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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 사랜드/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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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인식 == 제정 사랜드의 역사는 그것을 서술하는 쪽에 따라 전혀 다르게 그려져 왔다. 제정 스스로의 공식 역사는 루바르다의 《사랜드 민족사》로 대표되는 계승론이었다. 고대 사랜드 제국에서 제정까지를 끊김 없는 하나의 역사로 보고, 몽골 점령기와 혼란기는 외적과 반역자에 맞선 시련으로, 농노제는 평원의 자연스러운 질서로 서술했다. 사비에트의 공식 역사는 정반대였다. 1949년 이후 '제정'은 농노제와 전제정의 동의어가 되었고, 1,206년의 역사는 영주가 물과 땅을 쥐고 농노를 착취한 역사로 요약되었다. 이오시프 노스탈린의 '미완의 혁명'론은 1917년 장미 혁명을 제정의 붕괴로, 1949년 붉은 혁명을 영주 지배의 완전한 종식으로 규정했다. 라도사브 페리치와 마르코 크루니치의 반란은 '농민 혁명의 선구'로, 12월 장교 봉기와 '평원의 의지'는 '혁명 전통의 계보'로 기려졌다. 1990년대 재편기 이후 사비에트 학계에서는 이 두 서술을 모두 넘어서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영주 수리권이라는 제도에 주목해, 제정의 농노제가 러시아보다 반세기 넘게 오래 살아남은 이유를 차르나 귀족 개인의 반동이 아니라 반건조 평원에서 물을 독점한 지배 구조에서 찾는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한편 해협 북부와 루이나의 사비에트 망명자 사회는 제정 말기를 형식적이나마 입헌으로 나아가던 시기로 보고, 제1차 세계 대전이 없었다면 제정이 점진적으로 개혁될 수 있었다는 주장을 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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