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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화국 초기의 혼란 === 1708년 의회는 공화국 헌법을 제정하고 공화정을 정식으로 수립했다. 그러나 새 헌법은 일정 금액 이상의 세금을 내는 재산 소유자에게만 선거권을 주었고, 그 결과 의회는 부유한 상인과 지주, 혁명에 합류한 옛 귀족들이 차지했다. 혁명의 주력이었던 장인과 도시 빈민, 농민은 정작 새 체제의 정치에서 밀려났다. 공화국 초기의 정치는 상류층과 하층민 사이의 권력 투쟁으로 얼룩졌다. 상류층이 주도한 의회는 왕정 시절의 부채를 정리하기 위해 다시 소비세를 올렸고, 귀족의 면세 특권 가운데 상당수를 그대로 두었다. 하층민은 혁명이 주인만 바꾸었을 뿐이라고 반발했다. 여기에 왕정 복고를 노리는 왕당파의 반란이 지방에서 일어나고, 망명한 루도빅 5세를 지원하려는 외국의 움직임까지 겹치면서 새 정치 체제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1708년부터 1711년까지의 3년은 흔히 공화국의 가장 위태로운 시기로 불린다. 가장 큰 위협은 내륙 지방의 왕당파 반란이었다. 1709년 봄 옛 대귀족 가문들이 거느린 사병과 혁명에 반감을 품은 농민들이 로셀 왕조의 복위를 내걸고 봉기했고, 반란군은 한때 내륙의 주요 도시 몇 곳을 장악했다. 공화국 정부는 수도의 민병대와 정규군을 동원해 1년 가까운 싸움 끝에 반란을 진압했지만, 그 과정에서 반란 지역의 촌락이 불타고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반란을 진압한 공화국은 살아남았으나, 전비를 대기 위해 다시 세금을 올려야 했고 이는 하층민의 불만을 한층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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