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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논쟁 === 19세기 내내 농노 해방은 여러 차례 논의되었지만 한 번도 실현되지 않았다. 1810년대 알렉산다르 1세의 국가 농노 단계적 해방 구상은 통치평의회의 반대로 묻혔고, 1866년 페타르 3세가 마련한 해방 칙령안은 1867년 통치평의회에서 부결되었다. 1913년 사보르 하원이 상정한 농노 해방 법안은 차르의 하원 해산으로 폐기되었다. 해방이 번번이 좌절된 데에는 경제적인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수리권이었다. 해방된 농노에게 땅을 나누어 준다 해도 수로와 수문이 영주의 것으로 남는 한 그 땅은 쓸모가 없었고, 수리권까지 나누려면 영지 전체를 해체해야 했다. 둘째는 귀족 부채였다. 1885년 세워진 귀족 토지은행은 영지와 그에 딸린 농노를 담보로 귀족들에게 돈을 빌려주었는데, 1900년 무렵에는 영주 농노의 약 70%가 이 은행에 담보로 잡혀 있었다. 농노를 해방하면 담보가 사라지고 은행이 무너지며, 은행에 돈을 맡긴 국가 재정까지 흔들릴 것이었다. 농노는 영주의 노동력이면서 동시에 제정 금융의 담보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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