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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 7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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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 | 78 | 이렇게 에루바는 인간에게 단 하나의 도구를 더 내려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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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 | 79 | '''법(Lazu)'''이라 불리는 말씀이었다. 이 법은 최초로 깎은 돌판에 새겨졌고, 나중에 하이카르 법전의 기원이 되었다. 이후 인간은 다시 도시를 세웠고, 왕을 세웠으며, 질서와 혼돈이 반복되는 역사가 시작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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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 | ==== 첫 번째 도시와 왕정의 시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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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 | 에루바의 말씀이 돌판에 새겨진 뒤, 사람들은 신의 이름으로 다시 모였다. 가장 먼저 재를 쌓고, 돌을 세워 도시를 만들었는데, 그 도시를 '''아트람(Atram)'''이라 불렀다. 아트람은 '제단 위의 집'이라는 뜻으로, 고랜드 최초의 도시국가로 여겨진다. 아트람에서는 왕이 단순한 통치자가 아니었다. 왕은 동시에 제사장이자 재판관이었으며, 신의 법(Lazu)을 대리해 땅 위에서 실현해야 할 책임을 가졌다. 그러나 왕의 권위는 '''‘예언자(Sevir)’'''라 불리는 자의 존재로 인해 균형을 이루었다. 예언자는 단순한 조언자가 아닌, 에루바의 뜻을 해석하고 전달하는 자, 즉 신과 왕 사이의 중재자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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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 | 143 | 선대의 랜드문명중 최초라는 타이틀과는 비교되게 빌베른과 콘스탄티노폴에 수출할 곡창지대로써의 역할이 강해지게 되었다. 이때당시 직할령임시수도 파테오리윰(pathe orie'um)가 이 "동향방로"라 불리었고 시내에서 몇키로미터만 멀어져도 밀밭과 농가외엔 아무 로마유적이 안나올정도였다(로마의 식민화 과정에서 수많은 선대유적이 버려졌고 경제가 완전히 빌베른과 콘스탄티노폴시에 종속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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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7 | 145 | 120년대즈음 선대의 문자로된 기록물이 사라졌으며 랜드해협에서 4번째로 큰 로마식 신전인 폴리기니온신전이 착공되며 무명교는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 빌베른측의 기록을 참고하면 이때부터 고대라틴어와 초기빌베른어가 기존의 언어를 완전히 대체하였다한다("Dia Log'u Politi'cu it' Agerx'ai tia' Wiz t' heta' Ertha, Restitut'ir Louge Oralx t' heta' it Hith' tia' Domi-Roman'i" : "본지서방의 정사와 밭사람들의 언은, 본지와 본국나마의 백화로 대체되고있다." (빌베른캄피톨랴제1사고, 제2고대본 1기 69면, 124년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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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 === 중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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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8 | 81 | === 근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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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 | 근세 고랜드는 통일된 정치체 없이 수십 개의 부족 연합과 소왕국들이 난립하는 분열의 시대였다. 에루바 연맹의 붕괴 이후 로마의 직할 지배를 거치며 고대의 통합 질서는 완전히 해체되었고, 중세를 거치는 동안 고랜드의 대지에는 이슬람이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7세기 이슬람 팽창기에 아랍 상인과 선교사들이 랜드해협 남부 해안을 통해 유입되기 시작했고, 이후 수백 년에 걸친 점진적 개종을 통해 고랜드는 완전한 이슬람 문화권으로 재편되었다. 부족 지도자들은 아미르(Amir)를 자처했고, 각 부족의 장로 회의인 지르가(Jirga)가 실질적인 통치 기구로 기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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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 | 15세기 말, 랜드해협의 해양 강국으로 부상하던 라 마베라가 고랜드 북부 해안에 교역소를 설치하면서 두 세계의 접촉이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향신료와 면직물, 아편 원료인 양귀비 수지를 거래하는 상업적 관계였으나, 마베라의 야심은 곧 노골화되었다. 마베라 상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요새가 세워졌고, 요새 주변으로 마베라 이민자들의 정착촌이 형성되었다. 부족 연합 간의 내분을 교묘히 이용한 마베라는 특정 부족 지도자에게 군사 지원을 약속하는 대가로 배타적 교역권을 획득했고, 이렇게 확보한 교두보를 발판으로 점차 내륙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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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 | 16세기 중반에 이르러 마베라는 고랜드 북부 해안 전역을 장악하고 고랜드 총독령을 설치했다. 총독령의 행정은 마베라 본국에서 파견된 관료들이 맡았으나, 내륙의 부족 지역에 대한 실질적 지배는 여전히 요원했다. 마베라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른바 '협력 부족(Tribù Alleata)' 정책을 시행했다. 마베라에 협력하는 부족 지도자에게는 세금 감면과 무기 지원을, 저항하는 부족에게는 군사 원정과 경제 봉쇄를 가하는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내륙을 복속시켜 나갔다. 이 과정에서 고랜드 부족 사회의 전통적 위계질서는 마베라의 식민 행정 체계에 종속되거나 대체되었고, 마베라어와 마베라식 법률이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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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 17세기에 접어들면서 고랜드의 경제는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었다. 마베라는 랜드해협 전역의 설탕 수요를 고랜드 단일 생산지로 충당하기 위해 북부 평야 지대를 대규모 농장으로 개간했고, 부족민들을 사실상 농노에 가까운 조건으로 플랜테이션에 묶어두었다. 이미 17세기부터 아편 원료인 양귀비 재배로도 이름이 높았던 고랜드의 남부 산악지대는 플랜테이션 경제의 바깥에서 독자적인 부족 경제를 유지했다. 마베라 당국이 양귀비 재배를 금지하려 했으나, 산악 부족들은 이를 생계 수단이자 자치권의 상징으로 여겨 극렬히 저항했다. 결국 마베라는 내륙 부족에 대한 직접 통제를 포기하고, 세금 납부를 조건으로 사실상의 자치를 용인하는 타협책을 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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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 | 18세기 말, 마베라 본국의 정치적 혼란과 잇따른 전쟁으로 식민지 경영 능력이 약화되면서 고랜드에 대한 통제력도 느슨해졌다. 이 틈을 타 아미르 압두라흐만 알-고란디를 중심으로 한 부족 연합이 북부 해안 일부를 탈환하는 데 성공하며 짧은 독립 왕국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마베라가 안정을 되찾자 대규모 진압 원정이 재개되었고, 고랜드는 다시 식민지의 굴레로 돌아갔다. 이 시기의 저항은 비록 좌절되었지만, 훗날 독립운동의 정신적 원류로 추앙받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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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 | 92 | === 근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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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 | 19세기 초, 마베라 제국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고랜드는 마베라 제국의 왕관에 박힌 보석으로 불렸다. 랜드해협 전역에 공급되는 설탕의 절반 이상이 고랜드산이었고, 아편과 담배, 커피 수출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마베라 식민 재정의 핵심이었다. 마베라는 고랜드를 단순한 식민지가 아닌 도독령(Governatorato)으로 격상시키고, 자국민의 이주를 적극 장려하여 고랜드 북부 해안 도시들에는 마베라계 이민자 공동체가 뿌리를 내렸다. 수도 아바나는 마베라풍 석조 건축물과 광장으로 채워지며 이국적이면서도 마베라의 색채가 짙은 도시로 탈바꿈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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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 | 그러나 19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균열이 시작되었다. 마베라 본국에서 잇따른 정쟁과 혁명의 여파로 재정이 악화되자, 도독부는 고랜드에 부과하는 세금을 대폭 인상했다. 이미 박봉과 중노동에 시달리던 플랜테이션 농민들에게 세금 인상은 생존의 문제였다. 1847년 북부 평야 지대에서 발생한 '[[할라비야 농민 봉기]]'는 순식간에 인근 10개 지역으로 번졌다. 도독부는 군대를 투입해 3개월 만에 진압했지만, 이 과정에서 자행된 학살과 방화는 오히려 고랜드 전체의 분노를 자극했다. 이후 크고 작은 반란이 끊이지 않았고, 마베라 당국은 진압과 회유를 반복하며 점점 더 많은 군사력을 고랜드에 투입해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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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 |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시기 고랜드의 수출 경제는 호황을 맞았다. 인접한 유고랜드가 공산 혁명으로 붕괴하고 서방 국가들이 유고랜드와의 교역을 단절하면서, 고랜드산 설탕과 담배가 그 공백을 메웠다. 한때 전 세계 설탕 공급량의 절반이 고랜드산이었으며, 커피와 담배 수출로도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이 번영의 과실은 마베라 도독부와 현지의 소수 대지주 계층에게만 돌아갔다. 플랜테이션 농민들의 삶은 호황 속에서도 나아지지 않았고, 이 구조적 모순은 고랜드 독립운동의 씨앗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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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 | 19세기 말, 루이나의 급격한 대외 팽창과 맞물리면서 고랜드의 지정학적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루이나는 랜드해협 남부의 전략적 요충지인 고랜드를 자국의 영향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외교적 공세를 강화했다. 1882년, 루이나는 마베라에 고랜드 북부 항구의 공동 사용권을 요구했으나 마베라는 이를 거부했다. 이후 루이나는 공식 외교 채널 대신 고랜드 내 독립 운동가들을 비공식적으로 접촉하기 시작했다. 루이나 영사관 직원들이 아바나의 비밀 모임에 참석하고, 루이나 신문들이 마베라의 고랜드 식민 통치를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마베라는 이를 내정 간섭으로 강력히 항의했으나, 루이나는 "언론의 자유"를 방패로 삼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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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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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 |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고랜드의 독립운동은 보다 조직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마베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젊은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고랜드 독립협회(Associazione per l'Indipendenza del Goland)|고랜드 독립협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마베라 본국의 자유주의 이념을 고랜드의 민족 해방 논리와 결합시켜, 단순한 반마베라 감정을 넘어선 체계적인 독립 사상을 정립해 나갔다. 특히 이드리스 알-파루키가 집필한 소책자 《고랜드인의 땅(أرض الغولنديين)》은 마베라의 지배를 이슬람 공동체에 대한 침략으로 규정하며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도독부는 즉각 이 책자를 금서로 지정하고 알-파루키를 체포했으나, 이미 수천 부가 퍼진 뒤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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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 | 103 | === 현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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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 | | ====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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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 | | 고랜드는 20세기까지 무려 400년 가까이 라 마베라의 식민통치를 받았다. 고랜드 총독령은 라 마베라로 편입되었다가, 고랜드 도독령으로 계승되었다. 고랜드는 당시 국제 상품이었던 설탕의 주 생산지였기 때문에 부유했고 그 지리적 이점 때문에 라 마베라에서도 고랜드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고랜드 도시의 상당수는 라 마베라의 식민통치기에 세워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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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 | 1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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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3 | 1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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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4 | 117 | 루이나-마베라 전쟁에서 루이나가 승리하고 마베라는 고랜드에 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해당 식민지들을 루이나에 양도했다. 1960년 루이나는 제국주의적 야심이 없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어필하기 위해 고랜드를 자국령으로 편입시키지 않고 독립시켰다. 그러나 마크 트웨인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이러한 루이나의 행태를 두고 비판했다. 이때 루이나는 고랜드를 독립시킨 것에 반에 콘스탄티노폴은 식민지로 삼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일부 루이나 역사가들은 고랜드를 콘스탄티노폴처럼 루이나에 귀속시켰어야 했다며 고랜드 독립을 루이나 역사상 가장 치명적 실수 중 하나라고 평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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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5 | 1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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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 | ==== 독립 전쟁과 독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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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 | 1940년대에 접어들며 루이나는 고랜드의 자국령 편입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다. 1944년, 루이나 상원의원 존 슬리델이 마베라에 1억 5천만 달러에 고랜드를 매각할 것을 제의했다. 루이나는 앞서 콘스탄티노폴과의 협상을 통해 1939년 콜마르 시를 양도받은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했다. 그러나 마베라는 단칼에 거절했다. 마베라에게 고랜드는 프랑스의 알제리나 영국의 북아일랜드처럼 단순한 해외 식민지가 아닌 본토의 연장선이었다. 수백 년 동안 자국민을 이주시키고 현지 사회를 육성해온 마베라에게 고랜드의 매각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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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6 | 116 | ==== 고랜드 공산혁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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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7 | | 제2차 랜드 대전 이후 공산주의 및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가 급속도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고랜드에서도 점차 이러한 의식에 눈뜨게 된다. 특히 1961년에 이른바 중사의 반란으로 불리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풀헨시오 바티스타 군사정권[* 고랜드는 라 마베라에서 독립하고 단 2년만에 다시 무능한 정부의 지배에 놓였다.] 의 무능과 부패, 폭정에 대한 저항의식은 더해만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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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 | 1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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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9 | 119 | 1963년, 변호사이던 피델 성베르트도 참여한 [[몬카다 병영 봉기]](7월26일 사건:Movimiento 26 de Julio)는 바티스타의 권력 기반이었을 군대 조차도 바티스타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비록 봉기는 실패로 끝났으나 성베르트는 재판정에서 당당한 태도로 자기의 정당함과 혁명의 당위성을 역설하여 고랜드 역사에 자기 이름을 처음으로 남기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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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 | 127 | 처음에는 성베르트는 루이나를 공공연하게 적대시하지 않았지만 루이나기업이 소유하던 공장이나 농장 호텔등을 죄다 몰수해서 국유화해 버리자 루이나에서 고랜드를 적대시하기 시작했고 경제적인 교류도 끊어졌다. 결국 대안책으로 성베르트는 소련에 접근했고, 소련과 사비에트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고랜드는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이에 루이나는 힘으로 성베르트 정부를 뒤엎기 위해 [[NIA]]를 통해 반성베르트 세력(즉 바티스타 시절 친루 우익 세력)을 지원해 1996년 속칭 [[카우스만 침공]]을 일으켰다. 이 침공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으며, 1993년 야심차게 출범한 젊은 페어팩스 행정부의 무능과 미숙함이 일시에 폭로된 순간이었다. 이 사건으로 성베르트는 반루 친사 정책을 강화하고 공공연히 공산주의 노선을 걷기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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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8 | 1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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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 | 129 | ==== 공산 혁명 이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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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7 | 제2차 랜드 대전 이후 공산주의 및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가 급속도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고랜드에서도 점차 이러한 의식에 눈뜨게 된다. 바티시 군사정권의 무능과 부패, 폭정에 대한 저항의식은 더해만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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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 | 130 | ==== 공산 혁명 이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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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 | | 성베르트는 이런 행보를 강화해 사비에트와 급속히 친밀해졌으나, 사비에트와 소련은 나름대로 고랜드를 이용해 루이나를 엿먹일 계획을 짜고 있었다. 사비에트는 고랜드에 지원이라는 명목 아래에 고랜드에 중거리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루이나의 정찰에 걸려들면서 영화에도 나왔던 지금까지도 그 유명한 [[고랜드 미사일 위기]]가 시작된다. 1997년 10월의 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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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 | | 당시 페어팩스 정부는 고랜드를 해상봉쇄하고 마침 고랜드로 향하던 사비에트 선박이 고랜드 영해에 접근하면 공격하겠다고 위협했다. 사비에트 측이 이를 무시하자 핵무기를 보유한 양대 강국이 순식간에 정면 충돌할 위협에 봉착했으며, 전세계는 고랜드를 주목하며 공포에 떨었다. 그러나 막판에 사비에트가 한 발 물러남으로써 전쟁 위협은 줄어들었다. 사비에트는 루이나가 빌베른에서 미사일 탄도탄을 철수하는 조건으로 고랜드에 미사일 기지를 철수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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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4 | | 그런데 고랜드 미사일 위기의 진앙이 된 고랜드 국내의 중거리 미사일 기지 자체는 설치 및 통제 면에서는 사비에트의 관리를 받고 있어 성베르트는 크게 비위가 상했던 모양이다. 성베르트는 결판을 내자고 해 사비에트에 전쟁을 주문했으나 평화협상으로 끝나자 실망했다는 소문도 있다. 그나마 사비에트는 고랜드를 달래주기 위해서 군사, 경제 지원을 해주는 한편 기존의 사비에트군 부대 자체는 계속 주둔시켰다. 참고로 이 고랜드 주둔 사련군 부대는 사련군 내에서 손꼽히는 꿀보직이었다고 한다. 날씨는 온화하고 먹거리도 풍부했으며 민심도 우호적이었기 때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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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 | | 이 사건 이후 고랜드 혁명에 동참했던 체 게바라는 고랜드를 떠나 아프리카를 거쳐 남아메리카의 혁명 운동에 가담했다가 1999년 볼리비아에서 체포당해 사살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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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 | 139 | ==== 루이나의 추가 개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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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 | 140 | [[고드라 반군 사건|해당 문서를 확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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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 | 14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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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 | 142 | ==== 루이나 개입 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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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 | 143 | 루이나가 고랜드에 공작을 벌인 후, 바티스타파의 잔당들이 나라를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루이나의 지원을 받은 이들은, 협동농장을 파괴하고, 교량을 폭파하고, 학교를 불태우는등, 게릴라 활동과 테러를 이어갔고, 고랜드는 또다시 혼란의 늪으로 빠져들어갔다. 또다시 사회는 흔들렸고, 경제는 파탄났으며, 피델 성베르트는 자살 ~~당~~했다. 결국 성베르트가 사라진 고랜드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혁명을 통해 승리하여 성베르트를 몰아낸 것이 아니라 여러 게릴라 세력들의 저항에 질린 최고지도자가 갑자기 사망한 형태이기 때문에 각각의 게릴라들은 저마다 자기가 혁명을 성공했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고랜드의 실권을 독점하려고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돌려 내전이 발생하는 악순환의 연속이 벌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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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 | 144 | == 자연환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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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 | 145 | == 인문환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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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 | 146 | == 정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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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 | 148 | ||<-3><table 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bgcolor=#fff><tablebgcolor=#fff,#1c1d1f><color=black> '''고랜드의 정치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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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 | 149 | ||<colbgcolor=#000> '''{{{#white 부패인식지수}}}''' ||17점 ||2024년, '''세계 165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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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 | 150 | || '''{{{#white 언론자유지수}}}''' ||17.88점 ||2025년, '''세계 175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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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 | 151 | || '''{{{#white 민주주의지수}}}''' ||0.25점 ||2024년, '''세계 167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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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 | 15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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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 | 153 | 고랜드의 정치는 탈레반에 의한 군사독재다. 정치와 국가 운영에 대한 지적 소양이 낮은 탈레반 지도부는 다른 미승인국가들과는 달리 헌법, 법률, 제도 등을 만들지 못하며 포고령을 통한 임의의 통치를 한다. 심지어 탈레반의 포고령도 내용이 혼란스럽고 탈레반이 임의로 안 지키기도 하기 때문에 법률과 같은 권위와 역할을 하지 못한다. 신권정치라고 칭해지기도 하지만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군사독재에 불과하다. 게다가 탈레반의 병력수는 상당히 적기 때문에 지방은 사실상 무정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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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3 | 15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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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4 | 155 | 탈레반은 1996년에서 2001년까지는 고랜드의 대부분의 지역을 손에 넣고 있었고, [[루이나]]에 쫓겨난 20년 동안에도 고랜드의 일부 지역을 지배했으며, 현재는 고랜드 남부 전역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탈레반은 이름뿐인 '''고랜드 이슬람 토후국'''이라는 국가를 참칭하지만 1996년부터 현재까지 26년 동안 포고령을 통한 임의의 통치만 해 왔으며 '정치'의 기본바탕인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는 탈레반 지도부가 교육 수준이 낮고 현실을 경시하는 반지성주의적 종교근본주의자들이기 때문이며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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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 | 성베르트는 이런 행보를 강화해 사비에트와 급속히 친밀해졌으나, 사비에트와 소련은 나름대로 고랜드를 이용해 루이나를 압박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사비에트는 지원이라는 명목 아래 고랜드에 중거리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루이나의 정찰에 걸려들면서 고랜드 미사일 위기가 시작된다. 1997년 10월의 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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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3 | 당시 페어팩스 정부는 고랜드를 해상봉쇄하고, 고랜드로 향하던 사비에트 선박이 고랜드 영해에 접근하면 공격하겠다고 위협했다. 핵무기를 보유한 양대 강국이 순식간에 정면충돌 직전까지 치닫자 전 세계는 고랜드를 주목하며 공포에 떨었다. 그러나 막판에 사비에트가 한 발 물러남으로써 전쟁 위협은 가라앉았다. [[팔레르모 합의]](Accordo di Palermo)에 따라 사비에트는 루이나가 빌베른에서 탄도미사일을 철수하는 조건으로 고랜드의 미사일 기지를 철수시켰다. 성베르트는 전쟁을 주문했으나 평화협상으로 끝나자 크게 실망했다는 소문도 있다. 사비에트는 고랜드를 달래기 위해 군사·경제 지원을 계속하고 부대를 주둔시켰다. 이 고랜드 주둔 사비에트군 부대는 사비에트군 내에서 손꼽히는 꿀보직이었다고 한다. 날씨는 온화하고 먹거리도 풍부했으며 민심도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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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5 | 이 사건 이후 고랜드 혁명에 동참했던 [[타리크 이븐 게바라]]는 고랜드를 떠나 아프리카를 거쳐 남아메리카의 혁명 운동에 가담했다가 1999년 볼리비아에서 체포되어 사살된다. 타리크의 사살 소식이 전해지자 아바나 거리에는 수만 명이 쏟아져 나와 애도했다. 성베르트는 직접 라디오 연설을 통해 "타리크는 죽지 않았다. 그는 총을 든 모든 자유인의 심장 속에 살아 있다"고 선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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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6 | ==== 성베르트의 급진화와 이슬람 부족들의 반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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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7 | 미사일 위기와[[ 카우스만 침공]]을 연달아 겪으면서 성베르트 정권은 외부의 적에 맞서는 동시에 내부 체제를 더욱 공고히 다지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급진적인 공산주의 정책이 고랜드 사회의 근간을 건드리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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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 | 156 | ==== 루이나의 추가 개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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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 | | [[고드라 반군 사건|해당 문서를 확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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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 | 157 | ==== 루이나 개입 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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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 | | 루이나가 고랜드에 공작을 벌인 후, 바티스타파의 잔당들이 나라를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루이나의 지원을 받은 이들은, 협동농장을 파괴하고, 교량을 폭파하고, 학교를 불태우는등, 게릴라 활동과 테러를 이어갔고, 고랜드는 또다시 혼란의 늪으로 빠져들어갔다. 또다시 사회는 흔들렸고, 경제는 파탄났으며, 피델 성베르트는 자살 ~~당~~했다. 결국 성베르트가 사라진 고랜드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혁명을 통해 승리하여 성베르트를 몰아낸 것이 아니라 여러 게릴라 세력들의 저항에 질린 최고지도자가 갑자기 사망한 형태이기 때문에 각각의 게릴라들은 저마다 자기가 혁명을 성공했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고랜드의 실권을 독점하려고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돌려 내전이 발생하는 악순환의 연속이 벌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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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 | 159 | == 자연환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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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 | 160 | == 인문환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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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6 | 182 | 탈레반은 서방 세계를 "이슬람에 대한 침략자"로 규정하며, 국제안보지원군과 고랜드 민주정부를 향해 전면적인 지하드(성전)를 선포한 상태다[* 2024년 말, 탈레반 대변인은 "루이나의 점령군이 떠나지 않는 한 고랜드는 결코 평화를 맞이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동시에, 최근 드론 및 급조폭발물(IED)을 이용한 비대칭 전술로 연합군과 민주정부군에 상당한 타격을 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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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8 | 184 | 국제사회는 고랜드 사태를 21세기 최악의 국가 내전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으며, 수백만 명의 난민, 민간인 피해, 여성과 소수자 탄압 등의 문제로 인해 루이나·빌베른·미합중제국·북산 등 주요국이 지속적인 개입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탈레반의 지배력이 워낙 깊게 뿌리내린 상태라, 단기간 내 평화적 해결은 요원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UN 인도주의사무국(OCHA)은 2025년 현재까지 고랜드 내전으로 인한 이재민 수가 약 850만 명에 달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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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8 | 루이나 주도의 국제안보지원군(ISAF)이 파병되어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고 고랜드 과도 민주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20여 년에 걸친 루이나의 개입은 부패한 현지 정부, 마약 경제의 고착화, 끝없는 게릴라전 속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탈레반은 축출된 이후에도 남부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끈질기게 세력을 유지하며, 루이나군의 지원이 약화되는 틈을 타 다시 영토를 넓혀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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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9 | 164 | == 경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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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0 | 165 | === 아편 생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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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1 | 166 | [youtube(p5nEVZ0qEC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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