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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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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 === 루이나 복지 제도의 출발점으로는 흔히 1916년 [[빈덴브루크 철도 총파업]]이 꼽힌다. 파업의 직접적 원인은 하트웰 궤도차량 주식회사가 임금을 20~30% 삭감하면서도 사택 임대료를 내리지 않은 데 있었고, 노동자의 주거가 고용주에게 묶여 있는 기업도시 구조가 쟁점의 중심이었다. 파업은 진압되었지만 하트웰의 기업도시 소유권은 몰수되어 빈덴브루크 시에 편입되었고, 석방된 몽고메리 K. 번즈가 [[루이나 노동당|노동당]]을 창당했다. 주거를 고용에서 떼어 내야 한다는 이 시기의 문제의식은 이후 루이나 복지가 주택을 중심으로 짜이는 출발점이 되었다. 1920년대에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시 주택공사가 설립되어 시의 주택 목적세로 임대주택을 짓기 시작했고, [[주택 임대차법 (루이나)|주택임대차법]]이 제정되어 세입자의 계약상 권리가 처음으로 법률에 정리되었다. 다만 이 시기의 복지는 아직 시 단위의 개별 사업에 머물렀다. 전국적인 제도의 틀은 대공황기에 만들어졌다. 1929년 취임한 [[헤이슬러|러더퍼트 J. 헤이슬러]] 행정부는 공업 생산이 40% 넘게 줄고 실업률이 25%를 넘는 상황에서 대규모 공공사업과 국가 주도 주택 공급으로 대응했다. [[공공주택법 (루이나)|공공주택법]]이 제정되어 시 주택공사가 해 오던 사업에 국가가 재원을 대며 합류했고, 벨포르 외곽의 그랑프레 주택단지도 이 시기에 조성되었다. 1935년에는 [[사회보장법(루이나)|사회보장법]]이 제정되어 노령·유족·장애 연금의 골격이 세워졌다. 헤이슬러 행정부의 재정 확대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936년)보다 먼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케인스에 앞선 케인스주의"로 불리기도 한다. 다만 당시의 재정 지출은 승수효과를 기대하기에 충분한 규모가 아니었고, 경기 회복은 국제 경기의 반등과 각국의 재무장 수요에 힘입은 바가 더 컸다는 반론도 있다. 그럼에도 대공황기 루이나에서 대중적 극우 운동이 집권에 이르지 못한 데에 공공사업과 주택 공급이 기여했다는 데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한편 같은 행정부는 실업과 노동 소요를 안보 문제로 다루어 참모본부 제5과에 노동운동 지도부를 감시하게 했고, 1935년에는 그 실행 기능을 분리해 국방부 특무처를 설치했다. 복지의 확대와 노동운동에 대한 감시가 같은 시기, 같은 정부 아래에서 함께 자랐다는 점은 이후 루이나 복지사를 읽는 데 반복해서 등장하는 단서가 된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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