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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4년 종교개혁 === 30여 년의 전쟁 끝에 사태를 수습한 것은 국왕이었다. 1404년 국왕 앙셀름 4세는 생레미 칙령을 반포해 폴로놀 교회를 교황청으로부터 분리하고 국왕을 교회의 수장으로 선언했다. 칙령은 교회 재산의 상당 부분을 왕실로 귀속시키는 한편, 모르방파와 기존 신앙을 따르는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예배할 권리를 인정했다. 앙셀름 4세의 개혁은 신앙의 문제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국왕은 종교개혁 운동을 교황청과 교황파 대귀족을 동시에 약화시키는 정치적 도구로 활용했고, 몰수한 교회 재산으로 왕실 재정을 다시 세웠다. 주교 임명권이 국왕에게 넘어오면서 교회는 왕권을 떠받치는 기구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1404년의 개혁은 종교 갈등을 해소하는 동시에 로셀 왕조의 왕권을 전례 없이 강화했다. 칙령 이후 폴로놀 교회는 국왕이 임명하는 대주교 아래 교구 조직을 새로 짰다. 교황청에 보내던 헌금과 교회 재판의 상소는 모두 폐지되었고, 성직자는 국왕에게 충성 서약을 해야 했다. 교황청은 앙셀름 4세를 파문했지만, 30여 년의 전쟁으로 권위를 잃은 교황청의 파문은 왕국 안에서 거의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한 생레미 칙령은 이후 폴로놀 사회의 성격을 크게 바꾸었다. 모르방파 상인과 장인들이 박해 없이 활동할 수 있게 되면서 해안 도시의 상업이 되살아났고, 해협의 다른 나라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온 이들이 폴로놀로 이주했다. 오늘날 플로렌시아가 스스로를 관용의 전통을 가진 나라로 설명할 때 가장 먼저 꼽는 사건도 1404년의 칙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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