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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랜드 전쟁/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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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사랜드 === 1963년 사비에트에서 떨어져 나온 [[동사랜드]]는 쩐 반 럼 국가평의회 위원장 아래에서 공산국가이면서도 사비에트와 거리를 두는 제3세력 노선을 걸었다. 쩐 반 럼은 1951년 봉기를 이끈 인민적군 지휘관 출신으로, 1963년 독립과 함께 국가평의회 위원장에 올랐다. 그에게 동사랜드의 공산주의는 사비에트에서 빌려 온 것이 아니라 1945년 혁명에서 스스로 얻은 것이었고, 이 자부심이 그의 독자 노선을 뒷받침했다. 동사랜드는 1945년 혁명으로 공산화되었으나 1949년 사비에트에 무력으로 합병되었고, 1951년 봉기를 거쳐 1963년에야 독립을 얻었다. 같은 공산국가라 해도 사비에트는 동사랜드에게 해방자가 아니라 점령자였다. 동사랜드와 사비에트 사이에는 롱 강 국경을 둘러싼 긴장이 남아 있었다. 1963년 독립 때 확정되지 않은 채 남은 롱 강 하류의 국경선은 1960년대 내내 두 나라 국경수비대의 소규모 충돌을 낳았다. 쩐 반 럼 정부는 청평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었는데, 동사랜드는 1412년부터 1929년까지 청평의 책봉 왕국이었고 그 기억 역시 동사랜드의 독자 노선을 뒷받침했다. 동사랜드가 가장 깊은 적대감을 품은 상대는 북산이었다. 북산의 보호국 시절 동사랜드의 쌀과 노동력은 북산의 전시 경제에 동원되었고, 그 기억은 1945년 혁명의 직접적인 동력이 되었다. 1929년 북산은 청평을 침공한 뒤 동사랜드의 독립을 승인했지만, 실제로는 동사랜드를 보호국으로 삼았다. 두 나라가 같은 진영에서 싸우게 된 것은 오로지 연합국이라는 공동의 적 때문이었다. 북산이 루이나의 동맹 체제 깊숙이 들어가고 해협 동부의 긴장이 높아지자, 동사랜드는 사비에트에 대한 불신을 접어 두고 같은 편에 설 수밖에 없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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