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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 1950년대 후반 루이나 해군이 원자력 잠수함을 배치하고 잠항 심도가 깊어지면서, 랜드중앙해와 북마베라해에서 정체불명의 대형 생물과 마주치는 일이 늘었다. 처음에는 대형 고래나 소나 오류로 처리되었지만, 1958년부터 1963년 사이 소나 돔 파손, 선체 표면의 흡반 자국, 추진기 손상 등 생물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잠수함 피해가 17건 보고되었다. 같은 기간 북마베라해에서는 저인망 어선 여러 척이 원인 불명으로 사라졌다. 해군은 처음에 폭뢰와 기존 대잠 어뢰로 대응하려 했다. 그러나 금속 선체의 반향에 맞춰진 호밍 장치는 크라켄의 약한 반향을 거의 잡지 못했고, 운 좋게 근처에서 폭발해도 크라켄은 상처를 입은 채 달아났다. 결정적 계기는 1963년 랜드중앙해에서 일어난 공격잠수함 RNS 콜마르의 침몰이었다. 콜마르는 잠항 훈련 중 연락이 끊겼고 승조원 112명이 모두 사망했다. 이후 심해 잠수정 조사에서 함교탑과 수평타에 거대한 흡반 자국과 찢긴 흔적이 확인되었다. 조사위원회는 크라켄이 함을 붙든 채 조종면을 손상시켰고, 심도 조절 능력을 잃은 함이 압괴 심도 아래로 가라앉았다고 결론지었다. 해군은 1964년 크라켄 대응 중어뢰 개발을 공식화했다. 같은 해역에서 함정 피해를 겪던 미합중제국도 사업에 참여했고, 중어뢰 개발 경험이 있던 웨스팅하우스 방산시스템즈가 개념 설계 계약을 따냈다. 당시 요구사항은 사거리 35 km, 속력 55 kn, 운용 심도 2,000 m, 그리고 음향·열·생체전기를 함께 쓰는 복합 감응 유도였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당시 기술로 달성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개발 과정에서 하나씩 현실적인 목표로 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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