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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4 | 13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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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5 | 135 | 무명사제들의 통치는 그렇게 끝났다. 무너진 제단 위에 황금 독수리가 앉았고, 고랜드의 하늘에는 더 이상 계시가 내리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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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6 | 136 | 다만, 땅 아래로 묻힌 돌판은 아무도 부수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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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7 | | === 중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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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7 | === 고대로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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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 | 빌베른과 콘스탄티노폴등 주변의 대도시가 발달하여 본 시기부터는 제대로 기록물이 남게되었다(특히 빌베른의 황립서고의 지하에있는 로마시대 문서에서 고랜드의 행정을 입체적으로 확인할수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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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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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 | 선대의 랜드문명중 최초라는 타이틀과는 비교되게 빌베른과 콘스탄티노폴에 수출할 곡창지대로써의 역할이 강해지게 되었다. 이때당시 직할령임시수도 파테오리윰(pathe orie'um)가 이 "동향방로"라 불리었고 시내에서 몇키로미터만 멀어져도 밀밭과 농가외엔 아무 로마유적이 안나올정도였다(로마의 식민화 과정에서 수많은 선대유적이 버려졌고 경제가 완전히 빌베른과 콘스탄티노폴시에 종속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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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 | 120년대즈음 선대의 문자로된 기록물이 사라졌으며 랜드해협에서 4번째로 큰 로마식 신전인 폴리기니온신전이 착공되며 무명교는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 빌베른측의 기록을 참고하면 이때부터 고대라틴어와 초기빌베른어가 기존의 언어를 완전히 대체하였다한다("Dia Log'u Politi'cu it' Agerx'ai tia' Wiz t' heta' Ertha, Restitut'ir Louge Oralx t' heta' it Hith' tia' Domi-Roman'i" : "본지서방의 정사와 밭사람들의 언은, 본지와 본국나마의 백화로 대체되고있다." (빌베른캄피톨랴제1사고, 제2고대본 1기 69면, 124년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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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 | 143 | === 근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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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 | 144 | === 근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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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 | 145 | === 현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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