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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1 (새 문서) | 1 | ==고대== |
| 2 | 라이카 본토는 척박한 땅이었다. 이 땅에서 처음 살던 이들은 스스로를 베스터인이라고 불렀다.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의 유물로 종합해 보건데, 라이카의 농경은 늦게 시작되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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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최초의 고대 국가 자이테스 왕국은 3세기 경 수립되었고 5세기 경 멸망했다. 자이테스 법전, 톨지어 왕궁 등의 유산이 전해져 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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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자이테스 법전은 노예 제도 명시, 세금 납부, 고대 시민 사회의 체계 등을 규정한 법률이었다. (라이카인들은 이에 자부심을 지니고 있어, 현재 라이카의 헌법 이름도 노이에 자이테스 즉 새로운 자이테스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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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톨지어 왕궁은 현재 옛터와 훼손된 조각상 몇 개가 전해져 온다. 규모는 작은 편이며 라이카의 관광명소 중 하나다. | |
| 9 | 자이테스 왕국의 유명인물로는 셰다르 장군이 있다. 셰다르 장군은 치밀한 분석과 부하의 말을 경청하는 것을 통해, 항상 유리한 상황으로 아군을 위치시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츠바이란트 지방에서 그의 격전을 보여주는 유적이 발견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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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셰다르의 부하였으나 셰다르 사후, 그의 자리를 노폴트 장군도 있다. 노폴트는 화려하고 장대한 전술을 구사하며, 횟수는 적지만 빛나는 전과를 남겼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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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 기원후 402년 자이테스의 왕 치무스가 남긴 역사 기록에는 당시 사회의 모습이 잘 실려 있다. 치무스 대에는 전국을 6성 25주로 나누었고, 각 주마다 주장을 파견하여 6성의 성주들에게 보고를 올리게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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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 6성은 지역을 구분하는 단위다. 성주는 부분적인 군사력과 함께 왕의 중앙 군사력도 지원받을 수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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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 주장은 각 주의 통솔자다. 세금, 인수조사, 각 주의 재판, 치안 등을 책임진다. 6개월마다 성주에게, 1년마다 왕에게 보고를 올렸다. | |
| 18 | 자이테스 시대의 의복은 척박하고 거친 날씨에 알맞은 옷이 많았다. 보라색을 만들기가 어려웠기에, 보라색이 고귀한 색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 |
| 19 | 이 전통은 현대까지 이어져, 예복에 보라색 포인트를 넣는 것이 관습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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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중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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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근대== | |
| 24 | ===연합제국 성립=== | |
| 25 | 1779년, 세력을 키우던 라이카 왕국은 힐켄팔렌 왕국과 연합해 라이카 제국을 선포한다. 초대 황제는 라이카의 세하린 가문의 알베르트 1세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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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서기 1783년, 라이카의 팽창을 경계하던 오스텐 왕국은 코페네스 맹약을 맺고 라이카를 침공한다. | |
| 28 | 맹약에는 오스텐 왕국, 비테발트 왕국, 라인룬트 공국이 참여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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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 이 전쟁은 코페네스 전쟁이라고 불린다. 전쟁 결과 오스텐은 회복 불가한 타격을 입고 라이카에 합병된다. 비테발트와 라인룬트는 평화조약 하에 물러난다. 이에 라이카는 안정기에 접어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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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 19세기는 산업혁명의 시대였다. 라이카 황실의 주도 하에 이뤄진 산업혁명은 라이카의 국력을 크게 올려주었으나, 부의 불평등,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인구 과밀 등 다양한 문제를 낳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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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다수의 철학자, 사회학자들이 이 시기에 활발히 활동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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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 산업혁명과 함께 라이카 곳곳에서 실시된 교육은 시민 계층의 성장을 낳았다. | |
| 37 | 1832년, 4월 혁명에 의해 라이카 황실은 준입헌군주제가 된다. 상원과 하원의회, 근대적 법률과 재판 절차의 수립 등이 이때 탄생하나 황제의 엘리트독재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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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인치란트 전쟁=== | |
| 41 | 1964년 라이카 인치란트에서 시작된 내전. 미합중제국의 지원을 받은 라이카 왕국과 사비에트의 지원을 받은 힐켄팔렌이 중심이 되어 벌어진 내전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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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 라이카 왕국은 제국 내에서 발언권이 가장 강력한 지방이었다. | |
| 44 | 당시 라이카 내에서는 힐켄팔린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공공연히 존재했다. 힐켄팔린 출신은 급여, 승진, 휴가 등 다양한 방면에서 차별을 받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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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 이런 차별은 정부 기관에서도 공공연히 이뤄졌다. 1963년의 국정감사 보고서에 적혀 있을 정도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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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 여기에, 라이카가 제 1차 랜드 대전에 참여하며 두 지역 간 감정은 악화된다. 상대적으로 빈곤층이 많던 힐켄팔렌 지역에서 징집과 단순 노동력 보충이 이뤄졌다. 힐켄팔렌 지역은 그 결과, 전후에도 라이카 지방에 비해 낙후된 상태로 남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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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 힐켄팔린은 1964년 7개 주와 발즈부르크 조약을 맺고, 에위그힐켄 공화국을 선포하며 라이카에 선전포고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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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 ====흑색 작전==== | |
| 53 | 에위그힐켄은 단기 결전으로 전쟁을 끝내기 위해 흑색 작전을 발동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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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 ====백색 작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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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 ====황색 작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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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 ===종전=== | |
| 60 | 7년 동안 벌어진 전쟁으로 인해 라이카 본토는 초토화되었다. 군인 사망자가 52만 명, 민간인 사망자가 540만 명이 나온 대규모 전쟁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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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 민간인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는 다양한 요인이 지목된다. | |
| 63 | 1. 지역감정 | |
| 64 | 2. 대규모 공습 | |
| 65 | 3. 소모전 구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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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 라이카 왕국의 10kt짜리 핵탄두가 에위그힐켄의 수도 발즈부르크 시를 강타했고, 15만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 |
| 68 | 이에 라이카와 에위그힐켄 양국에서 반전 여론이 속출했고, 카를 항구 선상반란을 시작으로 양국 내에서 반란들이 터져나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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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 ===분단=== | |
| 71 | 핵폭격 사태에 경악한 미합중제국과 사비에트 양국의 중재를 거쳐, 라이카 제국은 분단된다. | |
| 72 | 라이카 왕국의 서라이카와 에위그힐켄 공화국의 동라이카로 나뉘어 존재하게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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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 ====서라이카==== | |
| 75 | 서라이카라고 불리지만, 라이카 제국이 정식명칭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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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 ====동라이카==== | |
| 78 | 전후 동라이카에는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선다. 정식 명칭은 에위그힐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 | |
| 79 | 에위그힐켄 공화국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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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 ==현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