해 도로와 철도, 항만을 복구하고 확장하는 대규모 공공사업을 벌였고, 실업자들은 이 공공사업에 고용되었다. 둘째 축은 통화와 금융 개혁이었다. 1878년 정부는 중앙은행인 플로렌시아 은행을 설립해 통화 발행권을 일원화하고, 금본위제를 채택하면서 새 통화 플로렌을 도입했다. 여러 은행이 제각기 발행하던 은행권이 정리되면서 통화 가치가 안정되었고, 부실 은행은 합병과 청산을 거쳐 재편되었다. 주식 시장의 투기 행위에 대한 규제도 이때 처음 도입되었다. 이때 도입된 플로렌은 이후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거치며 가치가 크게 흔들렸지만, 통화 단위로서는 한 번도 바뀌지 않고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다. 플로렌시아 은행 역시 1878년 설립 이래 통화 정책을 맡는 중앙은행으로 존속하고 있으며, 차펨하임 스트리트 초입에 자리한 본점 건물은 1878년 개혁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셋째 축은 소비와 복지였다. 정부는 내수를 살리기 위해 세제 혜택과 소비자 보호법 등 다양한 소비 진작 정책을 폈고, 이는 기업의 투자를 다시 활성화시켰다. 또한 공황 이후의 실업과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업 수당과 공공 주택 공급 같은 복지 제도를 도입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경제는 1880년대 초 안정 단계에 들어섰고, 은행이 안정되면서 신용 공급도 정상화되었다. 이 시기의 회복과 성장을 2차 경제성장이라 부른다. 1878년의 복구 정책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제도보다 관념이었다. 시장이 스스로 회복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국가가 공공사업과 통화 정책, 복지로 경기를 떠받친다는 발상은 이후 플로렌시아 정치에서 좌우를 가리지 않는 합의로 굳어졌다. 1929년 대공황과 두 차례 세계대전 이후의 재건에서 플로렌시아 정부가 택한 정책은 모두 1878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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