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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8 vs r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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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톨지어 왕궁은 현재 옛터와 훼손된 조각상 몇 개가 전해져 온다. 규모는 작은 편이며 라이카의 관광명소 중 하나다.
99자이테스 왕국의 유명인물로는 셰다르 장군이 있다. 셰다르 장군은 치밀한 분석과 부하의 말을 경청하는 것을 통해, 항상 유리한 상황으로 아군을 위치시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츠바이란트 지방에서 그의 격전을 보여주는 유적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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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셰다르의 부하였으나 셰다르 사후, 그의 자리를 노폴트 장군 다. 노폴트는 화려하고 장대한 전술을 구사하며, 횟수는 적지만 빛나는 전과를 남겼다.
11셰다르의 부하였으나 셰다르 사후, 그의 자리를 노폴트 장군 이었다. 노폴트는 화려하고 장대한 전술을 구사하며, 횟수는 적지만 빛나는 전과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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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3기원후 402년 자이테스의 왕 치무스가 남긴 역사 기록에는 당시 사회의 모습이 잘 실려 있다. 치무스 대에는 전국을 6성 25주로 나누었고, 각 주마다 주장을 파견하여 6성의 성주들에게 보고를 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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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11965년 라이카 인치란트에서 시작된 내전.
4242====배경====
4343라이카 왕국은 제국 내에서 발언권이 가장 강력한 지방이었다.
44당시 라이카 내에서는 힐켄팔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공공연히 존재했다. 힐켄팔린 출신은 급여, 승진, 휴가 등 다양한 방면에서 차별을 받았다.
44당시 라이카 내에서는 힐켄팔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공공연히 존재했다. 힐켄팔린 출신은 급여, 승진, 휴가 등 다양한 방면에서 차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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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6이런 차별은 정부 기관에서도 공공연히 이뤄졌다. 1963년의 국정감사 보고서에 적혀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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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여기에, 라이카가 제 1차 랜드 대전에 참여하며 두 지역 간 감정은 악화된다. 상대적으로 빈곤층이 많던 힐켄팔렌 지역에서 징집과 단순 노동력 보충이 이뤄졌다. 힐켄팔렌 지역은 그 결과, 전후에도 라이카 지방에 비해 낙후된 상태로 남게 된다.
48여기에, 라이카가 제 1차 랜드 대전에 참여하며 두 지역 간 감정은 악화된다. 상대적으로 빈곤층이 많던 힐켄팔렌 지역에서 징집과 단순 노동력 보충이 이뤄졌다.
4949====에위그힐켄 탄생====
50501964년 6월 3일, 힐켄팔렌 주는 다른 6개 주와 연합하여 에위그힐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을 선포한다.
5151라이카 제국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수장을 내란 수괴로 몰지만, 이미 지난 1차 랜드 대전에 지쳐 황실과 내각을 외면하던 남라이카 사람들은 오히려 공산주의 정부에 동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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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952. 대규모 공습
96963. 소모전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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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북라이카의 탄저균 병기가 남라이카의 수도 발즈부르크 시를 강타했고, 15만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981967년 1월 9일, 북라이카의 탄저균 병기가 남라이카의 수도 발즈부르크 시를 강타했고, 15만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9999이에 북라이카와 남라이카 양국에서 반전 여론이 속출했고, 카를 항구 선상반란을 시작으로 양국 내에서 반란들이 터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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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01===분단===
102핵폭격 사태 경악한 미합중제국 사비에트 양국의 중재를 거쳐, 라이카 제국분단된다.
103103라이카 왕국의 서라이카와 에위그힐켄 공화국의 동라이카로 나뉘어 존재하게 되었다.
102탄저균으로 대규모 인명이 살상되는 사태 벌어지자 미합중제국, 루이나, 사비에트 등은 휴전을 제안한다. 남라이카 측은 1967년 2월 3일, 라이카 2월 5일에 이를 승낙함으로써 인치란트 전쟁은 종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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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라이카====
106라이카 불리지만, 라이카 제국 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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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동라이카====
109전후 동라이카에는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선다. 정식 명칭은 에위그힐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
110에위그힐켄 공화국의
105====라이카====
106종전 후 북라이카 황실은 권위가 크게 추락했다. 탄저균 병기가 황제의 주도로 인해 투하된 것이 밝혀졌, 이를 부인하는 황실은 민중에게서 외면당했다. 의회와 내각은 전쟁 전에도 자신들의 권력 확대를 요구했지만, 종전 들은 시민 혁명을 일으키며 황실의 단순한 상징적 위치만을 인하게 된다. 내각의 수장, 블룸하르트 리히텐은 황궁으로 향하여 황제에게 서을 요구한다.
107황실은 근위대를 동원해 내각을 저지하려고 했으나, 리히텐은 대규모 경비대와 헌병대를 동원하여 무차별 진압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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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09==현대==
110황제는 상징적 위치로만 남아 있겠다는 2월 6일 선포문에 서명하고, 북라이카는 내각책임제 국가의 길을 걷게 된다. 황제가 직접 내리던 귀족 작위는 모두 상징적인 이름으로만 남게 되었고, 황실 예산은 내각에 의해 제한과 견제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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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황제는 2월 6일 선포문에 서명할 당시 제국재상과 국무상서, 군무상서 3요직의 임명식은 앞으로도 황실이 주최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모두 내각에 의해 선출되지만, 국민의 혼란과 오랜 전통을 깨지 않고자 황제가 형식상의 임명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113내각은 이를 받아들였고, 오늘날까지도 3요직은 황제가 형식상 임명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