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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9 | 129 | 루이나에서 백합을 국화로 공식 지정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지만, 국민들에게는 오래전부터 국가를 대표하는 꽃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는 백합이 단순한 꽃을 넘어 국민의 정신과 루이나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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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2 | 135 | ===군사정권 부역자 처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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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3 | 136 | 루이나는 1949년 12월 13일 발생한 [[12.13쿠데타|군사 쿠데타로]] 인하여 수립된 군사정권에 부역했던 부역자들을 철저히 처벌하고 배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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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5 | 138 | [[10.24 시민혁명]]으로 루이나에서 군부 통치가 종식된 후, 루이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군사정권 당시 인권 침해 및 부당 행위를 조사했고, 이에 연루된 인사들을 법적 절차에 따라 심판했다. 이 과정에서 반인권적 범죄를 저지른 군 관계자, 정치인, 기업인 등이 기소되었으며, 기소된 대다수는 총살형을 선고받거나 교수형에 처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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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7 | 140 | 특히 루이나 사법부는 "과거사 불문율"을 적용하지 않고,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서는 시효를 두지 않는 원칙을 확립했다. 이에 따라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군사정권 시기의 주요 부역자들이 법정에 서게 되었다. 또한, 군사정권 시절 부당하게 얻은 이익들을 끝까지 환수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군부 및 그와 결탁한 기업들이 불법적으로 축적한 재산은 몰수되었으며, 일부 기업들은 해체되거나 공익재단[* 대표적으로 노스필드 그룹이 있다.]으로 전환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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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 | 142 | 이러한 강력한 청산 정책을 상징하는 사례 중 하나가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알렉상드로 카스티냑[* 군사정권 당시 12.23 평화시위대에 발포를 명령한 계엄사령관]의 사건이다. 그는 군사정권 시절 심각한 인권 유린과 국고 유용 혐의로 기소되어 가석방 없는 징역 203년형을 선고받았다. 카스티냑은 교도소에서 복역 중 사망했지만, 루이나 정부는 그의 형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해를 일반 공동묘지가 아닌 교도소 부지 내에 매장했다. 이는 군사정권 부역자들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조치로 해석되며, 현재까지도 루이나의 과거사 청산 정책을 상징하는 사례로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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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 | 144 | 또한, 루이나 정부는 부역자 처벌뿐만 아니라 피해자 보상 및 명예 회복에도 적극 나섰다.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와 함께 희생자 유가족에게 배상금이 지급되었으며, 군사정권 시기 억울하게 해직된 공직자와 학자들이 복권되었다. 이러한 정책 덕분에 루이나는 과거사 청산에 있어 모범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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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 | '''루이나는 켈트인의 땅이었다.''' 바람과 돌, 침엽수림 사이에서 태어난 이 민족은 스스로를 ‘라운’이라 불렀고, 바다를 경계로 플로렌시아인들과 나란히 살아갔다. '''플로렌시아가 갈리아 계열의 봉건국가로 부상하며 루이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중세 중엽의 일이다.''' 그 영향력은 처음엔 무역항과 성당, 몇몇 고지대의 주교령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이후 기사단과 공작령, 총독부를 통한 완만한 지배로 이어졌다.[* 루이나는 플로렌시아의 정복 대상이라기보다는 문화적으로 흡수된 ‘형제국’의 성격에 가까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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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3 | 따라서, 1945년 미합중제국의 개입과 함께 루이나가 독립할 무렵, '''플로렌시아와 루이나 사이의 감정은 적대보다는 ‘이제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는 피로감에 가까웠다.''' 싸움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수많은 루이나 젊은이들이 플로렌시아의 전쟁에 징집되었고, 식민기구는 철저히 플로렌시아어 중심이었으며, 경제개발의 과실도 대체로 본국으로 흘러들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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