𝙇𝘼𝙓 𝙒𝙄𝙆𝙄
최근 변경
최근 토론
임의 문서
도구
최근 변경
1.23 내란
(편집 요청)
[알림]
문서를 편집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편집 요청으로 이동되었습니다.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로그인된 사용자(이)여야 합니다. 해당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2일차 ==== 1966년 1월 24일 오전 05시경, 쿠데타 개시 이후 하루가 경과한 시점에서 반루파 반란군은 여전히 수도 중심부와 주요 군사 거점 상당수를 점거하고 있었다. 반란군은 전날 체포한 고위 인사들을 외부와 단절된 임시 구금소에 분산 수용하고 있었으며, 통신단, 항공정비창, 병참사령부, 차량정비창, 일부 보급창고 등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국왕직속 전속부대의 일부 간부들과 접촉을 시도하며 국왕에게 고문단 철수를 요청하는 공식 건의서를 전달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그러나 24일 오전부터 상황은 반란군에 불리한 방향으로 전환되기 시작하였다. 전날 탈출한 육군참모총장 '''오카베 나오유키(岡部尚之)'''는 루이나 고문단과 긴밀히 협의하여 임시 군령지휘본부를 육군교육사령부에 설치하고, 루이나 측의 예비 연락망을 통해 해외 주둔 루이나 군사고문단 및 주북산 루이나 대사관과의 접촉을 재개하였다. 이를 통해 확보된 정보와 통신망을 바탕으로, 루이나는 24일 오전 08시경부터 비공식적 진압군 편성을 본격화하였다. 루이나 측은 공식적인 개입을 선언하지 않은 상태에서 북산 정부의 요청을 가장한 ‘내부 질서 회복 지원’ 작전을 개시하였고, 연합사령부 예하에 배치된 헌병연락대, 통신감청부대, 수색정찰 중대를 24일 12시경부터 북산 내 거점으로 침투시켰다. 동시에 루이나 고문단 외부 조직을 통해, 친루파 장교 및 생존한 지휘관들과의 연결이 체계적으로 재구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도 외곽의 일부 예비연대가 오카베 참모총장의 명령을 승인하였으며, 루이나 헌병대가 이들 부대에 비공식 무장 장비를 제공한 사실도 사후 보고서에서 확인되었다. 오후 14시경, 반란군은 국왕 측에 공식 문서를 전달하기 위한 사절단을 구성하였으나, 국왕경비대 측은 “왕궁 출입은 현 정세 안정 전까지 전면 금지”라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이에 따라 반란군은 국왕의 재가 확보에 실패하였고, 쿠데타의 정치적 정당성 확보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반란군은 내부 통제력에 균열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통신망과 이동경로는 여전히 상당 부분 점거되어 있었으나, 각 부대 간 연결 통제는 느슨해졌고, 예하 병력 일부가 '''‘자신들이 반란군인지 진압군인지 모르겠다’'''는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국왕의 재가를 받지 못함으로서 쿠데타의 명분을 상실래버린 후로는 병사들의 사기 저하가 본격화되었다. 일부 병사들은 쿠데타가 계획된 내부 숙청이나 반루파 탄압을 막기 위한 ‘예방 조치’라는 설명과 달리, 국가 전체를 위협하는 무력 행위로 인식하고 있었고, 일부는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거나 탈영하였다. 같은 시각, 루이나가 주도한 ‘질서 회복 작전’이 수도 외곽에서 개시되었다. 루이나 헌병연락대 소속 지휘관 '''에밀 베르탕 대령(Émile Bertin)'''이 진입을 주도한 서부 방위선에서는, 이미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제12기갑중대가 루이나 측에 협조하는 방식으로 교량 통제권을 이양하였고, 이어서 수색 정찰대가 도심 외곽에 분산 배치되었다. 이 과정에서 실질적인 교전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반란군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였고, ‘외곽 병력이 자체 해산 중’이라는 오보를 상부에 보고하였다. 저녁 18시경, 반란군 내부에서 작전 2단계에 대한 이견이 본격적으로 표출되었다. 미야기 겐타로(宮城健太郎) 중위는 수도 외곽 진출을 통한 방어선 형성 및 시간 확보를 주장하였으나, 요시카와 신지(吉川信司) 대위 등 일부는 오히려 '''“외부의 정보 차단과 방어 유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양측 간의 논의는 결론 없이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하위 병력은 명령 체계의 혼선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24일 밤 22시, 루이나-북산 연합 지휘부는 본격적인 진압 작전 개시 명령을 승인하였고, 25일 03시를 기준으로 수도 재탈환 작전을 시행할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시점에서 반란군은 이미 일부 거점에서 병력 부족과 이탈 현상을 겪고 있었으며, 내부 지휘 체계는 표면적으로는 유지되었으나, 사기 저하와 정보 격리 실패로 인해 통합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었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27.0.0.1)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닫기
Liberty
|
the s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