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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1 (새 문서) | 1 |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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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 개요 == | |
| r5 | 4 | 실질적인 건축과 여타 매체로써의 표현은 카스테라서버서의 그것만이 유일한 세계관인 랜드해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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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 국가목록 == | |
| r13 | 7 | [include(틀:랜드해협)] |
| r5 | 8 | |
| r14 | 9 | == 관(觀)상의 세계사 == |
| 10 | === 세계사 === | |
| r7 | 11 | 랜드해협 세계사의 기본틀은 현실의 세계사에 기반하나, 랜드해협의 존재자체-미합중제국-소련유지-각종 판타지요소등 여러 차이점이 존재하고, 랜드해협만의 역사흐름이 지역별로 분화되어 각국문서를 참조하는대엔 이해의 한계가 따를 뿐더러 힘들다. 그리하여 현실과의 차이점을 위주로-일개의 단으로써 정리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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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 (이상 노수탈에게 전체 틀을 맏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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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14 | 15 | === 랜드사 === |
| 16 | ==== 선사시대 이전 ==== | |
| r12 | 17 | 태초의 세계는 어둠과 물뿐인, 아직 아무 이름도 붙지 않은 공간이었다. 그 침묵과 공허 사이에서 처음 깨어난 존재가 고요한 지성, 에루바였다. 에루바는 소리 내어 말하지 않고도 생각으로 형상을 그리는 신이었고, 그는 먼저 시간과 흙, 그리고 의지라는 세 가지를 만들어냈다. 시간은 흐르며 세월을 만들고, 흙은 응고되어 육지가 되었으며, 의지는 스스로를 밖으로 밀어 올려 결국 생명을 움트게 했다. 그렇게 땅이 드러나고 바람이 불고 숨이 생겼을 때, 에루바는 흙을 집어 들어 인간을 빚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을 완전한 존재로 만들지 않았다. 일부러 그 안에 하나의 빈틈, 곧 ‘결핍’을 남겨두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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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12 | 19 | 이 결핍은 처음에는 이유 모를 슬픔과 막연한 갈망으로 나타났다. 채워지지 않는 허기처럼 마음 어딘가를 건드리던 그것은 점차 형태를 바꾸어 탐욕, 거짓, 폭력, 지배의 욕망으로 자라났다. 에루바는 이 모습을 보고도 그것을 단순한 실패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결핍이 불완전함의 낙인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신은 인간이 선을 따르도록 운명을 미리 정해두지 않았고, 악을 피하도록 강제로 붙들어두지도 않았다. 그는 인간에게 죄를 지을 자유까지 포함한 선택의 권리를 허락했다. 무엇을 따르든, 그 선택과 결과의 책임은 오직 인간 자신에게 남겨진 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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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그러나 인간들은 이 자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다. 스스로 세운 규율을 스스로 깨뜨리고, 서로를 믿기 위해 쌓았던 성벽을 서로를 의심하며 무너뜨렸다. 도시들은 욕망과 음모 속에서 불타올랐고, 이웃은 이웃을 속이며 칼을 들이밀었다. 심지어 아버지가 아들을 노예로 팔아버리는 일까지 일어났다. 에루바는 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며 슬퍼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자유를 준 이상 그 결과를 다시 회수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오래 침묵하던 그는 마침내 결심을 내린다. | |
| 22 |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을 들어 왕을 삼고, 또 한 사람을 들어 그 왕을 돕게 하리라.” | |
| 23 | >---- | |
| 24 | > '''쉽게보는 랜드사 中''' | |
| 25 | 에루바가 말한 왕은 백성 위에 올라타 그들을 억누르는 지배자가 아니었다. 고대 고랜드의 말로 그는 아샤-엘, 곧 ‘질서를 되살리는 자’라 불렸다. 왕은 신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인간 안에 남겨진 결핍과 세상 곳곳의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하는 자였다. 신이 남겨둔 빈틈 위에 새로운 질서를 심는 자, 그것이 왕의 역할이었다. 이와 함께 에루바는 인간에게 단 하나의 도구를 더 내린다. 그것이 바로 법, 라주(Lazu)라 불리는 말씀이다. 법은 처음 깎아 만든 돌판 위에 새겨졌고, 이후 세대에 전해지며 훗날 하이카르 법전의 기원이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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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에루바가 처음의 법을 돌판 위에 새겨 넣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은 다시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제각기 자기 손에 쥔 흙과 돌, 제단의 재를 들고 모여든 그들은, 신의 이름으로 한 번 더 함께 살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자 했다. 가장 먼저 그들이 한 일은 재를 쌓고, 그 위에 돌을 세우는 것이었다. 제단이 먼저 올라가고, 그 주변을 감싸듯 흙담과 집들이 생겼다. 사람들은 이곳을 아트람(Atram)이라 불렀다. 고랜드의 오래된 말로 ‘제단 위의 집’이라는 뜻이었다. 신 앞에 세운 집, 법을 붙들기 위해 모인 집, 고랜드인들이 기억하는 최초의 도시국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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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아트람에서 왕은 처음부터 단순한 지배자가 아니었다. 그는 성벽 위에서 명령만 내리는 군주가 아니라, 제단 앞에서 제물을 올리고, 분쟁이 생기면 판결을 내려야 하는 사람, 곧 제사장이자 재판관이기도 했다. 에루바가 내려준 법, 라주(Lazu)를 땅 위에서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팔과 입, 그 역할을 맡은 존재가 바로 왕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베라쉬(Berash)라 불렀다. ‘신의 무게를 짊어진 자’라는 뜻이었다. 이 호칭에는 단지 권능이 아니라 짓누르는 책임의 이미지가 함께 들어 있었다. 왕이 서 있는 자리는, 신과 인간 사이에서 법을 어긋나지 않게 붙들어야 하는 좁은 다리와도 같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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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 그러나 그 다리를 혼자 건너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다. 왕의 옆에는 언제나 예언자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세비르(Sevir)라 불렀는데, 이는 ‘신의 귓속말을 듣는 자’라는 뜻이었다. 세비르는 단순히 왕에게 조언을 올리는 문관이 아니었다. 에루바의 뜻을 해석하고, 침묵 속에서 내려오는 신탁을 듣고, 그것을 인간의 언어로 바꾸어 왕 앞에 올리는 존재였다. 신과 왕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져 한쪽이 다른 쪽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 사이에 놓인 다리가 바로 예언자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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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 아트람에서 통치는 언제나 이 두 사람의 어깨 위에 함께 올려져 있었다. 베라쉬와 세비르, 왕과 예언자가 나란히 서서 도시에 질서를 부여했다. 둘 중 하나가 오만해지거나 부패하면, 다른 하나는 그것을 지적하고 되돌릴 권한을 가졌다. 왕이 힘을 빌미로 법을 구부리려 하면, 예언자는 “라주가 그렇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었고, 예언자가 신탁을 빌어 자기 욕망을 밀어붙이려 들면, 왕은 “이 도시는 그 짐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맞설 수 있었다. 고랜드 고대의 정치체제, 이른바 ‘쌍기둥 통치’는 바로 이 균형 위에 세워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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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 예언자는 전쟁터에서 칼을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쟁을 시작할 수 있는 말, 전쟁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말은 그 입에서 나왔다. 원정군이 성문을 나서기 전에, 왕은 세비르에게 물어야 했다. “이 전쟁은 허락되었는가?” 사면을 내릴 때에도, 새로운 세금과 제도를 도입할 때에도, 왕은 에루바의 뜻을 묻는 형식을 거쳤다. 시간이 흐르며 이 구조는 고랜드 전역으로 퍼져 나가, 왕권이 아무리 강해져도 어디선가 반드시 그것을 비추는 예언자의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지는 전통을 남겼다. 어떤 시대에는 왕이 예언자를 감히 거역하지 못할 정도로 세비르의 영향력이 강해지기도 했고, 어떤 시대에는 왕이 예언자를 허수아비로 만들기도 했지만, 적어도 이 첫 번째 도시에 한해서만큼은, 왕과 예언자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사람들이 당연한 질서로 받아들였다. 아트람은 그런 기억을 품은 도시로, 이후 고랜드가 왕과 법, 신탁을 이야기할 때마다 되돌아보게 되는 가장 오래된 원형으로 남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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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 아트람이 번성하자, 사람들은 더 이상 한 도시의 성벽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강 따라 비옥한 토지와 언덕 위의 평탄한 자리를 찾아 정착지가 생겨났고, 그곳마다 새로운 제단과 집들이 세워졌다. 어느 곳에는 에시갈이라는 도시가, 또 어느 곳에는 투르 안-에르, 발메쉬, 카리-수르, 네프 할람 같은 이름을 가진 도시들이 하나씩 솟아올랐다. 각 도시는 처음에는 아트람을 흉내 내어 작은 제단과 집 몇 채로 시작했지만, 곧 자기만의 왕을 세우고, 자기만의 신전을 세워 에루바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법을 읽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졌고, 제사장의 옷 색과 의식의 순서도 도시마다 차이가 났다. 사람들은 “우리가 섬기는 에루바가 더 바른 모습”이라 믿었고, 그렇게 작은 차이들은 차츰 정체성이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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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그러나 인간 안에 남겨진 결핍은 어디서나 비슷한 모습으로 자라났다. 왕들은 자신을 신의 대리인, 에루바의 그림자라고 불렀지만, 서로의 성역을 함부로 넘나들기 시작했다. 강의 상류를 차지한 도시는 물길을 조절하며 하류 도시를 압박했고, 수확이 풍성한 평야를 가진 도시는 곡식을 무기 삼아 이웃 도시의 숨통을 조였다. 처음에는 사절을 보내 법과 계율을 들이밀며 협상을 시도했지만, 곧 말보다 창이 먼저 나갔다. 제단 앞에서는 “라주가 평화를 명한다”고 낭독하면서도, 성문 밖에서는 군대가 진형을 갖추는 일이 잦아졌다. 사람들은 법이 분쟁을 끝내 주기 전에, 먼저 창끝이 진실을 결정하는 풍경에 익숙해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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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이런 시대에 도시들이 선택한 해답은 서로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로부터 더 멀어지는 것이었다. 각 도시는 성벽을 더 높이 쌓았고, 해자와 망루를 덧붙였으며, 여분의 곡식을 저장하기 위한 창고를 늘렸다. 해가 질 때 성문이 닫히면, 밖은 끝없는 불신과 위험의 땅이 되었고, 안은 겨우 유지되는 질서의 섬이 되었다. 후대의 학자들은 이 시기를 “성벽의 시대”라고 부른다. 대략 기원전 1900년경에 해당한다고 여겨지는 이 시대에는, 고랜드 전역에 흩어진 도시들이 저마다 자신만의 법전을 새기고, 신전 문서를 정리하며, 사제 연합과 왕실 인장을 만들어 자신의 독립성과 정통성을 주장했다. 아트람에서 시작된 왕과 법, 제단의 모형은 그대로였지만, 그 위를 덮고 있는 깃발과 문양, 목소리는 도시마다 달랐다. 누구도 하나의 중심을 인정하지 않았고, 모든 도시는 자기 성벽 안에서만 완전한 세계를 꿈꾸었다. 그렇게 고랜드는 겉으로는 번성해 보이면서도, 안으로는 이미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조용한 분열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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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 카리-수르의 왕궁에서 자라던 어린 왕자 아메쉬 하이카르는,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피와 재의 냄새를 배웠다. 계곡 건너 도시가 불타오르던 밤, 그는 궁정의 높은 누각에서 그 장면을 내려다보았다고 전해진다. 불꽃은 강을 건너오지 못했지만, 붉은 연기는 하늘을 덮었고, 불빛은 사람들의 비명과 함께 흘러갔다. 어른들은 그것을 “저 도시가 법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아메쉬에게는 그 말이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했다. 그는 궁정 서고에 쌓인 돌판과 문서를 훑어보며, 같은 에루바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서로를 짓밟는 도시들의 역사를 따라 읽었다. 어느 날 그는 측근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결핍은 사람을 서로 싸우게 만든다. 하지만 질서는 사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 훗날 기록자들은 이 말을 하이카르 왕조의 서문으로 삼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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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스무 살이 되던 해, 아메쉬는 마침내 자신의 도시를 넘어 첫 원정을 결정했다. 첫 목적지는 아트람이었다. 왕과 예언자가 나란히 서 있었다는, 고랜드의 첫 도시. 그곳은 이제 성벽을 높이 세운 채, 예전의 영광을 잃어버린 반쯤 고립된 도시국가가 되어 있었다. 아메쉬는 아트람을 정복하면서 그 도시를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세우려는 새로운 질서의 상징으로 삼았다. 그는 아트람의 제단 앞에서 왕관을 쓰지 않고 섰고, 그 자리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단지 카리-수르의 왕자가 아니다. 나는 도시들을 이어 붙일 자, 하이카르의 대왕, 샤르 하이카르이다.” 그날 이후로 그는 하나의 성에서만 통치하는 왕이 아니라, 여러 도시를 잇는 대왕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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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아트람 정복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메쉬는 이어 에시갈, 투르 안-에르, 발메쉬, 네프 할람을 차례대로 굴복시켰고, 때로는 군대로, 때로는 혼인과 조약으로 도시들을 묶어 나갔다. 기록에 따르면 그가 직접 정복하거나 복속시킨 도시국가는 모두 일곱 곳이었다. 그는 각 도시의 왕을 모두 폐위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들을 “샤르의 아래에 서는 작은 왕들”로 재규정했고, 중요한 사법과 조세, 군사권은 자신의 손 아래로 모았다. 도시마다 제각각이던 법전은 하이카르 궁정에서 다시 편집되었고, 에루바의 법을 해석하는 기준을 하나로 묶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왕이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법이 왕의 손을 통해 하나의 목소리를 갖게 되는 과정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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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이렇게 탄생한 하이카르 왕조는 고대 고랜드 역사에서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의 중앙 왕정체제를 구축한 정권이었다. 그들은 대왕의 권위를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라 선포했고, 샤르의 통치를 “신의 명령, 라주를 땅 위에서 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왕조는 치안을 재정비하고, 흩어져 있던 농토를 재측량해 세금을 정했고, 각 도시마다 “재판 사제”라 불리는 관리를 파견해 법률 해석을 통일했다. 또 고대 고랜드 문자를 정립하고 보급하면서, 기록과 행정이 도시마다 들쭉날쭉하지 않도록 다듬었다. 하이카르 이전의 세계가 “각자 자기 성벽 안에서만 완전한 법을 주장하던 시대”였다면, 하이카르의 시대는 처음으로 성벽 너머의 일까지 하나의 언어로 적어 넣을 수 있게 된 시기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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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 그러나 이 왕조 역시 에루바가 남겨 둔 결핍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대왕의 혈통은 가지처럼 갈라졌고, 후계자 분쟁이 잦아졌다. 지방에 파견된 총독들은 점차 자기 도시의 이해를 먼저 생각하기 시작했고, 재판 사제들 사이에서도 누가 진정한 라주의 뜻을 더 잘 해석하는지 두고 논쟁이 계속되었다. 왕건은 여전히 에루바의 이름을 내세웠지만, 그 이름 아래에서 움직이는 인간들의 욕망은 점점 서로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갔다. 하이카르 왕조는 약 삼백 년 동안 고랜드 전역을 다스렸다. 그러나 왕들의 이름이 돌판에서 돌돌 말린 두루마리로 바뀌고, 기록실의 문서가 쌓이면 쌓일수록, 왕조의 힘은 겉으로만 웅장해지고 속은 비어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한 왕이 죽고, 다음 왕을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다툼이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첫 번째 통합이 끝났으며, 고랜드는 다시금 분열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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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 하이카르 왕조의 마지막 군주, 사무엘 하이카르 5세가 병상에서 숨을 거두었을 때, 고랜드의 궁정에는 잠시 아주 짧은 침묵이 흘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 침묵은 애도가 아니라 계산의 시간이었다. 그의 장례를 치르기도 전에, 왕위 계승을 둘러싼 서약과 약속, 혼인과 혈통의 이야기들이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떠올랐다. 어느 공주는 자신이 진정한 상속인이라 주장했고, 어느 왕자는 자신이 더 오래 군대를 거느려 왔다고 외쳤으며, 지방 총독들은 각자의 도시에서 “정통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피비린내 나는 내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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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 처음에는 사람들 누구도 이 싸움이 오래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왕위라는 의자 하나를 두고 벌어진 권력 다툼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곧 이 싸움이 왕실의 울타리를 훌쩍 넘어서는 것을 모두가 보게 되었다. 예언자단이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왕가의 부패와 타락을 질타하며 신탁을 들고 나섰다. 어떤 예언자는 “에루바께서 더 이상 하이카르의 집을 인정하지 않으셨다”고 외쳤고, 다른 예언자는 “오직 특정 혈통만이 왕좌를 이을 자로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동일한 돌판에서 읽혔던 법과 약속이, 서로를 향해 겨누는 칼날의 근거가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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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 이제 싸움은 단지 누가 왕이 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믿어온 신과 법, 곧 라주(Lazu)가 누구의 입을 통해 세상에 선포될 것인가의 문제로 바뀌었다. 한때 하나였던 신의 뜻은, 기록자들의 표현대로라면 “열두 개의 혀로 갈라져 말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적었다. “한 얼굴의 신이 열두 혀로 말한다면, 누가 그의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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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 예언자들은 더 이상 하나의 성소에 모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자신이 받은 신탁이야말로 진정한 하이카르의 계승이라고 주장하며 독자적인 제단을 쌓았고, 또 다른 이는 “왕의 시대는 끝났다”며 스스로를 통치자로 세우고 신정 도시국가를 세웠다. 왕권은 도시마다 쪼개졌고, 어떤 곳에서는 왕이 완전히 사라지고 예언자만이 법과 칼을 동시에 쥐게 되었다. 각 도시의 성벽 안에는 각기 다른 설교와 기도가 울려 퍼졌다. 이름은 같은 에루바일지 몰라도,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신의 얼굴과 목소리는 점점 달라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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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 이 와중에 가장 큰 갈라짐은 “성소 예언자단”과 “우르 하이카르 전통파”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성소 예언자단은 예언자가야말로 진정한 통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왕은 우상에 불과하며, 이미 수차례 타락으로 자신의 자리를 잃었다고 비난했다. 반대로 우르 하이카르 전통파는 신과 인간 사이에는 반드시 중간에 질서를 유지하는 기둥이 필요하며, 그 기둥이 곧 왕권이라고 믿었다. 이들은 “예언자는 길을 보여줄 뿐, 길 위를 걸어가는 발은 왕이어야 한다”고 설교했다. 처음에는 신학 논쟁처럼 보였던 이 갈등은 일부 도시에서 피 묻은 내전으로 변했다. 같은 라주를 읊조리던 사제들이 서로를 이단이라 부르며 성소 앞마당에서 싸움을 벌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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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 이 시대를 살아간 고랜드인들은 나중에 자신들의 시대를 “영혼이 갈라진 시대”라 불렀다. 하나의 신을 향해 뻗었어야 할 마음이 수십 갈래로 찢어져 서로를 향해 도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각 도시는 저마다 다른 판본의 율법을 만들어냈고, 기존의 라주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세부 조항과 해석을 바꾸어 자기 도시만의 규율을 세웠다. 사람들은 그것을 “세미-라주(Semi-Lazu)”, 곧 분파적 율법이라고 불렀다. 이단 심문과 화형, 정죄와 축출이 모두 신의 이름으로 이루어졌고, 전쟁 역시 신탁을 근거로 선포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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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 하이카르 왕조가 남긴 통합의 기억은 점점 옅어졌다. 지도 위의 고랜드는 더 이상 하나의 왕국이 아니라, 수십 개의 이름 없는 도시들로 흩어진 얼룩처럼 보였다. 도시 간에 통용되던 공동의 언어와 상징은 깨지고, 성벽 밖으로 나가는 상인은 매번 새로운 법과 세금을 기억해야 했다. 그 어떤 예언자도, 그 어떤 왕도 다시 “샤르(대왕)”라는 칭호를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곧장 수많은 다른 목소리들이 “그것은 우리 것이 아니다”라고 외칠 것이 너무 뻔했기 때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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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 결국 고랜드에는 신의 이름으로 나뉜 도시들, 서로 다른 라주를 내세우는 제단들,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며 어느 쪽도 완전히 믿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남았다. 에루바의 얼굴은 여전히 하늘 어딘가에 있다고 믿었지만, 그 얼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너무 많아져, 어느 것도 확실한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바로 그때부터였다. 사람들이 “언젠가 누군가가 이 혼란을 끝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대신, “아마 우리는 다시는 하나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체념을 속으로 품기 시작한 것은. 영혼이 갈라진 시대란, 단지 종교와 정치가 분열된 시대가 아니라, 사람들이 마음속에서 조용히 통합의 가능성을 내려놓아 버린 시대이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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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 두 번째 분열기의 끝자락에 이르렀을 때, 고랜드의 땅에는 더 이상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올려다볼 수 있는 하나의 산도, 하나의 신전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한때 왕들이 앉아 있던 궁정은 서로 다른 군벌의 성채로 바뀌었고, 예언자들이 신탁을 선포하던 성소는 분파마다 따로따로 갈라져 그들만의 작은 신전을 세웠다. 도시들은 서로의 율법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웃 도시에서 온 사제가 들고 온 돌판은 “우리의 라주가 아닌 것”이라며 눈앞에서 깨뜨려지기 일쑤였다. 에루바의 이름은 여전히 입에 올려졌지만, 그 이름을 수식하는 칭호와 별명, 새로운 속성들이 너무 많아져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 이름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제단 앞에서 무릎을 꿇었지만, 정작 누구에게 기도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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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 | 그 틈을 파고든 이들이 바로 자신의 이름을 숨긴 자들이었다. 그들은 어디 출신인지, 어떤 가문에서 왔는지도 밝히지 않았고, 서로를 부를 때조차 본명을 쓰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들을 “무명사제(네주림 엘바즈, Nezurim Elvaz)”라고 불렀다. 처음에 그들의 설교는 놀랄 만큼 부드러웠다. 시장 한켠, 무너진 신전의 계단 위, 혹은 버려진 제단 옆에서 그들은 조용한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말을 건넸다. “이 세계는 처음부터 금이 가 있었다,” 그들의 말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금이 완전히 무너져야만, 신의 손이 다시 닿을 수 있다.” 사람들은 그 말이 불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상하리만치 귀를 기울였다. 이미 모든 것이 금이 가 있고, 어제 믿었던 율법이 오늘은 이단이 되는 세상에서, 차라리 한 번 완전히 무너져 버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피곤한 체념이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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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 | 무명사제들은 어느 한 도시의 사람으로 머무르지 않았다. 그들은 도시에서 도시로 떠돌며, 오래된 신들의 이름이 새겨진 돌판을 “거짓된 옛 언어”라 부르며 부수거나 불태웠다. 제단 뒤편에 숨겨두었던 사제들의 율령 두루마리를 찾아내 “사람의 욕망으로 만든 가죽 조각”이라고 선언했고, 때로는 성소 한가운데에서 낡은 법전을 찢어 광장 위에 흩뿌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무언가를 부순 자리에는 언제나 같은 장면이 이어졌다. 그들은 깨진 돌을 치우고 평평한 흙을 다진 뒤, 새 돌판을 가져와 그 위에 자신들이 전하는 새로운 율법을 새겨 넣었다. “진정한 라주(Lazu)는 흙에 새겨져야 한다.” 그들의 이 말은, 오래된 체계를 부정하는 선언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체계를 세우기 위한 구호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 모순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어느새 그들이 다져 놓은 흙판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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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 무명사제들의 실천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투성이였다. 그들은 권력을 향한 욕망을 “우상 숭배보다 더한 죄”라고 비난하면서도, 정작 고대 성소에 남아 있는 기록과 해석을 누구보다 철저히 독점했다. 각 도시의 귀족들과는 재건을 위한 협정을 맺으면서도, 설교에서는 “옛 귀족은 짐승보다 못하다”고 외치며 인민을 선동했다. 때때로 그들은 도시의 아이들에게만 글과 새 율법을 가르치고, 어른들을 “더러움에 찌든 자”라 부르며 성소 바깥으로 돌려보냈다. 성벽 안에서조차 세대 간의 분열이 만들어졌고, 아이들은 어른들이 외우던 라주를 비웃으며 새로운 기호와 문장을 손에 익혀 갔다. 이렇게 무명사제들은 과거를 부정한다는 이름으로 또 다른 특권과 장벽을 쌓아 올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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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 이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급진적인 분파는 “깨진 제단의 설교자들(Thazir Ka’tarim)”이라 불렸다. 그들은 단순히 문서와 돌판을 부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어떤 도시에서는 한때 왕이었던 자들의 무덤을 파헤쳐 관을 꺼내 불태웠고, 오래된 신전의 기둥을 줄로 묶어 끌어내린 뒤 그 자리에 새로운 흙 제단을 쌓았다. 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더 이상 옛 왕조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고, 사람들은 며칠 사이에 자신들의 조상과 신들, 법전까지 한꺼번에 잃어버린 채 낯선 계시의 언어를 기억해야 했다. 상실과 공포, 그리고 희미한 해방감이 뒤섞인 감정이 도시 전체에 내려앉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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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 |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명사제들은 분명히 어느 정도의 “질서”를 세웠다. 그 질서는 왕의 칼이나 예언자의 번개 같은 언어로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린 사람들 앞에,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서로를 죽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대신 옛 것을 모두 포기하고, 새로 다져진 흙판 위의 글자를 따라 살라고 요구했다. 피로에 젖은 사람들은 그 요구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도, 마치 오랜 가뭄 끝에 찾아온 비처럼 그들의 말을 받아들였다. 피를 부정하는 듯한 그들의 언설 속에, 보이지 않는 폭력과 통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꿰뚫어 볼 힘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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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 그래서 어떤 기록자는 훗날 이렇게 썼다. “무명사제들의 계시는 피를 멈추게 했다. 그러나 피를 멈추게 한 손이 언제나 자비로웠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피에 지쳐 있었고, 이름 없는 자들이 들고 온 ‘새 계시’에 미친 듯이 굶주려 있었다. 바로 그 굶주림이, 모순으로 가득 찬 교의와 통제를 고랜드 전역에 퍼지게 만들었다. 영혼이 갈라진 시대의 황폐한 끝에서, 무명사제들의 통합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 대가를 요구할지 모른 채, 무너진 성소의 파편 위에 다시 한 번 새로운 제단을 허락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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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 | 무명사제들이 고랜드의 도시들 사이를 떠돌며 돌판을 부수고 흙판을 세운 지 수십 년이 흘렀을 때, 사람들은 어느새 그들을 더 이상 낯선 순례자처럼 보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흰 두건과 가면은 장터와 재판소, 신전의 계단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고, 아이들은 옛 귀족의 문장을 외우기보다 무명사제들이 가르치는 새로운 글자와 율법을 먼저 배웠다. 피로와 혼란에 지친 도시들은 각자 속으로 같은 결론을 굴리고 있었다. “이제는 누군가가 결정을 내려야 한다. 누구든 상관없으니, 더는 서로 싸우지 않게만 해 준다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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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 | 그런 바람이 서로 닿을 만큼 약해졌을 때, 무명사제들은 마침내 형식을 갖추었다. 어느 해, 여러 도시의 대표 사제와 장로들이 한 성소의 무너진 회랑에 모였고, 그 회합 이후부터 사람들은 새로운 이름을 듣기 시작했다. 에루바 연맹. 에루바의 이름으로, 도시들을 한데 묶는 연맹. 겉으로만 보면 그것은 피로 얼룩진 분열의 시대를 끝내고 다시 하나의 질서를 세우려는 시도로 보였다.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 이름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곧 그 이름 위에 덮인 가면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깨닫게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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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 에루바 연맹 아래서 통치의 주체는 왕도 예언자도 아니었다. 무명사제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이름 없는 자들”이라 불렀지만, 그들의 규율은 이제 도시의 골목과 기록실 깊숙한 곳까지 뻗어 들어갔다. 그들은 먼저 각 도시의 문서보관소와 재판소에 자기 사람들을 보냈다. “라주를 올바로 보관하기 위한 조치일 뿐입니다.” 그들의 설명은 언제나 부드러웠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옛 귀족 가문과 사제단이 수 세대에 걸쳐 쌓아 온 기록과 문서는 하나하나 그들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열람할 수 없게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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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 귀족 가문들은 여전히 대문 앞에 문장을 새기고 손님을 맞았지만, 더 이상 그 이름만으로 권위를 주장할 수는 없었다. 연맹의 사제들은 그들에게 “지식과 경전의 시험”을 치를 것을 요구했다. 에루바의 새로운 율령을 얼마나 정확히 외우는지, 옛 라주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할 수 있는지, 흙판 위의 문장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베껴 쓸 수 있는지. 시험에 실패한 자들은 “신의 말씀을 온전히 품지 못한 자”로 분류되었고, 그날 이후로 정치에서 배제되었다. 시험에 통과한 자들조차도 형식적인 통치자로 남을 뿐이었다. 그들이 결정을 내리면, 연맹에서 파견된 사제가 그것을 검토하고 “라주와 일치하는지” 확인했다. 결국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실제로 도시를 움직이는 손이 누구의 것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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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 | 연맹의 중심에는 고문석판, 카드림 탈타쉬(Kadrim Taltash)라 불리는 장소가 있었다. 과거의 의회나 장로회의 흔적 위에 세워진 이 공간은 겉으로 보기에는 회의장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둥글게 둘러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었고, 중앙에는 돌판을 세워 둘 제단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논쟁은 벌어지지 않았다. 논의를 통해 새 법이 만들어지는 일도 거의 없었다. 고문석판은 회의체가 아니라, 이미 결정된 율령을 낭독하는 장소에 지나지 않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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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 | 연맹의 법해석자, 탈라짐(Thalazim)이라 불리는 이들이 먼저 흙판과 돌판 앞에서 문장을 다듬었고, 그 내용이 완전히 굳어지면, 비로소 고문석판에서 “새로운 계시”라는 이름으로 낭독되었다. 도시에서 온 대표들은 그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그들에게 허락된 일은 동의를 표현하는 것뿐이었다. 반대는 곧 “신의 뜻을 막는 행위”로 간주되었고, 말이 길어질수록 그들의 자리는 뒤로 밀려났다. 어떤 이들은 초기에는 의견을 내보려 했다가, 몇 차례의 공개 망신과 신성모독 혐의를 겪고 나서야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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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 | 무명사제들의 질서는 그 자체로 역설의 집합이었다. 그들은 “신의 뜻만이 모든 권위의 근거”라고 반복해서 주장했다. 인간의 의견과 감정, 혈통과 전통은 모두 그 앞에서 무가치하다고 설교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들이 새로 만든 율령을 암송하지 못하는 자는 더 이상 온전한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장터에서 실수를 한 상인은, 아직 모든 조항을 외우지 못한 탓으로 “불완전한 존재”로 낙인 찍혔고, 어린아이조차 라주의 기본 조항을 틀리면 공개적인 꾸짖음을 받아야 했다. 율령을 외우는 능력은 신의 뜻을 따를 자격을 넘어, 사람이 사람으로 인정받을 최소 조건이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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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 | 반박하는 자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고문석판 앞에서 손을 들고 “그 법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말한 어느 도시의 대표는, 다음 해에 더 이상 그 자리에 서지 못했다. 연맹의 기록에는 그가 “라주에 의문을 제기한 자, 신의 적”으로 분류되었다고만 남아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어떤 재판을 받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그 이후로 누구도 같은 방식으로 손을 들지 않았다는 사실만이 분명했다. | |
| 98 | ||
| 99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루바 연맹 아래에서 고랜드는 다시 하나의 지도를 되찾았다. 각 도시를 잇는 도로가 정비되고, 세금과 도량형이 통일되었다. 상인은 더 이상 도시가 바뀔 때마다 전혀 다른 법과 통화에 적응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재판 절차와 형벌 기준도 연맹의 율령에 따라 정형화되었고, 전쟁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밤에 성문을 걸어 잠그면서도, 최소한 내일 아침에 열릴 문이 어떤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지 알고 있었다. 이것은 분명 어떤 의미에서는 “질서의 귀환”이었다. | |
| 100 | ||
| 101 |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 마음속에는 다른 종류의 깨달음이 싹텄다. 이것은 왕의 칼 위에 세워진 질서도, 예언자의 말 위에 놓인 신탁도 아니라는 사실. 이 질서는, 흙판과 돌판 위에 빽빽하게 새겨진 문장들, 그리고 그 문장을 독점하고 해석하는 이름 없는 자들의 손위에만 서 있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우리는 더 이상 에루바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는다. 우리는 에루바의 이름을 쓴 돌판의 뒷면만 보고 있다.” | |
| 102 | ||
| 103 | 후대의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두고, 고대 고랜드에서 가장 정교하면서도 가장 무자비한 체계가 완성된 때라고 기록했다. 폭군의 명령보다도 더 세밀한 율령이 사람들의 일상을 규제했고, 예언자의 분노보다도 더 냉정한 문장이 사람의 삶과 죽음을 갈랐다. 에루바 연맹은 분명히 고랜드를 다시 하나로 엮어 주었다. 하지만 그 통합은, 무너진 신전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위선의 돌판’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사람들은 나중에 말했다. 겉으로는 신의 이름을 걸고 있었지만, 그 안을 지탱하고 있던 것은, 신의 침묵을 자기들 마음대로 대신 말하고자 했던 인간들의 끝없는 욕망이었다. | |
| 104 | ||
| 105 | (이 뒤는 로마 내용) | |
| r14 | 106 | ==== 고대 ==== |
| r9 | 107 | 서력원년, 로마제국의 군대가 現콘스탄티노폴지역에 주둔하였단 기록이 최초로 등장, 지중해세계에 해협이 포함되는 계기가 되었다. 서력30년엔 現고랜드지역에 위치한 무명왕국의 세력과 접촉하였단 흔적이 등장하였고, 서력33년엔 現콘스탄티노폴과 빌베른지역에 각각 (지명 구상 안함), (지명 구상 안함)[*前1. COLE'VIL'(COLONN VILLE'I) 라는 옛 빌베른 지명의 어원이되었다.]가 세워져 확장을 잠시 중지하고 토착세력을 포용하며 행정을 정비한다, 이때부터 現빌베른 지역과 플로렌시아 지역에 대도시와 무역경제가 발생하며 랜드해협문화의 기초가 닦였다. |
| 108 | 약 100년 후인 서력137년, 현 고랜드지역을 장악하고 PATHE'I ORRIJE'UMN'을 수도로 건설, 곡류생산과 광지로써 로마제국의 경제에 편입되며, 대략200년대까지 랜드해협을 전역을 장악하게 된다. | |
| 109 | ||
| r14 | 110 | ==== 중세 ==== |
| r9 | 111 | 서력200년대 중반, 로마는 유지의 어려움으로 現빌베른과 콘스탄티노폴을 제외한 지역에서 모두 철수한다. 서력 300년대 초반부터 연락이 완전히 단절되었고 과거 숙주지역들이 反기독교 정책을 펼치며, 400년대의 서로마 멸망후로 랜드국가서 로마의 서신을 받게된것은 자그마치 (교황청이랑 연락할건 플로렌시아밖에 없으니 폭스님에게 맏기다)년만의 일이였다. |
| r10 | 112 | |
| r9 | 113 | 중세 1000년이 막을 올리며 플로렌시암(사실 이거도 폭스님이 정정해줘야함)왕국, 제정사랜드, 빌베른 제1 제국, 센투리움등 신흥국들이 발생한다. 이후 서유럽 일부 영지와 동로마, 이슬람계열 국가들과 무역을 재개하며 중세의 초반이 지나간다. |
| r11 | 114 | |
| r10 | 115 | 700년대를 전후로 이슬람세력의 확장에 의해 이베리아서 서유럽 계열 이민자들이 유입되며 라마베라가 건국되었다. 이후 1200년대 후반 몽골제국의 확장 이전까지, 플로렌시아(?)-라마베라-제정사랜드-빌베른제1제국의 4개주요국, 센투리움을 중심으로한 영지(이영지 아님주의)가 지중해 무역의 일부로써 기능하는 체제가 장기간 유지되었다. |
| r7 | 116 | |
| r10 | 117 | 13세기 후반, 몽골제국이 중앙아시아로 확장하며 큰 전환점이 되었다. 14세기로 넘어가며 당시 제정사랜드 치하거나 소(小)영지 정도만이 동부에 존재하였는데, 몽골 침략후 이전의 건물은 석축만 남은게 최고일정도로-완전히 초토화되었다. 몽골이 제정 사랜드의 동쪽 반을 피바다로 만들던중 징기츠칸의 사망으로 확장을 중지하게되고, 원(元)이 건국되며 대륙사람의 일부를 본래 제정사랜드 영역이였던 곳을 안정화하기위해 강제이주시켜 치앙펭을 건국-반도인과 열도인들을 남은 땅을 안정화하는대에 강제이주시켜 북산이 건국된다. |
| 118 | 이후 동부대륙과 서-남부대륙은 몇백년동안 완전히 단절된 상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 |
| r14 | 119 | ==== 근대 ==== |
| r11 | 120 | |
| r14 | 121 | ===== 동부사 ===== |
| r7 | 122 | |
| 123 | ||
| r14 | 124 | ===== 서-남부사 ===== |
| r7 | 125 | |
| 126 | ||
| r14 | 127 | ==== 근현대 ==== |
| r3 | 128 | |
| r2 | 129 | |
| r6 | 130 | == [[랜드해협/제논서버]] == |
| 131 | 해당 문서로. | |
| 132 | ||
| r2 | 133 | [[분류:랜드해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