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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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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실 복원과 1951년 헌법 === 혁명 직후 려우 즈카이는 식민 지배로 끊긴 민족사의 연속성을 되살리겠다며 황실 복원을 추진했다. 마지막 황제 희안제는 북산에 협력했다는 낙인이 찍혀 있었고 여전히 북산에 연금되어 있었기 때문에, 혁명 정부는 민간에서 황족의 방계 후손을 찾아냈다. 선택된 인물은 남부 산간 마을에서 서당 훈장으로 살던 려우 반 끼엠(廖文儉)으로, 식민지 시기 내내 관직을 거부하고 은거했다는 점이 '식민지에 더럽혀지지 않은 혈통'으로 선전되었다. 1951년 새 헌법이 공포되면서 려우 반 끼엠은 황제로 즉위해 중흥제(中興帝)라 칭했고, 국호는 치앙펭제국(帝国大清平)으로 바뀌었다. 헌법은 황제를 국가와 민족 통합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실권은 내각과 혁명 지도부에 두는 입헌군주제를 채택했으며, 려우 즈카이는 총리 겸 혁명 지도자로서 실질적인 권력을 쥐었다. 같은 해 청평은 [[유엔]]에 가입했다. 혁명으로 세운 공화국이 2년 만에 제국의 이름을 되찾은 이 전환은, 사회주의 혁명과 민족의 전통을 함께 정통성의 근거로 삼으려 한 려우의 정치적 계산이었다. 즉위식은 1412년 려우 다이가 즉위한 띠에우리엔 황궁의 정전에서 열렸는데, 식민지기에 총독부 청사로 쓰이던 건물을 다시 황궁으로 되돌린 것 자체가 식민 지배의 청산을 상징하는 의식으로 연출되었다. 소박한 훈장 출신 황제의 이미지는 농민 대중에게 친근감을 주었고, 혁명 정부는 황제를 토지 개혁과 문맹 퇴치 운동의 선전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혁명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1949년 12월, 남쪽의 옛 책봉국 [[동사랜드]]가 사비에트에 합병되었다. 동사랜드는 1945년 인민적군의 혁명으로 북산 보호국 체제와 왕정을 무너뜨리고 인민공화국을 세운 상태였으나, 사비에트는 친사비에트파의 원조 요청을 명분으로 군대를 보내 이를 자치공화국으로 편입했다. 사비에트의 원조에 기대고 있던 청평은 이를 묵인했고, 1951년 동사랜드 자치공화국의 인민평의회가 연방 탈퇴를 의결하고 인민적군이 봉기했을 때도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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