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75 | 75 | |
|---|
| 76 | 76 | 라 마베라는 가혹한 식민지 정책을 펼쳤고 19세기 무렵 고랜드 내에서 잦은 반란이 일어났다. 1943년 루이나 독립전쟁 이후 유고랜드를 시작으로 랜드해협 남부 대륙의 식민지들이 줄지어 독립을 이어갈 때도 고랜드는 최후까지 라 마베라의 식민지로 남아 있었다. 고랜드 도독령 내 정치세력들이 라 마베라로로부터의 독립에 회의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라 마베라의 지배에 대해 불만을 품는 현지인들의 반란이 커져갔다. 이 무렵 대외확장에 적극적이었던 루이나는 고랜드의 전략적 중요성과 경제성을 파악하고, 고랜드를 노렸다. |
|---|
| 77 | 77 | |
|---|
| 78 | | 1940년대에 루이나는 고랜드의 자국령 편입을 시도했다. 루이나는 1941년 상원의원 존 슬리델이 마베라에 1억 5천만 달러에 고랜드를 매각할 것을 제의했다. 루이나는 앞서 콘스탄티노폴과의 협상을 통해 1949년에 콜마르 시를 양도받은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했다. 그러나 마베라는 단칼에 거절했다. 당시 라 마베라에 있어 고랜드는 프랑스의 알제리나 영국의 북아일랜드처럼 단순한 해외 식민지가 아닌 본토의 연장선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마베라는 수 백년 동안 고랜드를 경영해오면서 자국민을 이민보내고, 현지 사회를 양성하는 등 상당한 투자를 해왔다. 마베라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루이나의 고랜드에 대한 관심은 높아져 갔다. |
|---|
| 78 | 1940년대에 루이나는 고랜드의 자국령 편입을 시도했다. 루이나는 1944년 상원의원 존 슬리델이 마베라에 1억 5천만 달러에 고랜드를 매각할 것을 제의했다. 루이나는 앞서 콘스탄티노폴과의 협상을 통해 1939년에 콜마르 시를 양도받은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했다. 그러나 마베라는 단칼에 거절했다. 당시 라 마베라에 있어 고랜드는 프랑스의 알제리나 영국의 북아일랜드처럼 단순한 해외 식민지가 아닌 본토의 연장선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마베라는 수 백년 동안 고랜드를 경영해오면서 자국민을 이민보내고, 현지 사회를 양성하는 등 상당한 투자를 해왔다. 마베라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루이나의 고랜드에 대한 관심은 높아져 갔다. |
|---|
| 79 | 79 | |
|---|
| 80 | 80 | 19세기 중반부터 마베라 제국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부족한 재정을 위해 부유한 식민지였던 고랜드에 세금을 거둬 충당했다. 때마침 고랜드와 가까운 유고랜드가 혁명으로 붕괴되고, 서구 국가들이 유고랜드와의 교역을 거부하면서 고랜드의 플랜테이션 수출은 호황을 맞이했다. 유고랜드 혁명 이후 한동안 전 세계 설탕 공급량의 절반이 고랜드산이었으며 담배와 커피 수출로도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이러한 플랜테이션으로 벌어들인 부는 현지 농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았고, 박봉과 중노동에 분노한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킬 때마다 마베라 식민당국은 군대를 투입해 강경하게 진압했다. |
|---|
| 81 | 81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