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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크론슈타트 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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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 제정 시대의 공식 역사에서 인크론슈타트 공국은 '제정의 요람'이었다. 19세기 낭만주의 계승론은 특히 나르샤 가문의 피를 강조해, 공국을 고대 제국의 정통이 슬라브인의 칼을 만나 되살아난 나라로 그렸다. 세미라는 고대 제국의 마지막 불씨를 지킨 여인으로 시와 그림의 소재가 되었고, 국가가 주문한 역사화 《인터르스키 1세의 대관》(1874)과 오페라 《인터르스키》(1852)는 공국의 마지막 장면을 제정의 탄생 신화로 만들었다. 반면 빌베른 상인의 거류지나 슬라브인 무리의 약탈 같은 이야기는 이 시대의 역사 서술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사비에트]]의 공식 역사는 공국을 정반대로 보았다. 사비에트 역사학에서 공국은 '물을 빼앗아 칼로 지킨 나라'였고, 대수문의 열쇠는 1,200년 동안 이어진 영주 수리권의 첫 번째 상징이었다. 사비에트 교과서는 공작들이 물을 끊어 하류의 마을들을 굶주리게 한 '목마른 여름'을 공국의 본질로 가르쳤으며, 그 반대편에서 물을 함께 나누어 온 수문 공동체를 인민의 전통으로 높였다. 1990년대 이후의 연구는 두 시각 모두에서 거리를 둔다. 1960년대부터 이어진 거류지 터의 발굴은 빌베른 은화와 장부 조각을 대량으로 찾아내, 공국의 성장에 빌베른 교역이 연대기의 서술보다 훨씬 큰 몫을 했음을 보여 주었다. 일부 연구자들은 688년 인터르스키의 즉위를 빌베른 상인들이 자금을 댄 정변으로 보며, 고이니크의 죽음과 무티미르의 찬탈에 관한 연대기의 서술도 인터르스키 가계의 정통성을 세우려는 후대의 손질이 들어갔다고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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