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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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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루이나]][[분류:루이나의 정당]] ||<-2><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1c6cb4,#1c6cb4><tablebgcolor=#fff,#1f2023><bgcolor=#1c6cb4,#1c6cb4><height=100> [[파일:자유당(루이나) 로고.png|width=330]] || ||<-2><bgcolor=#1c6cb4,#1c6cb4> {{{#fff '''Liberal Party of Ruina'''[br]{{{-1 Либеральная партия Руины}}}}}} || ||<width=125><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1c6cb4,#7fb6e5> '''한국어 명칭''' ||자유당 || || '''약칭''' ||자유당 (LP) || || '''창당일''' ||1888년 5월 30일 || || '''해산일''' ||1948년 2월 8일[* 해산이 아니라 신설 합당이다.] || || '''전신''' ||[[공화연합(루이나)|공화연합]] 개혁파 || || '''후신''' ||[[사회민주당(루이나)|사회민주당]] || || '''중앙당사''' ||[[루이나]] [[벨포르 특별시]][br]크레센트 로 || || '''이념''' ||'''초기:'''[br]고전적 자유주의[br]점진적 사회개혁 ---- '''중기 이후:'''[br]사회자유주의[br]관리경제론[br]반제국주의[br]세속주의 || || '''정치적 스펙트럼''' ||중도 ~ 중도좌파 || || '''초대 대표''' ||헨리 M. 콜리어 || || '''마지막 대표''' ||[[어니스트 W. 콜드웰]] || || '''배출 대통령''' ||8명 || || '''역대 최다 의석''' ||하원 274석 {{{-2 (1916년)}}} || ||<|2> '''당색''' ||{{{#!wiki style="display: inline; border-radius: 2px; padding: 3px 4px; background: #1c6cb4; font-size: .9em" {{{#ffffff '''청색''' (#1c6cb4)}}}}}} || ||{{{#!wiki style="display: inline; border-radius: 2px; padding: 3px 4px; background: #d8b44a; font-size: .9em" {{{#ffffff '''담황색''' (#d8b44a)}}}}}} || || '''당원 수''' ||893,700명 ^^(1946년)^^ || || '''상징''' ||등불 || [목차] [clearfix] == 개요 == 자유당(Liberal Party of Ruina)은 1888년부터 1948년까지 존속한 [[루이나]]의 자유주의 정당이다. [[사회민주당(루이나)|사회민주당]]의 두 전신 가운데 하나로, 1948년 2월 8일 [[루이나 노동당|노동당]]과 신설 합당하면서 소멸했다. [[공화연합(루이나)|공화연합]]의 개혁파가 사회 입법의 지연에 반발해 이탈하면서 창당되었다. 존속 60년 동안 여덟 명의 대통령을 배출했으며, 공장법, 국민보험, 보통선거, 귀화법, 망명자수용법 등 오늘날 루이나 사회제도의 골격을 이루는 입법이 대부분 자유당 정부에서 나왔다. 특히 1901년부터 1925년까지의 24년은 루이나 정치사에서 사회입법의 시대로 불린다. 이 기간 자유당은 [[공화연합(루이나)|공화연합]]을 야당으로 밀어낸 채 사실상 단독으로 국가의 성격을 바꿔 놓았다. 그러나 같은 성공이 몰락의 원인이기도 했다. 자유당이 확대한 참정권과 노동권은 곧 독자적인 노동자 정당의 등장으로 이어졌고, 1919년 [[루이나 노동당|노동당]] 창당 이후 자유당은 자신이 만든 유권자를 다른 당에 내주는 과정을 30년에 걸쳐 겪었다. == 상징 == === 등불 === 자유당의 표장은 손잡이가 달린 등불이었다. 창당 세력이 발표한 「1888년 각서」의 마지막 문장 "우리는 등을 들고 먼저 걷는다"에서 따온 것으로, 계몽과 공중보건이라는 두 함의를 동시에 담고 있었다. 특히 공중보건의 의미가 컸다. 초기 자유당의 핵심 인물 다수가 의사·위생 감독관 출신이었고, 세 번째 대통령 [[앨버트 스트래튼]] 역시 의사였다. 당시 산업도시의 야간 왕진과 위생 순찰에서 등불은 실제 직업 도구였으므로, 이 표장은 은유가 아니라 현장의 물건이었다. 1948년 합당 이후 등불은 계승되지 않았다. 신당 [[사회민주당(루이나)|사회민주당]]은 합당대회장 건물의 부엉이 장식을 표장으로 택했다. === 당색 === 청색(#1c6cb4)과 담황색(#d8b44a)을 썼다. 청색을 택한 것은 [[공화연합(루이나)|공화연합]]에 대한 직접적인 반발이었다. 왕정을 폐지한 정당이 왕실 예복의 진홍과 금색을 그대로 계승한 데 대해, 분당 세력은 왕실과 아무 관련이 없는 색을 고르겠다고 선언했다. 1948년 합당 직후 신당의 당색은 [[루이나 노동당|노동당]]의 붉은색이었으나, 1953년 냉전기의 색채 공세 속에서 청색 계열로 교체되었다. 구 노동당계에게 이 결정은 굴복이었지만 구 자유당계에게는 색의 귀환이었고, 오늘날 사회민주당의 파란색은 이 경로를 거쳐 정착한 것이다. == 성향 == 자유당의 이념은 60년 동안 세 단계로 변했다. 창당기의 자유당은 고전적 자유주의 정당이었다. 자유무역, 정교분리, 지방자치 확대를 내걸었고, 사회 정책에서는 국가의 직접 급여보다 규제와 감독을 선호했다. [[공화연합(루이나)|공화연합]]과의 차이는 이념보다 속도에 있었다. 헌법을 만든 뒤 개혁을 멈춘 정당과, 계속 걸어야 한다는 정당의 대립이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당은 사회자유주의로 이동했다. 시장의 실패를 국가가 보정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국민보험, 최저임금, 실업급여를 도입했고, 이를 사회주의가 아닌 자유의 조건으로 정당화했다. "굶주린 사람에게 계약의 자유는 없다"는 [[머서]]의 발언이 이 시기 당의 표어로 남았다. 대공황 이후에는 관리경제론으로 다시 이동했다. [[러더퍼트 J. 헤이슬러]] 정부는 공공사업, 은행 규제, 농산물 가격 지지를 대통령 권한으로 밀어붙였고, 이는 자유당의 전통적인 균형재정 기조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 전환은 당의 지지 기반을 넓혔으나 동시에 당내 우파의 이탈을 불렀다. 외교에서는 일관되게 반제국주의에 가까웠다. [[마르비크 전쟁]] 반대와 조기 종전, 해외 영토의 자치 확대, 군비 축소가 당론이었다. 종교 문제에서는 성공회 국교 질서에 반대하고 정교분리를 주장했으며, 이 때문에 정교회·유대교·비국교회 공동체가 자유당의 안정적 지지층이 되었다. == 역사 == === 창당과 분당 (1888~1901) === 1888년 5월 30일, [[공화연합(루이나)|공화연합]] 소속 하원의원 47명이 「1888년 각서」에 서명하고 집단 탈당했다. 1885년 헌법 제정 이후 공장 감독, 아동 노동 금지, 위생 입법이 3년 넘게 표류한 데 대한 반발이었다. 초대 대표는 헨리 M. 콜리어였다. 1892년 선거에서 [[앨버트 스트래튼]]이 당선되며 창당 4년 만에 집권했다. 스트래튼 정부는 공장법을 제정해 아동 노동을 금지하고 노동시간 상한을 도입했으나, 재선에 출마하지 않고 물러났다. 1896년 정권을 잃은 뒤 자유당은 [[마르비크 전쟁]] 반대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강제수용 정책이 알려지면서 반전 여론이 급격히 커졌고, 이는 1900년 선거의 승리로 이어졌다. === 사회입법의 시대 (1901~1925) === [[오스카 벤틀리]]가 1901년 취임하면서 자유당의 24년 연속 집권이 시작되었다. 다만 1905년부터 1909년까지 한 차례 정권을 내주었다. 벤틀리 정부는 마르비크 전쟁을 종결하고 전시 부채를 정리하는 긴축을 단행했으며, 1903년 귀화법으로 귀화 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머서]] 정부는 국민보험을 도입해 질병·실업에 대한 최초의 전국 단위 보장 체계를 만들었고, [[마스덴]] 정부는 1920년 보통선거를 관철해 여성을 포함한 완전한 참정권을 확립했다. [[필립 R. 코널리]] 정부는 1921년 [[제2공화국(루이나)|제2공화국]] 출범을 이끌고 1922년 망명자수용법으로 대규모 망명자 유입을 제도화했다. 코널리는 루이나 최초의 정교회 신자 대통령이기도 했다. 성공회 국교 질서를 옹호하던 [[공화연합(루이나)|공화연합]]과의 대비 속에서, 이 시기 자유당은 종교적 소수자의 정치적 대표라는 성격을 확고히 했다. 동시에 이 시기는 자유당 몰락의 씨앗이 뿌려진 때이기도 하다. 1919년 노동조합이 [[루이나 노동당|노동당]]을 세우면서 자유당은 산업도시의 표를 잠식당하기 시작했다. 자유당이 확대한 참정권의 최대 수혜자가 자유당이 아니었다는 점은 이후 정치학 교과서에서 반복해 인용된다. === 야당기와 재집권 (1925~1929) === 1924년 선거에서 자유당은 [[하워드 S. 프레스콧]]에게 패배했다. 24년 만의 정권 교체였고, 망명자수용법에 대한 반발과 전후 불황이 겹친 결과였다. 야당기는 짧았다. 1926년 이민제한법으로 정교회 공동체가 결집했고, 1928년 [[벨포르 증권 스캔들]]이 터지면서 자유당은 4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다. === 헤이슬러 시대 (1929~1941) === [[러더퍼트 J. 헤이슬러]]는 취임 두 달 만에 대공황을 맞았고, 이후 세 차례 연임하며 12년을 집권했다. 공공사업, 실업보험 확대, 은행 규제, 농산물 가격 지지를 대통령 권한으로 신속하게 집행한 이 정책들은 자유당 강령을 크게 넘어서는 것이었다. 정치적으로 이 시기는 자유당의 절정이었다. 그러나 당 조직의 관점에서는 공동화의 시기이기도 했다. 대통령 개인의 권위가 당을 압도했고, 지방 조직은 방치되었으며, 노동조합과의 연결은 노동당이 가져갔다. 헤이슬러의 3선은 [[공화연합(루이나)|공화연합]]이 대통령 연임 제한론을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 쇠퇴와 합당 (1941~1948) === 헤이슬러 퇴임 후에도 자유당은 1940년과 1944년 선거에서 승리해 정권을 유지했다. [[어니스트 W. 콜드웰]]이 1945년 취임하며 당 대표와 대통령을 겸했다. 그러나 당의 실질적 기반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1944년 선거에서 노동당이 하원 121석으로 역대 최다 의석을 얻으면서, 자유당은 원내 제1당의 지위를 유지하고도 좌파 진영의 주도권을 잃었다. 전후 재건 국면에서 유권자들이 요구한 전 국민 의료보장과 대규모 공공주택은 노동당의 「재건 백서」에 이미 정리되어 있었던 반면, 자유당은 대응할 강령을 내놓지 못했다. 1947년부터 통합 협상이 시작되었다. 자유당은 원내 기반과 집권 경험을, 노동당은 조직과 강령을 내놓는 형태였다. 세 차례 결렬 끝에 국유화 대상을 기간산업으로 한정하고 노조 블록 투표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절충안으로 타결되었다. 1948년 2월 8일 벨포르 노동회관에서 열린 합당대회에서 자유당은 해산을 결의하고 [[사회민주당(루이나)|사회민주당]] 창당에 참여했다. 국유화 조항에 반대한 우파 의원 일부는 합당을 거부하고 [[공화연합(루이나)|공화연합]]으로 이적했다. 콜드웰은 대통령 임기 중에 소속 정당이 사라진 유일한 루이나 대통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잔여 임기를 신당 소속으로 마쳤으며, 퇴임 직전인 1948년 대통령 연임 제한 조항을 발의해 이듬해 [[제3공화국(루이나)|제3공화국]] 헌법에 반영시켰다. [[공화연합(루이나)|공화연합]]이 야당기 내내 주장해 온 안을 자유당 대통령이 수용한 것으로, 루이나 헌정사에서 드문 초당적 입법으로 꼽힌다. == 지지 기반 == 자유당의 지지 기반은 도시 중간층과 종교적 소수자, 전문직이었다. 가장 견고한 기반은 정교회·유대교·비국교회 공동체였다. 성공회 국교 질서에 반대하는 정교분리 노선 덕분에 이들 집단은 60년 내내 자유당을 지지했고, 1922년 망명자수용법 이후 백계 망명 공동체가 여기에 더해졌다. 이 지지는 1948년 합당 이후 그대로 사회민주당으로 이전되었다. 지역적으로는 벨포르, 사보레 연안, 그리고 대학과 병원이 밀집한 에포르에서 강했다. 상공업 자본이 [[공화연합(루이나)|공화연합]]으로, 산업 노동자가 [[루이나 노동당|노동당]]으로 갈라진 뒤 자유당에 남은 것은 의사·교사·변호사·언론인 같은 전문직 계층이었고, 이 구성은 이후 사회민주당의 고학력층 지지 기반으로 이어졌다. 반면 농촌과 산업도시 양쪽에서 모두 약했다. 농촌은 자유무역 기조 때문에, 산업도시는 노동당 때문에 잃었다. 당이 마지막까지 해결하지 못한 문제였다. == 배출 대통령 == ||<tablebordercolor=#1c6cb4><tablebgcolor=#fff,#1f2023><rowbgcolor=#1c6cb4><rowcolor=#fff> 대수 || 이름 || 임기 || || 제3대 || [[앨버트 스트래튼]] || 1893~1897 || || 제5대 || [[오스카 벤틀리]] || 1901~1905 || || 제7대 || [[머서]] || 1909~1913 || || 제8·9대 || [[마스덴]] || 1913~1921 || || 제10대 || [[필립 R. 코널리]] || 1921~1925 || || 제12·13·14대 || [[러더퍼트 J. 헤이슬러]] || 1929~1941 || || 제15대 || (확인 필요) || 1941~1945 || || 제16대 || [[어니스트 W. 콜드웰]] || 1945~1949 || == 역대 대표 == ||<tablebordercolor=#1c6cb4><tablebgcolor=#fff,#1f2023><rowbgcolor=#1c6cb4><rowcolor=#fff> 대수 || 이름 || 재임 || || 초대 || 헨리 M. 콜리어 || 1888~1897 || || 제2대 || [[오스카 벤틀리]] || 1897~1907 || || 제3대 || [[머서]] || 1907~1913 || || 제4대 || [[마스덴]] || 1913~1922 || || 제5대 || [[필립 R. 코널리]] || 1922~1927 || || 제6대 || 에드워드 V. 그리어 || 1927~1929 || || 제7대 || [[러더퍼트 J. 헤이슬러]] || 1929~1941 || || 제8대 || [[어니스트 W. 콜드웰]] || 1941~1948 || == 역대 선거 결과 == === 대통령 선거 === ||<tablebordercolor=#1c6cb4><tablebgcolor=#fff,#1f2023><rowbgcolor=#1c6cb4><rowcolor=#fff> 연도 || 후보 || 결과 || || 1888 || 헨리 M. 콜리어 || 낙선 || || 1892 || [[앨버트 스트래튼]] || 당선 || || 1896 || 헨리 M. 콜리어 || 낙선 || || 1900 || [[오스카 벤틀리]] || 당선 || || 1904 || [[오스카 벤틀리]] || 낙선 || || 1908 || [[머서]] || 당선 || || 1912 || [[마스덴]] || 당선 || || 1916 || [[마스덴]] || 당선 || || 1920 || [[필립 R. 코널리]] || 당선 || || 1924 || [[필립 R. 코널리]] || 낙선 || || 1928 || [[러더퍼트 J. 헤이슬러]] || 당선 || || 1932 || [[러더퍼트 J. 헤이슬러]] || 당선 || || 1936 || [[러더퍼트 J. 헤이슬러]] || 당선 || || 1940 || (확인 필요) || 당선 || || 1944 || [[어니스트 W. 콜드웰]] || 당선 || 1948년 선거에는 합당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 재건 자유당 (1980~1990) == 1978년 [[10.10 군사반란]] 직후의 정당해산포고로 [[사회민주당(루이나)|사회민주당]]이 강제 해산된 뒤, 1980년 정당법 제정과 함께 구 사회민주당의 원내 인사와 지구당 조직이 자유당이라는 이름으로 재등록했다. 옛 당명을 되살린 것은 법적 제약 때문이었다. 정당법 부칙이 해산된 정당의 명칭을 3년간 재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했기 때문에, 온건파는 32년 전 소멸한 자유당의 당명을 택했다. 조직도 강령도 원 자유당과 직접적인 연속성은 없다. 재건 자유당은 [[제4공화국(루이나)|제4공화국]]과 [[제5공화국(루이나)|제5공화국]] 내내 제1야당이었으며, [[린드 B. 랭스턴]]이 당을 이끌었다. 재야·학생운동 계열이 결성한 국민민주당이 강경 노선을 택한 데 비해, 자유당은 원내 투쟁과 협상을 중시하는 온건 야당이었다. 1989년 제6공화국 첫 직선제 대선에서 랭스턴은 29.8%로 2위에 그쳤다. 국민민주당의 헤이스 F. 오브라이언(25.1%)과 합하면 당선자를 20%포인트 가까이 앞서는 득표였고, 야권 분열이 패인으로 지목되었다. 이듬해 두 당은 통합해 사회민주당 당명을 되돌렸다. == 평가 == 자유당은 루이나에서 가장 많은 제도를 남기고 가장 빠르게 사라진 정당으로 평가된다. 공장법, 국민보험, 보통선거, 귀화법, 망명자수용법은 모두 현행 제도의 직접적 기원이며, 대공황기의 국가 개입은 이후 루이나 경제 운용의 기본 문법이 되었다. 60년 동안 여덟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것도 [[공화연합(루이나)|공화연합]]의 다섯 명을 넘어서는 기록이다. 동시에 자유당은 성공한 개혁 정당이 어떻게 소멸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인용된다. 참정권을 확대한 결과 새로운 유권자가 생겼고, 그 유권자는 자유당이 아니라 노동당을 택했다. 노동 입법을 관철한 결과 노동조합이 성장했고, 그 조합은 자체 정당을 세웠다. 당이 이룬 성취가 그대로 당의 존립 기반을 잠식한 셈이다. 오늘날 [[사회민주당(루이나)|사회민주당]]은 자유당과 노동당 양쪽을 모두 전신으로 명시한다. 다만 당의 상징 체계와 문화는 노동당 쪽에서, 지지 계층과 정책 노선은 자유당 쪽에서 물려받았다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 여담 == * 창당 문서인 「1888년 각서」의 원본은 국립헌정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서명자 47명 가운데 12명이 훗날 [[공화연합(루이나)|공화연합]]으로 복귀했다. * [[어니스트 W. 콜드웰]]은 재임 중 소속 정당이 사라진 유일한 대통령이다. * 등불 표장은 계승되지 않았으나, 사회민주당 산하 정책연구소의 명칭은 현재도 등불연구소다. * 1980년 재건 자유당은 원 자유당과 법적·조직적 연속성이 없으며, 사회민주당도 두 자유당을 별개로 취급한다. == 관련 문서 == * [[루이나]] * [[루이나의 정당]] * [[사회민주당(루이나)]] * [[공화연합(루이나)]] * [[루이나 노동당]] == 둘러보기 == [include(틀:루이나의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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