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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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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외 관계 === 북산과는 1977년 바젤 정전 이후 평화 조약 없이 정전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두 나라의 국경은 루이나 주도의 평화감시단이 관리하는 완충지대로 나뉘어 있고, 직접 교역이나 인적 교류는 거의 없다. 청평은 북산이 식민 지배와 두 차례 침공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는 점을 관계 정상화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루이나와는 1950년 꽁룩 회수 이후 한 번도 국교를 맺지 않았다. 두 나라의 접촉은 바젤 정전 체제의 평화감시단과 제3국을 통한 비공식 채널에 한정되며, 교역도 제3국을 거쳐 이루어진다. 2014년에는 청북 해협 인근에서 루이나 해군 구축함과 청평 해군 구축함이 충돌하는 [[청평 구축함 충돌사고|구축함 충돌 사고]]가 일어나 두 나라의 긴장이 크게 높아졌다. 청평은 사고 직후부터 루이나 함정이 고의로 진로를 막았다고 주장했고, 루이나는 청평 함정의 무모한 기동을 원인으로 발표했다. 이후 루이나 언론의 탐사 보도로 루이나 함정의 고의적인 차단 기동과 해군의 은폐가 드러나자, 청평 정부는 이를 '루이나의 거짓말이 스스로 무너진 사건'으로 선전했다. 사고는 두 나라 사이에 직접적인 위기 관리 채널이 없다는 문제를 드러냈으나, 국교 수립 논의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사비에트]]와는 1960년대 결별 이후 냉랭한 관계가 이어지다가 경제 교류를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회복되었으나, 1960년대의 원조 중단은 청평의 공식 역사에서 '동맹의 배신'으로 기억된다. 청북전쟁 때 사비에트가 청평에 제공한 지원이 소규모 무기와 외교적 비난에 그쳤다는 점도 이 기억을 굳혔다. 남쪽의 동사랜드와는 옛 책봉 관계와 사비에트와의 갈등을 함께 공유한다. 청평은 1960년대 동사랜드의 독립 항전을 지원했고, 1977년 사비에트와 동사랜드의 국경 충돌 때는 동사랜드를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1989년 이후에는 동사랜드가 청평 망명자의 경유지가 되는 문제로 한때 마찰을 빚기도 했다. 오늘날 두 나라는 경제 협력과 국경 무역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관계를 이어 가고 있으나, 동사랜드는 남꽝 왕국을 '청평 문명권의 남방 번속국'으로 서술하는 청평 교과서에 이따금 불만을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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