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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랜드 전쟁/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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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로렌시아 === [[플로렌시아]]는 1965년 셀레스티아의 독립으로 식민제국을 잃은 뒤, 식민지 대신 NLTO 안에서 자리를 찾아야 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이어진 단계적 탈식민의 마지막 장이었고, 이후 플로렌시아의 대외 정책은 랜드해협 안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셀레스티아의 독립은 협상으로 이루어졌으나, 독립 직전 몇 년 동안 이어진 현지의 시위와 파업은 플로렌시아 국내에 식민지 유지 비용에 대한 회의를 퍼뜨렸다. 이 경험은 이후 플로렌시아 정치가 해외 군사 개입에 신중해진 배경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969년 NLTO 창립 회원국이 된 것은 그 결과였다. 플로렌시아 군은 식민지 주둔군을 본국으로 불러들이면서 규모를 줄이는 대신 해협 방위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1960년대 후반 국방 예산의 무게는 해군에서 육군으로 옮겨 갔다. 체르드와 국경을 맞댄 나라로서 육상 위협이 더 직접적이었기 때문이다. 플로렌시아는 루이나와의 동맹을 안보의 중심에 두었지만, 루이나의 콘스탄티노폴 침공에는 여러 차례 우려를 표했다. 1970년 NLTO 이사회에서 루이나의 협의 요청을 거부한 것도 플로렌시아였다. 플로렌시아 정부는 루이나가 스스로 시작한 전쟁에 동맹이 끌려 들어가는 선례를 남기지 않으려 했고, 이 태도는 이후 2차 랜드 전쟁 내내 이어졌다. 그러나 플로렌시아는 동시에 해협 북부의 정세에 가장 민감한 나라이기도 했다. 자크 르몽 총리의 정부는 체르드와 국경을 맞댄 나라로서 해협 북부의 공산화를 가장 직접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1972년 11월 체르드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플로렌시아는 국경 지대에 예비군을 소집했고, 이듬해 봄에는 체르드에서 넘어온 피란민이 1만 명을 넘었다. 플로렌시아는 NLTO 연합군 최고사령부에 체르드 국경 지대의 방어 계획 수립을 요청했는데, 이는 루이나의 역외 전쟁에는 선을 그으면서도 자국 영토의 방어에는 동맹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 한 플로렌시아의 이중적 태도를 보여 준다. 루이나의 전쟁을 경계하면서도 공산화의 위협에서는 루이나에 기대야 하는 처지가 플로렌시아의 딜레마였다. 르몽 정부는 1973년 봄 체르드 혁명정부와의 국경 협상을 시도했다. 피란민 송환과 국경 지대 비무장을 논의하는 협상이었는데, 체르드가 플로렌시아의 NLTO 탈퇴를 사실상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면서 두 차례 회담 끝에 결렬되었다. 이 실패 이후 르몽 정부 안에서도 해협 북부 문제는 결국 무력으로 결론이 날 것이라는 판단이 우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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