𝙇𝘼𝙓 𝙒𝙄𝙆𝙄
최근 변경
최근 토론
임의 문서
도구
최근 변경
2차 랜드 전쟁/배경
(편집 요청)
[알림]
문서를 편집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편집 요청으로 이동되었습니다.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로그인된 사용자(이)여야 합니다. 해당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점령의 수렁 === 점령은 곧 수렁이 되었다. 군사혁명위원회의 잔당, 도시 빈민가의 민병대, 빌베른계 민족주의 세력이 각기 무장 저항을 이어 갔고, 루이나군은 도시 곳곳에서 끝없는 소모전을 벌였다. 저항 세력의 일부는 국경 너머 체르드로부터 무기와 은신처를 얻었다. 체르드 정부는 공식적으로 개입을 부인했지만, 국경 지대의 체르드 군과 경찰이 저항 세력의 이동을 묵인한 정황은 1971년부터 루이나 정보기관 보고서에 나타난다. 루이나는 점령 통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민정이양위원회를 세우고 빌베른계 주민을 표적으로 한 동화 정책을 밀어붙였다. 훗날 [[콘스탄티노폴 민족성 말살]]로 불리게 되는 이 정책은 빌베른계와 혼혈계를 갈라 혼혈계를 우대하는 분할 통치였고, 저항을 잠재우기는커녕 저항 세력의 명분을 키웠다. 1970년 5월부터 1973년 7월까지 콘스탄티노폴에서 전사한 루이나군은 1,100여 명에 이르렀다. 주둔 병력은 1971년 말 4만 명으로 정점에 이르렀고, 1973년까지도 3만 명 이상이 유지되었다. 점령에 대한 국제 반응은 진영에 따라 갈렸다. 랜드해협 공동체에서는 1970~1972년 루이나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세 차례 상정되었으나 루이나와 우방국들의 반대로 모두 부결되었다. 사비에트는 점령을 반제국주의 선전의 소재로 삼았지만 저항 세력에 대한 직접 지원은 하지 않았다. 콘스탄티노폴 저항 세력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 나라는 국경을 맞댄 체르드뿐이었다. 콘스탄티노폴 점령은 루이나의 군사력을 묶어 두는 동시에, 해협 북부의 반루이나 세력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 되었다. 체르드의 민족주의자, 라 마베라의 좌파, 콘스탄티노폴의 저항 세력은 서로 다른 이유로 루이나에 맞섰지만, 1972년 무렵에는 해협을 루이나에게서 되찾는다는 하나의 구호를 공유하게 되었다. 이 구호는 1972년 11월 체르드 혁명정부의 첫 성명에 그대로 들어갔고, 이듬해 라 마베라 혁명정부의 강령에도 실렸다. 해협 북부의 혁명은 계급 혁명의 언어로 말하면서도, 그 동력의 상당 부분은 해협을 빼앗긴 민족의 분노에서 나왔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27.0.0.1)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닫기
Liberty
|
the s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