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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폴/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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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구의 도시 ==== 이 시기의 콘스탄티노폴은 명목상으로만 자치정부가 있었을 뿐, 실질적으로는 도시 구역이 군벌 체제로 나뉜 무정부 사회였다. 1987년 국제연합의 조사 보고서는 콘스탄티노폴에서 활동하는 무장세력을 147개로 집계했는데, 이 가운데 중대급 이상의 화력을 갖춘 조직은 31개였다. 각 세력은 자신들의 구역을 '해방구'라 칭하며 징집, 검문, 납치, 마약 밀매, 인신매매, 무기 거래 등을 일삼았고, 도시는 사실상 암시장과 전투로 돌아가는 구조가 되었다. 이 시기의 주요 세력으로는 옛 해협 수호대와 신보석운동 급진파의 잔존 세력이 북부에 세운 '인민해방구 평의회', 칼라미의 혼혈계 자경단에서 출발해 남항구 인근을 장악한 '칼라미 방위대', 서번트 갱의 후예로서 부두의 밀수와 고리대금을 쥔 '종복회', 동부 외곽에 남은 정화전선의 여러 분파, 그리고 해협 북안의 내륙 고지에서 부족장 체제를 유지하며 도시와 거리를 두어 온 '내륙 부족 연맹' 등이 꼽힌다. 여기에 옛 방위대 사단장들이 각자 세운 군벌과 수십 개의 동네 자경단이 뒤섞였다. 세력 간의 동맹과 배신은 몇 달 단위로 바뀌었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맹이 되는 일이 예사였다. 오로지 민간인만이 가장 큰 피해자였다. 전기와 수도는 끊긴 지 오래였고, 병원은 무장조직이 병사 치료를 위한 사병 클리닉으로 점거했다. 혁명정부 시절 구역마다 세워졌던 인민 진료소는 대부분 약탈당하거나 무장조직의 사무실이 되었다. 아이들은 학교 대신 갱단의 아지트에서 AK-47을 조립하는 법을 배우며 자랐고, 하루 세 끼는커녕 하루 한 끼라도 얻어먹으면 '운 좋은 날'로 여겨졌다. 1988년 겨울에는 곡물 밀수로가 세력 간 전투로 끊기면서 기근이 닥쳐 약 3만 명이 굶어 죽거나 병으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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