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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르샤바 조약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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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조 두 번째 발동: 청북전쟁 ==== 1975년 해협 동부의 청북전쟁이 확대되며 2차 랜드 전쟁의 동부 전역이 되었다. 9월 26일 북산군과 루이나군이 「회색의 불꽃 작전」으로 대공세에 나섰고, 10월 2일 청평의 수도가 함락되었다. 청평 정부는 해르샤바 조약 제4조에 따른 원조를 요청했다. 이번에는 회원국 영토가 다른 나라 군대에 직접 공격받은 경우였으므로, 마베라 때와 달리 조약상 논란의 여지가 없었다. 10월 하순 정치협의위원회는 제4조를 두 번째로 발동했다. 통합군 사령부는 '동부 집단군'을 편성해 청평에 투입했다. 주력은 사비에트군이었고 동사랜드군이 그다음으로 큰 몫을 맡았다. 청평 조항에 따라 동부 집단군은 청평 영토에서 작전하면서도 청평군과 별도의 지휘 체계를 유지했고, 두 군대의 작전은 연합 협의 기구를 통해 조율되었다. 동부 집단군의 투입으로 전선은 다시 남쪽으로 밀렸고, 이후 전쟁은 기존 경계선 부근에서 교착되었다. 이 전쟁은 해르샤바 조약기구와 NLTO가 같은 전장에서 맞선 유일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정작 정면으로 부딪친 것은 두 동맹이 아니었다. NLTO는 1974년 북산 가입 때의 해석 성명에 따라 북산의 역외 작전을 집단 조치에서 제외했으므로, 동부 집단군의 상대는 동맹으로서의 NLTO가 아니라 북산군과 3국 동맹에 따라 참전한 루이나군이었다. 한쪽만 동맹의 이름으로 싸운 전쟁이었던 셈이다. 전쟁은 1977년 7월 27일 바젤 정전으로 멈췄다. 정전협정에는 북산군·루이나군 측과 함께 청평군 총사령관과 동부 집단군 사령관이 서명했다. 해르샤바 조약기구의 지휘관이 서명한 처음이자 유일한 정전협정이다. 2년 가까운 기간 동안 동부 집단군의 전사자는 3만 8천여 명으로, 그 가운데 사비에트군이 3만 1천여 명, 동사랜드군이 7천여 명이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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