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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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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루이나]][[분류:루이나군]][[분류:루이나 육군]] [include(틀:상위 문서, 문서명1=루이나)] ||<-2><tablealign=right><tablewidth=450><tablebordercolor=#131230><tablebgcolor=#fff,#1c1d1f><bgcolor=#131230><color=#fff> '''{{{+1 루이나 육군}}}[br]{{{-1 Republic of Ruina Army (RORA)}}}''' || ||<width=50%><bgcolor=#fff,#1c1d1f> [[파일:루이나 육군기.svg|width=90%]] ||<width=50%><bgcolor=#fff,#1c1d1f> [[파일:루이나 육군 휘장.svg|width=70%]] || ||<bgcolor=#131230> {{{#fff '''육군기'''}}} ||<bgcolor=#131230> {{{#fff '''휘장'''}}} || ||<width=35%><colbgcolor=#131230><colcolor=#fff> '''창설''' ||1943년 10월 24일 {{{-2 (현행 체제)}}}[br]왕정기 {{{-2 (왕립 육군)}}} || || '''국가''' ||[[파일:Ruinaflag.png|width=25]] [[루이나]] || || '''소속''' ||[[루이나 국방부]] || || '''군종''' ||육군 || || '''본부''' ||벨포르 특별시 [[방청사]] || || '''육군참모총장''' ||윌리엄 F. 대버너 대장 || || '''육군참모차장''' ||헬렌 R. 크로스비 대장 || || '''육군주임원사''' ||마커스 T. 오두 || || '''병력''' ||현역 352,000명 {{{-2 (2025년)}}} || || '''주요 부대''' ||[[루이나 101공수사단|제101공수사단]][br]제1보병사단[br]제9보병사단[br]외인부대 || [목차] [clearfix] == 개요 == '''루이나 육군'''(Republic of Ruina Army)은 [[루이나/국군|루이나군]]의 육군이다. [[루이나 국방부]] 소속으로, 지상 작전과 본토 방위, 해외 주둔, 그리고 미사일 방어를 맡는다. 2025년 기준 현역 352,000명으로 루이나군에서 가장 큰 군종이며, 남녀를 모두 징집하는 루이나의 징병제를 사실상 떠받치는 군대다. M1 에이브럼스 전차 1,389대와 장갑차·자주포·다연장로켓을 갖추고 있고, 패트리어트와 THAAD 같은 미사일 방어 체계도 육군이 운용한다. 1985년부터는 [[유고랜드]]에 주둔하며 유고랜드군의 전시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다. 바다로 팽창해 온 나라에서 육군은 오랫동안 해군의 그늘에 있었다. 그러나 국내 정치에서는 육군이 가장 큰 흔적을 남겼다. 1916년 철도 파업 진압과 1978년 [[10.10 군사반란]], 그 뒤 2년의 군정은 모두 육군이 중심이었고, 해외에서는 [[띠에우리엔 대학살]]과 [[엘모소테의 학살]]이 육군과 엮여 있다. 이 때문에 루이나 육군의 역사는 문민통제가 자리 잡기까지의 역사이기도 하다. == 역사 == === 왕립 육군 (~1885) === 루이나 육군의 기원은 왕정기의 왕립 육군이다. 1558년 대륙의 마지막 거점 카르네 항을 잃은 뒤 루이나의 팽창은 바다를 향했고, 육군은 본토 방위와 해외 식민지 수비대 노릇을 했다. 벵골에 주둔했던 부대들은 1857년 벵골 대봉기를 진압했으나, 1871년 벵골 철수와 함께 본토로 돌아왔다. 왕정 말기 마지막 왕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왕당파와 의회파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고, 육군도 두 편으로 갈라져 싸웠다. 내전이 의회파의 승리로 끝나면서 1885년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 공화국 육군 (1885~1943) === 공화국은 왕립 육군을 이어받아 공화국 육군으로 재편했다. 육군 행정은 국가군무원이 맡았고, 1921년 국가군무원이 [[루이나 국방부|국방부]]로 개편된 뒤에는 국방부 육군국이 맡았다. 1916년 [[빈덴브루크 철도 총파업]] 때 조지 에스턴 총리는 지방 당국의 허가 없이 군대를 투입했고, 빈덴브루크에서만 11명이 숨졌다. 군대가 국민을 향해 총을 쏜 이 사건은 1921년 총리직 폐지로 이어진 정치 개혁의 계기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는 1917년 참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루이나 본토는 공격받지 않았지만, 육군은 해외 전선에 원정군을 보내 싸웠다. 1943년 10월 24일 국방부 개편으로 육군 항공대가 공군으로 독립하면서, 육군은 해군·공군과 함께 육군참모총장이 지휘하는 지금의 체제를 갖추었다. === 냉전과 전쟁 (1945~1978) === 냉전기 육군의 주적은 남쪽의 사비에트였다. [[1차 랜드 전쟁]](1958~1963)에서 육군은 남부 전선의 주력으로 싸웠다. 1962년 10월 사비에트가 고고도 핵실험을 벌이자 협상국은 남부 전선에서 전쟁 전 국경을 넘지 않기로 결정했고, 전쟁은 현상 유지 강화로 끝났다. 1964년 [[통킹 만 사건]] 이후에는 베트남 전쟁에 지상군을 보냈다. 1970년에는 [[콘스탄티노폴]]을 침공했으나, 점령은 끝이 보이지 않는 수렁이 되었고 육군은 결국 철수했다. [[2차 랜드 전쟁]](1973~1977)의 동부 전역인 청북전쟁에는 파견군을 보냈다. 1975년 10월 띠에우리엔 시가전 뒤 북산 국가경찰의 부역자 색출에 육군 제7특수전단 제2분견대가 배속되었는데, 이 부대의 관여 범위는 지금도 논쟁거리다. 징병제에 대한 반발도 이 시기에 커졌다. 1976~1977년 무장조직 [[10월 전선]]은 징병사무소 14곳에 침입해 명부를 불태우고 그 사본을 언론에 보냈는데, 공개된 명부는 징집 대상자가 특정 지역과 계층에 쏠려 있음을 보여 주며 징병 형평성 논쟁을 불렀다. 1977년 1월 1일에는 흩어져 있던 정보·보안·방첩 조직을 통합해 [[루이나 육군정보보안사령부|육군정보보안사령부]]가 창설되었다. === 군정 (1978~1980) === 1978년 10월 10일 밤 육군 참모차장 [[비달 파브르]] 중장과 군 정보사령관 필립 갤러거 소장이 [[10.10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정보사 요원들이 육군참모총장 아처 W. 스탠호프 대장을 연행했고, 제9보병사단의 전방 2개 연대가 방어선을 떠나 벨포르로 들어왔다. 수도경비사령관 퍼거스 M. 오클리 소장과 특전사령관 레너드 J. 카마이클 소장이 진압에 나섰지만, 명령을 따른 부대는 거의 없었다. 리처드 잭슨 대통령은 이튿날 새벽 무장 병력이 들어선 관저에서 사후 재가 문서에 서명했고, 반란은 하룻밤 만에 성공했다. 반란 이튿날 파브르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비상위원회]]가 설치되어 의회를 해산하고 정당 활동을 정지했다. 파브르가 1978년 12월 6일 대통령궁에서 총에 맞아 숨진 뒤에는 알렉산더 모로가 군정을 이끌었다. 군정 동안 육군정보보안사령부의 방첩 역량 일부는 군 내부의 반대 세력을 감시하는 데 쓰였다. 군정은 1980년 [[10.24 시민혁명]]으로 무너졌다. === 문민통제와 해외 주둔 (1980~현재) === 헌정이 회복된 뒤 육군은 문민통제 아래 다시 섰다. 육군정보보안사령부의 사찰은 조사와 인적 정리를 거쳤고, 자국 군인의 정치적 견해를 수집하는 일은 금지되었다. 10.10 군사반란의 책임 추궁은 더디게 이루어졌다. 1990년 의회 청문회에서 반란 당시의 명령 문서가 공개되었고, 1994년 특별법으로 공소시효가 정지되었으며, 1997년 중앙대법원은 생존 가담자들에게 유죄를 확정하며 "성공한 반란도 처벌 대상"이라고 판시했다. 1985년 [[루이나-유고랜드 상호방위조약]]으로 육군은 유고랜드에 주둔하기 시작했다. 같은 날 맺은 비공개 합의의사록으로 유고랜드군의 작전통제권은 루이나 사령관에게 넘어갔고, 평시 작전통제권은 뒤에 돌려주었지만 전시 작전통제권은 지금도 루이나가 갖고 있다. 1986년부터 1992년까지는 유고랜드에 전술핵무기를 비밀리에 배치하기도 했다. 2001년 [[1.19 사건]] 뒤 시작된 [[루이나-고랜드 전쟁]]에서 육군은 지상 작전의 주력이었다. 제101공수사단은 고랜드 안정화작전 때 주력이 북부 고랜드에 상륙하기 전 먼저 침투해 반군의 주요 시설을 파괴했다. 그러나 전쟁은 20년 동안 끝나지 않았고, 2021년 협상 없는 일방 철수로 마무리되었다. 고랜드 안정화작전은 '전술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전략적으로는 실패한 작전'으로 평가된다. == 수뇌부 == 루이나 육군은 국방부의 지휘를 받는다. 문민통제 원칙에 따라 국방부의 수장은 문민 공무원인 국방장관이며, 육군의 최고위 장교는 합동참모본부의 일원인 육군참모총장이다. 별도의 육군부는 없다. ||<tablealign=center><bgcolor=#131230><color=#fff> '''직위''' ||<bgcolor=#131230><color=#fff> '''이름''' || || 육군참모총장 || 윌리엄 F. 대버너 대장 || || 육군참모차장 || 헬렌 R. 크로스비 대장 || || 육군주임원사 || 마커스 T. 오두 || == 조직 및 편성 == === 주요 사령부 === ||<tablealign=center><bgcolor=#131230><color=#fff> '''사령부''' ||<bgcolor=#131230><color=#fff> '''임무''' || || 육군전력사령부 || 본토 작전 부대 지휘 || || 육군교육사령부 || 교육·훈련, 교리 || || 육군물자사령부 || 획득, 군수, 정비 || || 육군특수전사령부 || 특수작전 || || 수도경비사령부 || 수도 방위 || || 육군정보보안사령부 || 정보, 방첩, 보안 || || 육군미사일방어사령부 || 방공, 미사일 방어 || || 주유고랜드 루이나군사령부 || 유고랜드 주둔군 || * '''육군전력사령부''': 본토의 사단과 여단을 지휘하는 육군 최대의 사령부다. * '''육군교육사령부''': 신병 훈련과 장교·부사관 교육, 교리 개발을 맡는다. 외국 군 장교를 교육하는 루이나 군사학교(SOR)도 이 사령부 소속이다. * '''육군특수전사령부''': 특전여단과 특수전단을 거느리며, 작전상으로는 루이나 특수작전사령부의 지휘를 받는다. * '''수도경비사령부''': 벨포르 일대의 방위를 맡는다. 1978년 반란 때 진압에 나섰다가 무력화된 뒤로, 지휘관 임명에 국방장관의 별도 승인이 필요하도록 바뀌었다. * '''육군미사일방어사령부''': 패트리어트와 THAAD, 지상 발사 요격 미사일(GBI)을 운용한다. * '''주유고랜드 루이나군사령부''': 유고랜드 주둔 루이나군을 지휘하며, 사령관은 유고랜드군의 전시 작전통제권을 갖는다. === 주요 부대 === * '''제1보병사단''': 육군에서 가장 오래된 사단 가운데 하나다. * '''제9보병사단''': 본토 전방 방어를 맡는다. 1978년 반란 때 전방 2개 연대가 방어선을 떠나 벨포르로 진입한 부대로, 그 일은 사단사에서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았다. * '''[[루이나 101공수사단|제101공수사단]]''': 육군의 공중 강습 사단이다. 고랜드 안정화작전에서 선발 침투를 맡았다. * '''제7특수전단''': 육군특수전사령부 소속 특수부대다. 청북전쟁 때 예하 제2분견대가 띠에우리엔의 부역자 색출에 배속되었다. === 외인부대 === 외인부대는 외국인 지원자로 이루어진 육군 소속 부대다. 1920년대 러시아 혁명 뒤 망명한 백군 출신들을 받아들이며 만들어졌고, 지금도 국적과 관계없이 지원자를 받는다. 5년 이상 성실히 복무한 대원은 루이나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다. 징병제 국가인 루이나에서 직업 군인만으로 이루어진 거의 유일한 부대로, 해외 원정의 선봉을 자주 맡는다. === 시 방위군 === 각 시에는 시 방위군이 있다. 2023년 기준 129,000명인 시 방위군은 평시에는 시의 지휘를 받으며 재난 구호와 치안 지원을 맡고, 전시에는 육군과 공군에 편입된다. 상륙 작전은 별도 군종인 해병대가, 연안 경비는 해안경비대가 맡는다. == 복무 == 루이나는 남녀를 모두 징집하는 나라로, 대부분의 국민이 20세 무렵 260일 동안 복무한다. 징집병의 대부분은 육군으로 간다. 신병은 기초군사훈련의 마지막 관문으로 종합 모의훈련인 '철의 항해'를 치르는데, 해군에서 시작된 이 이름은 육군과 해병대에서도 그대로 쓴다. 징집병도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이등병의 월 기본급은 1,733달러로 시간당 약 12달러이며, 병장은 월 2,427달러다. 정부가 지정한 기업에서 복무하는 대체복무 제도도 있지만, 일부 기업, 특히 민간군사기업에 값싼 인력을 대 준다는 비판을 받는다. 징병의 형평성은 오래된 논쟁거리다. 1970년대 10월 전선이 공개한 징병 명부 이후로, 징집과 병과 배치가 계층과 지역에 따라 불공평하게 이루어진다는 의혹이 선거 때마다 제기된다. == 전력 == === 주요 장비 === 2025년 기준 루이나군의 지상 장비 보유 현황은 다음과 같다. 전차를 뺀 수치에는 해병대 몫이 함께 들어 있다. ||<tablealign=center><bgcolor=#131230><color=#fff> '''구분''' ||<bgcolor=#131230><color=#fff> '''수량''' ||<bgcolor=#131230><color=#fff> '''비고''' || || 전차 ||<:> 1,389대 || 비축 1,500대 별도 || || 장갑차 ||<:> 39,253대 || 비축 10,800대 포함 || || 견인포 ||<:> 1,639문 || || || 자주포 ||<:> 1,538문 || 비축 500문 포함 || || 다연장로켓 ||<:> 1,866문 || || || 수송 차량 ||<:> 157,247대 || || * '''주력전차''': M1A1·M1A2 SEP 에이브럼스. 차기 전차 M1E3를 도입할 예정이다. T-62와 T-72는 가상적군(OPFOR) 훈련 부대가 쓴다. * '''보병전투차·장갑차''': M2·M3 브래들리, M113, M1126 스트라이커 계열, LAV-25. 차기 보병전투차 XM30을 개발 중이다. * '''자주포·다연장로켓''': M109A6 팔라딘과 M109A7, M270 MLRS, M142 HIMARS. * '''방공·미사일 방어''': AN/TWQ-1 어벤저, NASAMS, 아이언 돔, MIM-104 패트리어트, THAAD, 지상 발사 요격 미사일(GBI). === 육군 항공 === 공군이 독립한 뒤에도 육군은 헬리콥터 전력을 직접 운용한다. AH-64 공격헬기와 UH-60 기동헬기, CH-47 수송헬기가 중심이며, 공중 강습을 맡는 제101공수사단이 가장 많은 헬리콥터를 쓴다. == 문제점 == === 정치 개입의 역사 === 루이나 육군의 가장 큰 오점은 국내 정치에 총을 들이댄 역사다. 1916년 빈덴브루크에서 파업 노동자에게 발포한 것은 정치인의 명령이었지만, 1978년 10.10 군사반란은 육군 지휘부가 스스로 일으킨 것이었다. 육군 참모차장과 군 정보사령관이 반란을 주도했고, 전방 사단이 방어선을 비우고 수도로 들어왔으며, 진압 명령은 거의 이행되지 않았다. 반란군 측과 진압군 측을 합쳐 30명이 숨졌다. 반란의 책임을 묻는 데는 20년 가까이 걸렸다. 1997년 생존 가담자 9명이 유죄를 받았지만 최고형은 징역 10년이었고, 주모자 파브르와 갤러거는 이미 세상을 떠나 공소권이 없었다. 반란을 막으려다 숨진 장병들은 1988년과 1990년에야 전사자로 인정되었다. === 해외에서의 인권 문제 === 해외 작전에서도 육군은 여러 인권 문제에 얽혀 있다. * '''띠에우리엔 대학살'''(1975): 청북전쟁 중 띠에우리엔에서 벌어진 대규모 처형 가운데, 북산 국가경찰의 부역자 색출에 육군 제7특수전단 제2분견대가 배속되어 있었다. 분견대가 어디까지 관여했는지는 진술이 엇갈리며, 루이나 정부는 처형이 모두 청평 측 소행이라는 1976년 조사 결과를 지금까지 바꾸지 않고 있다. * '''엘모소테의 학살'''(1981): 엘살바도르 육군 아틀라카틀 대대가 민간인 800~1,000명을 학살한 사건으로, 학살을 주도한 장교들이 루이나 군사학교(SOR) 출신이었다. 루이나 정부는 엘살바도르 정부와 함께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 '''주둔군 범죄''': 유고랜드 주둔 루이나군의 범죄도 반복되었다. 1987년 [[루이나군 하다드 성폭행 사건|하다드 성폭행 사건]]에서는 유고랜드가 재판권을 포기해 루이나 군사법정이 가벼운 처벌만 내렸고, 1996년 [[루이나군 진양지구 부부 살인 사건|진양지구 부부 살인 사건]]의 범인은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감형을 거쳐 특별사면되었다. 이런 사건들 때문에 루이나 군사학교는 '독재자 학교'라는 비판을 받아 왔고, 주둔군지위협정의 형사재판권 조항은 2001년에야 개정되었다. === 문민통제의 과제 === 헌정 회복 이후 육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 왔지만, 과거사를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육군은 10.10 군사반란을 공식 사단사와 교육 과정에서 어떻게 다룰지를 두고 오랫동안 머뭇거렸고, 띠에우리엔에 대해서는 지금도 정부의 1976년 입장을 따른다. 국가비상위원회 시절의 사찰 기록 상당수가 폐기되어, 군정기 육군정보보안사령부의 활동 전모는 지금도 밝혀지지 않았다. == 관련 문서 == * [[루이나/국군]] * [[루이나/해군]] * [[루이나/공군]] * [[10.10 군사반란]] * [[루이나 육군정보보안사령부]] * [[띠에우리엔 대학살]] * [[엘모소테의 학살]] * [[루이나-유고랜드 상호방위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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