𝙇𝘼𝙓 𝙒𝙄𝙆𝙄
최근 변경
최근 토론
임의 문서
도구
최근 변경
이오시프 노스탈린
(편집 요청)
[알림]
문서를 편집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편집 요청으로 이동되었습니다.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로그인된 사용자(이)여야 합니다. 해당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재평가와 복권 (1998~) === 1998년 서기장에 오른 [[미하일 인터루쇼프]]는 노스탈린을 '연방을 세운 사람'으로 다시 불러냈다. 2003년 사망 50주기 추모식에서 그는 "연방을 세운 사람의 공과를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연설했고, 2009년 연방 수립 60주년에는 크라슬리스크 혁명 광장에 노스탈린 동상이 다시 세워졌다. 2012년 개정된 역사 교과서는 노스탈린을 "가혹했으나 필요했던 근대화의 지도자"로 서술하고, 1956년의 탈노스탈린화를 "필요했으나 지나쳤던 교정"으로 규정했다. 미하일 인터루쇼프가 할아버지 니키타의 보고를 사실상 뒤집었다는 점에서, 사비에트 안팎에서는 "할아버지가 무너뜨린 노스탈린을 손자가 다시 세운다"는 말이 나왔다. 미하일 정권은 이를 부인하며 1956년의 보고와 오늘날의 재평가가 모두 당의 '역사적 균형'이라고 설명한다. 노스탈린은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역대 사비에트 지도자 가운데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복권에는 반발도 거세다. 대정리 피해자 유족 단체와 카스탄족 단체는 동상 재건립에 항의하다 여러 차례 당국에 연행되었고, [[동사랜드]] 정부는 띠엔화 협정을 깬 노스탈린의 복권을 공식적으로 비판했다. [[루이나]] 정부도 2009년 동상 재건립 때 대정리 피해자를 모욕하는 일이라는 성명을 냈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27.0.0.1)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닫기
Liberty
|
the seed