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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랜드 전쟁/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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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로아 조약의 구조 === 1963년 [[1차 랜드 전쟁]]을 끝낸 오로아 조약은 영토 변경 없이 전쟁 이전의 상태를 확인하는 강화였다. 강화 회의는 1963년 봄 중립 도시 오로아에서 넉 달 동안 열렸고, 조약은 협상국과 동맹국 7개국이 모두 서명한 다자 조약으로 체결되었다. 그 대신 패전한 동맹국, 즉 사비에트·체르드·라 마베라·고랜드에 두 가지 부담을 지웠다. 하나는 협상국에 대한 배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군비 제한이었다. 이행 여부는 협상국과 중립국 대표로 구성된 감시위원회가 확인하도록 했다. 감시위원회는 협상국 3개국과 중립국 2개국의 대표 5명으로 구성되었고, 사찰 결과는 위원회의 다수결로 판정했다. 상설 사무국은 처음에 플로렌시아에 두었다가 1966년 중립국으로 옮겼다. 조약에는 해협 조항도 있었다. 전쟁의 직접 계기였던 해협 통행권 분쟁의 재발을 막기 위해, 포르틸락해협을 비롯한 해협 수로에서 모든 체약국 선박의 평시 자유 통항을 보장한 조항이었다. 그러나 포르틸락해협의 한쪽 연안을 차지한 콘스탄티노폴은 조약의 체약국이 아니었다. 1959년 집권한 콘스탄티노폴 혁명정부는 조약 체결 직후 해협 조항이 자국 주권을 침해한다며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조약 체제는 처음부터 패전국의 협조를 전제로 설계되었다. 감시위원회의 사찰권, 배상 연체 시의 제재 조항, 해협 조항 가운데 어느 것도 패전국이 협조를 거부할 때 이를 강제할 별도의 수단을 두지 않았다. 강제할 수단이 있다면 그것은 다시 전쟁을 하는 것뿐이었다. 1960년대 후반 이 전제가 차례로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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