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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역사/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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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대 전통 === 1372년 [[알드리크 1세]]는 빌베른 속왕국 체제를 무너뜨린 뒤에도 스스로 왕관을 쓰지 않았다. 그는 벨포르에 귀족·성직자·도시 대표를 소집해 추대를 받는 형식을 택했다. 이 [[벨포르 추대회의]]가 루이나 정치사상의 출발점이다. 추대의 논리를 처음 글로 정리한 사람은 수도원장 '''[[코널 마크 브리언]]'''(1318?~1389)이다. 『추대에 관한 소론』(1374)에서 그는 왕위를 혈통이 아니라 공동체가 맡기는 직무로 보았다. 왕은 공동체의 첫 번째 종이며, 맡긴 자는 맡긴 것을 되물을 수 있다. 다만 브리언은 '되물음'의 절차를 정하지 않았고, 이 공백은 이후 수백 년 동안 왕과 참의회 사이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 추대 전통은 알드리크 왕조 아래에서 참의회(후일의 [[루이나 의회|의회]])를 소집하는 관행으로 굳어졌다. 왕조가 바뀔 때마다 새 왕은 추대회의의 형식을 빌려 정통성을 확인받았고, 이는 루이나 왕권이 '맡겨진 권력'이라는 관념을 대중의 상식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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