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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8 | 톨지어 왕궁은 현재 옛터와 훼손된 조각상 몇 개가 전해져 온다. 규모는 작은 편이며 라이카의 관광명소 중 하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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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9 | 자이테스 왕국의 유명인물로는 셰다르 장군이 있다. 셰다르 장군은 치밀한 분석과 부하의 말을 경청하는 것을 통해, 항상 유리한 상황으로 아군을 위치시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츠바이란트 지방에서 그의 격전을 보여주는 유적이 발견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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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 셰다르의 부하였으나 셰다르 사후, 그의 자리를 노폴트 장군도 있다. 노폴트는 화려하고 장대한 전술을 구사하며, 횟수는 적지만 빛나는 전과를 남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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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셰다르의 부하였으나 셰다르 사후, 그의 자리를 노폴트 장군이 이었다. 노폴트는 화려하고 장대한 전술을 구사하며, 횟수는 적지만 빛나는 전과를 남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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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 13 | 기원후 402년 자이테스의 왕 치무스가 남긴 역사 기록에는 당시 사회의 모습이 잘 실려 있다. 치무스 대에는 전국을 6성 25주로 나누었고, 각 주마다 주장을 파견하여 6성의 성주들에게 보고를 올리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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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41 | 1965년 라이카 인치란트에서 시작된 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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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 42 | ====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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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 43 | 라이카 왕국은 제국 내에서 발언권이 가장 강력한 지방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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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 | 당시 라이카 내에서는 힐켄팔린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공공연히 존재했다. 힐켄팔린 출신은 급여, 승진, 휴가 등 다양한 방면에서 차별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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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 당시 라이카 내에서는 힐켄팔렌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공공연히 존재했다. 힐켄팔린 출신은 급여, 승진, 휴가 등 다양한 방면에서 차별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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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 46 | 이런 차별은 정부 기관에서도 공공연히 이뤄졌다. 1963년의 국정감사 보고서에 적혀 있을 정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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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 | 여기에, 라이카가 제 1차 랜드 대전에 참여하며 두 지역 간 감정은 악화된다. 상대적으로 빈곤층이 많던 힐켄팔렌 지역에서 징집과 단순 노동력 보충이 이뤄졌다. 힐켄팔렌 지역은 그 결과, 전후에도 라이카 지방에 비해 낙후된 상태로 남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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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 여기에, 라이카가 제 1차 랜드 대전에 참여하며 두 지역 간 감정은 악화된다. 상대적으로 빈곤층이 많던 힐켄팔렌 지역에서 징집과 단순 노동력 보충이 이뤄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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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49 | ====에위그힐켄 탄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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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 50 | 1964년 6월 3일, 힐켄팔렌 주는 다른 6개 주와 연합하여 에위그힐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을 선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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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 51 | 라이카 제국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수장을 내란 수괴로 몰지만, 이미 지난 1차 랜드 대전에 지쳐 황실과 내각을 외면하던 남라이카 사람들은 오히려 공산주의 정부에 동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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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 | 95 | 2. 대규모 공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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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 | 96 | 3. 소모전 구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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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 | | 북라이카의 탄저균 병기가 남라이카의 수도 발즈부르크 시를 강타했고, 15만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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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 | 1967년 1월 9일, 북라이카의 탄저균 병기가 남라이카의 수도 발즈부르크 시를 강타했고, 15만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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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 | 99 | 이에 북라이카와 남라이카 양국에서 반전 여론이 속출했고, 카를 항구 선상반란을 시작으로 양국 내에서 반란들이 터져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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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 | 101 | ===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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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 | | 핵폭격 사태에 경악한 미합중제국과 사비에트 양국의 중재를 거쳐, 라이카 제국은 분단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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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 | 103 | 라이카 왕국의 서라이카와 에위그힐켄 공화국의 동라이카로 나뉘어 존재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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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 | 탄저균으로 대규모 인명이 살상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미합중제국, 루이나, 사비에트 등은 휴전을 제안한다. 남라이카 측은 1967년 2월 3일, 북라이카 측은 2월 5일에 이를 승낙함으로써 인치란트 전쟁은 종결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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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 | 1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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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 | | ====서라이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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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 | | 서라이카라고 불리지만, 라이카 제국이 정식명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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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 | | ====동라이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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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 | | 전후 동라이카에는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선다. 정식 명칭은 에위그힐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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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 | | 에위그힐켄 공화국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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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 | ====북라이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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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 | 종전 후 북라이카 황실은 권위가 크게 추락했다. 탄저균 병기가 황제의 주도로 인해 투하된 것이 밝혀졌고, 이를 부인하는 황실은 민중에게서 외면당했다. 의회와 내각은 전쟁 전에도 자신들의 권력 확대를 요구했지만, 종전 후 이들은 시민 혁명을 일으키며 황실의 단순한 상징적 위치만을 인정하게 된다. 내각의 수장, 블룸하르트 리히텐은 황궁으로 향하여 황제에게 서명을 요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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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 | 황실은 근위대를 동원해 내각을 저지하려고 했으나, 리히텐은 대규모 경비대와 헌병대를 동원하여 무차별 진압을 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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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 | 1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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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 | 109 | ==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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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 | 황제는 상징적 위치로만 남아 있겠다는 2월 6일 선포문에 서명하고, 북라이카는 내각책임제 국가의 길을 걷게 된다. 황제가 직접 내리던 귀족 작위는 모두 상징적인 이름으로만 남게 되었고, 황실 예산은 내각에 의해 제한과 견제를 받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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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 | 황제는 2월 6일 선포문에 서명할 당시 제국재상과 국무상서, 군무상서 3요직의 임명식은 앞으로도 황실이 주최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모두 내각에 의해 선출되지만, 국민의 혼란과 오랜 전통을 깨지 않고자 황제가 형식상의 임명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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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3 | 내각은 이를 받아들였고, 오늘날까지도 3요직은 황제가 형식상 임명을 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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