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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역사/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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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승전쟁과 주권 논쟁 === 1882년 [[에드먼드 3세]]가 후사 없이 죽고 왕비 [[아델하이트]]가 선박 목수 [[가스파르 뮈롱]]을 왕으로 세우려 하자, 왕위 계승은 곧 주권이 어디에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이 되었다. [[루이나 계승전쟁]](1882~1885)은 무기의 전쟁이자 팸플릿의 전쟁이었다. 의회파 [[벨포르 연합]]의 논거는 세 가지였다. 뮈롱의 계열은 1689년 왕위협약으로 계승권을 잃었다는 헌정 논거, 왕을 세우는 권한은 1372년 이래 대표기구에 있다는 추대 논거, 루이나어도 못하는 인물을 대륙 출신 왕비가 앉히는 것은 외국의 섭정이라는 주권 논거다. 왕당파 [[은사슴단]]은 왕위 계승은 혈통의 문제이지 표결의 대상이 아니며, 의회가 왕을 고르기 시작하는 순간 왕정은 이미 끝난 것이라고 맞섰다. 왕당파의 논리를 가장 정교하게 편 사람은 국교회 고교회파 성직자 '''[[바솔로뮤 크레스웰]]'''(1820~1890)이다. 『혈통과 성유』(1883)에서 그는 왕위의 정당성이 사람의 선택이 아니라 혈통과 대관식의 성유에서 나온다며 칼로웨이의 신수설을 되살렸다. 의회파의 이론가 '''[[조제프 랑글루아]]'''(1832~1899)는 『주권의 거처』(1883)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홉스의 '인공 인격' 개념을 빌려, 주권은 왕의 몸이 아니라 공동체를 대표하는 인공 인격에 있으며 그 인격을 대표하는 것은 한 사람일 수도 합의체일 수도 있다고 보았다. 왕이 후사 없이 죽었다고 주권이 사라지지 않으며, 추대회의가 왕을 세울 수 있다면 왕을 세우지 않을 수도 있다. "왕은 죽어도 리바이어던은 죽지 않는다"는 랑글루아의 문장은 1885년 5월 [[벨포르 추대회의]]가 왕위 자체를 폐지할 때 사실상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칼로웨이가 230여 년 전에 경고한 대로, 계약으로 세운 왕은 계약으로 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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