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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랜드 전쟁/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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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의 구조 == 2차 랜드 전쟁의 배경은 세 겹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제도의 붕괴다. 오로아 조약은 1차 랜드 전쟁 이후의 질서를 지탱할 유일한 다자 장치였으나, 패전국의 협조를 전제로 한 설계 탓에 1960년대 후반 배상·사찰·해협 조항이 차례로 무너졌다. 둘째는 지리다. 포르틸락해협은 해협 북부의 내해를 바깥 바다와 잇는 유일한 통로였고, 1970년 루이나가 이 해협을 장악하면서 해협 북부의 정치는 해협을 둘러싼 정치가 되었다. 셋째는 진영 내부의 균열이다.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모두 1973년 이전에는 하나로 움직이지 않았고, 각 진영을 묶은 것은 상대편의 움직임이었다. 전쟁의 책임을 두고는 크게 세 가지 시각이 있다. 루이나 책임론은 1970년 콘스탄티노폴 침공이 해협 북부의 반루이나 정서를 폭발시켜 체르드와 라 마베라의 혁명을 앞당겼다고 본다. 체르드 11월 혁명이 콘스탄티노폴 점령 이후의 여론 변화 없이는 설명되기 어렵다는 점이 근거다. 사비에트 책임론은 사비에트가 오로아 조약의 군비 제한을 우회하며 군비를 재건했고, 1972~1973년 해협 북부의 혁명정부를 즉시 승인함으로써 국지적 혁명을 진영 대결로 끌어올렸다고 본다. 구조론은 어느 한쪽의 결정보다 오로아 체제의 결함과 해협의 지리가 전쟁을 거의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본다. 세 시각 모두 동부 전역의 설명에는 약하다. 북산과 청평의 분쟁은 해협 북부의 사정과 무관하게 1929년부터 이어진 것이었고, 2차 랜드 전쟁은 그 분쟁이 폭발할 계기와 명분을 제공했을 뿐이다. 동부 전역이 해협 북부와 다른 방식으로, 다른 시점에 끝난 것도 이 때문이다. 배경에 대한 연구는 자료 사정에 따라 시기별로 달라졌다. 1970~1980년대의 연구는 주로 루이나와 플로렌시아의 공개 자료에 기댔고, 콘스탄티노폴 침공과 해협 통제의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1991년 사비에트 노동인민당 문서가 일부 공개되면서 사비에트가 해협 북부의 혁명을 사전에 계획하지 않았고 오히려 승인을 두고 정치국이 갈라져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사비에트 책임론은 크게 약해졌다. 반면 루이나의 국가안보회의 기록과 콘스탄티노폴 침공 계획 문서는 지금도 일부만 공개되어 있어, 침공 결정의 경위는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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