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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폴/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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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라미 시장 폭탄테러와 구역 전쟁 ==== 정화전선이 파고든 틈은 빌베른계 주민과 혼혈계 주민 사이의 오래된 균열이었다. 혼혈계는 조차지 시대에 각국이 들여온 노동자들의 후손으로, 조차지가 회수된 뒤에도 대부분 옛 조차지 구역에 모여 살았다. 남항구 인근의 칼라미 구역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혼혈계 거주지였다. 조차지 시절 혼혈계는 조차지 당국의 비호를 받는 대신 빌베른계로부터 '외국의 앞잡이'라는 눈총을 받았고, 조차지가 사라진 뒤에도 그 앙금은 가시지 않았다. 루이나는 자치정부의 경찰과 방위대를 모집하면서 조차지 시절의 언어를 알고 구 정권과 연줄이 적은 혼혈계를 우선 채용했는데, 빌베른계 주민들의 눈에는 이것이 조차지 시절처럼 외국이 자기 사람을 따로 기르는 것으로 보였다. 반대로 혼혈계 주민들은 저항세력의 폭탄이 자신들의 구역에 집중되는 것을 빌베른계의 보복으로 받아들였다. 1974년 2월 22일, 장이 서는 금요일 오전의 칼라미 시장 한복판에서 폭약을 실은 트럭이 폭발했다. 211명이 숨지고 400명 이상이 다쳤다. 현장에는 '해협의 아들들'이라는 빌베른계 무장조직 명의로 "칼라미의 배신자들에게 경고한다"는 전단이 뿌려져 있었다. 그러나 해협의 아들들이라는 조직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테러가 정화전선의 소행이었다는 사실은 1979년 카라즈다가 사망한 뒤 그의 은신처에서 발견된 문서를 통해 확인되었다. 문서에는 폭탄 트럭의 경로와 전단 문구의 초안이 적혀 있었다.] 진실이 밝혀지기까지는 5년이 걸렸지만, 보복은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혼혈계 청년들로 구성된 자경단이 인근의 빌베른계 구역을 습격했고, 빌베른계 민병대는 혼혈계 주민을 겨냥한 보복으로 응수했다. 이후 3년 동안 이어진 이 연쇄 보복을 '구역 전쟁'이라 부른다. 매일 아침 해협에는 손이 묶인 시신이 떠올랐고, 도로 곳곳에 무장세력이 세운 가짜 검문소에서는 신분증에 적힌 이름과 말투 하나로 생사가 갈렸다. 시민들은 검문소를 지나는 구역에 따라 꺼내 보일 신분증을 두 장씩 들고 다녔다. 구역 전쟁은 도시의 인구 지도를 통째로 바꿔 놓았다. 조차지 회수 이후 10여 년 동안 조금씩 허물어지던 옛 조차지의 경계가 다시 살아났고, 섞여 살던 동네는 한쪽 주민만 남은 동네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70만 명 이상이 집을 떠나 피란민이 되었다. 민간인 희생이 가장 컸던 1975년 한 해에만 약 1만 9천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루이나군은 구역과 구역 사이에 콘크리트 장벽을 세워 충돌을 막으려 했고, 1976년 말까지 세워진 장벽의 길이는 42km에 달했다. 장벽 상당수는 공교롭게도 옛 조차지의 철책이 서 있던 자리를 따라 세워졌다. 장벽은 충돌을 줄이는 데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지만, 동시에 도시의 분열을 콘크리트로 굳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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