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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랜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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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와 영향 == {{{#!wiki style="border: 1px solid gray; border-radius: 5px; background-color: #F2F2F2,#000; padding: 12px" 상세 내용은 [[1차 랜드 전쟁/영향]] 문서 참고.}}} 협상국 가운데 가장 큰 이득을 본 나라는 루이나였다. 루이나는 전쟁을 거치며 랜드해협의 제해권을 확고히 쥐었고, 1950년대 후반부터 다져 온 지역 패권을 굳혔다. 플로렌시아는 협상국을 이끈 대가로 막대한 재정 부담과 식민지 체제의 약화를 떠안았으며, 1965년 셀레스티아의 독립으로 식민제국이 사실상 막을 내렸다. 웨스타시아의 요크 정권은 승전을 발판으로 권력을 굳히고 유고랜드에 대한 지배를 유지했다. 루이나·플로렌시아·빌베른은 1969년 4월 4일 북랜드해 조약에 서명해 [[NLTO]]를 창설했다. 사비에트는 동사랜드를 잃고 청평과 결별한 데다 1963년 흉작까지 겹치며 안팎으로 위기를 맞았다. 1964년 10월 안토노프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해임되었고, 레오니트 브레자코프가 뒤를 이었다. 해협 북쪽으로 향하는 길이 막히자 사비에트는 해협 남부의 공산 세력을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1963년부터 1965년까지 해협 남부의 여러 나라가 차례로 공산화되었다. 이로써 해협을 사이에 둔 대치선이 굳어졌다. 체르드와 라 마베라는 배상금과 군비 제한, 봉쇄의 후유증 속에서 심각한 경제난을 겪었다. 패전의 책임을 둘러싼 정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좌파 세력이 급성장했고, 이는 두 나라의 정치 격변으로 이어졌다. 고랜드 왕실 역시 전쟁으로 권위를 크게 잃었다. 오로아 조약은 전쟁의 원인이 된 해협 문제를 콘스탄티노폴을 뺀 채 봉합했다. 해협을 둘러싼 갈등은 1960년대 내내 이어졌고, 1970년 루이나의 콘스탄티노폴 침공으로 폭발했다. 1차 랜드 전쟁이 남긴 해협 문제와 동맹국의 불만, 새로 굳어진 해협 남북의 대치선은 1973년 [[2차 랜드 전쟁]]의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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