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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21 | ==중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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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 ==근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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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근대/라이카 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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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24 | ===스파츠 호 상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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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25 | 1758년, 프로이센의 스파츠 호 휘하 5척의 샤락선이 북라이카 지방에 도착한다. 이 소함대를 이끄는 대장은 프리드리히 세하린이었다. 프리드리히와 부하들은 프랑스 해군에게 쫓겨 도망치던 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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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 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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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 55 | 1812년 6월 1일. 라이카 제국이 네벨스부르크에서 성립된다. 네벨스부르크에 황궁이 지어지고, 라이카, 힐켄팔렌, 오스텐, 비테발트, 라인룬트, 인치란트, 노르트란트 7개 국가의 국왕은 원탁회의를 통해 권력을 나눠 가지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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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 56 | 황제는 라이카 왕국에서 세력을 키웠던 세하린 가문의 알베르트 세하린이 맡는다. 그가 알베르트 1세가 된다. 황제의 권한은 강했으나, 7개의 제후국들의 권한 역시 막강하여 황제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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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 | ===독일제국과 라이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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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 ==근대/라이카 공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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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 ===헤제르론 조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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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 60 | 1882년 독일 제2제국은 라이카에게 눈을 돌린다. 그리고 라이카 제국에게 자신의 속국이 될 것을 요구하며 압박을 넣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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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 61 | 프로이센 출신이 라이카의 발전에 기여했고, 사실상 건국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그런 압박은 당연한 것이라는 논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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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 63 | 라이카 제국 내에서는 많은 논의가 있었으나, 당대 독일의 강대한 군사력을 라이카가 이길 수는 없었다. 따라서 헤제르론 조약을 통해 라이카 제국은 라이카 공국으로 국호가 변경되고, 당시 황제 헤르만 2세는 공왕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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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 6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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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 | ===헤제르론 조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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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 65 | 독일 제국의 사법 체계, 정치 체계, 군사 체계 등이 라이카 제국에게 도입되어 라이카는 급속도로 근대화된다. 이 시대부터 독일어가 라이카에서 공용어로 지정되었으나, 기존의 언어(독일어+현지어)와 독일 제국의 독일어가 섞여 라이카 방언이라는 언어가 탄생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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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 이 시대의 라이카는 사실상의 황금기를 맞이한다. 비록 국가의 위치는 공국으로 남아 있었지만, 라이카라는 규모가 큰 시장은 유럽 열강 소속 기업들의 진출 무대가 되었다. 각종 공장과 기업의 지사들이 라이카 공국에 세워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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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 라이카의 근대화 중 가장 돋보였던 것은 정치 체계였다. 라이카 공국은 공왕과 별개로 공국내각, 상원과 하원의회, 중앙법원을 가진 국가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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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 이 시대의 의회도 이미 상원의회와 하원의회로 나뉘어져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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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 | 공국내각은 상원과 하원에서 뽑힌 의원들로 구성되었다. 제국재상이 이끌었다. 그러나 제국재상이 황제의 입김이 많이 닿는 자리였기 때문에 완전한 민주주의 체계라고 할 수는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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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 | 중앙법원은 독일의 사법 체계, 헌법 등을 모방하여 많은 법들을 만들었다. 물론 라이카의 맥락, 사회적 상황 등에 맞추어 많은 변화가 있긴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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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 교육 제도 역시 개선이 있었다. 신학 중심의 교육 대신 근대화된 교육체계가 라이카에 들어왔다. 자연과학, 인문학, 문학, 다양한 언어, 철학 등을 가르치는 초등, 중등 학교가 라이카에 세워졌다. 이는 라이카의 시민의식을 증가시켰으며 동시에 국민의 교육적 수준, 계몽의식 등을 일깨우는 데에 기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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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 이렇게 올라간 국민의 지적 수준은 그들이 다양한 분야에 진출함으로써 라이카 공국의 국력 향상에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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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 군사 체계도 강화되었다. 기존 라이카 제국의 군대는 황제 직속 군대였으나 라이카 공국의 군대는 공왕 직속 군대로 재편되었다. 기존 무기체계와 훈련체계, 편제 등이 독일식으로 개선되었고, 독일 장교를 다수 초빙하여 훈련을 진행했다. 징병 제도를 개선하여 부유층 자제도 군에서 복무하게 했다. 부유층 자제들은 부사관이나 장교로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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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 | 그러나 이런 근대화는 많은 어두운 면을 낳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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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 상원과 하원은 공왕의 압박, 공왕과 과거 황실에 충성하는 국민들 때문에 독자적인 권한을 갖기 어려웠다. 상원과 하원이 공왕에게 거스르려 할 때마다 국민의 여론은 들끓었고, 다수의 폭동과 이를 막기 위한 계엄령 발표 등은 라이카에 혼란도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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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 | 교육 제도 역시 학문의 실질적 활용보다는 이론에 치중한다는 평을 들었다. 깊이 있는 철학의 부재,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시민 의식 등은 급격한 도시화와 더불어 범죄율 증대 등의 문제를 낳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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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 | 군사 체계도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사회 발전에 필요한 인력을 군이 다수 가져가게 되며 일시적인 불안을 낳았다. 또 군에 익숙하지 않았던 징병된 병사들은 항명을 하거나, 심지어 내분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다. 크고 작은 분쟁, 전쟁에 투입된 병사들은 파리처럼 죽어나가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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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 근대화된 라이카 공국에서는 다양한 철학, 사상, 문화가 꽃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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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 ===필텐하임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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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 | 1897년 라이카 공국은 또 다른 위협을 마주하게 된다. 즈코펜과 가이웨란트, 슈타인제의 필텐하임 조약은 라이카 공국의 지시에 불응하고 영국과 동맹을 맺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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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 | 라이카 공국은 독일 제국에 대응방안을 요청했고, 독일 제국과 라이카는 필텐하임 조약국과 외교를 시도하였으나 외교관이 암살되는 등의 위기를 맞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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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 | 여기에, 필텐하임 조약국 소속 테러리스트가 비테발트의 고관을 암살하는 등의 사건이 터지면서 조약에 대한 공국의 악감정은 폭발한다. 따라서 공국 의회와 내각은 전쟁을 결정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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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 | ==근대/대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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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 97 | ===제 1차 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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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 98 | 1914년 제 1차 대전이 발발한다. 독일 제국은 라이카에게도 아군으로 참전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라이카는 뒤통수를 친다. 중립 선언을 때려버린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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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 99 | 이에 격분한 독일은 해군을 보내려 했으나 영국 해군의 존재 때문에 이는 실현되지 못한다. 당장 자신들의 식민지를 유지하는 것도 벅찬 독일 해군에게, 멀리 있는 라이카는 그림의 떡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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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 104 | 1916년과 1917년에는 독일 해군의 상황이 악화되며 라이카에 대한 독일의 공격은 사실상 없는 수준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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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 105 | 이후 제 1차 대전은 독일 제국의 패배로 끝난다. 라이카는 걸림돌인 독일도 사라졌으니, 다시 라이카 제국으로 국호를 변경한다. 공왕들의 칭호 역시 황제로 되돌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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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 | | ===전간기의 라이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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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 | ===전간기의 라이카 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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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 | 108 | ===제 2차 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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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 | 109 |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은 라이카를 가만두지 않았다. 곧장 5척 가량의 U보트가 라이카 앞바다에 파견된다. 이들은 1942년까지 총 28만 톤의 상선을 격침시켜 라이카의 해상 무역로를 마비시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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