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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9 vs r10
......
2121==중세==
2222
2323==근대==
24===스파츠 호 상륙===
251758년, 프로이센의 스파츠 호 휘하 5척의 샤락선이 북라이카 지방에 도착한다. 이 소함대를 이끄는 대장은 프리드리히 세하린이었다. 프리드리히와 부하들은 프랑스 해군에게 쫓겨 도망치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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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당시 라이카 땅에는 라이카 왕국과 하이어 왕국이 대립 중이었다. 북쪽에 위치한 라이카는 하이어에 비해 다소 열세였다. 전쟁은 터지지 않았으나, 하이어의 압박이 점차 커지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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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프리드리히는 라이카 왕국 군사들에게 붙잡혀 러세트 왕에게 끌려갔다. 왕은 프리드리히를 바로 죽이진 않았으나, 몇 달에 걸쳐 심문한다. 그러나 약삭빠른 그는 라이카의 어려운 상황을 금세 깨닫고, 러세트를 설득한다. 자신을 부하로 삼아주면 하이어를 이길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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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언어가 잘 통하진 않아 설득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러세트는 마침내 프리드리히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를 자신 휘하의 신하로 받아들인다. 프리드리히의 첫 위치는 높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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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정말로 프리드리히의 스파츠 호와 이 배에 실린 화기는 라이카의 열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기존 라이카와 하이어는 구식 화승총 정도를 주력 화기로 사용할 정도였다.
34반면 프리드리히 사략단의 신식 머스킷은 굉장히 혁신적인 무기였다. 유럽 기준으로는 썩 좋다 할 순 없었지만. 라이카의 기술자들은 머스킷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이는 라이카 왕국의 제식 화기가 된다.
35또한 프리드리히의 부하 500여 명은 라이카 왕국의 주요 전력으로 활용되었다. 그들은 일종의 교관으로 배치되어 머스킷 사용법을 훈련시키는 등의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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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771년 라이카와 하이어 간의 전쟁이 터진다. 라이카는 머스킷과 보다 진보된 전략, 전술을 동원하여 하이어에 맞선다.
38하이어는 라이카보다 많은 병력을 동원했으나 몇 차례의 전투에서 역으로 패배하는 일이 벌어진다.
39이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하이어 왕 라만트 2세는 자신이 직접 사기를 돋우고자 전선 근처로 이동한다. 그는 해로를 통해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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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이에 대응하여 프리드리히는 스파츠 호를 보내 그 배를 격침시킬 것을 제안한다. 러세트는 승낙하고, 스파츠 호의 대포가 불을 뿜어 라만트의 범선을 격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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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하이어 왕국은 1774년 라이카에 항복하고, 대량의 영토와 전쟁 배상금 등을 부담하게 된다. 하이어 왕국 자체는 유지되었다.
2444===연합제국 성립===
251779년, 세력을 키우던 라이카 왕국은 힐켄팔렌 연합해 라이카 제국을 선포한다. 초대 황제는 라이카의 가문의 알베르트 1세였다.
45하이어를 꺾은 라이카 왕국은 상승세를 타게 되었다. 그러나 예전부터 앙숙이던 오스텐 왕국이 라이카 위협한다. 오스텐은 라이카의 기술자들을 매수거나, 포로로 잡힌 이들을 통해 얻은 신형 머스킷총, 유럽식 교리로 무장한 강력한 군대를 보유했으며 인구 역시 라이카를 능가했다.
2646
27서기 1783년, 라이카 팽창경계하던 오스텐 왕국코페네스 맹약을 맺고 라이카 침공다.
28맹약에는 오스텐 왕국, 비테발트 왕국, 라인룬트 공국이 참여한다.
47오스텐 왕국은 또한 인치란트, 노르트란트와 함께 라이카 위협한다. 이에 위기감느낀 라이카는 남쪽 힐켄팔렌 왕국에게 도움을 청한다. 힐켄팔렌하이어 왕국의 영토에 속해 있던 국가였으나 라이카 관리 부족으로 독립 신생국이었다. 즉, 힐켄팔렌은 사실상 하이어의 후예.
2948
30 전쟁은 코페네 전쟁이라고 불린다. 전쟁 결과 오스텐 회복 불가한 타격입고 라이카 합병된다. 비테발트와 라인룬트는 평화조물러난다. 이에 라이카 안정기에 접어든다.
49카의 급작러운 도움 요청에 힐켄팔렌은 당황하나, 오스텐 떼어준다는 라이카 넘어가 라이카 동맹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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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9세기는 산업혁명의 시대였다. 라이카 황실의 주도 하에 이뤄진 산업혁명은이카의 력을 크게 올려주었으나, 불평등,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인구 과밀 다양문제를 낳았다.
51라이카 왕국, 힐켄팔렌 왕국, 비테발트 왕국,인룬트 4국 동맹과 오스텐, 인치란트, 노르트란트3국 조약 간의 전쟁은 곧이어 터진다. 아르텐 폰 롬버트 장군 명장들이 활약 전쟁은 동조 전쟁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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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다수철학자, 사회학자들이 기에 활발히 활동했다.
53동조 전쟁 결과 라이카와 힐켄팔렌동맹이 승리하고, 오스텐 땅은 분할 점령된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누가 더 많은 땅을 먹을 건가 외교적 위기가 터진 것. 라카와 힐켄팔렌은 대립을 작하지만, 결국 두 국가는 힘을 합해 연합제국을 성립시키고 함께 오스텐을 차지할 것을 결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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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산업혁명과 함께 라이카 곳곳에서 실시 교육은 시민 계층성장낳았다.
371832년, 4월 혁명 황실은 준입헌군주제된다. 상원과 하원회, 근대적 법률과 재판 절차수립 등이 이때 탄생 황제 엘리트독재를 극복하지 못했다한계를 안고 있었다.
551812년 6월 1일. 라이카 제국이 네벨스부르크에서 성립다. 네벨스부르크에 황궁이 지어지고, 라이카, 힐켄팔렌, 오스텐, 비테발트, 라인룬트, 인치란트, 노르트란트 7개 국가국왕은 원탁회의를 통해 권력나눠 가지게 된다.
56황제는 라이카 왕국 세력을 키웠던 세하린 가문 알베르트 세하린 맡는다. 알베르트 1세가 된다. 황제 권한은 강했으나, 7개의 제후국들권한 역시 막강 황제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다.
3857
58===독일제국과 라이카===
591882년 독일 제2제국은 라이카에게 눈을 돌린다. 그리고 라이카 제국에게 자신의 속국이 될 것을 요구하며 압박을 넣는다.
60프로이센 출신이 라이카의 발전에 기여했고, 사실상 건국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그런 압박은 당연한 것이라는 논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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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라이카 제국 내에서는 많은 논의가 있었으나, 당대 독일의 강대한 군사력을 라이카가 이길 수는 없었다. 따라서 헤제르론 조약을 통해 라이카 제국은 라이카 공국으로 국호가 변경되고, 당시 황제 헤르만 2세는 공왕이 된다.
63
64===헤제르론 조약===
65독일 제국의 사법 체계, 정치 체계, 군사 체계 등이 라이카 제국에게 도입되어 라이카는 급속도로 근대화된다. 이 시대부터 독일어가 라이카에서 공용어로 지정되었으나, 기존의 언어(독일어+현지어)와 독일 제국의 독일어가 섞여 라이카 방언이라는 언어가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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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제 1차 대전===
681914년 제 1차 대전이 발발한다. 독일 제국은 라이카에게도 아군으로 참전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라이카는 뒤통수를 친다. 중립 선언을 때려버린 것.
69이에 격분한 독일은 해군을 보내려 했으나 영국 해군의 존재 때문에 이는 실현되지 못한다. 당장 자신들의 식민지를 유지하는 것도 벅찬 독일 해군에게, 멀리 있는 라이카는 그림의 떡이었다.
70
711915년 독일 제국은 현존함대 전략을 깨고, 라이카를 치고자 함대를 보낸다. 헬골란트급 전함 헬골란트와 올덴부르크를 필두로 휘하 경순양함 6척, 구축함 8척을 보낸다.
72이로 인해 발생한 해전이 [[델피네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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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1916년과 1917년에는 독일 해군의 상황이 악화되며 라이카에 대한 독일의 공격은 사실상 없는 수준이 된다.
75이후 제 1차 대전은 독일 제국의 패배로 끝난다. 라이카는 걸림돌인 독일도 사라졌으니, 다시 라이카 제국으로 국호를 변경한다. 공왕들의 칭호 역시 황제로 되돌아갔다.
76===전간기의 라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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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제 2차 대전===
792차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은 라이카를 가만두지 않았다. 곧장 5척 가량의 U보트가 라이카 앞바다에 파견된다. 이들은 1942년까지 총 28만 톤의 상선을 격침시켜 라이카의 해상 무역로를 마비시킨다.
80
81(작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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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현대==
4084===인치란트 전쟁===
411965년 라이카 인치란트에서 시작된 내전.
42====배경====
43라이카 왕국은 제국 내에서 발언권이 가장 강력한 지방이었다.
44당시 라이카 내에서는 힐켄팔렌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공공연히 존재했다. 힐켄팔린 출신은 급여, 승진, 휴가 등 다양한 방면에서 차별을 받았다.
45
46런 차별은 정부 기관에서도 공공연히 이뤄졌다. 1963년의 국정감사 보고서에 적혀 있을 정도였다.
47
4886여기에, 라이카가 제 1차 랜드 대전에 참여하며 두 지역 간 감정은 악화된다. 상대적으로 빈곤층이 많던 힐켄팔렌 지역에서 징집과 단순 노동력 보충이 이뤄졌다.
4987====에위그힐켄 탄생====
50881964년 6월 3일, 힐켄팔렌 주는 다른 6개 주와 연합하여 에위그힐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을 선포한다.
5189라이카 제국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수장을 내란 수괴로 몰지만, 이미 지난 1차 랜드 대전에 지쳐 황실과 내각을 외면하던 남라이카 사람들은 오히려 공산주의 정부에 동조한다.
5290양국 간의 소규모 무력충돌은 그칠 줄을 몰랐다. 그렇게 불안정한 상태로 1년이 흘렀다.
5391
54921965년 9월 21일에는 북라이카 전투기가 남라이카 영해를 침범하는 사건도 일어났더. 1965년 9월 25일에는 남라이카의 곡사포 포탄에 맞아 국경 지대인 인치란트의 제국군 초소가 파괴되는 일도 벌어진다.
5593
5694이에 북라이카가 10월 1일 전쟁을 선포하면서 인치란트 전쟁은 막을 올린다.
5795====흑색 작전====
5896그러나 남라이카군의 비장의 작전, 흑색 작전이 등장한다. 라이카 동부의 늪지대는 진군에 어려움이 따르는 지역이다. 인민군은 이곳 앞까지 군사력을 집중시킨다. 당연히 이곳에서 출발해 항공 수송, 상륙작전, 해상 지원으로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 여긴 북라이카.
5997
6098헌데 인민군은 1965년 10월 24일, 갑자기 방향을 틀더니 초고속 진격으로 늪지를 우회, 북라이카 내부로 진격한다. 동시에 늪지의 인민군을 공격하려던 제국군도 인민군 해군, 공군에게 두들겨 맞는다.
6199이로 인해 제국군 주병력은 치명타를 맞는다.
62100====베저부르크 포위전====
63101베저부르크라는 북라이카의 도시에서 제국군은 결집, 인민군의 날개를 자를 작전을 세운다. 목표 대상은 인민군 제3집단군.
64102베저부르크 시는 시가지이고, 험준한 산악으로 둘러싸여 있어 진입로가 한정되어 있었다. 이에 제국군은 포위진을 쓰면 유리하다고 판단해 이곳을 결전 장소로 정한다.
65103
66104그러나 인민군도 계획을 수정한다. 공중우세와 첩보전, 전황 분석을 통해 제국군의 목표가 베저부르크라는 것을 눈치챘다.
67105먼저 45번 국도와 49번 국도에서 행군 중인 제국군 4개 사단의 뒤를 포격과 폭격으로 막아 고립시켰다. 4개 사단은 하는 수 없이 베저부르크로 진입한다.
68106베저부르크를 포위하려는 인민군을 처음으로 가로막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포위된 제국군 4개 사단이었다. 북쪽 입구로 진입한 그들은 베저부르크를 포기하고 그대로 진군해 남서쪽 입구까지 전진했다.
69107
70108포위하는 양날개의 허리가 끊길 뻔했으나, 인민군은 북쪽 입구로 전진해 제국군의 뒤를 노린다. 제국군은 결사항전했지만, 1965년 11월 7일 패주한다.
71109====증류수 작전====
72110북라이카는 수도 방위를 위해 증류수 작전을 발동한다.
73111이는 북라이카 네벨스부르크 제3방면군 사령관 울프 하이만이 세운 작전이었다. 민간인을 포함시키고 주병력도 민간인으로 위장한 후, 네벨스부르크를 주력군이 포기하는 것처럼 위장한다. 그런 다음 네벨스부르크 내의 인민군을 한 점으로 유인, 역으로 격파하면 끝인 작전이었다.
74112제국재상, 군무상서가 모두 찬성하였으나 황제는 그 유인할 한 점이 황궁이라는 사실에 경악한다. 그러나 재상은 수면제를 먹여 황제를 납치 후 네벨스부르크 탈출에 성공한다.
75113
76114증류수 작전의 클라이맥스가 오르는 1965년 12월 22일. 인민군은 황궁을 점령하고 자축한다. 그들은 북라이카 입장에서는 치욕스럽게도 황좌를 불태우는 일을 저지른다.
77115그러나 그날 밤 이어진 북라이카의 집중 폭격, 포위섬멸전은 인민군을 피떡으로 만든다.
78116
79117훗날 살아남은 인민군의 한스 바데로프 중사는 "황궁이 불바다가 되었다. 정전부터 별궁까지 무차별적으로 포탄과 항공폭탄에 맞아 파괴되었다. 황제에 대한 존경심은 승리 앞에서는 눈 멀어 버렸다." 라고 회고했다.
80118
81119남라이카는 공군을 동원해 폭격을, 병력 충원을 통해 포위를 막아 보려고 했다. 물론 제국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대규모의 폭격 작전을 양동작전 삼아, 위장공군 병력을 남라이카 수도에 묶어두었다. 또 인민군의 보급선을 줄줄이 끊으며 처절하게 싸웠다.
82120
83121결국 보급, 병력손실 등의 타격 때문에 인민군은 후퇴하며 증류수 작전은 성공으로 남는다.
84122
85123여담으로 사태가 해결된 뒤 제국재상은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렸으나 황제는 5분 안에 울음을 그칠 것을 전제로 그를 용서했다는 풍문이 있다.
86124====백색 작전====
87125
88126====황색 작전====
89127
90128===종전===
911292년 동안 벌어진 전쟁으로 인해 라이카 본토는 초토화되었다. 군인 사망자가 52만 명, 민간인 사망자가 540만 명이 나온 대규모 전쟁이었다.
92130
93131민간인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는 다양한 요인이 지목된다.
941321. 지역감정
951332. 대규모 공습
961343. 소모전 구도
97135
981361967년 1월 9일, 북라이카의 탄저균 병기가 남라이카의 수도 발즈부르크 시를 강타했고, 15만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99137이에 북라이카와 남라이카 양국에서 반전 여론이 속출했고, 카를 항구 선상반란을 시작으로 양국 내에서 반란들이 터져나온다.
100138
101139===분단===
102140탄저균으로 대규모 인명이 살상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미합중제국, 루이나, 사비에트 등은 휴전을 제안한다. 남라이카 측은 1967년 2월 3일, 북라이카 측은 2월 5일에 이를 승낙함으로써 인치란트 전쟁은 종결된다.
103141남라이카 지방에는 에위그힐켄이 건국되고 그 즉시 유엔에 가입하게 된다. 북라이카 지방에는 라이카 제국 그대로 존재하나, 입헌군주제로 전환된다.
104142
851965년 라이카 인치란트에서 시작된 내전. 이 전쟁 결과 북라이카와 남라이카로 국가가 분단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인치란트 전쟁]] 문서를 참조.
10586====북라이카====
10687종전 후 북라이카 황실은 권위가 크게 추락했다. 탄저균 병기가 황제의 주도로 인해 투하된 것이 밝혀졌고, 이를 부인하는 황실은 민중에게서 외면당했다. 의회와 내각은 전쟁 전에도 자신들의 권력 확대를 요구했지만, 종전 후 이들은 시민 혁명을 일으키며 황실의 단순한 상징적 위치만을 인정하게 된다. 내각의 수장, 블룸하르트 리히텐은 황궁으로 향하여 황제에게 서명을 요구한다.
10788황실은 근위대를 동원해 내각을 저지하려고 했으나, 리히텐은 대규모 경비대와 헌병대를 동원하여 무차별 진압을 가했다.
10889
109==현대==
11090황제는 상징적 위치로만 남아 있겠다는 2월 6일 선포문에 서명하고, 북라이카는 내각책임제 국가의 길을 걷게 된다. 황제가 직접 내리던 귀족 작위는 모두 상징적인 이름으로만 남게 되었고, 황실 예산은 내각에 의해 제한과 견제를 받게 된다.
11191
11292황제는 2월 6일 선포문에 서명할 당시 제국재상과 국무상서, 군무상서 3요직의 임명식은 앞으로도 황실이 주최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모두 내각에 의해 선출되지만, 국민의 혼란과 오랜 전통을 깨지 않고자 황제가 형식상의 임명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11393내각은 이를 받아들였고, 오늘날까지도 3요직은 황제가 형식상 임명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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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프란츠 황태자의 쿠데타===
962021년 4월 5일 발생한 군사반란. 자세한 내용은 [[프란츠 황태자의 쿠데타]] 문서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