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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평의 반격 === 북산군의 뇌우 작전으로 청평대제국은 단기간에 국토 대부분을 점령당하고, 수도 띠에우리엔(Tieurien)마저 포위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북산의 정규군이 예상한 “속결전”은 청평의 끈질긴 저항 앞에 점차 수렁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북산군은 주요 도시와 교통망은 장악했지만, 그 바깥은 청평의 인민유격대가 밤낮 없이 움직이는 지옥이었다. 전선은 서서히 멈췄고, 청평은 반격의 칼날을 준비했다. 청평의 반격은 전통적인 의미의 반격과는 달랐다. 청평군은 이미 대부분 궤멸된 정규군 대신, 전국 각지의 유격대와 잔존 병력을 재편해 지역별로 나뉘었던 저항을 점차 통합해나갔다. 중부 산악지대와 동해안, 남부 평야 지대에서 동시에 일어난 유격 활동은 점령지 안에서 북산군의 병참선과 군사시설을 끊어놓는 데 집중되었다. 초기에는 단순한 매복과 사보타주에 불과했던 저항은 점차 조직적인 국지전 양상으로 발전했고, 1975년 봄, 청평은 사실상의 전면 반격을 시작하게 된다. 가장 상징적인 반격은 쑤옹안 재탈환 작전이었다. 4월 초, 청평 제8유격대대가 중심이 되어 바다를 끼고 있는 이 도시를 포위 공격했고, 내부에 잔류하고 있던 시민 유격대와 협력해 시가지를 장악해나갔다. 수류탄과 화염병, 심지어 목재 상자 속에 숨긴 즉석폭탄이 북산군의 병참기지를 파괴했고, 해안에서는 어선으로 위장한 폭발선이 북산 해병대를 습격했다. 전투는 2주 동안 지속됐고, 결국 북산 제7산악사단은 병력을 후방으로 철수시켰다. 쑤옹안은 청평의 깃발이 다시 게양된 첫 번째 도시가 되었으며, 그 소식은 띠에우리엔의 병사들에게도 전해져 전의가 급상승했다. 반격은 수도 외곽에서도 본격화되었다. 띠에우리엔 서남쪽의 하이떤 고개에서는 청평 유격대가 도로를 지뢰로 봉쇄한 뒤, 북산 보급차량을 유인해 전차 3대와 군수차량 10대를 파괴했다. 이 승리는 단순한 전술적 성과를 넘어, 북산군의 병참 선에 구조적 불안을 만들어냈다. 이후 청평은 띠에우리엔 외곽에서 북산군의 이동을 끊임없이 괴롭히며 사실상 포위에 가까운 압박을 가했고, 도심 진입은 지연되기 시작했다. 6월이 되자 청평은 남부의 바오람 평야에서도 본격적인 야간 공세를 시작했다. 논과 하천을 중심으로 한 복잡한 수로 지형을 활용해 북산의 기계화 부대를 고립시켰고, 밀림 속에서 형성된 유격대는 도로망을 차단했다. 일부 청평 유격대는 포획한 북산군 장비를 역이용하여 북산군 행세를 하며 진지를 파괴하고 통신을 교란했다. 바오람 전역에서 북산군은 3주간의 반격에 밀려 40km가량 후퇴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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