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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파일:루이나해병대2사단사건.png
발생일
2017년 5월 17일[1] ~ 현재
관련기관
/ 관련자
[2]
대통령 리처드 콜턴
- 대통령 비서실장 아서 블라크웰
- 국가안보보좌관 레오나드 프레스토[3]
- 국가안보실 제1차장 에드윈 마셜
- 국가안보실 제2차장 제임스 콘웰
- 국가안보실 파견 해병대 대령 헨리 로웰[4]
- 국방비서관 소장 로렌스 벨러미[5]
- 공직기강비서관 찰스 애빙턴
• 루이나 국방부
- 장관 윌리엄 드레이크
- 차관 앤드류 셔먼
- 군사보좌관 준장 마틴 해리슨
- 대변인 에릭 스펜서
- 법무관리관 조지 랜킨[6]
• 국방부 검찰국
- 검찰국장 준장 로버트 클리프턴[7][8]
• 국방부 조사국
- 조사국장 대리 대령 사무엘 고든[9]
• 루이나 해군
- 해군참모총장 대장 토마스 휘트모어[10]
• 루이나 해병대
- 사령관 중장 알버트 그린필드
- 부사령관 소장 프랭크 로웰
- 제2사단장 소장 다니엘 프라이스
- 수사단장 대령 올리버 헤인즈
• 벨포르 경찰청
- 청장 치안감 해럴드 윈터스[11]
- 수사과장 총경 루이스 하버드[12]
• 민간 연루 기업
- 블랙크라운 캐피탈 소유주 레지널드 스톤[13]
항명 혐의 재판
피고인
루이나 해병대 대령 올리버 헤인즈[14]
혐의
집단 항명 수괴[15] 및 상관 명예훼손[16]
관할
국방부 검찰국 → 특별검사실[17]
중앙군사법원
벨포르 고등법원
재판선고
제1심
무죄(확정)
항소심
항소취하
보직해임 무효 행정소송
관할
벨포르 지방법원
결과
올리버 헤인즈 복직 후 소 취하(상호 동의 종결)
외압 의혹 수사
관할
특별검사실[18]
1. 개요2. 경과3. 전개와 의혹
3.1. 특별검사 수사
4. 재판
4.1. 보직해임 무효 행정소송 (복직 후 취하)
4.1.1. 법원의 집행정지신청 기각4.1.2. 박정훈 수사단장 복귀 및 소송 취하
4.2. 항명 혐의 재판
4.2.1. 제1심4.2.2. 항소심 (취하, 무죄 확정)
5. 쟁점
5.1. 경찰 사건 이첩 행위는 항명인가?
5.1.1. 항명이 아니다5.1.2. 항명이다
5.2. 대통령이 수사를 무마시킬 이유가 무엇인가?
6. 반응
6.1. 여론조사6.2. 정치권6.3. 언론6.4. 군 예비역6.5. 기타

1. 개요 [편집]

2. 경과 [편집]

3. 전개와 의혹 [편집]

3.1. 특별검사 수사 [편집]

4. 재판 [편집]

4.1. 보직해임 무효 행정소송 (복직 후 취하) [편집]

4.1.1. 법원의 집행정지신청 기각 [편집]

4.1.2. 박정훈 수사단장 복귀 및 소송 취하 [편집]

4.2. 항명 혐의 재판 [편집]

4.2.1. 제1심 [편집]

4.2.2. 항소심 (취하, 무죄 확정) [편집]

5. 쟁점 [편집]

5.1. 경찰 사건 이첩 행위는 항명인가? [편집]

5.1.1. 항명이 아니다 [편집]

5.1.2. 항명이다 [편집]

5.2. 대통령이 수사를 무마시킬 이유가 무엇인가? [편집]

6. 반응 [편집]

6.1. 여론조사 [편집]

6.2. 정치권 [편집]

6.3. 언론 [편집]

6.4. 군 예비역 [편집]

6.5. 기타 [편집]

[1] 정확히는 오전 10시 30분경. 제2사단 소속 일병 사망 사건의 1차 현장보고가 이루어진 시각. 이후 오후에 국방부 장관에게 대면 보고가 올라갔다.[2] 기사 및 특검 보고서에 언급된 경우만으로 한정. 계급이나 직책은 사건 당시 기준.[3] 제6대 국가정보국(NIA) 국장을 지낸 인물.[4] 제2사단 출신 장교로 대통령실에 파견 근무 중이었으며, 은폐 지시 전달자로 지목됨.[5] 1982년 8월 교체설이 제기되었으며, 사건 관련 증언 직후 돌연 해외 주재 무관으로 전출.[6] 사건 축소·은폐를 위해 군검찰 수사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CICPO)에 피고발.[7] 은폐 과정에서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함께 핵심 피고발인으로 지목됨.[8] CICPO 피고발 대상.[9] 은폐 과정에 직접 관여했다는 혐의로 특검 수사 대상에 포함됨.[10] 루이나 해병대는 해군 소속이므로, '제2사단 일병 사망 사고' 조사 결과를 상급 부대에 보고할 경우 반드시 해군참모총장을 거쳐야 했다.[11] 은폐 의혹이 불거진 직후 제2사단장의 불송치 결정을 발표해 논란을 키움.[12] 제2사단 은폐 사건 관련 '무혐의' 의견을 내 CICPO에 고발당함.[13] 해병대 출신 투자사업가.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와 친분을 과시하며 각종 이권을 챙겼다는 의혹이 제기됨.[14] 해병대 수사단장. 사건 초기 수사를 지휘했으나 대통령실 외압을 폭로한 뒤 '집단 항명' 혐의로 기소됨.[15] 1982년 6월 3일 입건, 군형법 제45조 제3호 적용. 당시 군검찰은 '수괴'라는 표현을 그대로 유지. → 이후 항명 단독 혐의로 변경.
집단 항명 수괴는 전시·사변 시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하며, 평시에는 3년 이상의 징역형.
[16] 당시 국방부 장관 윌리엄 드레이크를 공개석상에서 비판했다는 이유로 군검찰 구속영장 청구서에 기재됨.[17] 특검법 제정으로 공소 유지 권한 이첩.[18] 루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CICPO)에서 이첩되어 수사. 대통령실 및 국방부 외압·은폐 의혹을 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