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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 | 108 | 한때 하나였던 신의 뜻은 열두 개로 갈라졌다. '''“한 얼굴의 신이 열두 혀로 말한다면, 누가 그의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가?”''' 고대 기록은 그렇게 묻고 있다. 이 시기를 고랜드인들은 '''“영혼이 갈라진 시대”'''라 부른다. 왕권은 각 도시로 분열되었고, 예언자들은 자신의 신탁과 신학을 근거로 독립된 교단, 혹은 신정 도시국가를 세웠다. 그 중 일부는 ‘진정한 하이카르의 후계’를 자처했고, 어떤 이들은 아예 왕을 부정하고 예언자의 지배만이 신의 뜻이라 주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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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 | 110 | 가장 큰 분열은 '''“성소 예언자단”'''과 '''“우르 하이카르 전통파”''' 사이에서 벌어졌다. 전자는 예언자가 통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후자는 신과 인간 사이의 질서를 위해 왕권을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 두 진영은 무력 충돌로 이어졌으며, 결국 고랜드는 지도 위에서 수십 개의 이름 없는 도시들로 쪼개졌다. 예언자들은 더 이상 에루바의 뜻을 하나의 언어로 전하지 않았다. 신탁은 정치화되었고, 각 지역마다 고유한 ‘Semi-Lazu’(분파적 율법)이 생겨났다. 신의 이름으로 전쟁이 선포되고, 신의 이름으로 이단이 화형에 처해지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후 수세기 동안, 고랜드는 다시는 하나로 통합되지 못했다. 하이카르 왕조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남았고, 예언자들의 권위는 날로 갈라졌으며, 어느 누구도 다시 “샤르(대왕)”을 칭하지 못했다. 고대의 이상이 붕괴된 자리에는, 수많은 신의 파편과, 싸움으로 얼룩진 도시들만이 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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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 | | == 흙으로 새긴 계시 — 무명사제들의 통합과 종말의 교의 (기원전 약 840년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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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 | === 흙으로 새긴 계시 — 무명사제들의 통합과 종말의 교의 (기원전 약 840년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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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 | 112 | 두 번째 분열기의 끝자락, 고랜드의 대지에는 더 이상 왕도, 예언자도, 하나의 신전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도시들은 상호 간의 율법을 부정했고, 신의 이름은 너무 많아져 아무 이름도 아닌 것이 되었다. 그 틈을 파고든 것은 이름조차 없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무명사제(Nezurim Elvaz)'''라 불렀고, 누구도 그들의 본명을 몰랐다. 그들의 설교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 담긴 교의는 불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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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 | 114 | > “이 세계는 처음부터 금이 가 있었다. 그것은 무너져야만 한다. 그래야 신의 손이 다시 닿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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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 | 122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질서를 세웠다. 그 질서는 피로 세운 것이 아니었다. 다만 사람들은 피에 지쳐 있었고, 이름 없는 자들의 ‘새 계시’에 미친 듯이 굶주려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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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4 | | == 7. 에루바 연맹 — 이름 위에 덮은 가면 (기원전 약 720년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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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4 | === 7. 에루바 연맹 — 이름 위에 덮은 가면 (기원전 약 720년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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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 | 125 | 무명사제들이 형식적으로 연맹을 구성할 당시, 고랜드의 도시는 이미 내부적으로 피폐해져 있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무명사제의 규율 아래 들었고, 그들은 그것을 '''‘에루바 연맹(Eruva Confederacy)’'''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실상은 사제 가면을 쓴 일종의 신정적 통제체제였다. 무명사제들은 각 도시의 문서보관소와 재판소에 자신들의 사자를 파견했고, 기존 귀족 가문은 “지식과 경전의 시험”이라는 명목 아래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형식적 통치자로 격하되었다. '''고문석판(Kadrim Taltash)'''은 회의체가 아닌 선언문 낭독소에 가까웠고, 그곳에서 읽히는 율령은 대개 무명사제 출신의 법해석자(Thalazim)가 사전에 결정한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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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7 | 127 | 무명사제들의 질서는 그 자체로 역설이었다. 그들은 신의 뜻만이 모든 권위의 근거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율령을 외우지 못하는 자는 인간도 아니며, 반박하는 자는 신의 적이라 규정했다. 이는 고대 고랜드에서 가장 정교하면서도 무자비한 체계를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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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9 | 129 | 이러한 배경 속에서 고랜드는 다시 하나로 통합되었지만, 사람들은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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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 | 130 | 이것은 왕의 칼도, 예언자의 말도 아닌, ‘위선의 돌판’ 위에 세워진 질서였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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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 | === 돌판을 밟고 들어온 자들 — 로마의 침공과 무명사제 체제의 몰락 (서기 137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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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2 | 세상의 경계에서조차 고요하던 고랜드의 대지 위에, 처음으로 피리 소리가 들려온 것은 어느 겨울 새벽이었다. 황금 독수리 깃발 아래, 로마 군단의 철제 장화가 동쪽 국경을 넘어들었다. 그들은 순례자가 아니었고, 신을 말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단 한 마디만을 반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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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3 | '''“Pax Romana.” — 로마의 평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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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5 | 무명사제들의 통치는 이미 그 말년을 향하고 있었다. 돌판에 새긴 율령은 스스로를 감옥으로 만들고 있었고, 교의는 더 이상 계시가 아닌 의무가 되었으며, 도시마다 불복하는 해석자들이 파벌을 짓고, 암암리에 다른 율령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말없이 줄을 서서 제단에 무릎 꿇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하늘은 더 이상 이들을 통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서기 137년, 로마는 고랜드의 북부 해안 도시 '''카르누스(Carnus)'''에 상륙하며 공식적인 침공을 개시했다. 침공은 명목상 ‘로마 통상사 파견단 학살에 대한 보복’이었으나, 실제로는 고랜드의 금광 자원과, 밀밭 무명사제들이 장악한 해상 교역로에 대한 확보가 핵심 목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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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7 | 고랜드의 방어는 허술했고, 무명사제들의 연맹은 공동 방위조차 협의하지 못했다. 각 도시의 율령 해석은 상이했고, 군대는 형식상 존재했을 뿐, 실질적인 무장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제들은 싸울 권한도 없었고, 싸울 이유도 잃은 상태였다. 로마군 제17군단은 겨우 8개월 만에 '''에루바의 중심도시 발마크(Valmak)'''에 입성했다. 무명사제단은 항전을 선언하지도, 투항을 명확히 하지도 못한 채, 해시계 뒤편에 모여 '''“침묵은 신의 응답”'''이라 속삭이고 있었다. 로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단한 돌판 위를 밟고, 중심 신전의 석등을 끌어내려 불태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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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 | === 천사의 돌판은 무너지고 — 사제왕국의 종말과 세속 질서의 귀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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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 | 무명사제들의 체제는 그렇게 무너졌다. 그들의 율령은 폐지되지 않았다. 다만, 로마는 그것을 읽지 않았다. 율령은 라틴어로 번역되지 않았고, 기록실은 방치되었으며, 많은 사제들은 ‘해석자’로서의 지위를 빼앗긴 채 고랜드 각지로 흩어졌다. 일부는 로마에 협력하며 새 질서에 편입되었지만, 더 많은 이들은 다시 "무명"으로 돌아갔다. 로마는 고랜드를 '''‘아우구스투스 직할 식민지’'''로 선포했고, 각 도시에는 '''속주 총독(Praefectus Provinciae)'''이 파견되었다. 중앙 관청은 다시 세워졌고, 도량형은 통일되었으며, 로마 법과 민법이 단계적으로 도입되었다. 학교는 라틴어로 재편되었고, 무명사제들의 흙판 문자는 ‘이단적 언어’로 규정되어 금서목록에 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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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 |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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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3 | > “신은 사라진 자들보다, 침묵하는 자들을 더 오래 기억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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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 | 무명사제들의 통치는 그렇게 끝났다. 무너진 제단 위에 황금 독수리가 앉았고, 고랜드의 하늘에는 더 이상 계시가 내리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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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6 | 다만, 땅 아래로 묻힌 돌판은 아무도 부수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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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2 | 148 |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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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3 | 149 | 고랜드는 20세기까지 무려 400년 가까이 라 마베라의 식민통치를 받았다. 고랜드 총독령은 라 마베라로 편입되었다가, 고랜드 도독령으로 계승되었다. 고랜드는 당시 국제 상품이었던 설탕의 주 생산지였기 때문에 부유했고 그 지리적 이점 때문에 라 마베라에서도 고랜드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고랜드 도시의 상당수는 라 마베라의 식민통치기에 세워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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