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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라인 작전
(r24 RAW)
||<-2><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536349><tablebgcolor=transparent><bgcolor=#536349><color=#fff> {{{+1 '''그레이라인 작전'''}}}[br]Операция Грейлайн|Operation Grayline || ||<-2><bgcolor=#536349><color=#fff> 마테르 전쟁의 일부 || ||<-2><bgcolor=#536349><color=#fff> '''기간''' || ||<-2> || ||<-2><bgcolor=#536349><color=#fff> '''장소''' || ||<-2> 랜드해협 남서 해역, 스트란트 만, 유고랜드 북부 연안 해역 || ||<-2><bgcolor=#536349><color=#fff> '''원인''' || ||<-2> 웨스타시아의 핵무기 운반 함대가 로벤자운 작전을 개시하기 위해 이동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한 루이나가, 이를 차단하고 마베라 수도권 핵 타격을 저지하기 위해 해상 봉쇄 작전을 단행 || ||<-2><bgcolor=#536349><color=#fff> '''교전국 및 교전 세력''' || ||<width=50%>'''루이나 해군'''[br][include(틀:국기, 국명=루이나, 크기=23)]||'''웨스타시아·유고랜드 연합 해군'''[br][include(틀:국기, 국명=웨스타시아, 크기=23)][br][include(틀:국기, 국명=유고랜드, 크기=23)]|| ||<-2><bgcolor=#536349><color=#fff>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지지 의사 표명국·단체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2> '''''(공식)''''' || ||<tablewidth=100%><width=50%><tablebgcolor=#fff,#1c1d1f><tablecolor=#000,#fff> <^|1> [include(틀:국기, 국명=플로렌시아, 크기=23)] 플로렌시아 [include(틀:국기, 국명=마베라, 크기=23)] 마베라 [include(틀:국기, 국명=동사랜드, 크기=23)] 동사랜드 [include(틀:국기, 국명=북산, 크기=23)] 북산 ||<^|1> 없음 || ||<-2> '''''(사실상)''''' || ||<^|1> 없음 ||<^|1> 없음 || }}}}}}}}} || ||<-2><bgcolor=#536349><color=#fff> '''지휘관''' || ||에드워드 V. 솔론 제독[br][include(틀:국기, 국명=루이나, 크기=23)] || 라파엘 코스타 제독[br][include(틀:국기, 국명=웨스타시아, 크기=23)] || ||<-2><bgcolor=#536349><color=#fff> '''전력''' || || 항공모함 2척,전함 2척, 순양함 6척, 구축함 22척, 잠수함 4척, 해상초계기 12기 등 || 수송선 20척, 구축함 2척, 호위함 8척, 잠수함 8척 등 || ||<-2><bgcolor=#536349><color=#fff> '''결과''' || ||<-2> 루이나 해군의 승리. 핵무기 수송 시도 차단에 성공 || ||<-2><bgcolor=#536349><color=#fff> '''영향''' || ||<-2> 로벤자운 작전의 폐기 및 핵무기 수송 작전 실패. 유고랜드 해군력 괴멸. 루이나 해군의 해상 통제권 강화 || ||<-2><bgcolor=#536349><color=#fff> '''피해 규모''' || || 루이나: 구축함 1척 대파, 해상초계기 1기 파손 || 웨스타시아·유고랜드: 수송선 16척 격침, 구송선 4척 나포, 구축함 1척 대파, 구축함 1척 침몰, 호위함 7척 침몰, 잠수함 1척 격침 || [목차] [Clearfix] == 개요 == 그레이라인 작전(Operation Grayline)은 1984년 5월 9일부터 1984년 6월 3일까지 마테르 전쟁 중 루이나 해군이 실시한 대규모 해상봉쇄 작전이다. 루이나는 자국 정보기관을 통해 웨스타시아가 핵탄두를 탑재한 탄도미사일을 마베라 수도권에 투하하기 위한 ‘로벤자운 작전’을 준비 중이며, 이 핵무기를 유고랜드를 경유하여 해상으로 운반 중이라는 사실을 입수하게 된다. 이에 따라 루이나 국방부는 핵 수송을 사전에 차단하고, 마베라에 대한 전략 핵 타격을 방지하기 위해 랜드해협 남서부 및 유고랜드 연안을 중심으로 해상 차단선을 형성하였다. 이 작전은 루이나 해군의 항공모함 전단 및 잠수함 함대가 중심이 되어 유고랜드 서부 해안 일대 보급선과 수송함을 식별·격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레이라인’이라는 명칭은 레이더상 회색선(Gray line)처럼 탐지되는 해상 경계선에서 유래하며, 이 선을 넘어서는 어떠한 수송선도 ‘적성 세력’으로 간주하여 즉각적으로 봉쇄 및 격침 조치가 내려졌다. 루이나는 이 작전을 통해 로벤자운 작전용 핵무기의 수송을 저지하고, 마베라 수도권에 대한 전략 타격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또한, 해당 작전은 유고랜드 해군 전력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히고, 웨스타시아의 보급망에 큰 타격을 가하면서 마테르 전쟁의 전략적 흐름을 마베라 측에 유리하게 전환시키는 전환점 중 하나로 평가된다. 루이나, 플로렌시아, 마베라, 동사랜드, 북산 등은 이 작전을 공식 지지하며 루이나의 군사적 결단에 찬사를 보냈고, 웨스타시아는 이후 한동안 대규모 함대 운용을 자제하게 되었다. == 배경 == 1983년 2월, 웨스타시아는 마테르 전쟁의 서막을 알리며 대규모 북진 작전을 단행했다. 초기에는 성공적인 공세로 평가되었고, 웨스타시아군은 마베라 왕국의 동부를 빠르게 장악했다. 사막 전격전과 공중 강습, 그리고 여러 작전은 마베라군의 초반 방어선을 허물기에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전쟁이 6개월차에 접어들 무렵, 전황은 급변한다. 루이나가 마베라 편에 서서 사실상의 개입을 선언하고, 정밀 유도탄, 군수물자, 통신장비, 위성정찰 자산 등을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마베라는 점차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특히 마베라군은 지형을 이용한 방어전과 국지적 반격을 반복하며, 웨스타시아의 보급선을 끊는 전략을 택했다. 그 결과, 1983년 9월 말경부터 마베라군의 반격이 본격화되었고, 서부 전선의 요충지인 탈무드 요새를 탈환하며 주도권을 되찾았다. 웨스타시아군은 점점 고립되기 시작했고, 군 내부에서도 장기화에 대한 불만과 동요가 확산됐다. 궁지에 몰린 웨스타시아 대통령 알빈 카펜트리 요크 (Alvin Carpentry York)는 마지막 카드로 ‘로벤자운 작전을 승인한다. 이는 전략핵을 탑재한 탄도미사일을 마베라 수도권에 기습적으로 투하해, 지휘 체계를 마비시키고 항복을 받아내려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요크는 국제사회의 비난과 핵보복을 우려해 핵무기 운용을 자국 내에서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대신 우방국 유고랜드를 경유한 해상 수송망을 통해, 핵무기를 마베라 인근 해역까지 은밀히 이동시키려는 시도를 택한다. 이 작전은 완벽히 비밀리에 실행될 예정이었으나, 루이나 정보기관(NIA 및 NRO)의 첩보 분석과 정찰에 의해 조기 탐지된다. 루이나는 즉시 대응에 나선다. 대통령 테디 해럴드는 “이대로 방치하면 마베라 수도에 핵폭탄이 떨어진다. 우리는 개입해야 한다”며 강경한 해상봉쇄 작전인 ‘그레이라인 작전(Operation Grayline)’을 승인한다. 이는 곧 루이나 해군의 항모 전단, 원자력잠수함, 해상초계기를 랜드해협 남서부 해역에 투입해, 모든 비식별 선박을 봉쇄·격침하라는 지시였다. == 전개 == === 5월 5일 === 1983년 5월 5일 오전 03시, 유고랜드 북부의 콜트만 해군기지(Koltmann Naval Base)[* 現 시디벨신항 제2여객터미널 일대.]에서는 웨스타시아 전략사령부의 요청에 따른 전술핵무기 운송 준비 작업이 공식 개시되었다. 해당 작전은 유고랜드 국방부 내부에서 “고위험 산업물자 수송 계획(ZS-13)”이라는 명칭으로 관리되었으며, 명목상으로는 방사선 관련 폐기물과 산업 장비를 수송하는 것으로 위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제 목적은 웨스타시아 제16전술전력사령부가 운용할 단거리 전술핵무기 4기와 그 발사 운용체계의 핵심 부품을 마베라 인근 해역까지 은밀히 수송하는 데 있었다. 이날 선적 작업은 5월 7일 이른 새벽 출항을 목표로, 약 48시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행될 계획으로 구성되었다. 유고랜드 해군과 웨스타시아군은 사전에 지정된 20척의 민간 위장 수송선(Large Supply-Class, LS형)에 물자를 분산하여 탑재하기로 하였으며,핵탄두가 장착된 선박은 각각 LS-907, LS-911, LS-919, LS-905라는 등록번호로 해상에 출현하게 될 예정이었다. 콜트만 제4부두는 이날 새벽부터 완전 통제되었고, 항만 주변은 유고랜드 헌병대가 경계선을 형성한 채 외부 접근을 차단하였다. 루이나의 위성 정찰망을 피하기 위해 전자파 감쇄 장비와 고속 전송식 신호차단 모듈이 일시적으로 부두 일대를 덮었으며, 영상기록 장비와 공공 통신선은 전면 차단되었다. 선적 작업은 웨스타시아 측 기술요원 8인과 유고랜드 핵물자관리국 요원 22인으로 구성된 혼성작업반에 의해 직접 수행되었으며, 수송물은 고에너지 방열체가 삽입된 원통형 차폐 캡슐에 담겨 하나씩 선체 하부 적재구로 이송되었다. 수송될 전략핵탄두는 1기당 추정 중량 약 3,720kg, 사거리 700km 발사체로 평가되며, 각 탄두는 중성자 차폐 코어와 방사선 자동 안정화 모듈, 이중 전자기 교란 방지막이 장착된 상태로 수송되었다. 탄두 외에도 지상 제어용 항법 장비, 공중 발사 옵션 장비 키트, 모듈형 플루토늄 냉각장치 등이 함께 선적되었으며, 이들은 향후 스트란트 해역에서 잠수함 또는 수직발사 플랫폼과의 통합 운용을 전제로 구성된 패키지였다. 작업 개시 첫날인 5월 5일에는 총 2척의 선박(L S-907, LS-911)에 선적이 완료되었고, 나머지 2척은 5월 6일까지 실물을 분산 적재하여 7일 새벽 일괄 출항시키는 방식으로 계획되었다. 각 수송선은 민간 AIS(Maritime 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 장치를 고장난 것처럼 위장하여 꺼둔 상태였고, 위장된 MMSI 번호와 서류상 화물 내역, 정기항로 표기 조작 등을 통해 외부 감시망을 회피하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수송선 일부는 디젤 추진 잠수함 2척(SS-422, SS-427)의 호위 하에 랜드해협 우회항로를 이용할 예정이었으며, 웨스타시아 공군은 위성정찰 연계 전파교란 임무를 별도로 수행하여 루이나의 정찰위성 ORS 계열에 대한 간섭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 선적 작업은 공식 외교 채널을 완전히 우회한 비공식 작전으로, 유고랜드 최고안보회의에서 극소수에게만 통보된 상태였으며, 루이나 정보기관(NIA)은 이 시점에서 관련 작전의 실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마베라 정찰지휘부 또한 유고랜드 해역에서의 이상 징후를 공식적으로 보고받지 않은 상태였다. 이틀간의 선적이 완료되면, 5월 7일 새벽, 4척의 수송선은 예정된 위장 항로를 따라 스트란트 북부 해역으로 향하는 항해에 돌입하게 된다. 해당 해역은 향후 로벤자운 작전의 투발 플랫폼 설치 예정지와 가까운 지역으로, 웨스타시아는 이곳에 발사 인프라를 해상에 은닉 배치하고, 운반된 핵무기를 통해 마베라 수도권에 대한 전략적 기습공격을 단행할 계획이었다. === 5월 6일 === 1983년 5월 6일, 유고랜드 콜트만 해군기지에서는 로벤자운 작전을 위한 전술핵 운송 준비가 이틀째에 접어들었으며, 전날에 이어 LS-919호와 LS-905호에 대한 핵탄두 및 보조 장비 선적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 선적 과정 중 심각한 기술 사고가 발생하면서 작전 일정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고는 오후 13시 42분경, LS-919호에 탑재 예정이던 핵탄두 1기(식별번호 03/Λ-W)를 크레인을 통해 선체 하부 격납고로 이송하던 중 발생했다. 지지장치 해제 시점에 대한 작업자 간 오인으로 인해, 캡슐이 약 23cm 높이에서 낙하하며 차폐구조물 일부가 손상되었고, 내장된 수은 냉각압력장치에 이상 진동이 발생하였다. 이어진 방사선 탐지기 계측에서 세슘계 감마선량이 단시간에 0.94mSv/h까지 치솟았고, 즉시 작업은 전면 중단되었다. 유고랜드 해군은 즉시 핵물자 대응 프로토콜(Z-11-B)에 따라 사고 격실을 격리하고 전체 부두 작업을 3시간 정지, 인근 수송선 전력을 모두 철수 조치했다. 폭발물처리반(EOD)과 핵안전반은 사고 발생 5분 내 현장에 도착했으며, 문제의 탄두는 콜트만 해군기지 방사능 격리구역으로 이송되었다. 작업자 2명이 경미한 방사선 피폭 판정을 받았으나, 경과 관찰 후 회복 조치되었다. 웨스타시아 측 기술진은 해당 탄두의 재사용 가능성을 부정하고, 예비 보관 중이던 04/Λ-Y 코어를 대체 탄두로 지정, 저녁 20시경 선적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격납실 재점검과 탄두 교체, 안전 검증 및 전자 차폐장비 보완 조치로 인해 전체 일정이 최소 72시간 지연되었다. 이로 인해 원래 5월 7일로 예정되어 있던 수송선단 출항은 5월 10일로 연기되었으며, 로벤자운 작전의 초기 일정이 크게 흔들리게 된다.[* 이시점에서 수상함을 앤지한 루이나 국가정찰국은 유고랜드 일대에 대한 위성감시를 강화한다] 해당 사고는 유고랜드 및 웨스타시아 합참 내부에서 철저히 은폐되었다. 콜트만항 일대는 3시간 이상 통신이 정지되었고, 루이나 감청망의 탐지를 피하기 위해 모든 군 통신을 광케이블망으로 전환, 레이더 출력은 정파 처리되었다. 루이나 해군 및 정찰기들은 사고를 인지하지 못했으며, 루이나 국가정보국(NIA)과 정찰국(NRO) 또한 이 시점에서는 수상한 정황을 보고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 사고는 훗날 로벤자운 작전 전체 실패의 서막이자 결정적 단초로 평가받게 된다. 핵무기 수송 일정이 밀린 결과, 루이나 정보기관은 이상항적을 포착하고, 그레이라인 작전을 조기에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콜트만 항구에서 벌어진 단 하루의 기술사고가, 웨스타시아 전략 전체를 무너뜨린 첫 단추였던 것이다. === 5월 9일 === 1983년 5월 9일 오전, 루이나의 정찰위성 ORS-23A ‘페리헬리온’은 유고랜드 상공을 통과하던 정기 비행 중, 콜트만 해군기지(Koltmann Naval Base) 일대에서 열영상 기반 이상 패턴과 항만 내 군사 활동의 급증을 포착했다. 이 관측은 루이나가 로벤자운 작전에 간접적으로 접근하게 된 최초의 정찰 기록으로, 이후 해군과 정보기관의 대응 체계를 급속히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해당 위성은 루이나 정찰사령부 산하 우주자산국 소속의 중고도 적외선 관측 위성으로, 6시간 주기의 자동 궤도 전환과 정밀 SAR(합성개구레이더)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이날 아침 06시 48분 촬영된 이미지에서, 콜트만 제4부두를 중심으로 적외선 대역의 강한 열원 다발과 반복된 야간 작업 흔적, 민간 상선으로 위장된 LS 계열 선박들, 그리고 복수의 방사열 처리 장비와 이동식 냉각탱크가 관측되었다. 이상 징후를 확인한 정찰사령부는 즉시 NIA(국가정보국) 기술분석국에 1차 데이터를 이관했고, 해당 부두의 활동 강도를 “전술 물자 이상 상태”로 분류했다. 이날 오후 작성된 내부 보고서 초안에는 다음과 같은 핵심 분석이 담겼다: *콜트만 제4부두에 정박 중인 LS-919, LS-905 등의 선박이 민간등록 상태임에도 냉각설비, 외부 차폐구조물, 전자기 방해막 등 군사 전용 설비를 갖추고 있음 *최근 72시간 동안 AIS 송신 기록이 완전 정지된 선박이 최소 2척 이상 존재 *동일 선박에 대해 야간 시간대 기준 열 방출량이 기준치 대비 6.4~8.1배 높게 기록, 핵물질 관련 장비 혹은 방사선 차폐물 적재 가능성 제기 *부두 주변 작업 반경 확대, 통신 전파 감쇄 패턴, 광대역 노이즈 차폐 흔적 존재 이러한 정보가 접수되자, 루이나 해군본부는 세라드 해협~스트란트 북부 해역 전 구간에 대한 감시 및 정찰 임무를 10배 이상 강화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따라 기존 1일 2회 관측 주기로 운영되던 위성 정찰과 신호정보 수집 임무는 1일 24회 이상 반복되는 집중 감시 체계로 전환되었고, 특히 콜트만 해역은 전략 정찰구역 “SV-RED”로 상향 조정되었다. 당시 루이나는 해당 수송작전이 구체적으로 전술핵과 관련되었는지를 단정하지는 못했지만, “작전성 고위험 물자의 해상 수송 준비가 진행 중이며, 그것이 마베라 해역을 겨냥하고 있다”는 가설을 정보 당국 전반에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한편, 이 시점에서도 콜트만항의 핵탄두 선적은 여전히 완료되지 않았으며, 5월 6일 발생한 기술 사고로 인해 예정되었던 출항 일정은 최소 이틀 이상 지연되고 있었다. 유고랜드와 웨스타시아 측은 여전히 철저한 보안 아래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루이나가 감지한 정보는 아직 직접적인 개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1983년 5월 9일 밤 11시 03분경, 루이나 국가정보국(NIA)은 유고랜드 내 자국 정보망으로부터 로벤자운 작전의 실체와 핵무기 운송 준비 사실을 최초로 명확히 확인하였다. 이는 같은 날 오전, 정찰위성 ORS-23A가 콜트만 해군기지에서 이상 열원 및 비정상 군수작업 정황을 포착한 데 이어, 루이나 정보당국이 휴민트를 통해 확보한 결정적 증거였다. 루이나는 유고랜드 내 산업계, 항만 행정조직, 군 내 협조자를 포괄하는 복합형 비공식 정보망(H-36 네트워크)를 오랫동안 운용하고 있었으며, ORS-23A의 영상 분석 결과가 보고된 직후, NIA는 해당 지역 네트워크에 “Z-코드 상황분석 보고” 요청을 하달했다. 이 요청은 ‘핵물질 또는 전략위험군 수송 여부 확인’을 의미하는 최고 등급 질의로 분류되었다. 이에 따라 유고랜드 해군 항만 물류대에서 근무 중이던 비밀 협력자 1명과, 콜트만 기지 행정반 내 민간기술계약직으로 위장한 루이나계 요원 2명이 5월 9일 저녁부터 접촉 시도 및 감시 활동에 착수했다. 이들은 작업 교대 시간대와 항만 물자 출입내역을 바탕으로, 선적 중인 특수 화물의 실체에 접근하려 했다. 밤 10시 45분경, 요원 중 한 명은 부두 외곽 소형 물류창고에서 “방사성 냉각 폐기물 재처리 대응반”이라는 명목으로 출입한 웨스타시아 기술자 그룹의 대화 내용을 도청하는 데 성공했다. 도청된 대화에는 핵탄두 캡슐의 진동 안정화 실패, 교체 탄두의 열 방출값 재계산, 발사 플랫폼과의 연결 테스트 연기 등, 명백히 전술핵 관련 용어와 운용체계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NIA는 밤 11시 03분부로 상황등급을 ‘적성국 핵전력 운용 준비 중’으로 상향 조정하였다. 이 보고는 즉시 루이나 국가안보실과 합참 전략국, 그리고 외교부 기밀국 채널을 통해 대통령실에 전달되었으며, 루이나 정부는 처음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전략적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1. 유고랜드는 웨스타시아의 핵무기 운용을 위한 제3국 물류 중계기지로 기능하고 있다. 2. 콜트만 해군기지에서는 민간 화물선 위장을 통한 전술핵 운송이 진행 중이며, 적어도 3기 이상의 핵탄두가 이미 선박에 적재된 상태이다. 3. 수일 내에 해당 수송선단이 마베라 인근 해역으로 출항할 경우, 마베라 수도권에 대한 핵공격이 임박할 가능성이 있다. 이 정보를 통해 루이나는 위성 정찰과 전자신호 감청 단계에서 감지했던 정황들이 단순한 전략물자 운송이 아니라, 실질적인 핵무기 작전 전개임을 확증하였고, 이후 그레이라인 작전의 구체적 실행계획 수립에 즉시 착수하게 된다. === 5월 10일 === 1983년 5월 10일 오전 3시, 루이나 대통령 테디 해럴드는 국가안보실 및 합참의 주요 참모들과의 긴급 회의를 마친 직후, ‘그레이라인 작전(Operation Grayline)’의 발동을 정식 지시했다. 이는 웨스타시아가 자국의 전략핵을 해상으로 운반해 마베라 왕국 수도권을 기습 타격하려 한다는 정보를 루이나 정보기관이 확보한 데 따른 긴급 대응이었다. 작전 지시 직후, 해럴드 대통령은 새벽 4시경 벨포르 대통령궁 기자실에 모습을 드러내고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에서 해럴드 대통령은 “루이나는 지금 이 순간, 세계 평화와 인류 문명을 지키기 위해 해상에 회색 선을 긋는다”고 선언하며, 핵무기의 해상 운송을 결코 용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우리의 위성 정찰 자산과 HUMINT 네트워크는 현재 유고랜드 해역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정상적 군수 움직임이 전략핵과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했으며, 이는 루이나와 마베라, 나아가 인류 전체의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이어 “작전명 ‘그레이라인’은 우리가 설정한 회색의 해상 경계선이자, 핵무기와 문명 사이에 긋는 최후의 선이다”라며, 루이나 해군이 곧 모든 비식별 수송선에 대한 강제 봉쇄 및 필요시 격침 작전에 돌입할 것임을 공표했다. 기자회견 직후, 웨스타시아 정부는 루이나의 발표를 전면 부정하고 나섰다. 대통령 앨빈 카펜트리 요크는 국영방송에 출연해 “핵무기를 해상으로 수송한다는 루이나의 주장은 허위이며, 이는 군사개입 명분을 조작하려는 명백한 선전 행위”라고 비난했다. 웨스타시아 외무부 역시 “루이나의 일방적 해상 봉쇄는 국제법 위반”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조만간 루이나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루이나 대통령의 발표는 마베라를 비롯한 루이나 동맹국들에게는 즉각적인 지지를 얻었다. 마베라 왕가 대변인은 “루이나의 결단력은 국왕 폐하와 국민 모두에게 큰 희망”이라며 성명을 발표했고, 플로렌시아·동사랜드·북산 등지에서도 루이나의 정보력과 군사적 대응에 대해 일정 수준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분위기가 포착되었다. 반면, 사비에트와 청평은 비교적 침묵을 유지하며 상황 관망에 들어갔다. 이날 새벽, 벨포르의 대통령궁 지하작전실에서 시작된 작은 결단은, 곧 랜드해협 전역에 팽팽한 긴장감을 몰고 오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레이라인 작전의 발동은 단순한 해상봉쇄가 아닌, 핵무기의 이동 자체를 물리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루이나의 의지를 천명한 선언이자, 마테르 전쟁이 외곽전선까지 확장되어 국제화되기 시작한 결정적 시발점이었다. 1983년 5월 10일 새벽 5시, 루이나 국방부 합동참모본부의 작전통제에 따라 제3기동함대와 제7해상초계전단이 ‘그레이라인 작전(Operation Grayline)’의 일환으로 랜드해협 남서 해역에 전개되었다. 이는 몇 시간 전 테디 해럴드 대통령의 작전 승인 이후 즉시 실행에 돌입한 고속 전개 계획에 따른 것으로, 루이나 해군은 전시에 준하는 수준의 준비 태세를 유지한 채 해상 봉쇄망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루이나 해군은 총 3개 수상 전투전단과 1개 핵추진 잠수함 전대, 그리고 해군 해상작전항공단 소속 해상초계기 12대를 즉시 출격시켜, 유고랜드 인근 해역 및 랜드해협 전역에 광역 탐색 구역을 설정하였다. 제3기동함대 소속 항공모함 RNS 템페스트, 순양함 2척, 구축함 5척, 보급함 1척 등이 초계와 감시, 식별, 통신 차단 작전을 수행했고, 제9잠수함대 소속 핵추진 공격잠수함 3척이 심해 회랑과 해상 차단 구역에 진입해 비식별 선박의 움직임을 수중에서 추적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날 설정된 ‘그레이라인’ 해상 경계선(EWS; Engagement Warning Sector) 은 루이나군이 위성·항공·해양정보자산을 종합해 설정한 전략적 해상 차단 구역으로, 해당 경계선을 통과하는 모든 선박은 사전 식별 절차 없이는 적성 의심 선박으로 간주되어 즉시 차단 조치 대상이 되었다. 경계선은 루이나군의 전술 네트워크상에 회색의 호선(弧線)으로 표기되었고, 이로 인해 ‘그레이라인’이라는 명칭이 실제 작전명으로 채택되었다. 루이나 해군 대변인은 당일 오전 발표에서 “우리는 지금, 핵무기의 확산과 사용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작전의 목적은 선박 격침이 아니라, 세계를 지키기 위한 선제적 차단”이라고 밝혔다. 1983년 5월 10일 오전 7시경, 랜드해협 남서부 해상에 배치된 루이나 해군 제3기동함대 소속 패러것급 구축함 RNS 발렌시아(Valencia) 가 그레이라인 작전 수행 중 식별 불능 상태의 중형 화물선에 대해 경고탄 발사 후 함포 실탄 사격을 실시하였다. 이는 루이나 해군이 설정한 ‘그레이라인 해상 경계선’을 침범한 것으로 간주된 첫 사례로, 실질적인 무력 충돌이 발생한 작전 개시 이후 최초의 교전이었다. 해당 선박은 국적기 없이 운항 중이었으며, AIS(자동식별장치) 신호를 차단한 채 루이나가 고위험 구역으로 설정한 EWS를 직선으로 통과하던 중이었다. 루이나 해군은 세 차례에 걸쳐 무선 경고를 발신했으나 응답이 없자, 127mm 주포로 선체 전방에 실탄 2발을 사격햤으나 항로를 변경하지 않자, 선체 전방 엔진실로 추정되는 부분에 함포사격을 개시하였다. 이에 따라 선박은 정지되었고, 루이나 해군(승선 조사조)이 탑승해 검문을 실시한 결과, 선박은 유고랜드 국적의 민간 농산물 운송선으로 확인되었다. 사고는 즉시 외교 문제로 비화되었다. 웨스타시아 외무부는 사건 발생 1시간 만에 성명을 통해 “국제 공해상에서 명백한 무력을 동원한 불법 행위”라며 강력히 항의했고, 루이나의 “무차별 사격과 민간인 위협 행위”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긴급 회부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웨스타시아 정부는 특히 “루이나가 핵무기 수송을 구실로 남의 나라 영해에 무단으로 군사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루이나 국방부는 같은 날 정오 발표한 성명에서 “적성 수송선 위장 가능성이 있었고, 해당 선박이 경고를 무시한 채 침투를 시도한 상황에서의 정당한 군사적 대응이었다”고 해명하였다. 또한 루이나 외무부는 “우발적 충돌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핵 확산 방지라는 국제적 책임 아래 작전은 예정대로 계속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1983년 5월 10일 오전 11시, 웨스타시아 해군 소속 아벤타급 호위함 WNS 레스터필드(Lesterfield) 가 유고랜드 연안 해역에서 민간 선박의 항로 안전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출항하였다. 레스터필드는 이전 시각(오전 7시경) 루이나 해군이 민간 선박을 실탄으로 공격한 데 대한 긴급 대응 성격의 임무를 부여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해당 지역에 접근 중이었다. 그러나 루이나 해군 측은 이를 작전 구역(EWS: Engagement Warning Sector) 침범으로 간주, ‘적성 전투함 접근’에 따른 교전 규칙에 따라 무력 대응을 결정했다. 오전 8시 17분경, 루이나 해군 제3기동함대 소속 패러것급 구축함 RNS 퍄러것은 ASM-84 하푼 대함미사일 1발을 발사하여 레스터필드 함의 좌현 중앙부에 직접 명중시켰다. 미사일은 연료 저장 구역에 직격, 화재와 2차 폭발을 유발했고, 이에 따라 레스터필드는 조타 기능과 통신 능력을 상실, 자력 항해가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 약 30분 후, 인근에 대기 중이던 유고랜드 소속 예인선이 긴급 구조에 나섰으며, 승조원 116명 중 12명이 중경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루이나 국방부는 즉각 성명을 통해 “작전구역 내에 진입한 무장 군함을 정당한 적대 세력으로 간주하고 교전한 정당방위 행위”라고 발표했다. 또한, 웨스타시아 해군이 민간 선박 보호라는 명분으로 전투함을 작전구역에 투입한 행위 자체가 도발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웨스타시아 정부는 해당 사건을 두고 “루이나가 의도적으로 충돌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는 국제법상 민간 보호 임무에 대한 무력 침공이자 국가 간 무력공격”이라고 규탄했다. 웨스타시아 외무부는 즉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비상 소집 요청을 발송, 사태 전반을 국제 분쟁으로 전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 사건은 그레이라인 작전이 민간선박 검문을 넘어, 양국 간 사실상의 해상 전투로 확전되었음을 보여주는 첫 사례이며, 이후 사태는 급속히 격화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루이나 해군은 같은 날 작전규칙을 한층 강화하였고, 웨스타시아는 ‘자국 해군에 대한 일방적 공격’을 명분으로 대규모 해상 증원을 선언하였다. 웨스타시아 해군 호위함 ‘레스터필드’가 루이나 해군의 공격을 받아 대파된 사건 직후, 웨스타시아 외무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UNSC) 에 긴급 소집 요청서를 제출하였다. 요청서는 그레이라인 작전의 국제법적 정당성 여부, 루이나의 과잉 대응, 중립국 해역에서의 무력 충돌 가능성 등을 의제로 삼았으며, ‘지역적 무력 충돌이 전면전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같은 날 오후 6시(UTC 기준) 뉴욕 유엔 본부에서 안보리 긴급회의가 비공개로 개최되었다. 회의에는 루이나, 웨스타시아, 유고랜드 외에도 상임이사국 5개국(미합중제국, 소련, 플로렌시아, 사비에트, 청평) 대표단이 모두 참석하였으며, 마베라·동사랜드·북산 등 당사국 연합도 옵서버 자격으로 회의에 입장하였다. 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쟁점이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1. 루이나의 해상 작전 ‘그레이라인’의 국제법 위반 여부 웨스타시아 대표단은 루이나가 유고랜드 공해상에서 민간 선박을 오인 공격하고, 자국 군함을 공격한 것은 명백한 군사도발이며 UN 해양법 협약 위반이라 주장하였다. 반면 루이나 측은 “해당 해역은 전략물자(핵무기 포함)의 불법 운송이 포착된 지역”이며, 자위권 행사이자 핵확산 방지를 위한 정당한 조치라 반박하였다. 2. 민간선박 오폭과 군함 피격의 책임 소재 중립국 플로렌시아는 루이나의 해명 불충분을 지적하며 “루이나는 선제적 정밀확인 절차 없이 실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명백한 과실이 있다”고 발언했다. 사비에트는 “핵무기 운송에 대한 개입은 정당화될 수 있으나, 그 과정에서의 군사행위는 반드시 국제 감시 하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3. 전면 확전 방지 및 조사단 파견 제안 미합중제국 대표는 긴급 성명을 통해 “양국의 무력 충돌이 랜드해협 전체 안보 질서를 뒤흔들 수 있다”며, 현장 조사단 파견과 중재위원회 구성을 제안하였다. 중회인민공화국은 “상호간의 군사적 자제와 투명한 해상 항로 관리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중재적 입장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안보리는 구속력 있는 결의안 도출에는 실패했으나, 마베라 인근 해역에 대한 유엔 감시단 파견, 핵무기 운송 의혹에 대한 국제조사 착수, 루이나 및 웨스타시아 양국에 추가적 군사행동 자제 촉구 등의 내용을 담은 의장 성명을 채택하는 데에는 합의하였다. 루이나 외무부는 의장 성명에 대해 “전면 수용은 아니지만, 국제사회의 우려를 경청하겠다”고 밝혔고, 웨스타시아는 “루이나의 무력행위를 국제사회가 묵과해서는 안 된다”고 반발하였다. 이로써 마테르 전쟁의 외교적 국면은 보다 복잡한 다자적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민간 선박 오인 사격 및 웨스타시아 해군 함정과의 무력 충돌 이후, 루이나 해군은 해역 내 모든 작전 함정에 대해 교전규칙(RoE)의 일시적 강화 조치를 해제하고, 비식별 선박에 대한 대응을 정밀화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에 따라 오후 11시경, 루이나 해군의 페리급 호위함 중 1척이 랜드해협 남서부 구간을 느린 속도로 항해하던 소형 화물선을 포착하고 정지 명령을 발신하였다. 당시 선박은 유고랜드 국적 선사 소속의 '올란디아 호'로, 문서상은 건축자재와 잡화류를 운송 중인 상선으로 기재되어 있었으나, 항적과 적재량, 무선 교신의 일부 누락 등이 확인되면서 루이나 해군은 이를 위험요소로 분류하고 대응에 나섰다. 이전의 오폭 사례와 국제적 압력을 감안하여, 루이나 해군은 이번에는 정지 명령 후에도 35분간 교신을 지속하며 승무원의 반응을 확인했고, 선박 측은 즉각 정지 후 루이나 해군의 검문 요청에 협조했다. 검문은 현장에 투입된 해군 특수점검반에 의해 약 1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결과가 도출되었다: 1. 무기 및 전략물자 발견 없음 2. 화물칸에는 실제로 콘크리트 블록 및 식료품 등이 혼재되어 있었음 3. 화물 적재 목록은 항만 서류와 대부분 일치하였으나, 일부 항목에 ‘군수물자’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부품류 존재 검문 결과 ‘올란디아 호’는 직접적인 위협 요인은 아닌 것으로 판단되었고, 루이나 해군은 경고 조치 후 즉시 출항을 허용하였다. 이후 루이나 국방부는 “정지 명령에 응한 점, 검문 협조에 감사”를 표하며, “정확하고 절제된 작전이야말로 오판의 재발을 막을 유일한 길”이라고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이 사건은 그레이라인 작전 발동 이후 처음으로 무력 충돌 없이 완료된 검문 사례로 기록되었으며, 국제사회에서도 루이나의 전술적 자제가 일정 부분 회복되고 있다는 평가가 조심스럽게 제기되었다. 웨스타시아는 이에 대해 별도 입장을 내지 않았으나, 민간 선박에 대한 대응 양상이 조율되고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5월 11일 === 1983년 5월 11일, 루이나 해군은 ‘그레이라인 작전(Operation Grayline)’의 일환으로 랜드해협 남서 해역에서 선박 7척에 대한 정밀 검문 작전을 실시하였다. 이날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 사이에 걸쳐 진행된 검문은, 루이나 해군의 P-5 3 해상초계기가 탐지한 수상한 항적을 토대로 기획된 것이었다. 이에 따라 패러것급 구축함과 해군 보안대가 투입되어 해상 통제선 근처를 항해하던 각국 상선을 차례로 정지시켰고, 선박들의 자발적인 정박 협조 하에 검문이 진행되었다. 검문 대상은 플로렌시아, 동사랜드, 유고랜드, 북산, 마베라 등지에서 출항한 총 17척의 화물선 및 상선이었다. 선박에는 농기계 부품, 철강재, 피복류, 식용유, 주방 기기 등 다양한 상업용 물자가 적재되어 있었으나, 루이나 해군과 국가정보국(NIA) 연락장교, 해군 조사단이 실시한 승선 점검 결과, 전략 물자나 군수 물자로 판단할 만한 위협 요소는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선적 문서와 실제 적재물 간의 불일치도 확인되지 않았으며, 각 선박의 항로와 통신기록 또한 정상 범위로 평가되었다. 검문이 종료된 뒤, 루이나 해군은 관련 작전 보고서를 대통령실과 국가정보국에 상신하였다. 국방부는 이날 작전에 대해 “직접적인 핵무기 운송 정황은 없었지만, 현재 해상 이동 경로가 불규칙하게 변화하고 있고, 각국 선박들이 이 해역을 우회하지 않고 여전히 통과하고 있어[* 그럴수밖에 없는게 마땅한 다른 길이 없다],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정밀한 정보 기반의 작전수행이 핵무기 운송 저지라는 목표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으며, 과잉대응 없이 국제적 신뢰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의 검문은 작전 개시 이후 루이나 해군이 수행한 최대 규모의 비접전 작전으로, 외신들로부터 “과잉 충돌 없이 군사적 정당성을 확보한 전형적인 예방적 해상작전 사례”라는 평가를 받았다. === 5월 13일 === 5월 13일, 루이나 해군의 그레이라인 작전이 나흘째에 접어들면서 웨스타시아 내부에서는 긴장과 초조가 고조되었다. 특히 루이나 정보국이 유고랜드 항구에서 진행 중이던 핵무기 선적 작전을 탐지하고 봉쇄작전을 본격화한 이후, 로벤자운 작전의 실패 가능성은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에 따라 웨스타시아는 결단을 내렸다. 대통령 알빈 카펜트리 요크는 참모진과의 긴급 전략회의에서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 핵무기 운송을 강행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결국 5월 13일 오전, 마침내 전략핵 탑재 의혹이 있는 유고랜드 국적 상선 2척이 출항했다. 두 선박은 선적 완료 후 즉시 랜드해협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으며, 이들의 표면상 항적은 일반 기계 부품 수송 임무로 위장되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웨스타시아 해군은 비밀리에 잠수함 4척을 배치해 상선들을 원거리에서 엄호하기 시작했다. 이 잠수함들은 무소음 항행이 가능한 디젤-전기 추진 기반의 U-타입 잠수함으로 추정되며, 랜드해 남단 해역에 투입되어 루이나 해군의 탐지망을 우회하려 시도하였다. 잠수함의 주요 임무는 다음과 같았다: 1. 루이나 구축함대의 동태 감시 및 상황 보고 2. 상선 항로의 안전 확보 3. 위기 상황 발생 시 유사시 대응 및 핵물자 자폭 방지 작전 개입 이러한 움직임은 루이나 측 정찰 자산에 의해 당일 즉시 탐지되지는 않았지만, 이후 NIA 및 해군정보국(NIO) 측은 수중 음파 패턴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추가 분석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3년 5월 13일 밤 10시경, 루이나 해군 제3기동함대 소속 캘리포니아급 순양함 RNS 샤를 몽테뉴는 랜드해협 남서 해역에서 정찰 항해 중 정체불명의 수중 음파를 탐지했다. 감지된 신호는 약 1,100m 심도에서 출현한 것으로, 초기엔 대잠 감시장비에 혼선이 생긴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이후 약 9분에 걸쳐 추적한 결과 고속 선회, 급정지, 수직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불규칙한 기동을 보이면서 의심이 증폭되었다. 이에 따라 루이나 해군은 대잠작전코드 ‘블라인드소드’를 발동하고, 해당 수중체의 정체 파악 및 대응 태세에 돌입했다. 루이나 국방부 해양정보처는 이 수중체가 자연 생물일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검토했으며, 국립생물연구원(NBR)과의 공동 분석을 통해 ‘고래류의 오인 탐지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분석 결과, 해당 수중체는 비자연적 이동 경로와 기동 성능을 보였으며, 이는 통상적인 해양 포유류가 나타내지 않는 행동양식이었다. 소나 반향신호가 금속성 음영을 강하게 띠었고, 고래의 장기 밀도나 체내 공기 구조와는 명백히 다른 패턴을 나타냈다. 열감지장비(IR-Seek 3000)로도 어떠한 생체 열반응이 포착되지 않았고, 이는 수중 포유류 존재 가능성을 거의 배제하는 근거로 작용했다. 이러한 기술적 판단과 상황적 증거를 종합한 루이나 해군은, 해당 수중체가 웨스타시아 측이 비밀리에 파견한 전략급 또는 중형급 디젤잠수함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이 시점은 웨스타시아가 전술핵을 실은 상선단을 은밀히 출항시키려는 움직임이 감지된 후였기에, 루이나 군 수뇌부는 이 신호를 ‘로벤자운 작전 수행 전 호위전력 투입’의 전조로 간주하였다. 이에 따라 루이나 합참은 대잠경계범위를 확대하고, 수중 수색단의 동원 준비령을 발동하였다. 또한 ‘샤를 몽테뉴’함은 즉각 대잠 작전 모드로 전환하여 소나탐색, 기뢰 투하, 대잠헬기 전개를 시작하며, 마침내 마테르 전쟁 해상 전역의 전면 확대 조짐을 예고하게 된다. === 5월 14일 === 5월 14일 새벽 2시 14분경, 의심 수역에 폭뢰 3발이 투하되었으며, 약 1시간 뒤 길이 16미터에 달하는 향유고래(Sperm Whale) 사체가 수면 위로 떠올라 이른바 ‘고래 오인 사건’으로 불리게 되었다. 루이나 국방부는 이에 대해 "수중 음파 특성이 이례적이었으며, 전시 경계 상황에서의 불가피한 판단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이면에는 루이나 해군이 감지하지 못한 더 중대한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다. 루이나 정보당국의 사후 분석 결과, 웨스타시아 해군 소속 하스만급(Hasman-class) 잠수함 1척이 실제로 해당 수역에 근접 대기 중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당시 해당 잠수함은 핵무기를 실은 상선을 비밀 호위하기 위해 이동중인 전단에 속해 있었으며, 루이나 해군의 폭뢰 투하로 인한 수압 충격으로 전자장비 일부가 손상되었고, 일정 시간 동안 통신 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웨스타시아는 일시적으로 작전 통제권을 상실하고, 상선 호위계획의 일부 조정 및 선단 위치 변경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루이나는 이 사실을 즉각적으로 파악하지 못했고, 해상에는 단순한 오인 사격에 의한 민간 피해가 발생했다는 여론만이 형성되었다. 당시 웨스타시아 측은 "루이나가 생태계까지 파괴하며 국제 해양법을 위반했다"는 비난을 쏟아내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만약 해당 폭뢰가 수 미터만 더 가까웠다면, 잠수함 자체가 파괴되거나 기밀 임무가 노출될 위험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작전 초기 국면에서 루이나의 판단 미스로 평가되었지만, 실제로는 웨스타시아 해군의 위험한 침투를 우연히 방해한 결정적 변수로 기록된다. 동시에, 웨스타시아로 하여금 로벤자운 작전의 일정 가속화를 검토하게 만든 심리적·전략적 압박 요소로 작용하였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1983년 5월 14일 오전 3시 56분, 루이나 해군은 유고랜드 인근 북서쪽 해역에서 비정상적이고 불규칙한 수중 음파를 탐지하였다. 루이나 해군 제7기동전단 소속 RNS 샤를 몽테뉴(Charles Montaigne)함은 이를 보고받고, 곧바로 대잠 탐색 체계를 가동하였다. 앞서 5월 13일 밤, 유사한 음파에 대응하여 폭뢰를 투하한 후 고래 사체가 수면에 떠오르며 일단락되었으나, 루이나 해군 작전사령부는 해당 음파가 "고래의 이동 패턴과는 명백히 다른 구조적 방향성과 정지성을 지닌다"는 분석을 보고받고 사태를 심각히 받아들였다. 04시 17분, 루이나 해군 호위함 RNS 시메옹 브라세르(Siméon Brasseur)와 RNS 세인트 펠릭스(Saint-Félix)는 해협을 가로지르는 대잠 작전을 개시하였다. 특히 시메옹 브라세르는 복수의 수중 음표본에서 수중 프로펠러 회전음과 압축공기 배출음 등 잠수함 특유의 기계음을 식별했으며, 대응 사격 지점을 확보하고 04시 27분경, 고강도 폭뢰 5발을 직각 선상으로 투하하였다. 잠시의 정적 이후, 04시 30분경 해수면 위로 검은 기름띠와 함께 다량의 파편이 부상했다. 루이나 해군 해양정찰 드론과 P-8 순찰기가 파견되었고, 이들은 직후 잔해 부유물, 가열된 연료 흔적, 유압 파이프 조각 등을 광학 및 적외선 스캔을 통해 확인하였다. 루이나 군 당국은 초기 보고서에서 “비정상적 수중 반응과 함께 폭발 잔류열, 다량의 기름띠, 부유물 등 명백한 침몰 흔적이 확인되었으며, 이는 단순 해양 생물에 대한 반응이 아님을 확증한다”고 밝혔다. 이후 군 통신 감청 부대와 위성 정찰 분석에 따르면, 웨스타시아 해군이 당일 오전 이후로 ‘하스만급(Hasmann-class)’ 잠수함 1척과의 통신을 상실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해당 선박이 바로 핵수송단을 은밀히 호위하던 잠수함 3번대 소속 주력기종 중 하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루이나 NRO(National Reconnaissance Office)와 NIA(National Intelligence Agency)는 5월 14일 정오경 “해당 잔해는 웨스타시아 해군 함적 자료와 일치하며, 이로써 로벤자운 작전의 수중 호위망에 중대한 균열이 발생했다”고 내부 브리핑했다. 웨스타시아 측은 즉각적인 확인을 피하며 “해당 해역에서의 통신 장애가 일시적으로 발생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이후 유고랜드 상공을 통과하던 통신위성 링크의 분석에서 구조 요청 신호 및 자동 SOS 신호 발신 후 연락 두절된 사실이 드러나며 루이나 측 주장이 사실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 사건은 그레이라인 작전 개시 이후 루이나 해군이 수면 아래에서도 제해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했음을 의미하는 첫 분수령이 되었으며, 웨스타시아 해군의 심리적 충격은 물론 핵수송 전략에도 큰 혼란을 초래했다. 특히 수중 보호망 상실로 인해 웨스타시아는 이후 공중 수송 가능성까지 검토하게 되었고, 유고랜드-마베라 방면의 수송 경로는 사실상 봉쇄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 5월 16일 === 1983년 5월 16일, 루이나 해군의 해상봉쇄 작전인 ‘그레이라인’이 본격화되면서 웨스타시아의 전략 핵무기 수송 계획은 심각한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유고랜드 항에서 핵탄두 적재가 완료된 이후, 예정된 수송선단은 루이나 해군의 촘촘한 해상 감시망에 의해 일주일 가까이 발이 묶여 있었고, 반복된 정찰, 검문, 대잠작전으로 인해 수송 일정은 이미 2차례 이상 연기되었다. 웨스타시아 대통령 알빈 카펜트리 요크(Alvin Carpentry York)는 비상 국가안보회의(NSC)를 소집하여 “로벤자운 작전의 지연은 곧 전략적 패배”라는 판단을 내린다. 이 회의에서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해군참모총장 등은 루이나의 정찰망이 강화되고 있는 점을 우려하며 은밀 침투의 시도보다, 호위함을 동반한 강행 돌파가 오히려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결국 1983년 5월 16일 오전 1시경, 요크 대통령은 로벤자운 작전의 작전단장에게 수송선단의 점진적 출항과, 최소 4척의 잠수함 및 호위함을 동반한 분산 돌파 계획을 최종 지시한다. 이는 루이나 해군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일부 수송선이 차단되더라도 최소 하나 이상의 핵탄두를 목표 해역까지 침투시키겠다는 계산이었다. 이 결정은 로벤자운 작전의 본격적인 실행 단계 진입을 의미하는 전환점이 되었으며, 웨스타시아군 내부에서는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각오가 팽배해졌다. 이 같은 판단은 후일 작전의 실패와 직결된 오판으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당시 웨스타시아 수뇌부로서는 전쟁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다. 루이나 정보당국은 당시 이러한 결정이 내려진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했으나, 곧이어 포착되는 해상 이상 징후와 선박의 불규칙 항적, 잠수함 탐지 등 일련의 정황을 통해 작전 개시가 임박했음을 직감하게 된다. 1983년 5월 16일 오전 10시경, 루이나 해군 제7기동전단 소속 패러것급 구축함 RNS 아도니 벨몽(RNS Adonnie Belmont)은 랜드해협 중남부 항로를 따라 북상 중이던 유고랜드 선적의 화물선 MV 샤크에비던트(Shark Evidente)를 포착하였다. 이 선박은 해군 측이 이전부터 감시 중이던 고위험 선박 중 하나로, 위성 사진 분석 결과 선체 중심부의 이중 차폐 구조, 냉각 장치로 보이는 설비, 불규칙한 항적 등 다수의 수상한 정황이 이미 파악된 상태였다. 현장 지휘를 맡고 있던 RNS 아도니 벨몽의 함장 조너선 브릭(Jonathan Brick) 대령은 함선의 속도와 항로가 로벤자운 작전의 예상 수송 루트와 유사함을 확인한 후, 선박 정지 명령 및 정밀 검문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정오 무렵, 작전 해역 주변에서 정체불명의 음파가 반복적으로 탐지되었고, 해상초계기와 통신감청자산의 분석 결과 잠수함 위협의 가능성이 배제되지 않음이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브릭 함장은 단일 구축함만으로 검문을 실시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위험하며, 잠수함이 상선을 호위 중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즉시 루이나 해군 중앙지휘부에 보고하고, "정밀 추적은 계속하되 단독 검문은 실시하지 않는다"는 명령을 하달했다. 샤크에비던트는 이후 속도를 약간 줄인 채 항해를 지속했고, 루이나 해군은 일정 거리 이상의 간격을 유지하며 선박을 계속 감시하였다. 이날의 결정은 루이나 군 내부에서도 신중하면서도 전략적으로 옳은 판단으로 평가받았다. 이후 루이나 해군은 대잠초계기와 추가 구축함 2척을 추가 투입하며, 샤크에비던트를 포함한 고위험 수송선단에 대한 다층 추적망을 형성하게 된다. 정보국(NIA)은 후일 보고서에서 “5월 16일의 보류 결정이 향후 실제 핵무기 적재 여부를 판별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으며, 성급한 충돌 대신 전략적 봉쇄망을 유지한 것은 작전 지속에 있어 긍정적 영향이었다”고 평가하였다. 1983년 5월 16일 오후, 루이나 해군은 유고랜드 선적 상선 샤크 에비던트(Shark Evident) 가 전략핵을 은닉 수송 중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 기존 추적 임무를 확대하여 직접 검문 작전을 개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루이나 해군은 패러것급 구축함 3척을 해당 해역에 증원 배치하였고, 샤크 에비던트를 포위해 검문에 착수할 준비에 돌입했다. 오후 2시 53분경, 편대 중 선두를 항해하던 RNS 스태그혼(Staghorn) 의 좌현 수중 소나에서 정체불명의 고속 열원 3개가 6km 거리에서 접근 중임을 탐지했다. 루이나 해군은 즉시 어뢰 공격 가능성을 상정하고 회피기동 및 대응폭뢰 준비 절차에 돌입하였다. ||<-2><bgcolor=#fff,#212121><nopad> [[파일:체리글레이드격침.jpg|width=100%]] || ||<-2><bgcolor=#536349> '''{{{#fff 어뢰에 맞아 폭발하는 체리글레이드 호위함}}}''' || 그러나 회피기동 도중 후방에 위치한 RNS 체리글레이드(Cherryglade) 가 어뢰 1발에 측면 피격당해 대파되었으며, 기관부 침수 및 선체 일부 파괴가 발생했다. 해당 구축함은 즉시 비전투 배치로 전환되었고, 인명 피해는 7명 부상, 2명 실종으로 보고되었다. 나머지 어뢰 2발은 자동 폭발 혹은 유도 실패로 추정된다. 사건 직후 루이나 해군은 에비던트호 검문 작전을 전면 중단하고, 상선의 추적은 유지하되 잠수함 위협을 최우선 고려한 후속작전으로 전환하였다. 또한, 샤크 에비던트 주변 해역을 ‘충돌 고위험 지역(High Conflict Risk Zone)’으로 공식 지정하고, 대잠 헬기와 초계기, 폭뢰장비를 갖춘 추가 전력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루이나 국방부는 당일 저녁 발표에서 “이 작전은 단순한 검문 활동이 아닌, 실질적 전투에 준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며 웨스타시아의 비대칭 해군전 전개를 사실상 인정하였다. 동시에 루이나 정보당국은 이번 피격 사건이 로벤자운 작전을 은닉·호위하기 위한 웨스타시아의 전술적 조치로 판단하고, 핵수송 저지를 위한 그레이라인 작전의 범위 확대를 예고했다. 5월 16일 오후, 루이나 해군의 구축함 RNS 체리글레이드가 정체불명의 어뢰에 피격되어 대파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루이나 정부는 이를 명백한 군사적 도발이자 핵 수송 시도에 대한 증거로 간주하고, 웨스타시아 측에 강력한 항의 외교문서를 송달하였다. 루이나 외무부 대변인은 “우리 함선이 검문 임무 도중 공격받은 것은 국제법 위반이며, 이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웨스타시아의 무책임한 행동이 근본 원인”이라며 유고랜드 선적 상선에 대한 즉각적 정밀 조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웨스타시아 정부는 루이나 측의 주장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통령 알빈 카펜트리 요크는 공개 국가안보회의를 통해 “루이나의 일방적 검문과 봉쇄는 주권국가의 통상권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민간 선박의 안전 보장’을 명분으로 해군 호위함을 문제 해역에 추가로 전개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5월 16일 밤, 웨스타시아 해군 소속 호위함 3척이 샤크 에비던트를 포함한 상선단의 우현과 후방 해역에 배치되었으며, 명목상으로는 ‘정찰 및 경계 임무’였으나 실질적으로는 루이나 해군의 검문 작전 저지를 위한 방어선 구축임이 명확했다. 동시에 웨스타시아는 루이나 측의 무력행사를 “과잉 대응이며, 공격적이고 모욕적인 행동”이라 규정하며 국제사회에 ‘중립 해상 항로의 안전 보장’을 위한 국제적 감시단 파견을 요청했다. 루이나 국방부는 이에 대해 “핵무기를 숨긴 선박을 보호하려는 전형적인 방해 시도”라고 비난하며, “그레이라인 작전은 철수하지 않으며, 불법 무기 수송에 가담하는 호위함은 적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했다. 이로써 마테르 전쟁의 일환으로 벌어진 해상 봉쇄 작전이 본격적인 무력 충돌과 대리 해상전의 국면으로 진입하게 되었으며, 양국 모두 외교적 해결보다 군사적 주도권 확보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1983년 5월 16일 오후 11시 40분경, 웨스타시아는 핵무기를 탑재한 것으로 의심되는 수송선단을 강행 돌파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이는 루이나 해군의 그레이라인 작전(Operation Grayline)에 따른 해상 봉쇄가 연일 강화되고 있던 가운데, 더 이상의 지체는 작전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웨스타시아 해군은 호위함 3척을 전면 배치하고, 수송선들을 선두에서 감싸듯 엄호하며 남서 해역으로 진입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움직임은 루이나 해군 정찰망에 즉시 포착되었고, 캘리포니아급 순양함 RNS 안셀럼 브루너와 패러것급 구축함 2척이 기동부대 형태로 차단에 나섰다. ===5월 17일 === 17일 0시 정각, 루이나 해군은 수송전단 측에 공식 무선으로 최후통첩을 전달하였다. “이 해역은 전략무기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봉쇄 해역이며, 지금 즉시 진로를 변경하고 정지하지 않으면 무력 대응이 개시된다”는 경고였다. 그러나 웨스타시아 측은 “민간 선박 보호를 위한 통상 항로 이용”이라며 루이나의 일방적 통보에 ㅗ를 날리며 무시하고 그대로 진입을 강행했다. 이에 따라 0시 3분경, 루이나 해군은 하푼 대함미사일(ASM-84) 2발을 발사하였다. 각각 웨스타시아 호위함 WSN 카사빌라와 WSN 프로빈셜을 목표로 한 미사일은 1발이 명중, WSN 카사빌라를 직격하여 화재를 유발하고 추진력을 상실하게 만들었고, 다른 1발은 근접방어체계(CIWS)에 의해 요격되었다. 이에 대응하여 웨스타시아 호위함 2척이 각각 대함미사일(AS-2 ‘Striker’) 1발씩을 발사, 루이나 해군의 순양함 RNS 안셀럼 브루너와 구축함 RNS 리차드 라크로스를 목표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루이나 해군은 고도화된 전자전 체계와 방공 요격 시스템을 통해 이에 신속히 대응했다. 안셀럼 브루너는 SM-2 요격미사일을 통해 적 미사일 1발을 공중에서 격추했고,네이든 카라스는 초가 요격에 실패했으나 CIWS로 남은 1발을 1.8초 전 파괴하며 피해를 방지하였다. 이로 인해 웨스타시아 측의 반격은 사실상 무위에 그쳤으며, 루이나 해군의 방어 능력 우위가 국제적으로 입증되는 순간이 되었다. 루이나 국방부는 교전 종료 직후 성명을 통해 “전술적 억제 조치에 불과한 대응이며, 자국 해군의 정당한 방어행위”라고 발표하였다. 반면 웨스타시아 정부는 “국제 해상 항로에서의 군사적 도발”이라며 강하게 항의했지만, 이미 호위함 1척이 사실상 무력화된 상황에서 수송선의 추가 이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더이상 뒤가 없는 웨스타시아였다. 전날 밤 루이나 해군과의 교전에서 대함미사일 발사 및 요격전이 벌어진 직후, 웨스타시아군 지휘부는 전략적 결단을 내리게 된다. 이미 로벤자운 작전은 상당한 지연과 노출로 인해 국제적 감시망에 포착된 상태였고, 수송선단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시간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1983년 5월 17일 새벽 3시경, 웨스타시아는 로벤자운 작전의 남은 모든 핵무기 탑재 수송선들을 일제히 출항시키고, 해군 함대를 총동원하는 강행돌파 작전을 개시하였다. 본 작전에는 순양함 2척, 구축함 4척, 호위함 6척, 지원선박 및 전자전 특화함 등 총 18척 규모의 해상 전력이 투입되었으며, 이들은 다중 호위 편제로 핵물자 수송선들을 외곽에서 엄호했다. 웨스타시아 해군은 이를 “평화유지 수송단”이라 명명하고, 작전의 외형상 명분을 유지하면서도 내부 지침으로는 ‘봉쇄선을 돌파하여 지정 좌표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달하라’는 강경 지시를 내렸다. 루이나 해군은 이미 레이더 및 해상초계기(항공초계, E-2계열) 관측을 통해 수상한 대규모 선단 이동을 감지하고 있었으며, 그 성격과 구성에서 전면 충돌이 임박했음을 직감하였다. 한편, 루이나의 대통령 테디 해럴드는 작전 상황 보고를 받고 “이제 이것은 마베라만의 전쟁이 아니다. 우리는 핵무기 운송을 국제 안보의 직접적 위협으로 간주한다.”고 발표하였다. 루이나 합참은 즉시 봉쇄선 방어 및 항모전단 이동을 포함한 방어 작전 계획 '그레이라인-알파(Grayline-Alpha)'의 3단계로 진입했다. 1983년 5월 17일 오전, 웨스타시아 해군의 수송선단이 루이나의 해상봉쇄선을 돌파하려 하면서 마테르 전쟁은 극단적인 무력충돌 국면에 진입했다. 루이나 해군은 즉시 대응에 나섰으며, 항공모함 RNS 블레이크 나이트와 테오도르 스콧에서 A-6E 인트루더와 F-18 호넷 등 함재기들을 대규모로 발진시켰다. 이들은 ‘레벨 크레스트(Level Crest)’ 작전의 일환으로 지정된 작전공역에 투입되었고, 동시에 루이나 해군 구축함과 순양함은 대함미사일을 실전 모드로 전환했다. 같은 시각, 웨스타시아는 니벨룽겐공군기지로부터 전투기 22대를 긴급 출격시켜 제공권 장악과 수송선단 보호에 나섰다. 오전 6시 30분, 랜드해 상공에서는 루이나 조기경보통제기(E-2C 호크아이)의 지휘 하에 루이나군과 웨스타시아군 사이에 대규모 공중전이 전개되었다. 루이나는 선제 타격으로 작전을 개시했다. 오전 7시 15분경, 순양함 RNS 캘리포니아 및 구축함 2척이 RGM-84 하푼 대함미사일 8발을 일제히 발사했고, 이 중 6발이 웨스타시아 수송선단에 정확히 명중하여 수송선 2척이 격침되었다. 해상에는 폭발과 함께 화염이 치솟았고, 대규모 기름띠가 확산되면서 구조 활동이 어렵게 되었다. 나머지 수송선들은 긴급히 항로를 변경하거나 속도를 높여 회피를 시도했으나, 루이나의 해상 봉쇄선은 거의 완전한 형태로 기능하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벌어진 공중전은 사상 최대 규모로 확산되었다. 루이나 F-18 호넷 16기와 웨스타시아 유진 토네이도 22기가 교전했으며, 양측은 AIM-120 AMRAAM, AIM-9 사이드와인더, IRIS-T, 스패로우 등 최신 공대공미사일을 교차 발사했다. 전투 결과, 루이나는 F-18 2기를 잃었으나 웨스타시아는 토네이도 전투기 9대를 상실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격추된 기체 일부는 해상으로 추락했고, 조종사 중 3명은 구조되었으나 나머지는 실종 처리되었다. 루이나군은 상황이 고조됨에 따라, 오전 9시부로 국가 대비 태세를 데프콘 3에서 데프콘 2로 격상했다. 이는 2차 랜드전쟁 이후 처음으로 발동된 등급이었으며, 루이나 대통령 테디 해럴드는 국가안보위원회(NSC) 비상소집 회의 후 “핵 확산 시도를 단호히 저지할 것”이라며, 무력 사용의 정당성을 공식화했다. 루이나 외교부는 “이제 루이나는 국제법과 자위권에 따라 행동하며, 선제공격의 책임은 전적으로 웨스타시아 측에 있다”고 주장했다. 웨스타시아는 격침된 수송선에 실려 있던 적재물이 공개되지 않았으며, 루이나 측은 이들 중 하나 이상이 전술핵 무기를 운반 중이었다는 정황이 있다고 발표했다. 마테르 전쟁은 이제 단순한 지역전에서 벗어나, 국제사회를 공포에 몰아넣는 핵위기 상황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 5월 18일 === 1983년 5월 18일, 루이나 해군은 마테르 전쟁 개입 이후 가장 대담한 직접 공격에 나섰다. 현대화 개조를 마친 아이오와급 전함 RNS 위스콘신은 이날 새벽 3시 40분경, 웨스타시아군의 전략 공군기지인 ‘니벨룽겐 공군기지(Nibelungen Air Base)’를 향해 토마호크 BGM-109 순항미사일 16발을 일제히 발사했다. 이 전함은 컨테이너형 토마호크 발사대 8문(각 4발 탑재)을 장착하고 있었으며, 해당 발사대는 고정 각도로 설치되어 회전 없이 수평으로 사출하는 구조였다. 발사된 16발의 미사일은 각기 다른 궤도를 따라 비행, 초저공으로 사막과 계곡을 스치듯 날아 니벨룽겐 기지의 활주로, 격납고, 유류저장고, 관제탑, 방공포대 등을 정밀하게 타격했다. 특히 활주로는 미사일 6발의 집중 공격을 받아 대형 크레이터가 생성되었고, 이로 인해 이착륙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피해는 심각했다. 격납고 2동이 붕괴, 그 안에 있던 토네이도 IDS기 3대와 조기경보기 1대, 보잉 공중급유기 1대가 전소되었으며, 항공 정비대 소속 인원 중 24명이 사망, 2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기지 내부의 지휘통제 시스템이 전소되는 피해를 압었으며, 항공작전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웨스타시아 국방부는 “적의 기습적 공군기지 파괴 시도는 명백한 선전포고이자 군사도발”이라며 강력히 항의했고, 루이나 정부는 곧바로 대응 성명을 통해 “공군기지가 타격 작전에 사용되었다는 정황이 확보되었으며, 국제법상 정당한 선제적 방어 조치”라고 주장했다. 니벨룽겐 공군기지의 일시적 마비는 웨스타시아 해군 수송작전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루이나군의 장거리 타격 능력이 실전에서 입증되면서 웨스타시아의 전략적 우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국제사회는 우려를 표하며 “사태가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고, UN 안전보장이사회는 같은 날 긴급회의 소집을 결의했다. 1983년 5월 18일 오후, 루이나 해군이 웨스타시아의 니벨룽겐 공군기지를 순항미사일로 타격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충격을 안긴 가운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UNSC)는 긴급히 비공개 안보리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는 뉴욕 유엔 본부에서 그리니치 표준시 20시(현지시각 오후 4시)에 열렸으며, 상임이사국들과 관련 당사국들인 루이나, 웨스타시아, 마베라, 유고랜드의 대표단이 참석했다. 회의에서 사비에트와 영국, 베트남과, 중화인민공화국, 동사랜드 등은 일제히 사태의 확전을 우려하며, “모든 당사국이 군사적 긴장을 즉각 완화하고, 수송선 검문 및 해역 봉쇄를 중단할 것”을 골자로 한 중재 결의안 초안을 제안했다. 플로렌시아 외무장관은 회의에서 “이 전쟁은 핵무기 수송 여부를 둘러싼 극단적인 군사행동으로 치닫고 있다. 외교의 문을 지금 닫아버린다면, 내일은 그 문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발언하며, ‘좋게 좋게 끝내자’는ㅠ국제사회의 평화적 중재를 강조했다. 그러나 루이나 측 안보리 대표 라파엘 모레이라(Rafael Moreira)는 강경한 태도로 이를 거부했다. 그는 “루이나는 지금 전 지구적 핵확산 위협을 막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에 서 있다”며, “검문은 계속되며, 모든 불명확한 선박과 군사활동은 정당한 표적이 될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이어 그는 “이 사태를 좋게 끝낼 생각이었다면 웨스타시아는 핵무기를 싣지 말았어야 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회의는 결론 없이 파행되었고, 결의안 초안은 루이나의 반대로 부결되었다. 플로렌시아는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외교적 수단이 아직 남아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시간이 많지 않다”며, 향후 긴급 추가회의 소집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편, 웨스타시아는 회의 내내 핵무기 운송설을 전면 부인했으며, “수송선은 인도적 물자만을 운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5월 19일 === 1983년 5월 19일 오전 10시 45분경, 루이나 해군은 해상봉쇄작전의 일환으로 랜드해협 남서부 해역을 항해 중이던 정체불명의 대형 수송선 1척에 대해 최초의 전함 포격을 감행하였다. 사격을 수행한 함선은 루이나 해군의 아이오와급 전함 중 현대화 개조를 마친 제3번함 미주리(RNS Missouri)로, 당시 해역에서 봉쇄선을 이탈하려 시도하는 선박을 중거리 레이더로 탐지한 뒤 수차례의 정지명령을 발신했으나 응답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주리는 이에 따라 사거리 35km급의 5인치 부포를 이용해 경고포 2발을 발사했으며, 해당 선박이 여전히 항해를 멈추지 않자 주포 사격 3발을 추가 실시했다. 포격은 선박의 선미 부분에 명중했고, 화재와 연료 유출을 유발하며 선체를 심각하게 대파시켰다[* 함체가 찢겼다는 표현아 적합하다,] 이후 루이나 해군의 구축함이 근접 접근해 승선 검문을 시도했으나, 선박은 부분 침몰 상태에 접어들었으며, 선원 전원은 구조되었으나 사상자 57명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선박은 등록국가가 명확하지 않았으며, AIS(자동식별장치) 또한 꺼진 상태로 운항 중이었다. 루이나 해군은 사후 검문에서 일반 상선으로 위장된 불법 군수 운반선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선내 일부 방사선 차폐 장비와 군용 포장 상자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한편 웨스타시아 정부는 곧바로 성명을 내고 “공해상에서 벌어진 명백한 민간선박에 대한 불법적 선제공격”이라며 강력히 항의했다. 웨스타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루이나가 고의적으로 분쟁을 확대하고 있다”고 비판했으나, 루이나 국방부는 “국제 봉쇄선(EWS)을 통과한 정체불명 선박은 모두 적성행위로 간주한다는 기존 방침에 따른 조치”라고 대응했다. 같은 날 오후 1시경, 루이나 해군 전함 미주리(RNS Missouri)가 불명의 수송선을 포격하여 대파시킨 사건 이후, 웨스타시아 해군은 즉각적인 보복 조치에 나섰다. 웨스타시아 측은 근처 해역에 은밀히 배치된 수상함 전력으로부터 총 7발의 대함미사일을 동시 발사하여 미주리를 정조준했다. 이들 미사일은 대부분 RBS-15 계열의 중거리 대함 미사일로 추정되며, 속도와 회피 기동 성능을 갖춘 위협적인 전력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루이나 해군은 이를 사전에 충분히 예견하고 있었으며, 함대 방공망의 경계태세 또한 최고조에 도달한 상태였다. 특히 미주리호는 개량된 CIWS(근접방어화기체계)인 팰렁스 블록1B와 SPY-2 계열 다기능 레이더, 해상도발 레이더망과 연동된 교차요격체계를 운용하고 있었다. 이중 일부는 인근 구축함 및 순양함과 통합된 함대 공중방어 체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공격 개시 후 약 18초 이내에 전 함대가 발사된 미사일을 탐지하였고, 미주리를 중심으로 한 방공망은 즉시 요격 절차에 돌입했다. 함대 소속의 구축함 1척이 SM-2 함대공 미사일 3발을 발사해 고고도 유도탄 2기를 격추했고, 나머지 5발은 팰렁스 CIWS 및 근접방어탄에 의해 미주리 상공 2.5km 이내에서 모두 격추되었다. 마지막으로 접근하던 미사일 한 기는 명중 0.8초 전까지 접근하였으나, 미주리의 좌현 CIWS에 의해 격추되었으며, 이때 발생한 파편에 의해 갑판 근무 중이던 수병 1명이 오른쪽 눈을 크게 다쳐 실명하는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루이나 해군은 이후 해당 수병을 긴급 이송하였으며, "그의 희생은 전함과 수백 명의 장병을 지켜낸 용기의 상징"이라고 발표했다. 이 일련의 대응은 루이나 해군이 전면전 상황에서도 냉정한 방공 통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능력을 입증한 사례로 기록되었다. 한편, 루이나 정부는 웨스타시아의 이번 공격에 대해 “해상 봉쇄에 대한 무력 도전이며, 루이나는 결코 퇴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1983년 5월 19일 밤, 루이나 해군 전함 미주리가 불명의 수송선을 포격하고, 이에 대한 웨스타시아의 보복 공격까지 완전히 차단당한 시점에서, 웨스타시아 대통령 알빈 카펜트리 요크(Alvin Carpentry York)의 정신적 상태는 극단적으로 몰려 있었다. 핵무기 운송 작전은 이미 4차례나 지연되었고, 봉쇄선 돌파 시도는 연이은 실패로 끝났으며, 전략자산인 잠수함 1척이 침몰당하고, 공군기지 활주로는 토마호크 미사일로 초토화되었다. 여기에 해군의 수송전단 일부가 격침당하고, 22대의 토네이도 전투기 중 9대가 격추되는 치욕적인 손실까지 겹치면서, 작전 전체가 붕괴 직전의 위기에 직면한 것이었다. 상황 보고를 들은 요크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책상을 내리치고 유리병을 던지는 등, 고함을 질렀고, 참모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그날 밤 비서진에게 “우리는 지금 루이나라는 철의 벽 앞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다들 미쳤다, 아니면 나만 미친 건가?”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손은 떨렸으며, 이전까지 보여주던 침착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웨스타시아 내각은 이러한 요크의 상태를 우려하며 비공개로 권한대행 체제 검토까지 논의했으나, 요크는 “끝장을 보겠다”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점에서 웨스타시아는 사실상 로벤자운 작전 실패의 길목에 서 있었고, 대통령 자신조차 상황 통제력을 상실해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 5월 20일 === 5월 20일, 랜드해협 해역은 이례적으로 조용했다. 수일간 이어졌던 루이나 해군과 웨스타시아 해군 간의 격렬한 교전, 공중 충돌, 핵수송선 추격전이 일시적으로 멈춰섰고, 양측 전선은 마치 숨을 죽인 듯 긴 침묵 속에 잠겼다. 루이나 해군은 여전히 해상봉쇄를 유지하고 있었고, 공군 또한 E-2C 호크아이 및 F-18 호넷을 띄워 항시 공역 감시 태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충돌은 없었다. 이는 웨스타시아 측이 다음 돌파 시도를 위한 재편성과 핵무기 수송선 은닉 작전의 마지막 기회를 노리며 전열을 정비하던 시간이기도 했다. 이날 루이나 해군 내부에서는 일종의 불길한 침묵이 감돌았다. 캘리포니아급 순양함 브리튼함의 함장은 자신의 항해일지에 “이건 폭풍 전야다. 놈들은 반드시 다시 온다”고 적었다. 루이나 본토에서도 대통령 테디 해럴드는 “우리는 결코 방심하지 않는다. 밤에도, 파도 속에서도 경계는 이어진다”는 군 사기 진작 연설을 라디오로 송출했다. 국제사회도 이날 하루만큼은 숨을 골랐다. UN 안보리는 재차 긴급 회의를 소집했으나, 루이나와 웨스타시아 간 중재는 여전히 결렬 상태였다. 외교적으로는 아무런 진전이 없었고, 군사적으로는 정적 속에 검은 수면 아래로 응축된 분노와 계획들이 도사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날 밤, 랜드해협에는 별이 유난히 밝았다. 그러나 누구도 그 별빛 아래 고요함이 평화가 아닌 더 거센 전투의 전조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5월 20일은 마치, 태풍이 다시 고개를 들기 전 마지막으로 세상이 숨을 참는 순간 같았다. === 5월 21일 === 5월 21일 오전 6시 35분경, 랜드해협 남서 해역에서 해상봉쇄 작전에 참여 중이던 루이나 해군 소속 패러것급 구축함 ‘RNS 보렐(Borel)’이 정체불명의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bgcolor=#fff,#212121><nopad> [[파일:보렐격침.webp|width=100%]] || ||<-2><bgcolor=#536349> '''{{{#fff 어뢰에 맞아 폭발하는 보렐 함}}}''' || 사고 당시 구축함은 수상 선박 1척을 추적 중이었으며, 봉쇄선 내에서 상대 선박의 항로 변경을 감시하고 있었다. 첫 번째 어뢰는 선체 좌현 중앙부 하단에 명중했으며, 이어진 2차 폭발로 기관실이 침수되면서 급속한 기울어짐 현상이 발생하였다. 승조원 116명 전원은 퇴함 명령 이후 무사히 구조되었으며, 이 중 24명은 폭압 및 화상 등으로 부상을 입었다. 인근 함정 및 병원선에서 치료 중이며,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루이나 국방부는 공식 발표했다. 루이나 국방부 대변인은 당일 기자회견에서 “어뢰 공격은 누가 봐도 명백한 선제적 적대 행위”라고 규정하고, “공격 주체에 대해 웨스타시아군의 은밀한 잠수함 작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다만 직접적인 증거 확보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루이나 해군은 사고 해역 인근 수심 140m 지점에서 집중 수색 및 수중 감청 작전을 개시했으며, 어뢰 잔해 일부를 회수하여 분석 중이라고 전했다. 초동 감청 보고에 따르면, 공격 당시 주변에는 웨스타시아 해군 통신 주파수가 교신 상태였던 흔적이 포착되었다는 점도 수사 대상에 포함되었다. 본 사건은 그레이라인 작전 개시 이후 루이나 해군이 첫 손실을 입은 사례로 기록되며, 봉쇄선 내부가 완전히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루이나 본토에서는 DEFCON 2의 지속을 재확인하는 비상 대응 회의가 이어졌고, 대통령 테디 해럴드는 이날 저녁 “우리 군은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라는 성명을 통해 강경 대응 기조를 유지할 것을 천명했다. 하지만 진짜 공격은 바다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1983년 5월 21일 오후 5시 14분, 루이나의 수도 벨포르 한복판에 위치한 루벨 광장에서 대규모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시각, 광장에서는 반전 시위가 마무리되는 중이었고, 수백 명의 시민들이 귀가를 준비하던 상황이었다. 갑작스러운 폭발은 인근 건물 외벽과 유리창을 무너뜨릴 만큼 강력했고, 현장에서 85명이 즉사하고 24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구조당국은 즉시 출동했으며, 경찰과 MIA(광역수사국) 요원들이 주변 지역을 봉쇄하고 시민들을 대피시켰다. ||<-2><bgcolor=#fff,#212121><nopad> [[파일:폭탄테러.webp|width=100%]] || ||<-2><bgcolor=#536349> '''{{{#fff 사고 현장}}}''' || NIA(국가정보국)의 긴급 분석 결과, 폭발물은 군용급 고성능 폭약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원격 기폭 장치에 웨스타시아제 기폭장치가 사용된 흔적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정황에 따라 루이나 정부는 웨스타시아 또는 그 연계 세력을 배후로 지목했고, 대통령 테디 해럴드는 이를 "본토 민간인을 겨냥한 전시 테러"로 규정했다. 같은 날 오후 4시, 테디 해럴드는 국가안보회의를 주재한 후 전국적인 계엄령을 선포했다. 헌법 제14조 및 국가비상조치법 제5조에 따라 발동된 이번 계엄령은 루이나 전역에 통행금지령(오후 10시부터 오전 5시까지)을 도입하고, 언론 통제, 도심 검문소 설치, 군의 항만 및 철도 통제, 그리고 집회 금지 등을 골자로 한다. 군 병력은 곧바로 벨포르, 나보레, 톨루즈 등 주요 도시로 배치되었다. 대통령은 발표를 통해 "우리는 전면전 상황에 있으며, 적은 이제 바다를 넘어 본토의 심장까지 겨누고 있다"며 "모든 관련자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사건은 루이나가 전시 체제로 완전히 돌입하는 계기가 되었고, 국민적 분노와 안보 불안은 극에 달했다. === 5월 22일 === 1983년 5월 22일 새벽 4시 30분경, 루이나 해군은 동부 해안선에 대해 전면적인 해상 포격 작전을 개시했다. 이는 작전의 일환이자, 웨스타시아의 핵무기 운송 시도를 전면 차단하기 위한 물리적 압박 수단이었다. 이날 작전에는 루이나 해군의 아이오와급 전함 1번함 ‘아이오와(Iowa)’와 3번함 ‘미주리(Missouri)’, 그리고 패러것급 구축함 4척, 챈슬러빌급 순양함 2척이 동원되었다. 주력 전함들은 406mm 주포를 이용해 웨스타시아령 포르톤(Porthon) 항 근처의 군 보급 기지 및 철도 관제소, 그리고 해안 레이더 기지를 집중 타격했고, 구축함들은 이를 엄호하며 근거리 대공 방어와 소형 목표 타격 임무를 수행했다. 총 사격 시간은 약 3시간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1,200발 이상의 고폭탄 및 반철갑탄이 발사되었다. 특히 포르톤 군항 북쪽 언덕에 위치한 탄약 창고에 직접 명중탄이 떨어지면서 2차 폭발이 발생, 대규모 화염과 연기가 해안을 덮었다. 웨스타시아 측은 이 공격으로 병력 248명 사상, 항만 장비 및 탄약 3,000톤 소실 등 심각한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루이나 해군은 사후 발표에서 "수송선 보호를 빌미로 군사적 통제를 넘어서려는 웨스타시아 해군의 작태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밝혔으며, 추가적인 해안포격 가능성 또한 시사했다. 반면 웨스타시아 정부는 이를 ‘선전포고에 준하는 행위’라 규정하며 국제사회의 개입을 촉구했다. === 5웡 23일 === 1983년 5월 23일 새벽, 웨스타시아는 수 주째 이어진 루이나 해군의 강력한 해상 봉쇄선을 돌파하기 위해 전 해군력과 공군력의 총동원에 준하는 전면 작전을 개시했다. 루이나 측은 이 사건을 ‘마테르 해전 최대 충돌일’로 기록하며 이후 전황이 결정적으로 기울게 되는 전환점으로 간주하고 있다. 5월 16일 이후 루이나 해군의 점진적인 전투 우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웨스타시아는 이미 수차례의 소규모 돌파 시도가 좌절된 전례를 안고 있었다. 특히 루이나 해군의 아이오와급 전함 전개, 토마호크 타격, 그리고 수송선 격침 사례는 웨스타시아군 지휘부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로 인해 웨스타시아 최고통수권자 알빈 카펜트리 요크는 5월 22일 밤, 더 이상의 지연은 의미가 없다 판단하고 ‘최후의 수송단 돌파 명령’을 하달했다. 이 작전은 총 수송선 5척에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의 군수물자를 탑재하고 호위함 4척, 순양함 2척, 구축함 3척, 잠수함 2척, 그리고 공군 토네이도 IDS 22기, 팬텀 II 12기, 스카이호크 9기가 제공권 확보 및 해상 지원을 위해 동원되었다. 웨스타시아 해군은 이를 ‘실버 레인 작전’이라 명명하고, 모든 함선에 IFF 수신장치 비활성화, 통신 암호화, 그리고 전자기 침묵(Silent Run) 상태로 전개를 지시했다. 루이나 해군은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5월 22일 밤, 해상조기경보기가 수상한 움직임을 탐지하였고, CVR-43 리퍼블릭 항공모함 전단은 즉시 레드 얼럿 체제(Defcon 2) 로 격상되었다. 이 항모 전단은 F-18 호넷 24기, A-6 인트루더 8기, EA-6 프라우러 2기, E-2 호크아이 2기로 구성된 항공 편대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해상에서는 버치급 구축함 6척, 패러것급 구축함 7척, 캘리포니아급 순양함 4척, 아이오와급 전함 2척(뉴저지, 미주리)가 진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전 5시 27분, 루이나 항공모함에서 호넷 12기, 인트루더 4기, 조기경보기 1기가 이륙하여 탐색 작전을 개시하였고, 5시 45분, 웨스타시아 수송단의 서편 접근을 인트루더 편대가 시각적으로 확인했다. 루이나군은 즉각 공격 명령을 하달하였으며, 인트루더기가 AGM-84 하푼 6발을 발사. 이 중 4발이 수송선 ‘웨이브호프’, ‘에버리스트’에 명중, 폭발과 함께 전소 후 침몰하였다. 곧이어 루이나군은 해상에서도 발사 명령을 내렸다. 뉴저지 전함에서 발사된 하푼 대함미사일 4발 중 2발이 또 다른 수송선 ‘블루그레인’에 명중하며 완전 격침. 총 3척의 수송선이 불과 15분 내에 파괴되었다. 웨스타시아 해군은 즉각 반격에 돌입했다. 토네이도 22기, 팬텀 II 10기, 스카이호크 9기가 급강하하며 루이나 함대를 타격하기 위해 AGM-65 매버릭, Mk.82 폭탄, 공대함 로켓탄 등을 일제히 발사했다. 그러나 루이나 해군은 이지스 시스템과 CIWS(팰렁스) 대응체계로 신속히 반응하였다. CIWS는 발사된 미사일 중 10발을 격추했고, 대공포 사격과 유도탄 요격으로 웨스타시아 전투기의 진입을 차단. 격추되지 않은 일부 탄두는 팰러것급 구축함 ‘바스티유’의 좌현 부위에 손상을 입혔을 뿐, 주력함 피해는 없었다. EA-6 프라울러는 전자전으로 토네이도의 사격 통제를 교란했고, F-18 호넷과의 공중전에서 웨스타시아의 토네이도 22기 중 19기, 팬텀 4기, 스카이호크 6기 격추, 루이나 측은 호넷 1기 손실로 우세를 입증했다. 오전 6시 20분경, 루이나 해군의 아이오와급 전함 ‘뉴저지(BB-61 New Jersey)’는 전방에서 대공 지원 임무를 수행하던 중, 해무를 뚫고 접근하던 웨스타시아 해군 중형 순양함 ‘SP-108 하이로팔콘’과 약 9.5km 거리에서 조우하게 된다. 양측은 처음엔 서로를 제대로 식별하지 못한 채 항로를 유지하였고, 5분 후 루이나 측 사격통제관이 레이더 신호와 함형을 통해 적 순양함임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뉴저지의 16인치(406mm) 주포 3문 중 2문이 정렬되었으며, 함장 제럴드 마크 트렌턴 대령은 사격 명령을 하달했다. 오전 6시 28분, 뉴저지는 세 발의 고폭탄을 발사, 그 중 두 발이 하이로팔콘의 선미 구조물과 중간 상갑판에 직격했다. 격렬한 폭발로 웨스타시아 측은 지휘통신 장비가 마비, 선체 기울어짐 현상이 발생했다. 이에 대응해 하이로팔콘도 11인치 포 2문으로 반격, 뉴저지의 우현 외곽에 명중시켰으나, 두꺼운 장갑 외피로 인해 실질적 피해는 거의 없었다. 6시 29분경, 루이나의 주포 2차 사격에서 1발이 직접 하이로팔콘의 함교를 명중, 지휘체계가 붕괴되면서 순양함은 서서히 선속을 잃고 항로를 이탈했다. 승무원 대부분은 퇴함 명령을 받았으며, 구조신호를 발신하였으나 루이나 해군은 이내 사격 중지를 지시하고 퇴각하는 구명정을 향해 별도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이 짧은 7분간의 포격전은 2차 세계대전식 전함 대 순양함 근접포격전이 1980년대에도 실제 발생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겼으며, 웨스타시아 측은 하이로팔콘을 사실상 상실, 이후 동종 함급을 봉쇄 임무에서 제외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반면 루이나는 전함의 유용성을 입증한 사례로 기록하였고, 아이오와급 전함의 현대적 가치가 전술적으로 다시 조명받는 계기가 되었다. 1983년 5월 23일 오전 7시 45분경, 루이나 해군의 패러것급 구축함 ‘RNS 파이어스트림’과 ‘RNS 라이트랜스’는 웨스타시아 해군 아르킨급 구축함 ‘WNS 스톰차이서’ 및 ‘WNS 스펙트럼’과 랜드해협 중부 봉쇄선 인근에서 조우했다. 당시 루이나는 유고랜드 해상 수송선을 차단하기 위한 공세기동을 확대 중이었고, 웨스타시아는 잔여 수송선단을 보호하기 위해 전력 증원을 마친 상태였다. 당시 교전은 레이더 교신 없이 사전 사격으로 개시되었다. 오전 7시 47분, 웨스타시아의 스톰차이서가 먼저 국산 AS-16 ‘루브릭스’ 초음속 대함미사일 2발을 발사, 루이나 측 함선을 향해 날아들었다. RNS 파이어스트림은 즉시 대공레이더를 전개하고 팰렁스 CIWS와 RAM 요격미사일로 대응, 1발은 600m 상공에서 요격되었으나 나머지 1발이 파편으로 갑판 통신 안테나를 손상시켰다. 인명 피해는 없었다. 루이나는 즉시 대응 사격을 개시, ‘라이트랜스’가 ASM-84 하푼 블록1 2발을 발사, 스펙트럼의 좌현 방어를 뚫고 연료탱크를 직격했다.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고, 함체가 심각한 화재에 휩싸이며 20여 분간 조타 불능 상태에 빠졌다. 스펙트럼은 결국 항로를 이탈한 뒤 퇴각 명령을 받고 전투해역에서 이탈한다. 이후 스톰차이서가 재차 ASROC 대잠미사일을 루이나 측으로 발사했으나, 오인 공격으로 수면상에 폭발했고 효과는 없었다. 이에 루이나는 정밀탄도 모드의 하푼 1발을 사출, 스톰차이서의 중앙 CIC(전투정보센터) 근처에 명중. 기계실과 레이더 통신부 일부가 파괴되었고, 전자통신 기능이 마비되어 함장이 직접 음성 명령을 하달하는 구시대식 체계로 전환해야 했다. 오전 8시 20분경, 양측은 서로의 손실을 인식한 채 전투에서 철수, 교전은 약 35분간 지속되었다. 루이나는 이 전투로 중경상자 6명, 통신부 파손 1건, 웨스타시아는 구축함 1척 사실상 전투불능화, 1척 중파라는 손실을 입었다. 이 교전은 1983년 마테르 전쟁 중 가장 격렬한 구축함 대함 미사일전 사례로 기록되었으며, 이후 루이나 해군은 ASM-84 하푼 미사일의 실전 위력을 과시한 교전으로 평가하였다. 웨스타시아는 이 사건 직후 해상 전술을 집단기동 위주로 조정하며, 독립기동 중인 구축함 운용을 제한하는 전술변경을 단행했다. 전투는 오전 6시 50분경 절정을 찍고, 7시 30분경 웨스타시아 함대가 후퇴를 결정하면서 정리되었다. 수송선 7척 중 5척 침몰, 2척 손상, 호위함 1척 격침, 전투기 총 19기 상실의 치명적 피해를 입은 반면, 루이나 측은 전투기 2기 격추, 함정 경미한 손상, 인명 피해 28명에 그쳤다. 같은 날 오전 10시 15분경, 루이나 해군은 적 수송선단 일부가 구축함과 호위함의 엄호를 받으며 북동 방향으로 탈출을 시도한다는 보고를 수령했다. 이에 따라, 루이나 항공모함 ‘RNS 세인트 엘모’에 탑재된 A-6 인트루더 함재기 4기가 긴급 출격하였다. 이들 항공기는 정밀 유도 타격 임무를 위해 레이저 유도 폭탄(GBU-12 Paveway II)을 장착한 상태였다. 루이나 해군 항공대는 통신이 두절된 레이더 침묵 모드 하에 고도 1,500m 이하 저고도 해면 침투 비행을 실시하며 수송선단을 향해 접근했다. 오전 10시 41분, 공중 표적 지시기가 레이저로 목표물을 지정하고, 최전방 무장 수송선 ‘벨디아호’와 그 뒤를 따르던 ‘유니시온호’를 목표로 폭탄 투하가 개시되었다. 첫 번째 기체에서 투하된 GBU-12 2발 중 1발은 벨디아호 선체 중앙부에 정확히 명중, 화물실이 폭발하면서 화염이 선미까지 번졌고, 선체는 기울어지며 항행 불능 상태에 빠졌다. 두 번째 기체의 공격은 유니시온호 선교 인근을 명중시켰고, 통신 및 항법 장비가 마비되면서 배는 표류 상태에 들어갔다. 이 공격으로 인해 웨스타시아 측은 정상적으로 항해 가능한 수송선의 절반을 잃게 되었으며, 루이나는 정밀타격 능력과 항모 기반 공중작전의 우위를 과시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F-18 호넷 2기가 전장 상공에서 인트루더의 철수를 엄호했고, 루이나 해군은 웨스타시아 수송작전의 마지막 희망을 제거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봉쇄선 돌파 시도의 대부분을 무력화시켰다. 이 공습은 그레이라인 작전의 공중 단계가 본격화되었음을 알리는 결정적인 신호로 평가되며, 웨스타시아에게는 전략적 전환을 강요하는 심대한 충격이 되었다. 오전 9시 40분경, 루이나 해군 항공모함 RNS 세인트 엘모와 RNS 샤를로트 그레이에서 F/A-18 호넷, F-14 톰캣, A-6 인트루더 등의 함재기들이 일제히 이륙하여 그레이라인 작전의 공중엄호 및 제해권 확보 작전에 돌입했다. 같은 시각, 웨스타시아 역시 자국 본토 항공기지를 중심으로 최대 전력의 전술기 편대를 출격시켜 남하 중이던 수송선단 및 호위 함대에 대한 항공엄호를 시작했다. 웨스타시아 공군은 유진 토네이도 IDS 22기, MIG-23 개량형 16기, F-4 팬텀 II 12기, 그리고 조기경보기를 포함한 전자전기 3기를 동원했으며, 루이나 해군은 이에 맞서 F-14 톰캣 14기, F/A-18 호넷 18기, 전자전기 EA-6B 프라울러 4기, 공중급유기 및 조기경보기 2기를 투입했다. 전투는 오전 10시 20분경, 랜드해협 동부 해역 상공 약 8,000m 고도에서 최초로 충돌했다. 웨스타시아의 토네이도 편대는 항해중이던 수송선단을 향해 접근하던 루이나의 A-6 인트루더를 요격하려 시도했고, 이를 막기 위해 루이나 해군의 호넷 편대가 상층 고도에서 선회 기동 후 아래로 급강하, 요격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AIM-7 스패로우와 AIM-9 사이드와인더가 교차 발사되며 격렬한 공중전이 전개되었다. 특히 루이나 F-14 톰캣 2기와 웨스타시아 MIG-23 3기 간의 고속 선회전이 수 분간 벌어졌고, 공중기동 중 MIG-23 한 대가 스톨(Stall)에 빠지며 바다로 추락했다. 루이나 F/A-18 1기는 웨스타시아 팬텀 2기의 협공을 받아 손상을 입었으나, 조종사는 기체를 귀환시켜 긴급 착함에 성공했다. 격렬한 전투 끝에 웨스타시아는 토네이도 7기를 상실, MIG-23은 6기 피격 및 이탈, 팬텀도 4기 손실을 기록했고, 루이나 측은 F-14 톰캣 3기, 호넷 4기, 인트루더 1기를 잃었다. 특히 한 호넷 조종사는 탈출 후 구조 신호를 보내 수 시간 후 루이나 해군 구조헬기에 의해 구출되었다. 이날 이후 웨스타시아군은 사실상 해상 수송로 상실을 인정해야 했으며, 마테르 전쟁은 전면적인 지상전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루이나군 내부에선 이 전투를 ‘5.23 대봉쇄전(Battle of the 23rd)’이라 명명하였고, 역사적으로도 마테르 전쟁의 클라이맥스 중 하나로 기록된다. === 5월 24일 ~ 6월 3일 === 5월 23일, 루이나 해군은 웨스타시아 수송선단을 완전히 괴멸시키는 데 성공한 이후에도 곧바로 해역 통제를 해제하지 않았다. 루이나는 그레이라인 작전의 본래 목적이었던 핵무기 운송 차단이라는 전략적 목표가 완전히 성취되었는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채, 봉쇄선을 그대로 유지한 채 감시 태세를 지속했다. 이 기간 동안 루이나는 데프콘 2 수준의 전시 경계 태세를 유지했으며, 해군과 공군의 순찰 작전은 이전보다 더욱 촘촘하고 정밀하게 강화되었다. 웨스타시아는 공군과 해군의 큰 손실 이후 실질적인 반격 여력을 상실했으며, 해상 수송을 통한 후속 병력 및 물자 이동도 모두 중단되었다. 간헐적으로 유고랜드 해역에서 민간 선박으로 위장한 시도가 있었지만 루이나 해군은 이를 모두 정지 검문하거나 조기에 차단했고, 별다른 무력 충돌 없이 해역을 봉쇄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시기 루이나 국내 여론은 작전의 승리와 대통령 테디 해럴드의 강경 대응에 대한 지지로 결집되었고, 외교적으로는 사비에트, 플로렌시아, 북산, 마베라, 동사랜드 등 여러 국가들의 공식 항의에도 불구하고 국가안보를 이유로 봉쇄 연장을 선언하였다. 결국 6월 3일, 루이나는 자국 정보기관과 연합 사령부의 보고에 따라 추가 핵물자 운송 시도는 더 이상 없는 것으로 판단, 해역 봉쇄를 공식 해제하고 함대를 재배치하기에 이른다. === 6월 4일 === 1983년 6월 4일 오전 9시, 루이나 대통령 테디 해럴드는 국가안보회의(NSC)와 합참의 보고를 근거로, 약 한 달간 지속된 해역 봉쇄 작전의 공식적인 종료를 선언했다. 그는 벨포르 대통령궁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가의 존엄과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한 고심 어린 판단이었다”며, 루이나 해군의 완수된 작전 성과를 극찬했다. 해럴드는 또한 “마베라 수도를 향한 핵무기 운송 시도는 분명히 차단되었고, 이제 루이나는 더 이상 무리한 군사 개입 없이, 국제사회의 합의와 정의로운 질서를 회복하는 데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루이나 해군은 봉쇄선 해제를 선언한 직후부터 순차적으로 항공모함 전단과 순양함, 구축함, 지원함대를 재배치하였고, 일부 전력은 마베라 근해를 순찰하는 해상안보 협력 작전에 투입되었다. 아이오와급 전함들과 항모들은 작전 종료 후 정비를 위해 귀항했고, 그레이라인 작전에 참여했던 루이나 해군 장병들에게는 전역무공훈장 수여 및 작전 포상금 지급이 검토되었다. 한편, 웨스타시아는 루이나의 봉쇄 해제를 “이미 전쟁 목적을 달성한 자들의 생색내기”라고 비난했다. 웨스타시아 대통령 알빈 카펜트리 요크는 6월 4일 성명을 통해 “루이나는 유엔 헌장을 위반한 군사행위를 자행했고, 자국의 해역도 아닌 곳에서 일방적으로 해상 주권을 행사했다”며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예상외로 루이나의 승리를 묵시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마베라 왕국은 루이나의 지원에 공식적으로 감사를 표했고, 북산과 동사랜드, 체르드 등 일부 국가들도 루이나의 단호한 대응을 “핵 확산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평가하였다. 반면 사비에트는 이를 “패권적 군사력 투사”라고 비판하며 자국 근해에서의 해군력 증강을 선언했다. == 여파 == 그레이라인 작전은 단순한 해상 차단전을 넘어, 마테르 전쟁(Mater War)의 향후 흐름을 결정짓는 중대 분수령이었다. 루이나 해군은 전면전 일보 직전까지 가지 않고도 웨스타시아의 전략 자산 운송 시도를 효과적으로 차단하였고, 해상 통제권을 장악함으로써 마베라의 전선에 결정적 전략적 유리함을 제공하였다. === 루이나 측 여파 === '''국내 여론 결집 및 대통령 지지율 상승''': 루이나 국민은 대규모 전투에도 불구하고 전면전으로 비화하지 않고 전략 목표를 달성한 정부의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루스탈지아 대통령의 결단력과 정보기관의 조기 대응은 정치적 성과로 이어졌으며, 방위 예산 확대 및 해군 전력 증강 요구가 고조되었다. '''해군 교리 재검토''': 구축함 침몰과 전투 손실에 대한 내부 감사가 착수되었으며, 대잠전 교리 및 위장 선박 대응 지침의 전면 재검토가 시작되었다. === 웨스타시아 측 여파 === '''로벤자운 작전 폐기''': 핵무기 운반 계획이 좌절되면서 마베라에 대한 전략적 핵 압박 수단이 사라졌고, 전쟁 국면 전환 시도가 좌절되었다. '''수송 전단 전멸 및 해군력 붕괴''': 수송선 90% 이상이 격침 또는 나포되었고, 호위 전력이 거의 궤멸되었다. 잔존 함대는 사실상 전략적 가치가 소멸되었으며, 해상 보급 능력의 부재는 후속 전선 유지에 큰 타격을 입혔다. '''지휘부 혼란 및 정치적 압박''': 연합 해군 지휘관 라파엘 코스타 제독은 작전 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임 압박을 받았으며, 야권은 총리실에 대해 ‘정보 실패’와 ‘과도한 도박’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였다. '''국제적 외교 고립 심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중립적 해결을 권고했으나 루이나의 반발과 웨스타시아의 비협조로 회의는 결렬되었다. 플로렌시아와 북산 등 일부 국가의 루이나 지지 표명이 이어지며 외교적 균형도 무너졌다. === 국제 정세 영향 === '''루이나의 군사적 위상 강화''': 루이나는 단기간 내 정밀 타격, 전자전, 해상 통제 능력을 과시하며 지역 패권국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해상 봉쇄와 교역 영향''': 랜드해협 남서 해역은 사실상 루이나의 통제 하에 놓이며, 유고랜드 연안 항만은 폐쇄 상태가 지속되었고, 민간 해운은 큰 충격을 입었다. '''마베라 전선에서의 반격 기회 형성''': 핵 타격에 대한 우려가 사라지자 마베라군은 방어선 재정비 후 반격 작전에 착수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전략적 주도권이 서서히 마베라와 루이나 동맹 측으로 기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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