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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스탄티노폴 혁명과 해협 === 전쟁은 콘스탄티노폴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조차지가 협상국의 해군 기지로 쓰이면서 도시는 사실상 전쟁의 한가운데에 놓였고, 물가 폭등과 외국 군대의 주둔은 1958년 11월 총선으로 일당독재를 굳힌 국민질서당 정권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 1959년 3월 13일 신보석운동의 무장대가 봉기해 정권을 무너뜨렸고, 혁명정부는 6월 1일 「조차지 회수령」을 공포해 모든 조차 계약의 무효를 선언했다. 조차지 회수는 협상국의 해협 봉쇄를 뿌리째 흔들었다. 루이나와 플로렌시아는 혁명정부를 승인하지 않았지만, 조차지의 부두와 연료 기지를 잃은 협상국 함대는 콘스탄티노폴 수역 바깥으로 물러나 바다 위에서 봉쇄를 이어 가야 했다. 사비에트는 곧바로 혁명정부를 승인하고 군사고문 약 180명과 기술자 약 600명을 보냈다. 혁명정부는 전쟁 내내 중립을 유지했으나, 중립국 선적으로 위장한 선박이 콘스탄티노폴을 거쳐 체르드와 라 마베라로 물자를 나르는 일이 잦아졌다. 협상국은 이를 봉쇄 돌파로 간주했고, 1960년 7월 루이나 기업 하트웰 광업이 운영하던 타우로 광산이 국유화되자 루이나는 1961년 콘스탄티노폴에 대한 금수 조치를 단행했다.[* 콘스탄티노폴의 혁명과 조차지 회수 과정은 [[콘스탄티노폴/역사]] 문서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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