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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폴/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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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세력의 유입 ==== 순찰이 끊긴 외곽은 곧 국경 그 자체가 무너진 공간이 되었다. 혁명정부 시절의 국경경비대는 명령 제2호로 해산되었고, 자치정부는 국경을 지킬 병력을 끝내 조직하지 못했다. 그 틈으로 온갖 이국의 깡패, 범죄조직, 무장세력들이 국경 없는 콘스탄티노폴로 유입되었다. 무기상은 무기를 팔러, 밀수업자는 새 판로를 찾아, 인신매매 조직은 전쟁이 만들어 낸 고아와 피란민을 찾아 들어왔다. 3월 혁명 때 흩어졌던 서번트 갱의 잔당도 이 무렵 '종복회'라는 이름의 밀수 조직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 가운데 가장 악명 높았던 것이 [[유고랜드]] 출신 갱스터 벨미르 카라즈다(1938~1979)가 이끌던 '정화전선'이었다. 카라즈다는 유고랜드의 항구도시에서 밀수와 청부 폭력으로 이름을 날리던 범죄자로, 1964년 살인 혐의로 수감되었다가 옥중에서 극단적인 순수주의 교리에 빠져들었다. 1970년 출소한 그는 부패한 세계를 '불로 정화'해야 한다는 교리를 내세워 추종자를 모았고, 1972년 초 30여 명의 추종자와 함께 동부 외곽을 통해 콘스탄티노폴에 들어왔다. 정화전선은 콘스탄티노폴을 단순한 전장이 아니라 외국인 전투원을 받아들여 훈련시키는 수용·양성소로 활용했다. 랜드해협 각지와 그 너머에서 온 지원자들이 외곽의 버려진 별궁과 공장 지대에 차려진 캠프에서 폭탄 제조와 시가전을 배웠고, 이들 중 상당수가 곧바로 콘스탄티노폴의 전장에 투입되었다.[* 이 시기 정화전선의 캠프를 거친 외국인 전투원들이 이후 랜드해협 각지로 흩어져 도시형 무장조직을 세웠다는 설이 있다. 콘스탄티노폴이 '무장조직의 사관학교'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은 것도 이 무렵이다.] 정화전선은 외국인 납치에도 손을 댔는데, 1973년 한 해에만 루이나인 기술자와 구호단체 직원 등 외국인 19명을 납치했고, 이 가운데 몸값 협상이 결렬된 7명을 처형한 뒤 그 사진을 외국 통신사에 보냈다. 이들 세력은 단순히 루이나를 적대하는 것을 넘어서, 콘스탄티노폴 내의 각 무장세력들을 교묘히 충돌시키는 전략을 펼쳤다. 카라즈다가 보기에 루이나군은 언젠가 떠날 존재였고, 그가 원한 것은 루이나가 떠난 뒤 서로를 증오하는 세력들로 산산조각 난 도시였다. 정화전선의 폭탄은 루이나군 기지보다 시장과 버스 정류장, 장례 행렬을 더 자주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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