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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랜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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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교전국의 관여 === '''[[소련]]'''은 1950년 사비에트와 맺은 동맹 조약에 따라 무기와 연료, 군사고문단을 보냈으나 병력을 파견하지는 않았다. 1960년 청평의 지원이 끊긴 뒤에는 소련의 원조가 사비에트 전쟁 경제를 떠받치는 거의 유일한 외부 공급원이 되었다. '''[[청평]]'''은 1956년 청소합작 협정 이후 사비에트의 차관과 기술을 받는 대가로 곡물과 원자재를 보냈고, 대약진 운동으로 국내 식량 사정이 악화되던 1958~1959년에도 수출을 이어 갔다. 그러나 1959년부터 사비에트가 원조를 줄이고 1960년 기술자를 철수시키면서 두 나라는 결별했다. 1961년부터 청평은 오히려 동사랜드 인민적군에 무기를 보내 사비에트의 후방을 흔들었다. '''[[북산]]'''은 1957년 하쿠센 조약과 1958년 랜드 안보 3국 동맹에 따라 협상국의 후방 기지 역할을 맡았다. 북산은 병력을 보내지 않았지만 호라쿠 만을 비롯한 항만과 조선소를 루이나 함대의 수리·보급 거점으로 내주었고, 협상국에 군수 물자를 공급했다. '''동사랜드 인민적군'''은 1951년 이후 사비에트의 동사랜드 자치공화국에서 무장 항전을 이어 온 세력이었다. 협상국은 사비에트의 후방을 교란하기 위해 1960년 무렵부터 빌베른을 거치는 해상 경로로 인민적군에 무전기와 의약품, 자금을 몰래 보냈다. 청평의 무기 지원과 맞물린 이 지원은 1961~1962년 건기 공세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사비에트는 1962년 11월 정전에 이어 1963년 3월 크라슬리스크 조약으로 동사랜드의 분리를 승인했다.[* 동사랜드 정부는 지금까지 협상국의 지원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지원의 규모는 1990년대 루이나 국방정보국 문서가 공개되면서 일부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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