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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1 (새 문서) | 1 | [[분류:루이나]][[분류:루이나의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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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목차] | |
| 4 | [clearfix] | |
| 5 | == 개요 == | |
| 6 | [[루이나]]의 정당을 정리한 문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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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루이나는 1885년 공화국 수립 이래 사실상 양당제를 유지해 왔다. 대통령 선거에 결선투표가 없고 하원이 소선거구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제3의 세력이 전국 단위에서 성장하기 어렵다. 다만 루이나 정당사의 가장 큰 특징은 양당제 자체보다도 '''당명의 단절'''에 있다. 1978년 [[10.10 군사반란]] 직후 발포된 정당해산포고로 모든 정당이 한꺼번에 소멸했기 때문에, 현존 정당 가운데 1978년 이전까지 조직이 이어지는 곳은 하나도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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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 그럼에도 군소정당은 꾸준히 존재해 왔다. 이들은 대체로 전국 정당이 다루지 않는 단일 의제(환경, 이민, 농업, 구 식민지 출신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며, 하원보다는 시의회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2026년 현재 원내 6개 정당 가운데 4개가 군소정당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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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 정당 제도 == | |
| 13 | 현행 정당법은 1980년 [[제4공화국(루이나)|제4공화국]] 출범과 함께 제정되었다. 정당해산포고의 경험 때문에 정당의 강제 해산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만 가능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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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 * '''등록 요건''' — 당원 5,000명 이상, 5개 이상 시에 시당 설치 | |
| 16 | * '''국고보조''' — 직전 총선 득표율 2% 이상 정당에 지급 | |
| 17 | * '''봉쇄조항''' — 없음. 소선거구제이므로 지역 집중도가 낮은 정당은 득표율에 비해 의석이 크게 적다 | |
| 18 | * '''선거''' — 대통령·상원·하원 선거를 4년마다 동시 실시하며 결선투표는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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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 현존 정당 == | |
| 21 | === 원내정당 === | |
| 22 | ||<tablebordercolor=#131230><tablebgcolor=#fff,#1f2023><rowbgcolor=#131230><rowcolor=#ffc224> 정당 || 창당 || 성향 || 상원 || 하원 || | |
| 23 | || [[사회민주당(루이나)|사회민주당]] || 1948 || 중도좌파 || 67석 || 299석 || | |
| 24 | || [[민주공화당(루이나)|민주공화당]] || 1988 || 중도우파 || 29석 || 131석 || | |
| 25 | || [[녹색당(루이나)|녹색당]] || 1985 || 녹색정치 || 2석 || 9석 || | |
| 26 | || [[국민당(루이나)|국민당]] || 2003 || 극우 || 1석 || 6석 || | |
| 27 | || [[개혁당(루이나)|개혁당]] || 2021 || 중도 || 1석 || 4석 || | |
| 28 | || [[좌파연대]] || 2022 || 좌익 || 0석 || 1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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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 ==== 녹색당 ==== | |
| 31 | 1985년 [[세인트 바룬]]에서 창당되었다. 1970년대 오보레 북부의 공업 오염 반대 운동과 반핵 운동이 합류해 만들어진 정당으로, 제5공화국의 극심한 정치 탄압기에 환경 의제를 내걸고 합법 공간을 확보한 드문 사례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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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 1990년대 들어 기후·에너지 전환으로 의제를 확장했다. 롱비치 연안, 에포르 녹색단지, 세인트 바룬에 지지가 집중되어 있어 득표율(4~6%)에 비해 의석 효율이 높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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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 사회민주당과는 협력과 견제를 반복한다. 2020년과 2024년 대선에서는 후보를 내지 않고 [[루스탈지아|루스탈지아 그래이]]를 지지했으나, 원자력 발전 유지와 유고랜드 공습 문제에서는 여당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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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 ==== 국민당 ==== | |
| 38 | 2003년 창당된 극우 정당이다. 국민보수주의, 반이민주의, 우익 포퓰리즘을 표방하며, 구 식민지 출신 공동체와 망명자 유입을 국가 정체성의 위협으로 규정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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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콜마르 내륙과 [[나보레]] 서부의 쇠퇴 공업지대가 기반이다. 2022년 [[이민통제법(루이나)|이민통제법]] 점수제 폐지 이후 지지율이 두 배 가까이 뛰었으며, 2024년 총선에서 처음으로 상원 의석을 얻었다. | |
| 41 | ||
| 42 | 민주공화당과의 관계는 일관되지 않다. 지역 단위에서는 반사회민주당 연대를 맺는 경우가 많지만, 민주공화당 지도부는 전국 단위 연대를 공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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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 ==== 개혁당 ==== | |
| 45 | 2021년 민주공화당 온건파가 이탈해 창당했다. [[리처드 콜턴]] 정권의 붕괴와 그의 형사재판을 계기로, 재정보수주의는 유지하되 사회문화 의제에서는 자유주의를 택한다는 노선을 내걸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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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벨포르 교외의 고소득 전문직층이 핵심 지지층이며, 당세는 작지만 상원에서 캐스팅보트를 쥐는 경우가 있다. 민주공화당 재통합론과 독자 노선론이 당내에서 계속 충돌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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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 좌파연대 ==== | |
| 50 | 2022년 [[국가보안법(루이나)|국가보안법]] 개정 조항이 폐지되면서 결성되었다. 1949년 불법화된 [[루이나 공산당]]의 재건 세력과 사회민주당 이탈 좌파, 일부 노동조합이 결합한 형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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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 기간산업 재국유화와 [[LSEC]] 탈퇴를 강령에 명시하고 있으며, 냉전이 계속되는 국제 정세 때문에 당의 합법성 자체가 여전히 정치적 쟁점이다. 현재 보유한 유일한 하원 의석은 [[윈덴브뤼크]] 선거구로, [[루이나 노동당|노동당]] 시절부터 이어진 노동운동의 오랜 근거지다. | |
| 53 | ||
| 54 | === 원외정당 === | |
| 55 | ||<tablebordercolor=#131230><tablebgcolor=#fff,#1f2023><rowbgcolor=#131230><rowcolor=#ffc224> 정당 || 창당 || 성향 || 기반 || | |
| 56 | || [[농민당(루이나)|농민당]] || 1981 || 농본주의 || 콜마르 내륙 || | |
| 57 | || [[신시민당]] || 2011 || 다문화주의 || 롱비치, 사보레 || | |
| 58 | || 해안자치연맹 || 1994 || 지역주의 || 톨루즈, 크레테 || | |
| 59 | || 루이나 공산당 || 2022 {{{-2 (재건)}}} || 공산주의 || 윈덴브뤼크 || | |
| 60 | ||
| 61 | ==== 농민당 ==== | |
| 62 | 1946년 창당되었다가 1978년 정당해산포고로 소멸했고, 1981년 같은 이름으로 재등록했다. 곡물 수매가와 농지 전용 문제를 단일 의제로 삼는다. 하원 의석은 1978년 이후 한 번도 얻지 못했으나 콜마르 일대 시의회에서는 지금도 제1당인 곳이 있다. | |
| 63 | ||
| 64 | 경제적으로는 보호무역과 농업 보조금 확대를 주장하고 사회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이어서 통상 민주공화당과 지역 연대를 맺는다. 다만 탄소세 문제에서는 사회민주당 정부와 개별 협상을 벌인 전례가 있다. | |
| 65 | ||
| 66 | ==== 신시민당 ==== | |
| 67 | 2011년 창당되었다. 구 식민지 출신 공동체의 체류자격과 언어권 보장을 단일 의제로 삼는 정당으로, 롱비치와 사보레 연안의 이민 밀집 지역에서 시의원을 다수 배출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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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 2022년 이민통제법 개정으로 핵심 요구가 상당 부분 관철되면서 존재 이유를 두고 당내 논쟁이 벌어졌고, 일부는 사회민주당에 합류했다. 현재는 언어 교육과 귀화 절차 간소화로 의제를 옮기는 중이다. | |
| 70 | ||
| 71 | ==== 해안자치연맹 ==== | |
| 72 | 1994년 남부 중소도시권에서 결성된 지역주의 정당이다. 벨포르 중심의 재정 배분 구조를 문제 삼으며, 시 단위 과세권 확대와 항만 운영권 이관을 요구한다. 이념적으로는 좌우 어느 쪽으로도 분류되지 않는다. | |
| 73 | ||
| 74 | ==== 루이나 공산당 ==== | |
| 75 | 1919년 [[루이나 노동당|노동당]] 좌파가 이탈해 창당했고, 1949년 [[국가보안법(루이나)|국가보안법]] 제정과 함께 불법화되어 지도부가 망명하거나 투옥되었다. 2022년 같은 법의 관련 조항이 폐지되면서 73년 만에 합법 정당으로 재등록했다. | |
| 76 | ||
| 77 | 재건된 당의 규모는 크지 않으며, 상당수 구성원이 좌파연대에 이중으로 참여하고 있다. 두 당의 통합 논의가 반복되고 있으나 [[사비에트]]에 대한 평가 차이로 번번이 결렬되었다. | |
| 78 | ||
| 79 | == 역사적 정당 == | |
| 80 | ||<tablebordercolor=#131230><tablebgcolor=#fff,#1f2023><rowbgcolor=#131230><rowcolor=#ffc224> 정당 || 존속 || 비고 || | |
| 81 | || [[공화연합(루이나)|공화연합]] || 1885~1978 || 창당 여당, 정당해산포고로 소멸 || | |
| 82 | || 왕정회복당 || 1885~1911 || 왕당파 잔존 세력 || | |
| 83 | || [[자유당(루이나)|자유당]] || 1888~1948 || 사회민주당의 전신 || | |
| 84 | || [[루이나 노동당|노동당]] || 1919~1948 || 사회민주당의 전신 || | |
| 85 | || 루이나 공산당 || 1919~1949 || 1949년 불법화, 2022년 재건 || | |
| 86 | || 국민노동당 || 1933~1945 || 노동당 분당, 공화연합에 흡수 || | |
| 87 | || 국가혁명당 || 1978~1980 || 군정기의 유일 합법 정당 || | |
| 88 | || [[민주연합(루이나)|민주연합]] || 1979~1988 || 제4·5공화국 여당 || | |
| 89 | || 자유당 {{{-2 (재건)}}} || 1980~1990 || 당명 복원, 사회민주당으로 통합 || | |
| 90 | || 국민민주당 || 1980~1990 || 재야 계열, 사회민주당으로 통합 || | |
| 91 | ||
| 92 | === 왕정회복당 === | |
| 93 | 1885년 왕정 폐지 직후 결성되었다. [[제1차 헌정위기]]에서 패배한 왕당파가 무장 저항 대신 의회 진출을 택한 결과였으며, 창당 강령은 입헌군주정의 평화적 회복이었다. | |
| 94 | ||
| 95 | 성공회 고교회파 성직자와 옛 귀족 가문, 왕실 소유지에 딸린 소작농이 지지 기반이었다. 1890년대까지 하원에 20석 안팎을 유지했으나 세대 교체와 왕위 계승권자 부재로 급속히 소멸해 1911년 해산했고, 잔류 인사 대부분은 공화연합에 흡수되었다. | |
| 96 | ||
| 97 | === 국민노동당 === | |
| 98 | 1933년 [[루이나 노동당|노동당]] 당수 윌리엄 T. 무어가 [[러더퍼트 J. 헤이슬러]]의 거국내각에 [[루이나 국무총리|국무총리]]로 합류하면서 제명되자, 그를 따른 하원의원 21명과 함께 창당했다. | |
| 99 | ||
| 100 | 독자적인 이념 없이 사실상 무어 개인의 정치 기반이었고, 그의 정계 은퇴와 함께 1945년 해산해 공화연합에 흡수되었다. 루이나 정치사에서 좌파 분당의 결말을 보여주는 사례로 교과서에 실려 있다. | |
| 101 | ||
| 102 | === 국가혁명당 === | |
| 103 | 1978년 [[10.10 군사반란]] 직후 [[비달 파브르]]가 만든 군정의 유일 합법 정당이다. 정당해산포고로 모든 기존 정당이 사라진 상태에서 공직자와 지역 유지를 강제 편입하는 방식으로 조직되었다. | |
| 104 | ||
| 105 | 파브르가 같은 해 [[12.6 사태]]로 암살된 뒤에도 [[국가비상위원회]] 체제에서 명목상 존속했으나, 1979년 [[벨포르의 봄]] 이후 정통성을 완전히 상실했고 1980년 정당법 제정과 함께 해산했다. | |
| 106 | ||
| 107 | === 민주연합 === | |
| 108 | 1979년 [[리처드 앨런 베인브리지]]가 창당했다. [[벨포르의 봄]] 시민대책회의와 제헌의회를 이끈 인사들이 주축이었고, 창당 당시에는 헌정 회복과 군의 정치개입 근절을 내건 개혁 정당이었다. | |
| 109 | ||
| 110 | 그러나 1980년 베인브리지가 [[제4공화국(루이나)|제4공화국]] 대통령에 취임한 뒤 당의 성격은 급격히 바뀌었다. 1981년 대통령 연임 제한 철폐 개헌으로 [[제2차 헌정위기]]를 자초했고, 1983년 [[벨포르 폭동]]과 [[4.13 유혈진압]] 이후 수립된 [[제5공화국(루이나)|제5공화국]]에서는 6년 단임 간선제를 뒷받침하는 관제 여당으로 기능했다. 언론기본법과 학원안정법이 모두 이 당의 주도로 처리되었다. | |
| 111 | ||
| 112 | 1987년 [[12.23 방침]] 발표로 전국적 시위가 촉발되고 이듬해 [[1.10 민주화 선언]]이 나오자, 여권은 이 당의 이름으로는 직선제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판단했다. 1988년 6월 민주연합은 해산했고 같은 세력이 [[민주공화당(루이나)|민주공화당]]을 창당했다. 존속 기간은 9년이다. | |
| 113 | ||
| 114 | === 자유당 (재건) === | |
| 115 | 1980년 정당법 제정과 함께 재등록한 정당이다. 1948년 사회민주당으로 합당하며 소멸했던 옛 [[자유당(루이나)|자유당]]의 당명을 되살린 것으로, 1978년 해산된 사회민주당의 원내 인사와 지구당 조직이 주축이었다. | |
| 116 | ||
| 117 | 제4·5공화국 내내 제1야당이었으며, [[린드 B. 랭스턴]]이 당을 이끌었다. 1989년 첫 직선제 대선에서 29.8%를 얻어 2위에 그쳤고, 야권 분열이 패인으로 지목되면서 1990년 국민민주당과 통합해 사회민주당으로 당명을 되돌렸다. | |
| 118 | ||
| 119 | === 국민민주당 === | |
| 120 | 1980년 결성된 야당이다. 자유당이 구 사회민주당의 원내 조직을 이어받은 온건 야당이었던 반면, 국민민주당은 재야·학생운동·종교계 인사와 노동조합이 결합한 강경 야당이었다. 군정 관련자 처벌과 [[4.13 유혈진압]] 진상규명을 정면에 내걸었다. | |
| 121 | ||
| 122 | 윈덴브뤼크와 오보레 북부의 산업도시가 기반이었고, 헤이스 F. 오브라이언이 당을 대표했다. 1989년 대선에서 25.1%를 얻었다. | |
| 123 | ||
| 124 | ||<tablealign=center><rowbgcolor=#131230><rowcolor=#ffc224><tablebordercolor=#131230><tablebgcolor=#fff,#1f2023> 후보 || 정당 || 득표율 || 결과 || | |
| 125 | || [[테디 해밀턴]] || 민주공화당 || 36.2% || 당선 || | |
| 126 | || [[린드 B. 랭스턴]] || 자유당 || 29.8% || 낙선 || | |
| 127 | || 헤이스 F. 오브라이언 || 국민민주당 || 25.1% || 낙선 || | |
| 128 | || 기타 5명 || - || 8.9% || 낙선 || | |
| 129 | ||
| 130 | 두 야당의 득표를 합하면 54.9%로 당선자를 크게 앞섰다. 이 결과는 루이나 정치사에서 분열의 대가를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사례이며, 1990년 양당 통합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 |
| 131 | ||
| 132 | == 계보 == | |
| 133 | === 우파 === | |
| 134 | 1884년 헌정위기의 의회파가 1885년 [[공화연합(루이나)|공화연합]]으로 전환했다. 1888년 개혁파가 자유당으로 이탈한 뒤 보수정당으로 성격이 굳었고, 1978년 [[10.10 군사반란]]의 정당해산포고로 소멸했다. 마지막 대표는 [[리처드 잭슨]]이었다. | |
| 135 | ||
| 136 | 1979년 창당된 [[민주연합(루이나)|민주연합]]은 공화연합의 후신이 아니다.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세운 별개의 정당이었고, 집권 후 권위주의 정당으로 변질되었다. 이 당이 1988년 해산하면서 [[민주공화당(루이나)|민주공화당]]이 창당되었고, 2021년 여기서 [[개혁당(루이나)|개혁당]]이 갈라져 나왔다. | |
| 137 | ||
| 138 | * 의회파 → 공화연합 (1885~1978) → '''단절''' | |
| 139 | * 민주연합 (1979~1988) → 민주공화당 (1988~현재) → 개혁당 분당 (2021) | |
| 140 | ||
| 141 | === 좌파 === | |
| 142 | 1888년 창당된 [[자유당(루이나)|자유당]]이 20세기 초 사회입법의 시대를 주도했고, 1919년 노동조합이 [[루이나 노동당|노동당]]을 세웠다. 두 당이 1948년 합당해 [[사회민주당(루이나)|사회민주당]]이 되었다. | |
| 143 | ||
| 144 | 사회민주당 역시 1978년 강제 해산되었다. 1980년 재등록 과정에서 야권은 온건파의 자유당과 강경파의 국민민주당으로 갈라졌고, 1989년 대선 분열 패배 이후 1990년 통합하면서 사회민주당 당명을 되찾았다. 2022년에는 좌파연대가 갈라져 나왔다. | |
| 145 | ||
| 146 | * 자유당 (1888~1948) + 노동당 (1919~1948) → 사회민주당 (1948~1978) → '''단절''' | |
| 147 | * 자유당 재건 (1980~1990) + 국민민주당 (1980~1990) → 사회민주당 (1990~현재) | |
| 148 | * 노동당 좌파 → 공산당 (1919~1949, 2022 재건) → 좌파연대 (2022) | |
| 149 | ||
| 150 | === 계보 밖 === | |
| 151 | 녹색당, 국민당, 농민당, 신시민당, 해안자치연맹, 왕정회복당은 두 계보 어느 쪽에서도 갈라져 나오지 않은 독자 창당 정당이다. | |
| 152 | ||
| 153 | == 시기별 여당 == | |
| 154 | ||<tablebordercolor=#131230><tablebgcolor=#fff,#1f2023><rowbgcolor=#131230><rowcolor=#ffc224> 시기 || 여당 || | |
| 155 | || 1885~1978 || 공화연합 / 자유당 / 사회민주당 교대 || | |
| 156 | || 1978~1980 || 국가혁명당 {{{-2 (군정)}}} || | |
| 157 | || 1980~1988 || 민주연합 || | |
| 158 | || 1988~ || 민주공화당 / 사회민주당 교대 || | |
| 159 | ||
| 160 | == 관련 문서 == | |
| 161 | * [[루이나]] | |
| 162 | * [[루이나 의회]] | |
| 163 | * [[루이나의 선거]] | |
| 164 | * [[10.10 군사반란]] | |
| 165 | * [[벨포르의 봄]] | |
| 166 | ||
| 167 | == 둘러보기 == | |
| 168 | [include(틀:루이나의 정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